트렌드 홍수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지난 글에서 ‘소비자(또는 시장)의 변화‘에 대해 살펴봤다. 소비자는 더 이상 ‘대중’이 아니며, 그 성향 역시 계속 바뀌어 가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도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게 됐다.
그럼 기업들은 어떨까? 우린 매년 새로운 트렌드를 익히려 노력하고, 마케팅이나 광고에도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왜 점점 어려워지는 걸까? 사실 답은 아주 간단하다.
비유를 들어 보자. 갈수록 취업문은 좁아지고 좋은 직장 구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천정부지 오르는 부동산 가격은 서민들에게 실망감을 준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됐다는데 어째 살기는 예전보다 더 팍팍하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한편으론 사실이지만, 전제가 잘못됐다. 예전엔 대학 나온 사람이 많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인력이 부족하니 학점과 관계없이 졸업장만으로 취직하기 쉬웠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서울에 사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았고 앞서 말한 대로 집을 살 만큼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은 더 적었다. 또 그때만 해도 강남이나, 성남 같은 곳엔 마음만 먹으면 집을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들 안 샀다. 왜? 직장에서 멀고 인프라가 떨어졌으니깐..)
최근 유행한다는 ‘메타버스’를 교보문고에서 검색해보면 무려 1,000건 이상의 결과가 나온다. 물론 주식하는 ‘개미’가 많아진 영향도 크겠지만, 경영 경제 베스트셀러는 재테크와 트렌드 서적이 죄다 차지할 정도로 단군 이래 ‘돈’ 되는 일에 관심이 가장 높은 때가 바로 지금이다.
한마디로 경쟁이 치열해졌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마케팅 서적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여기 다시 쓴 이유는, 우리가 이를 계속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전보다 살기 힘들어졌다며 대통령 탓, 세상 탓을 하는 것처럼.. (물론 언론이 그렇게 부추기지만) 마케팅과 경쟁 환경에서도 진짜 이유를 자꾸 잊어버린다.
트렌드는 사실 믿을 게 못 된다.
치열해진 경쟁 탓에 마케터들은 ‘트렌드’를 탈출구로 삼았지만, ‘트렌드 팔이(?)’를 하는 이들에겐 지금처럼 ‘흑우’잡기 좋은 때가 없다. 웬만큼 마케팅이나 시장 좀 안다는 분들은 다음 트렌드는… 하는 책들 한두 권쯤은 다 갖고 있다.
사실 트렌드가 됐든, 그런 트렌드에 따른 마케팅론이 됐든.. 우리 회사에 바로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만약 정말 우리에게 딱 맞는 마케팅 책이나 사례를 찾으려면 다음 두 가지 원칙을 먼저 따져 봐야 한다.
1. 천상계(天上界) 이야기가 아닌가?
혹시 저자의 (또는 그가 컨설팅하는) 회사가 헬리콥터 머니를 뿌려댈 수 있는 대기업, 혹은 펀딩을 받은 스타트업인가? 그런 회사들은 혹시 제품 판매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우아한 캠페인을 하고, 칸 광고제 같은 곳에서 상을 받고 있지 않나?
2. 이세계(異世界) 이야기가 아닌가?
성공 사례들이 우리와 전혀 다른 카테고리가 아닌가? 프랜차이즈 기업, 플랫폼 기업, 10대만을 타깃으로 하는 기업, 콘텐츠 기업 등 전혀 다른 영역의 비즈니스가 아닌가? 물론 거기에서도 배울 점이 있겠지만, 그들의 KSF를 따라 하려다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면 절대 실현할 수가 없다.
여전히 남아 있는 책이 있을까 모르겠다. 광고 회사에 있다 보니 강박적으로 트렌드를 수집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또 그런 성공 사례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광고주를 설득하기 쉬운 게 사실이다.
천상계 얘기든 이세계물(異世界物)이든 공통점이 있다. ‘판타지‘라는 거다. 그래도 한때 성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미디어 환경이 비슷하고, 경쟁자가 많지 않고, 소비자들이 쉽게 현혹되는 담배가 호랑이 먹던(?) 시절이다. 하지만 이제 소비자도 경쟁 환경도 미디어도 모두 변했다.
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hit
마이크 타이슨이 했다는 저 말은 원문 그대로도 멋있지만.. 누군가 우리말로 번역해 놓은 걸 보면 훨씬 와 닿는다. ‘누구나 멋진 계획이 있다. 한대 처맞기 전까진’ (개인적으론 요기 베라의 말보다 백배 현실감 있다.) 어디선가 새로운 이론과 멋진 폼만 배워온 상대에게 ‘핵’펀치를 날리는 타이슨이 상상된다.
지난 글에서 살펴봤듯, 소비자는 관심에 따라 계속 이합집산을 한다. 마케터는 발을 땅에 딛고, 지금 여기에 필요한 마케팅을 해야 한다. 아직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라면 천상계에 속하지 않으며, 남들이 알아서 성공 사례들을 공유하는 ‘핫’한 분야의 마케터가 아니다. 그런 나에게 딱 맞는 마케팅 교과서는 부족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트렌드 리터러시, 즉 우리에게 맞는 트렌드를 찾아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는 곧 우리에게 필요한 마케팅을 찾아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말이 쉽지 이게 그냥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우리에게 적합한 사례들을 어떻게 찾을까? 어떤 방향에서 접근해야 할까? 일단 아래와 같은 질문에 맞는 답을 구한다면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싶다.
1. 데이터 목적성
소비자 데이터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회사들이 의외로 많다. 구매 데이터, 상담 자료, 이벤트 응모 내역 등.. 일부 외국계 기업들의 경우, 해킹 우려 때문에 일부러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는 일단 데이터를 많이 쌓아두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데이터가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문제다. 우리의 소비자는 누구이고, 그 소비자들이 어떤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벤치마킹을 한다면, 다른 기업은 어떤 데이터를 수집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활용했는가? 를 중심으로 분석해 보자. 물론, 현실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2. 차별화된 스토리
우리 회사만의 이야기가 있는가?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생각한다. 나이키는 끊임없이 운동과 관련된 얘기를 한다. 우리가 소비자와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꺼리’가 있을까? 우리가 나이키나 파타고니아처럼 브랜드 파워가 있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될 때까지 계속 이야기할 거니깐..
다만 모든 대화가 그렇듯이 한두 마디 하고 나니 밑천이 떨어지거나, 상대방이 할 말이 없는 그런 주제여선 곤란하다. 많은 브랜드들이 멋진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 놓고 더 이상 확장할 방법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느낀다. (대행사에 시켜봐야 소용없다, 당장 ‘좋아요’가 적고 확산이 덜 돼도 진짜 이야기를 해야 한다.)
3. 함께 할 플랫폼
우리는 스토리를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소비자의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쌓아갈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는가? 그런 플랫폼이 없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플랫폼이라고 해서 꼭 ‘앱’을 개발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고객이 쉽게 방문할 수 있고, 우리가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면 충분하다.
물론 이미 홈페이지나 소셜 네트워크, 스마트 스토어 등에 계정을 갖고 있겠지만 이런 플랫폼은 스토리를 전달하기도, 지속해서 데이터를 쌓아 나가기도 어렵다. 우리가 가진 여러 플랫폼의 One of them이 아닌,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채널이어야 한다.
그 외에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크게 봐서는 위와 같다. 우리의 상황에 대해 가감 없이 직시하고 우리에게 맞는 트렌드를 발굴해서 사용해야 한다.
아직도 어디선가 본 멋진 캠페인이나 ‘메타버스’류의 키워드에 미혹되어 있다면, 타이슨의 명언을 되새겨 보자. 만약 그래도 마음의 정리가 안된다면 ‘이대 나온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지금 이 마당에 착한 척하세요?
여기는 지금 지옥이에요, 이 xx아.
각자 알아서 살아남자고.
다음번에는 위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조금 거친 표현들이 나왔는데, 이 점 양해 부탁 드리며…
Ryan Choi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