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은평메디텍고등학교 유옥식 부장교사
어린 시절, 누구나 그러했듯 기자 역시 학교 컴퓨터 실에서 선생님 몰래 게임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유행했던 건 <피카츄 배구>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게임이었고, 기자와 친구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쉼 없이 키보드를 연타하곤 했다. 물론, 걸린 뒤엔 엄청난 분량의 반성문을 작성해야 했지만. 이처럼 학교와 게임은 아주 먼, 어쩌면 상극의 위치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흥미로운 소식이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서울에 위치한 은평메디텍고등학교가 정식으로 e스포츠과를 개설하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호기심과 우려가 동시에 교차했다. 가장 멀리 있던 교육과 게임이 만난 건 반가웠지만, 과연 공교육만으로 재능의 영역이라 불리는 ‘게임’을 돌파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은평메디텍고등학교 유옥식 부장교사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차분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e스포츠과에 대한 생각을 가감 없이 풀어냈다. 은평메디텍고등학교와 유옥식 교사가 꿈꾸는 정규교육과 e스포츠의 미래를 들어봤다. 또한, 기사 후반부엔 e스포츠 산업에 뛰어들고픈 어린 학생들의 포부도 담겨있으니 끝까지 페이지 고정을 부탁 드린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은평메디텍고등학교 e스포츠과 유옥식 부장교사
# “노력으로 재능의 영역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A. 유옥식 부장교사: 은평메디텍고등학교 e스포츠과에서 부장교사로 일하고 있는 유옥식이라고 합니다.
Q. 은평메디텍고등학교 e스포츠과(이하 메디텍 e스포츠과)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A. 과를 개설하는 과정에 참여했고, 지금은 교육 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하는 걸 맡고 있습니다. 실제 수업에는 프로 출신 김형섭 교사도 함께 참여하고 있어요. 2학년 수업부터는 과정이 조금 더 세분화되고, 선생님도 더 많이 참여하실 겁니다.
Q. 메디텍 e스포츠과는 언제부터 기획된 건지 궁금합니다. 이 과가 설립된 과정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A. 2019년 초에는 e스포츠과가 의료정보시스템과였어요. 그런데, 학생 모집이 잘 안 되더라고요. 자연스레 학과 재구조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고 교장, 교감 선생님들과 함께 머리를 맞댔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아이들의 수요가 커질 만한, 색다른 걸 해도 큰 부담이 없겠다 싶어서 e스포츠과를 진행했어요. 교육부의 학과 재구조화 산업 심사를 통해 어렵게 선정됐습니다.
마지막에는 2차 컨설팅까지 갔었는데… 저에게 5분의 스피치 시간을 주시더라고요. 너무너무 긴장되고 떨렸습니다. (웃음) 각오를 들려달라길래 e스포츠 산업이 굉장히 커질 거라고,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정식으로 알려주는 학교는 없으니 그걸 처음으로 해보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당시 교육부에서는 “교육 과정이 없는데 어떻게 진행할 건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없으면 만들면 된다고 강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떨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선정돼서 다행이에요. 1년 정도 준비한 뒤에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e스포츠과를 시작했습니다.
은평메디텍고 정문. 최상단에 위치한 e스포츠과가 눈에 띈다
Q. 타 인터뷰를 보니 부장교사님께서는 직접적인 <리그 오브 레전드> 강의보다는 과 전반에 관한 관리, 감독을 맡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리그 오브 레전드>는 얼마나 플레이해보셨는지 궁금한데요.
A. 2019년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를 시작했어요. 11.18까지는 애쉬를 많이 했고… 지금은 미스 포츈을 주로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원거리 딜러인데… 아직 브론즈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웃음)
Q. 재밌네요. 그렇다면 실제 수업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A. 저희가 만든 교과서 내용을 최대한 다루려 노력합니다. 종목은 <리그 오브 레전드>에 집중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니까요. 1학년 때는 게임 중 e스포츠 산업과 관련된 것들, 이를테면 역사를 포함한 여러가지 내용을 알려주려 하고 있어요.
2학년부터는 e스포츠 윤리라는 과목이 추가됩니다. 게임이 점점 스포츠화되고 있잖아요. 실제로 아시안게임에도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인성이나 윤리적인 부분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게임이 사회적으로 부정적 시선을 받거나 도태되는 이유는 ‘에티켓’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도 있다고 봐요. 그런 게 없어져야만 이 산업이 건전하게 크고 활성화될 거라고 믿어서… 추가 교육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3학년 때는 심리훈련 교과서를 만들려고 합니다.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잖아요. 물론, 아직은 e스포츠에 도핑 테스트가 없지만… 정식 스포츠로 자리매김하면 이런 과정도 들어갈 거고, 자연스레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겁니다. 따라서 이를 채워줄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고 관련 수업을 해볼 생각입니다.
은평메디텍고는 e스포츠 실습이라는 교과서를 활용하고 있다
Q. 과제나 시험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소환사의 협곡에서 팀게임을 펼치는 경우도 있습니까?
A. 저희 교과서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역사에 대한 내용도 많아요. 역사가 꽤 길다 보니 어린 친구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도 많죠. 그래서 중간고사때는 이에 관한 지필고사를 봤는데… 생각보다 이론을 잘 모르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2학기 때는 지필 빼고 실기로 가려 합니다.
Q. 아무래도 첫 번째 해다 보니 최대한 맞춰가면서 진행하고 계신 거군요.
A. 조금씩 변화도 주고 개선해가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교과서가 한 권뿐이지만, 향후 조금 더 지원을 받으면 충분히 확장할 수 있다고 봐요. 얼마 전 문체부에 e스포츠 전문 인력 양성 기관 신청을 넣었어요. 그런데 반응이 부정적이었습니다.
은평메디텍고 e스포츠과 수업 현장
Q. 그건 의외네요.
A. 분명 진흥법 10조에도 명시된 내용인데… 아직 공식적으로 선정된 기관은 단 한 곳도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성행리에 영업 중인 아카데미들은 ‘e스포츠 전문 인력 양성 기관’이 아니라, 일종의 ‘시설’로 등록돼있죠. 어쨌든 문체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더 잘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적극적으로 어필 중이에요. 2012년에 나온 법인데 지정된 기관이 하나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Q. 뭐든지 ‘처음’이라는 건 어려운 듯하네요.
A. 그것만큼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어요. 사실 e스포츠 아카데미가 시장에 굉장히 많잖습니까. e스포츠가 커지면 그 산업도 그만큼 더 커지게 돼 있어요. 만약 이런 부분들이 공교육으로 들어온다면 사교육에 비해 훨씬 체계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겁니다.
정식 학교에 다니면서 e스포츠 선수가 되는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거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거예요. 학교 진학을 포기한 뒤 e스포츠 아카데미에 올인하더라도 실제로 선수가 되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그만큼 어렵고요. 이 경우 그 친구의 인생은 허송세월한 게 되고 맙니다. 만약, 정규교육에 그런 게 있다면 훨씬 리스크 적은 도전을 할 수 있는 거라고 봐요.
e스포츠 진흥법 10조,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항목이 보인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Q. 게임 외에 다른 기본 과목의 비중은 얼마나 됩니까.
A. 전문교육과는 보통 과목과 e스포츠 과목에 집중합니다. 1학년 때는 주당 열한 시간에 걸쳐 e스포츠 실습을 진행하고요, 2학년때는 반반 정도로 균형을 잡습니다. 반면, 3학년부터는 대부분이 전문 교과 수업이에요. e스포츠 외에는 인문 교과가 진행하는 수업을 그대로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Q. 게임은 공부와 달리 노력만으로는 재능을 따라잡기 힘든 영역으로 꼽힙니다. 이에 대해 부장 교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성적 산출 방법이나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향성이 이러한 노력과 재능의 개념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동의합니다. 예체능이나 게임 쪽은 소질이 굉장히 중요하죠. 하지만 의외로 소질이 없는데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는 경우도 정말 드물지만 있습니다. 스포츠에는 분명 그런 사례가 있다고 봐요.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과에 입학 상담이 들어오면 저는 무조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제일 좋은 건 공부해서 서울대 가는 거라고. 그게 훨씬 쉬울 거라고 말이죠. (웃음) 하지만 요즘 친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 해요. 과거에 말했던 성공은 서울대에 가서 의사, 변호사가 되는 거였는데… 요즘은 자기가 좋아하는 게 우선인 시대입니다.
따라서 이를 평생 직업으로 가질 수 있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직접 선수를 못하더라도 그 주변에서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면 이상적일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은평메디텍고는 e스포츠과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출처: 은평메디텍고)
# “정규 교육을 통해 게임을 배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Q. 지금부터는 조금 현실적인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메디텍 e스포츠과가 목표로 하는 바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e스포츠 선수 양성인가요? 아니면 산업 전반에 대한 전문 인력 양성인가요?
A. 프로게이머를 양성하는 게 1차 목표입니다. 거기서 안되는 친구들은 1인 미디어와 같은 e스포츠 산업 쪽으로 육성할 계획이에요. 따라서 2학년 때부터는 수업 과정도 두 개로 나뉩니다. 물론, 아직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더 많아요. 옆에서 보면 철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정말 좋아하면 그럴 수 있다고 봐요. (웃음)
Q. 그러면 학생들이 메디텍 e스포츠과에 지원할 때는 어떤 지원동기를 갖고 들어오나요? 예상하기로는 대부분 ‘프로게이머’를 꿈꾸지 않을까 싶은데.
A.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친구가 많죠. 실버 티어인데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고 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이 학교에 들어오면 무조건 프로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친구들도 많더라고요. 게임 산업 쪽에 관심 있는 친구는 대여섯 명 정도 됩니다. 애초에 산업으로 지망한 학생도 있고, 프로 게이머를 꿈꿨지만 도중에 전환한 친구도 있어요.
(출처: 은평메디텍고)
Q. 정말로 e스포츠 분야로 나아가기 위해 메디텍 e스포츠과를 택한 학생도 많겠지만, 일각에서는 학업을 회피하기 위해 택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현우 해설이 출연한 ‘tvn shift’에서는 “공부하기 싫어서 프로게이머를 지망한 티가 난다”라는 멘트가 나오기도 했고요. 이런 부분에 대한 교사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A. 유옥식 부장교사: 올해는 e스포츠과가 시작된 첫 번째 해입니다. 당연히 경쟁률도 치열하지 않았죠.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학교가 알려지고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다 보면, 점점 그 과정도 어려워질 겁니다. e스포츠과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재능과 노력이 필요해질 거예요.
연예인의 예를 들어볼까요? 저희 어릴 때만 해도 초등학생 때 연예인 되고 싶다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극영화과가 자리를 잡고, 자연스레 일정 수준의 필터링이 가능해졌어요. 저희 역시 비슷한 과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 김형섭 교사: 제가 지금 아이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는 ’17살 때는 항상 마스터 티어를 유지해야 한다’입니다. 그래야만 다른 코치님을 통해 테스트 기회라도 마련해줄 수 있으니까요. 만약 그 수준이 안된다면 e스포츠 산업 쪽으로 전환하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죠. 1인 미디어나 그래픽 영상, 편집을 배워 구단에서 일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고요.
e스포츠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정규교육과정 편입 역시 그 과정의 일환이다 (출처: 한국e스포츠협회)
Q. 그렇다면 메디텍 e스포츠과가 선수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꿈을 이뤄주기에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갖췄다고 보시는지요?
A. 김형섭 교사: 개인적으로 연결된 프로팀이 꽤 있습니다. 감독이나 코치님들, 특히 2군, 3군 쪽에는 많이 연결돼있어요. 덕분에 테스트 기회가 없는 친구에게는 한 번이라도 더 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KT의 ‘하프’나 담원기아의 ‘줄’, 프레딧브리온의 ‘비니’ 등 제자들을 한 번씩 학교에 초대해서 학생들 게임도 봐주는 것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반대로 e스포츠 산업 인력을 양성하는 데 있어서는 어떤 경쟁력이 있나요?
A. 유옥식 부장교사: 1인 미디어 같은 경우엔… 그에 필요한 리소스를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습니다. 큰 장점이라고 봐요. 이를 가능케 하는 실습실을 구성해놨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정말 관심이 있고 열정이 있다면 괜찮은 조건이죠.
교실 뒤편에 마련된 부스 (출처: 은평메디텍고등학교)
Q. 선수로 성장하는 부분에 대한 질문을 조금 더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담원기아의 쇼메이커 선수는 다이아몬드 티어의 고등학생이 프로를 꿈꾸는 건 무리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부장교사님의 생각이 궁금한데요.
A. 물론,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학생에게는 노선 전환을 권유할 겁니다. 하지만 이를 강제로 할 순 없어요. 김형섭 교사가 최소한 다이아몬드 티어까지는 가야 한다는 미션을 줬는데, 그걸 실패했음에도 본인이 고집을 부리는 거라면…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Q. 그렇다면 티어에 따라 교육 방향이나 지도 방침도 달라지는 건가요?
A. 김형섭 교사: 다이아몬드 티어 이상은 안쪽 부스에 들어가서 수업을 진행합니다. 방과 후엔 전문 코치도 초빙하고 있고요. 다른 학생들은 개인적인 1:1 피드백을 통해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저희 수업에 그랜드마스터 400대 등 점수가 높은 친구들도 있는데… 이 친구들은 해외 프로팀이나 대학리그에 참여하는 팀과 스크림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티어 높은 학생들로 팀을 꾸려서 대회에 나가는 그림도 기대해봄 직하네요.
A. 궁극적으로는 한국에서 개최되는 대회에 나가는 걸 목표로 하고 있는데… 아직 홍보도 덜 됐고 학생 수도 부족한 면이 있어요. 이런 부분들을 채우고 나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업 중 스크림을 관전하는 모습 (출처: 은평메디텍고등학교)
Q. 사실 프로게이머를 양성하는 아카데미는 굉장히 많습니다. 반면, 이렇게 정식 고등학교에서 교육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는 드문 케이스잖아요? 아카데미에 비해 메디텍 e스포츠과가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유옥식 부장교사: 학교에서는 학력을 갖추면서 e스포츠를 준비할 수 있는 거니까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카데미도 그렇겠지만 학교가 조금 더 교육 과정이 체계적일 거라고 믿습니다. 정규 교육을 통해 수업도 하고, 그 과정에 전공으로 게임이 들어온 거니까요.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 교과서나 점심은 물론이고 장비나 방과 후 수업 역시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 같습니다.
A. 김형섭 교사: 아카데미 리그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프로팀에 가기 위해 학교를 포기하면서까지 도전하잖아요. 이를 통해 데뷔할 수 있다면 너무 좋지만, 실패하는 친구들도 정말 많습니다. 포기하는 과정에서 인생이 무너지는 것보다는 여기서 안전하게 정규 교육을 받으면서 프로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게 장점 같아요. 안정감 생각하면 부모님들이 더 좋아하세요. 한국 사회는 아직 고등학교 졸업을 필요로 하니까요.
정말 멋진 자리지만, 그만큼 경쟁률도 치열하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 “설령 종목이 사라지더라도 건강한 게임 문화를 확립할 수 있다면 유의미할 것”
Q. 일단 드러난 내용만 보면, 메디텍고등학교는 E스포츠 쪽에 집중한 느낌이 강합니다. 향후 마이스터고처럼 게임 제작이나 개발 쪽으로도 풀을 확대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A. 유옥식 부장교사: e스포츠 인력 양성 쪽으로 무게를 잡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개발 쪽에 가까워요. 한국교원대 석사를 할 때 MFC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친구들은 그리 좋아할 것 같지 않아요. 게임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만드는 건 그리 큰 매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웃음) 개발과 플레이는 게임을 매체로 하지만, 전혀 다르다고 봐요. 축구를 즐기는 것과 축구공을 만드는 건 전혀 다르죠.
A. 김형섭 교사: 과거 다른 학교에서 프로그래밍과 게임 기획이라는 수업을 진행했었는데, 흥미를 잘 못 느끼더라고요. 능률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A. 유옥식 부장교사: 한 마디 덧붙이자면, 김형섭 선생님이 올해 저희 학교로 발령받으셨지만… e스포츠 선생님 충원도 절실한 상황입니다. 제일 어려운 부분이에요. 임용을 준비하는 선생님이 게임도 잘해야 하는 거니까요. 157개 챔피언을 달달 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코치와 교사를 따로 두고 있는 다른 스포츠와 비슷한 체제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한계는 있겠지만요.
Q. 그러고 보면 <리그 오브 레전드>는 패치에 따라 메타가 굉장히 크게 변하잖아요? 다른 게임이 될 정도로 폭도 넓은 편인데. 교과서가 이러한 메타 변화까지 다 담아낼 수 있는 건가요?
A. 유옥식 부장교사: 매년 갈아엎을 순 없죠. 교과서는 말 그대로 가장 기본적인 것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교과 수업을 진행하려면 교과서가 필요해서 만든 것도 커요. 말 그대로 ‘원론’에 가까운 내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e스포츠 교과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기본에 충실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Q. 사실 e스포츠는 불안 요소가 많은 종목으로 꼽힙니다. 개발사가 게임 서비스를 중단하면 한순간에 종목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런 불안성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을 법한데… 부장교사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떤 생각과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A. 유옥식 부장교사: 무진장 크죠. <배틀그라운드> 같은 경우에도 확 떴다가 금세 시들어버렸으니까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얼마나 게임을 건전하게 즐기냐입니다. 협회에서도 e스포츠 지도사를 준비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그런 자격들이 빨리 도입돼서 건전한 문화가 자리 잡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요즘은 게임이 하나의 문화잖아요. 윗세대가 보던 게임과 현세대가 생각하는 게임은 전혀 달라요. 생활이고 취미고 문화죠. 설령 종목이 사라지더라도 건강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면… 의미가 없다고 보진 않습니다. 인터넷 중독, 게임중독 지도사 등 다양한 종목들이 생긴다면 더 좋겠죠.
정말 만에 하나 <리그 오브 레전드>가 망하더라도… 또 어디선가는 대세를 이어받을 게임이 나올 겁니다. <스타크래프트>와 <리그 오브 레전드>가 그러했듯 말이죠.
A. 김형섭 교사: e스포츠에는 여러 게임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저희도 여러 게임을 주시하고 있어요. 지금은 모바일 시장 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생각해서… 모바일 게임도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어린 학생들은 모바일을 더 선호하니까 곧 그 시대가 올 거라고 봐요.
라이엇게임즈는 와일드리프트 등을 통해 계속해서 모바일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출처: 라이엇게임즈)
Q. 향후 특정 프로팀과의 협업을 기대해봐도 될까요? 만약 이뤄진다면, 어떤 내용을 기대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A. 유옥식 부장교사: 현장이야말로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장소죠. 동기부여를 충분히 해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바쁘시겠지만 강연 같은 걸 지원해주신다면 더욱 좋고요. 프로구단에서 테스트를 보기 어려운데, 여건이 된다면 그런 부분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스포츠가 정규 교육과정으로 들어옴에 따라 필요한 게 많아졌어요. 사실 게임이라는 걸 교과서라는 고정된 틀로 만드는 게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큰 틀의 뼈대는 만들 수 있다고 봐요. 구단에서 그런 작업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좋겠죠.
A 김형섭 교사: 프로 선수들을 직접 만나서 어떻게 하면 프로가 될 수 있는지, 얼마나 잘하는지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조금 더 분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 이벤트가 있다면 좋겠지만, 학생들도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해서 견학이나 산업군에 계신 단장, 사무국 분들이 와서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시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은평메디텍고 e스포츠과는 DRX와 MOU를 체결한 바 있다 (출처: DRX)
# “딴따라에서 아티스트 된 가수처럼… 게이머에 대한 인식도 변하길 바라며”
Q. 교사님께서 생각하시는 e스포츠란 무엇입니까.
A. 유옥식 부장교사: 지금도 e스포츠가 진짜 스포츠냐 아니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결국 그렇게 될 거라고 봐요. 아시안게임은 이미 들어갔고 올림픽도 언젠간 진입할 겁니다. 현 MZ 세대가 정통 스포츠보다는 e스포츠를 많이 즐기고 있으니까요. 스포츠는 관객이 없으면 자기들끼리 하는 운동에 불과하잖아요. e스포츠가 언젠가는 전통 스포츠를 넘어서는 순간이 올 겁니다.
Q. 그렇다면 e스포츠의 미래는 어떨 거라고 보시는지요. 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가 많은 게 사실인데.
A. 김형섭 교사: 아직 게임이라고 하면 부정적 인식으로 색안경 끼고 보시는 분이 많아요. 기성세대도 마찬가지지만… 20-30대분들도 안 좋은 시선이 많죠. 그걸 먼저 고쳐야만 산업이 발전하지 않을까요. 일례로, 예전에는 가수분들을 보고 딴따라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예술인, 아티스트라는 호칭을 사용하죠. 시선이 변하면… 산업도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Q.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과 메디텍 e스포츠과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유옥식 부장교사: 우리나라가 e스포츠 종주국이라고 하는데, 상금 랭킹이나 이런 건 미국이 훨씬 많아요. 산업 자체는 중국이 주도하는 느낌이고요. 우리가 종주국 타이틀을 내려놓지 않으려면 인식 변화를 통해 진짜 스포츠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걸 뒷골목에 감추는 게 아니라 정식 교육을 통해 양성하는 것은 물론 제도적 뒷받침도 꼭 필요할 겁니다.
가수는 어느새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직업이 됐다. BTS가 대표적인 예다 (출처: UN)
인터뷰 종료 후, 기자는 e스포츠 산업 진출을 희망하는 유준휘, 전채원 학생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두 학생은 조심스럽지만 당차게 e스포츠 인력으로 성장하고 싶은 포부를 전했다. (학생들의 요청으로 사진 촬영은 생략했다. 독자 분들의 이해를 바란다.)
Q. 반갑습니다. 먼저, 메디텍 e스포츠과에 지원하게 된 이유가 궁금한데요.
A. 유준휘 학생: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서 지원했었는데… 하다 보니 프로팀 코치가 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환하게 됐습니다.
A. 전채원 학생: 애초부터 게임 쪽으로 진로를 잡았었는데요, 처음에는 프로 게이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재능 많은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웃음)
Q. 대다수의 학생과 달리 e스포츠 산업군을 택한 셈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A. 유준휘 학생: 수업 시간에 밴픽을 짜고 준비하는 걸 직접 해보니까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모의 밴픽을 짜다 보니 흥미롭더라고요. 어렵긴 하지만,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
A. 전채원 학생: <리그 오브 레전드> 전문 스트리머가 되고 싶었어요. 1학년 때는 게임 위주로 수업을 받으니까 티어를 높여서 시청자들이 많이 들어오게끔 준비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2학년부터는 저희가 프로 지망이랑 1인 미디어 쪽으로 나뉘는데… 1인 미디어에서는 영상 편집도 배울 수 있어요. 그래서 오게 됐어요.
Q. 보기 좋네요. (웃음) 그럼, 각자 이 일을 꼭 해야 하는 이유나 기사를 보고 있을 관계자 혹은 e스포츠 팬분들께 자신을 어필해보는 건 어떨까요?
A. 유준휘 학생: 밴픽에 관한 내용을 많이 배워서 코치도 해보고 싶고, 면접도 들어가 보고 싶어요. 제일 좋아하는 팀이 T1이거든요. (웃음) 게임 이해도가 어느 정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A. 전채원 학생: 아직 미래가 밝다고 자신합니다! (웃음) 프로팀에서 스트리머 제안이 들어오면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구단이 요구하는 뭐든 할 수 있으니 지켜봐 주세요! 아, 합방도 언제든 가능하니까 데려가기만 하면 반드시 그 값을 할 겁니다. (웃음) 곧 개인 방송도 시작할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디스이즈게임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십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