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 북서부 시애틀에 살고 있다. 보통 시애틀 하면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나오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영화를 떠올린다. 요즘은 시애틀이 실리콘 밸리와 같은 Tech hub 중 하나로 성장하고 있다. Amazon과 Microsoft 본사가 이곳에 있으며, 구글과 페이스북도 캠퍼스를 가지고 있다. 내가 다니고 있는 Visa도 이곳에 오피스가 있다.
이곳에 창발이란 협회가 있다. IT 분야에 종사하는 한인 전문가들이 만든 협회다. 나도 한때는 “창업” 소그룹에서 부운영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창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그중 상당수가 business idea를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스타트업의 성패는 business idea를 검증받는 데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에게 idea를 말하고 feedback을 받고, 시장 조사를 하고, focus group interview나 설문 조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idea를 검증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보여주고 잠재 고객의 실제 반응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란 말도 있지 않은가.
스타트업 성패는 즉 얼마나 빨리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면 된다. 창업 초기에는 idea를 보여주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어느 활동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1. 아이디어 검증
나의 창업 아이디어는 인터넷에서 이력서와 구인 페이지를 수집하고 이것을 분석해 현재 나와 있는 가능한 모든 경력 path를 보여줌으로써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 직업을 결정하고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요즘 핫한 머신 러닝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면 Smart Career 프로그램에 머신 러닝 엔지니어를 입력하고 검색하면 다른 사람들이 머신 러닝 엔지니어가 된 경로를 그래픽으로 보여준다. 현재 위치, 학력이나 자격증, 전공, 기술을 입력하면 나와 똑같은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머신 러닝 엔지니어가 됐는지 보여준다. 각 경로를 선택하면 얼마만큼 시간이 걸렸고, 비용이 얼마나 들었고, 어떤 공부나 자격증을 땄는지, 그리고 현재 어느 회사에서 어떤 위치로 어느 정도 돈을 버는지 하는 상세 정보도 보여준다.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 나 스스로 알고리즘을 검증하고 싶었다. 우선 데이터를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Job portal site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LinkedIn, Glassdoor, Indeed, monster 등을 살펴봤고 데이터 질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어떤 식으로 제공하는지 조사했다. 특히 API를 제공하는지도 중요했다. 또 나와 비슷한 idea로 사업을 하고 있는 서비스가 있는지 조사했고 Careercup, themuse 등 전문 서비스를 심층 분석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또 장단점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조사 결과 LinkedIn이 데이터 정리가 비교적 잘 되어 있었다. 이용자의 프로필이나 회사 구인 광고가 어느 정도 규격화되어 있었다. 그 의미는 필요한 데이터를 추출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하다는 얘기다. 먼저 LinkedIn 데이터를 가지고 business idea가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지 확인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LinkedIn 데이터를 수집, 가공해 유저가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2. 제품 개발
아쉽게도 API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Web scraping 방법을 써서 LinkedIn profile과 구인 페이지를 모으기로 했다. 데이터 수집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 Fiverr를 통해 프리랜서 개발자를 구했다.
Fiverr와 비슷한 서비스로 upwork가 있는데, 각 분야의 프리랜서 전문가들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 대표가 개발자가 아니라면, 개발자라도 개발한 시간이 없다면 프리랜서를 고용하여 기술 검증과 시제품을 빠른 시일 안에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프리랜서와 함께 개발을 진행하면서 투자자, 각종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사업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그러나 시제품이 없이 말로만 설명하려니 여러 한계가 있었다. 또한 실제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없었다. 많은 아이디어가 종이 상으론 좋지만 막상 개발해서 사용자 손에 들어가게 되면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투자자를 만나고 공동 창업자나 고문(Advisor), 후원자, 팀원들을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품 개발이다.
제품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여름 방학, 약 두 달 동안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개발하고자 했다. 막 대학을 졸업한 두 명을 고용했고, 대학생 두 명을 인턴으로 뽑았다. 집 지하 창고를 사무실로 개조하여 썼고 가끔 인근 대학 빈 강의실에서 세미나를 하거나 Amazon, Microsoft 본사를 방문해 개발자, 디자이너들과 미팅을 하기도 했다.
데이터 수집 부분도 LinkedIn profile을 수집하는 팀과 회사 구인 광고를 수집하는 두 팀으로 나눴고, 수집된 정보를 저장하는 데이터 베이스(문서 데이터 베이스인 MongoDB), 그리고 그것을 가공해 다시 저장한 데이터 베이스(Graph 데이터 베이스인 Neo4 j)로 구분해 업무 분담을 했다.
약 두 달 동안 열심히 해서 POC(Proof Of Concept)를 하려고 했다. MVP 서비스를 가지고 투자자를 만나 seed rounding founding을 받고 경력직 개발자를 stock option을 포함해 고용한 뒤, 본격적인 제품 개발을 시작하려고 준비했다. 동시에 beta test를 거쳐 product market fit을 찾고, marketing 전문가를 고용해 그에 맞는 go to market 전략을 짜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혼자 하던 것을 네 명에게 분담해 개발했지만, 개발 속도는 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들 경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바쁜 시간을 쪼개 개념을 설명하고(Visa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오후 3시쯤 퇴근해 2시간 정도 회의를 한 뒤 같이 일했다), technology를 설명해야 했다. 또 개발 시 의문이나 문제가 생기면 내가 해결해 줘야 했다. 두 달 안에 뭔가 보여줄 만한 그럴싸한 시제품을 기대했지만 결국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여름 개발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기 위해 Demo day를 개최하고 사람들을 초대해 각자 많은 부분을 발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또한 Demo day가 끝난 다음 날 비즈니스 미팅 건으로 한국을 가야 했고, 한국에 있는 동안 장모님이 위독해 지셔 돌아가셨다. 병문안과 장례식을 마무리하느라 약 두 달 정도 한국에 있어야 했다. 그러는 사이 계속 같이하기로 한 개발자가 금전적인 이유로 퇴사했다. 5억을 투자 받기 전까지는 최소 임금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했는데, 그동안은 한국에서 부모님이 학교 다닌다고 생활비를 지원해 줬다고 한다. 그런데 졸업하니 본인이 충당해야 한다고 했다. 회사에서 주는 월급으론 힘들다고 했다. 생각 같아서는 우리 집에서 숙식을 제공해 주는 조건으로 협상하고 싶었지만 내가 장모님 때문에 한국에 있는 관계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결국 팀이 해체되고 다른 비즈니스, Seattle Basecamp의 Startup Accelerating 프로그램이 시작되어 Smart Career 개발은 탄력을 잃고 잠시 중단된 상태이다.
송재희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