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피부에 양보하다.
어릴 적 냉장고 속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임박한 우유로 세수하는 엄마의 모습을 본 적이 종종 있었다. 평소 음식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엄마가 우유로 세안하는 광경은 당시 나에겐 꽤 충격적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엄마의 우유 세안은 계속되었는데 내게는 벌에 쏘이면 된장을 발라주던 할머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뷰티 유튜버들이 우유를 활용한 미백과 보습 케어 방법을 소개하고 실제로 피부가 맑아지는 효과를 보았다는 주변의 체험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항간의 설에 의하면, 클레오파트라 역시 우유 목욕을 하며 피부를 관리했다고 하는데 설마 우리 엄마가 뷰티케어의 선구자였던 것일까?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건강 정보 제공 업체 healthline에 따르면 뷰티 인플루언서들을 포함한 업계 종사자들은 우유 속 풍부한 비타민 A, 비타민 D 그리고 젖산이 피부 관리에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그중 ‘그린뷰티 법칙’, ‘그린 글래머’ 등 뷰티 관련 저서로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출신의 뷰티 전문 작가 페이지 파젯(Paige Padgett)에 따르면 우유 세안을 통해 4가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1. 클렌징 효과
그녀는 클렌징 폼 사용에 민감한 피부를 갖고 있다면 우유를 사용해보길 추천한다고 한다. 비록 클렌징 폼보다는 연하지만 유분과 메이크업을 지우는 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2. 주름 개선과 미백 효과
우유에는 AHA(젖당에 들어 있는 유기산) 성분이 있는데 주름 개선과 미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3. 각질 제거
화장 솜을 우유에 살짝 적셔서 얼굴을 닦아내면 각질 제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소개한다.
4. 보습 효과
각종 미네랄 성분이 피부에 보호막을 형성해 피부를 윤기 있고 촉촉하게 만들어 준다.
우유는 팩으로도 활용이 가능한데 세안 후 화장 솜이나 거즈에 우유를 적셔 얼굴에 20분가량 올려둔 뒤 미온수로 헹구면 우유 세안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우유를 꼭 얼굴에 양보할 필요는 없으니 허기가 진다면 차라리 마시길 권한다.
해외에선 이미 대중화된 우유 활용 뷰티템
피부 관리에 우유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앞서 인지한 해외 시장에서는 이미 우유를 이용한 뷰티 제품들이 많다. 앞서 우유를 피부 클렌징에 사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는데 이를 상품화하여 우유를 활용한 클렌징 제품 역시 출시되었다.
해외 시장에서는 우유 클렌저뿐만 아니라 우유 마스크 팩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패키지도 실제 우유 팩처럼 만들거나 투게더 혹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다. 젖소 그래픽과 젖소 무늬를 활용한 점도 눈에 띈다.
국내 전통 유업체, 우유 마스크팩을 출시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유가공업에만 집중해온 국내의 대표적인 유가공 기업인 매일 유업이 마스크팩을 출시하였다. 단순한 마스크팩이 아닌 유가공 업체의 근본이자 존재의 이유인 우유를 레시피로 한 우유 마스크팩이다. 우유에서 추출한 밀크세라마이드가 주요 성분인데 보습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 세라마이드 성분은 주로 바르는 화장품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콜라겐과 세라마이드를 함께 먹어 관리하는 이너 뷰티 트렌드가 자리 잡고 있다. 성분과 효능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만 뷰티 전문 리뷰어가 아닐뿐더러 관련 지식도 전무하여 설명은 따로 하지 않겠다. 그런데 왜 갑자기 유가공 기업이 뜬금없이 마스크팩을 출시한 걸까?
저출산으로 인해 매년 축소하는 우유 소비
2020년의 국내 유업계는 연초부터 창궐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를 보냈다. 급식 중단으로 원유로 환산하면 약 10만 톤 정도인 학교 급식 물량 소비처를 잃은 유가공 업체의 타격이 상당했다. 그리고 저출산으로 영유아와 학령 인구가 지속해서 감소하면서 국내산 원유의 주력 생산품인 신선 우유와 영유아를 위한 분유 등의 시장이 점차 축소되어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우리나라 인구의 15.7%로, 향후에도 계속 증가하여 2025년에는 20.3%에 이르러 우리나라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민국의 1990년대 평균 연령은 20대 후반이었는데 현재 평균 연령은 42.6세이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800만 명을 돌파하였는데 이는 14세 이하 유소년 인구보다 24%가 높다. 2018년 김연자의 아모르파티가 대히트를 치고, 2019년 미스트롯에 이어 2020년 미스터트롯이 엄청난 흥행을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신선 우유의 수요는 줄어드는 반면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치즈와 버터, 제과 제빵, 빙과의 주재료가 되는 원료용 우유의 경우 대부분 수입 브랜드가 잠식하면서 국내산 유가공품 시장은 기존의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유업에만 집중해온 국내의 대표적인 유업체들은 저출산, 고령 사회 진입 등 인구 구조 변화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입 브랜드의 승승장구까지 이어졌다.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에서 기회를 찾는 것은 어쩌면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유의 활용 방안이 지금처럼 계속 다양해지고 보편화된다면 먼 미래에는 우유를 마시는 모습이 오히려 어색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국내 유업계가 얼마나 발 빠르게 인구 변동과 그에 따른 수요 변화에 대응할지 지켜보자.
해당 콘텐츠는 Jimmy Ch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