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적)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조직 내 상호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서로 간의 일을 나누고 합치는 과정에서 조직의 성장과 지속가능성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조직 내에서는 기본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재된 ‘외골수적 성향’ 때문에 올바르게 함께 일하는 법을 체득하지 못해 고생 아닌 고생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질문도 도움 요청도 하지 못해 늘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왜 질문과 도움 요청을 ‘잘’하는가
일을 잘하는 사람의 ‘일을 대하는 태도’는
스스로 문제의 주인이 되지 않으려는 자세이다.
일로부터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을 구분하며, 일(문제)을 일(함께 해결해야 하는 골치 덩어리)로 본다. 또한, ‘누가’ 해결하는 것보다는 언제까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만 해결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인지(기획 및 실행 전반)에 집중한다.
그래서, 그들은 일과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모든 책임을 스스로에게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슬기롭게 함께 일하는 이들과 그 책임(역할)을 나눈다. 그로 인해 모두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집중한다.
공감대(Consensus)는 대화를 통해 형성된다.
업무상 대화(Communication)는 대부분 서로 알고 있는 것을 견주고, 그 과정에서 ‘질문과 답변’ 또는 별도의 요청(대면, 서면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단,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을 위주로 우선적으로 공유하고, 상호 간의 생각을 나누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이때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듯한 뉘앙스’를 지양한다. 그로 인해 서로 빈정 상하지 않도록 배려를 하는 것이다. (말과 글을 예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세심함을 기울인다.)
그 대화 속에 진정성(Integrity)이 묻어난다.
여러 채널과 도구를 통한 대화에 상대방을 향한 존중과 배려가 묻어난다. 구어체와 문어체를 대화의 상대 및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단박에 만들어진 스킬과 태도는 아니다. 오래도록 타인을 존중하려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면서 갖게 된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 역량이다.
그들의 질문과 도움 요청에는
‘필요의 상세한 이유(목적과 목표)’가 있다.
단순히 모르는 것 또는 자신이 하기 어려운 것을 묻거나 요청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필요에 의해 찾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타인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청할 때도 일방적이기보다는 조심스러운 편이다. 질문과 요청을 둘러싼 (이해를 돕는) 상황 설명을 포함, 다소 장황하다 싶을 정도의 타인의 이해와 설득을 위한 사전 활동이 담겨 있다.
결국, 그들의 무의식(Thinking) 속에 모든 답이 있다.
위와 같은 ‘함께 일을 하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그들을 대하는 진심 어린 말과 행동’은 철저히 훈련 및 연습을 통해 그들의 ‘무의식’을 바꿔놨다. 꾸준히 의식적으로 타인과의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했던 질문과 도움 요청의 활동(Input)이 무의식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배려를 담아 말과 글이 겉으로 나올 수 있도록(Output) 만들게 된 것이다.
질문과 도움 요청에 인색한 사람들은
점차 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 반대편 사람들은 ‘내가 해결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혼자’ 일을 하고, 그 일을 나눠주며 일을 한다. 마치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함께 해야 하는 일 속에 혼자 해야 하는 일의 주도권을 스스로 정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사를 자처한다. 정작 그 일(문제)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없음에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때로는 자신과 일을 동일시한다.
회사의 대표라면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대표인냥 행세한다. 내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그 일을 위해서는 모두가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요에 의해서만 질문과 도움 요청을 한다. 자신의 일이 막히거나 할 때에만, 그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일을 하는 목표가 ‘스스로 (문제) 해결’에 있다.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다. 그로 인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전보다 스스로가 성장했다고 느끼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더더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편에서 사람보다는 일을 본다. 지금의 일에 도움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여 관리한다. (그게 효율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공감대 진정성, 모두 ‘필요에 의해 작동’한다.
그 필요는 문제 해결에 있다. 그래서 몇몇의 경험 많은 숙련된 이들은 공감대와 진정성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다. 늘 ‘안면에 철판’이 있는 편이다. 부탁하는 것도 스킬이라 ‘자신의 요구를 상대방이 거절하지 못하는 쪽’으로 대화의 스킬을 발전시킨다.
그들의 행동은 편협한 생각(의식-무의식)의 표가 난다.
반복된 그들의 ‘필요에 의한 소극적이고 편협한 요청’은 자신의 무의식의 발전을 가장 저해한다. 계속 같은 방식으로 해왔던 스스로를 간혹 부정하고, 더 나은 방안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미 자리 잡힌 ‘자신만의 문제 접근 및 해결 방식’은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더 큰 책임을 짊어질 자리에서 성장이 막히게 된다.
왜냐하면, 위로 올라갈수록 일을 하기보다는 일을 ‘관리’하는 쪽으로 점차 발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일은 단순히 ‘일’이 아니다. 그 일과 연계된 사람과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연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를 꿰뚫어 봐야 하고, 그 연결이 ‘고객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까지 볼 수 있어야 하는 책임을 조직으로부터 요구받는다. 하지만, 시작부터 ‘문제 해결’만을 해왔던 이가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위로 올라갈수록 ‘복잡 다단’해지기 때문에, 혼자서도, 누군가의 단순한 도움, 궁금증 해결만으로는 (완전한)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 된다.
질문과 도움 요청은
스스로를 성장시킨다.
“혼자 하지 말라.”
많은 이들이 일을 혼자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아니, 믿고 있다. 마치 학교 다닐 때 옆 짝꿍에게 자신의 노트를 공유하지 않는 습관이 회사에 가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무의식에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조직은 학교와 경쟁의 메커니즘이 전혀 다르다. ‘함께 해야 하고, 그 이유는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 질문과 도움 요청은 민폐가 아니다.
내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나와 일로 연결된 동료와 선후배의 일을 알아야 한다. 아주 단순 명료한 쉬운 일이라고 하면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지만, 다소 복잡성이 가미된 일이라면 꼭 그 일과 관련한 지속적 설명을 통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생뚱맞은 (개인단위) 일’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질문과 요청은 나만 성장시키지 않는다.
게다가 그 질문과 요청을 서로 하면서 ‘스스로 깨우침의 정도’가 발전함을 느끼게 된다.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하거나 완벽한지에 대한 사고력(이해도)의 증진을 기대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타인을 이해시키기 위한 좋은 설명 방법과 표현’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런 류의 대화를 나누는 이들끼리 상호 간의 성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회사 내에서 질문과 요청을 서로 권장하자.
지금도 ‘질문과 도움 요청’을 공식적 또는 암묵적으로 권장하지 않는 회사가 있다. 그런 회사치고 ‘발전하는 회사’가 거의 없다. 서로 하는 일을 아무리 해봐야 그 일을 적절한 수준과 내용으로 합치지 못하면, 이를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조절하지 못하면 ‘가치 상승을 포함한 비즈니스의 목적과 목표 달성’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직스쿨 김영학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