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코노미의 부상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문화 확산과 재택근무 확대 등으로 노동 공급이 제약돼 경제적 손실이 초래됐는데, 반대로 성장 곡선을 더 가파르게 기록하는 산업이 있다. 바로 펫케어 산업이다. 미국의 반려동물산업협회 APPA(American Pet Products Association)에 따르면 2020년 미국 반려동물 산업 소비 지출액은 1,036억 달러(한화 약 115조 원)를 기록했다. 반려동물 사료 및 간식 부문에서 420억 달러, 수의사 케어 및 제품 판매 부문에서 314억 달러, 반려동물 물품·살아있는 동물 및 OTC의약품 부문에서 221억 달러, 기타 서비스(임시보육, 그루밍, 보험, 훈련, 산책 등 수의사 케어 이외의 모든 서비스) 부문에서 81억 달러가 지출되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1000명 이상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6개월 동안 이들 중 69%가 최소 한 마리의 반려 동물을 키우고 있으며, 37%가 반려동물을 입양했다. 현재 미국 내 반려묘 수는 9500만 마리, 반려견은 9000만 마리로 추정된다. 독일의 인구 수가 8400만 명, 프랑스의 인구 수가 6500만 명, 대한민국의 인구 수가 5120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미국의 반려견과 반려묘 관련 시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려동물 산업의 성장은 국내에서도 이어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반려 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전체 가구의 26.4%, 인구로는 1500만 명에 달한다. 집에서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내는 ‘펫콕족’이 증가하면서 펫코노미(Petconomy)가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펫코노미는 반려동물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펫(Pet)’과 경제를 의미하는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로, 반려동물 관련 시장 및 산업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이외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pet+family), 맞벌이 부부가 아이 대신 반려동물만 기르는 ‘딩펫족’(딩크족+pet) 등 관련 신조어도 잇따른다. 2012년 9천억 원이던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지난해 5조 8천억 원으로 확대됐고, 올해는 6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유아용품 시장이 약 4조 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려동물 산업의 프리미엄화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미국인은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사람처럼 대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이 반려동물 케어 시장의 프리미엄화를 이끌고 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밀레니얼 세대와 인터넷 세대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고소득층은 아니나 프리미엄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층으로 반려동물의 건강과 웰빙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들은 반려동물 식품을 고를 때 제품의 전 성분을 확인하고 성분이 어디에서 재배됐는지 등을 꼼꼼하게 살피는 등 사람이 섭취하는 먹거리를 선택하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국내 대표 육계 기업인 하림은 2017년 4월 ‘하림펫푸드’를 계열사로 분사하고 반려동물식품 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전했다. 사람도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사료를 표방한 ‘더리얼’을 출시하였다. KGC인삼공사도 홍삼 성분을 함유한 반려동물 건강식 브랜드 ‘지니펫’을 2015년 출시했다. 출시 당시만 해도 사람에게도 귀한 홍삼을 반려동물을 먹이느냐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으나, 반려동물의 건강을 생각하는 펫족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펫 브랜드 ‘잇츠온펫츠’는 반려동물 장 건강에 초점을 맞춘 제품을 선보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반려동물을 위한 청소기, 세탁·건조기는 기본이고 자동 급식기와 급수기까지 출시되고 있다. 70% 이상의 반려동물들이 집에 혼자 남겨지는 점을 감안하여 원격 급식기, 반려동물 전용 CCTV인 맘카, 간식로봇을 선보여 반려인의 주목을 받았다.
원격 급식기는 원하는 시간에 어디서나 반려인이 원격으로 사료를 배급할 수 있는 기기다. 여기에 반려동물이 사료를 잘 먹는지 맘카로 확인이 가능하다. 한 생활가전 브랜드가 선보인 HD 카메라 자동 급식기는 HD카메라가 내장되어 있어 혼자 남은 반려동물을 원격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함께 내장된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반려동물과 실시간 상호작용이 가능하고, 앱을 통해 급식시간 및 식사량 조절도 손쉽게 조절할 수 있다. 정확한 시간에 일정한 식사량 제공으로 성장기 반려동물의 올바른 식습관을 도와준다.
이처럼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펫 휴머니제이션‘ 현상에 따라 펫케어 산업은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령과 종에 따라 영양구성이 다른 ‘맞춤형 제품’, 반려동물 질환 관리를 위한 ‘기능성 제품’, 건강과 영양을 고려한 ‘건강식’등 프리미엄 제품의 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반려동물 산업의 성장성은 높지만 진입장벽 역시 높아
물론, 반려동물에 대한 극진한 케어를 제공하는 반려인들의 눈높이 역시 기술의 진화와 함께 한층 높아져 진입장벽이 결코 낮지 않다. 현재 국내 펫푸드 시장은 로얄캐닌, 퓨리나, 시저, 네추럴펫 등 외국 브랜드가 70%를 점유 중이다. 국내 기업들이 고품질과 제품 다양화로 장벽 깨기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철옹성이다. 동원F&B가 2014년 선보인 펫푸드 브랜드 ‘뉴트리플랜’의 출시 당시 2020년까지 연 매출 1000억 원 규모로 육성하겠다고 했으나, 2020년 매출은 300억 원 수준에 그쳤다.
사료시장에 많은 기대를 안고 진출했다가 철수하는 기업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13년 펫푸드 브랜드 ‘오 프레시’와 ‘오 네이처’를 론칭했었다. CJ제일제당은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펫푸드 제품을 2013년부터 출시해 판매해 왔는데, 수입 브랜드가 워낙 강세인 데다 매출 비중도 미미해 2019년 비상경영을 발표한 후 철수하였다. 빙그레 역시 2018년 유제품 생산 노하우를 활용해 반려동물 전용 우유인 ‘펫밀크’를 출시했으나 2019년 말 OEM업체에 넘기고 펫푸드 시장에서 철수했다. 반려동물 간식업계엔 크고 작은 브랜드가 많고 브랜드별 마니아층이 확고하여 시장 안착이 녹록지 않았다. 그나마 선전 중인 하림펫푸드 역시 매출 증가세에도 2018년, 2019년, 2020년 3년 연속 영업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장벽을 어떻게 뛰어넘었을까?
해외 반려동물 식료품 기업들은 유기농·친환경 제품 개발 및 판매 회사를, 펫 헬스·케어·서비스 제공 기업들은 온라인 플랫폼과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인수했다. 세계 최대 상위 10대 펫 비즈니스 기업들이 2010년부터 인수한 반려동물 관련 회사는 총 37곳으로 그중 동물건강 의약품 및 진단 제품 개발 회사인 Zoetis가 7곳으로 가장 많은 기업을 인수했다. 세계 최대 펫 케어 기업인 Mars Petcare가 6곳, 애완동물 사료·간식 등 펫 푸드 최대 기업인 Nestlé Purina Petcare가 5곳으로 뒤를 이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분야는 ‘펫 테크’ 스타트업이었다. 지난 10년간 총 인수 기업의 58%에 달한다. 특히 펫 헬스&케어 기업들의 테크 열풍이 눈길을 끈다. Mars Petcare는 반려동물의 영양과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Whistle, 반려동물 정밀의료 및 유전적 건강 감지 장치를 개발한 Genoscoper Laboratories, 애완동물의 유전성 안구 질환 치료를 위한 바이오 뱅크와 기술을 가진 Optigen을 2016년 이후 꾸준히 인수했다. Zoetis 역시 반려동물 진단 기술, 장치,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 기업 5곳을 2016년부터 지속해서 인수해왔다.
특히 펫 케어&서비스를 주도하는 Petco와 Petsmart는 지난 10년간 온라인 기반 펫테크 스타트업만 인수했다. 세계 최대 애완동물 전문 소매업체인 Petsmart는 최대 애완동물 온라인 유통업체인 Chewy, 반려동물 통합 정보 및 제품을 제공하는 종합 웹사이트 미디어 기업 Pet360과 애완동물 온라인·모바일 기반 입양 솔루션 제공 기업인 DCL Ventures를 인수했다. Petco는 디지털 수의사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Petcoach, 애완견 맞춤형 정보 및 교육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Pupbox를 인수했다. 펫 푸드 기업인 Nestlé Purina Petcare 역시 17년간 애완동물 구조·보호 및 입양을 촉진해온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기업 Petfinder를 2013년 인수하며, 반려동물과 사람의 더 나은 삶을 구축하는 접점을 확장해나갔다.
국내에서도 빠르게 성장 중인 ‘펫테크’ 스타트업
반려동물 용품을 판매하는 스타트업들이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 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40개 ‘아기유니콘’ 기업 중 3곳이 펫케어 관련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고양이 모래 등 PB(자체 브랜드) 제품이 히트를 친 펫프렌즈 외에 핏펫(반려동물 용품 판매), 펫닥(반려동물 케어 서비스)도 함께 아기유니콘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펫프렌즈가 2시간 배송이라는 핵심 키워드로 온라인 커머스에 집중을 한다면 핏펫은 차별화된 방향을 택했다. 국내 최초로 모바일 검진 키트 어헤드(Ahead)를 론칭하며 사업을 개시했고, 핏펫몰을 통해 커머스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 지금은 병원찾기 서비스로 보호자들이 믿을 수 있는 동물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펫보험 보급을 통해 더 많은 보호자들의 의료비를 경감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반려인들의 고민, 반려동물의 질병·부상
반려동물 소비자 조사를 하면 매년 가입하고 싶은 서비스 중 펫보험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면 병원에 갈 일이 종종 생기는데, 진료비는 병원마다 다르고 금액적으로도 부담이 크다. 펫보험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작 반려동물 의료보험이 정착되지 않아 반려동물의 질병·부상은 가족에 큰 부담이 되고 유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펫보험이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보험료로 부담스러운 금액에 비해 정작 보장률은 낮고 보장범위는 좁기 때문이다. 보장률은 50∼70%라서 국민건강보험이나 실손의료보험보다 본인 부담률이 높으며, 반려견이 잘 걸리는 슬개골 질환도 보험사에 따라 보장 여부가 갈린다. 이러한 이유로 반려인들 사이에서는 적금이 오히려 낫다는 말이 돌 정도이다.
전문가들은 실질적으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려면 사람처럼 동물도 질병 코드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질병 코드화가 되고 표준 수가제를 도입하면 반려인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수의사들은 시장 논리를 들어 진료비 표준화에 강한 거부감을 표하고 있다. 반려동물 의료비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자 농림축산식품부는 반려동물 질병 항목에 대한 표준화 작업에 나섰다. 반려동물과 반려인들이 계속 늘어가는 현 상황에 맞는 보험 체계가 하루빨리 수립되어 반려인들의 부담은 줄고 반려 동물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기대해본다.
해당 콘텐츠는 Jimmy Ch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