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의 성공, 실패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거나,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본 사람은 “product-market fit”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스타트업의 product-market fit은 스타트업이 만들고 있는 제품이 시장에서 고객이 정말 원하는 제품인가를 검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product-market fit을 찾지 못한다면 스타트업은 생존할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스타트업이 살아남기 위해서 product-market fit을 충족해야 하듯,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하려는 개인들은 performance-market fit을 충족해야 한다. 스스로의 능력이 제품으로 발현되고 그 제품이 시장과 적합한 제품이라는 게 확인이 될 때, 스타트업과 개인은 함께 성장한다. 이렇듯, 개인의 관점에서 product-market fit은 개인이 시장에서 고객들이 원하는 제품이나 비즈니스에 적합한 능력을 보이고 있는지를 의미하는 performance-market fit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개인들이 performance-market fit을 충족해야 하는 이유는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일수록 개개인의 역량이 시장에서 통하는지 여부가 스타트업의 생존과 직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서 8년 동안 지내면서 내 역량을 꼭 증명해내어야 할 때가 여러 차례 있었다. VC의 투자를 받아야 다음 분기에 회사가 유지될 수 있는 상황이 오기도 하고, 내가 기획한 제품에 회사의 사활을 거는 경우도 생긴다. 개인에게는 가장 큰 압박이 오기도 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모든 경우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고, 이를 통해 내가 어떤 일에 더 잘 맞는지 알게 되거나, 복기를 하며 어떻게 성장할지 고민하기도 한다.
오늘은 스타트업을 거쳐오며 내가 맡았던 역할에서 성공 및 실패했던 경험과 당시에 나에게 필요했던 역량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창업자로서 필요한 역량
Product-market fit을 찾기 위해, 창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버티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Grit(열정적 끈기)라고도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난 창업 생활을 돌이켜 봤을 땐 이 역량은 가장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창업자의 실패는 product-market fit을 찾기 전까지 계속된다. 창업자가 product-market fit을 못 찾았다는 말은 이걸 찾기 전에 포기했다는 말과 동일하다.
나는 창업 초기에 만들어진 제품도 없이 정말 수많은 투자자 앞에서 우리 팀이 만들어갈 제품과 비즈니스에 대해 피치 하러 다녔다. 거의 모든 투자자가 내가 만드는 제품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고, 성장 가능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투자자를 탓할 수 없었다. 투자자 관점에서 제품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나의 역량 탓이었고, 그들이 보기에 매력적인 비즈니스로 전달하지 못하는 내 부족한 경험 탓이었다.
결국 투자 유치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든 후에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받은 지원금과 대출금으로 제품을 꾸역꾸역 만들어 갔다. 하지만 야심 차게 제품을 만들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다시 제품을 업데이트해 내놓은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피벗을 해서 비즈니스를 더 강조했지만 그래도 고객들은 환호하지 않았다.
그쯤 되니, 이런 질문들이 나를 뒤덮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가?”, “무엇을 앞으로 더 해야 하는가?”, “우리 제품은 무엇이 부족한가?”, “나는 무엇이 부족한가?”.. 등 수많은 질문이 있었다. 나의 결론은, 나와 우리 팀이 현재 시장의 기대 수준만큼 무언가 내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잡아내지 못했고, 고객 관점에서 경험을 설계하거나 비즈니스를 만들 역량도 부족했다.
이러한 결론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우리의 제품과 회사가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나와 팀은ㅇ market과 fit 하는 제품을 찾을 때까지 버티는 것이 아니라, product-market fit을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지어버렸다.
만약 한 번 더 우리의 제품을 피벗 하거나, 다른 가설을 빠르게 검증해 실행으로 옮겼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 사후 부검하고, 무엇을 배웠는지 정의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그렇게 열정적인 끈기로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면, product-market fit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Product Manager로서 필요한 역량
스타트업에 합류하면서 내가 스타트업과 제품 성장을 위해 맡았던 역할은 Product Manager였다. 그러나 나는 그 누구에게도 Product Manager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고, 모든 역량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 그러다 보니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해먹 남녀 2.0 기획을 2개월 넘게 진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매주 새로운 제품의 모습을 그리고 대표님과 회의를 했다. 시장에 어떤 제품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이런 제품의 모습을 상상하며 PPT에 그린 wireframe으로 매주 보고했다. 한 달이 지난 무렵, 대표님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한솔 님은 기획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다른 일을 하는 게 어떨지 고민해보세요.” 모든 게 무너지는 듯했다. 그동안의 밤샘 시간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내 시간들을 증명하는 건 온전히 나의 역할이었다.
2.0 기획 승인이 계속 밀리다 보니, 가장 중요한 가설부터 검증해보자는 팀의 의견이 있었다. 만약 간단한 기능으로 가설을 검증할 수 있다면, 2.0의 전반적인 방향에 대해서도 대표의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2.0 기획의 핵심은 제품에서 음식들이 “맛있게 보인다”, “원하는 음식을 쉽게 찾는다”에 있었다. 나는 이 중에서 “콘텐츠가 맛있게 보이면 고객들이 더 자주 제품을 찾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이미지 썸네일 대신 gif 움짤 형태로 보여주는 기능을 기획했다. 그리고 와이파이 환경에서 고객이 앱을 켜면, 음식 완성 이미지가 아니라 음식이 가장 맛있어 보이는 순간을 움짤로 제공하도록 개발 요청했다. 그리고 동영상 콘텐츠의 하이라이트 구간 1~2초를 gif로 따서 300개가 넘는 움짤 이미지를 밤새 수동으로 admin에 등록했다. 이 모든 게 일주일도 안 돼서 개발되고, 배포되었다.
움짤 기능의 성과는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기능 론칭 이후 유입 고객의 수 및 채널 차이가 없는데 더 많은 고객이 레시피를 보고, 스크랩을 하고, 리텐션이 오르는 모습을 확인했다. 내가 생각한 가설이 적중했다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끓어 넘쳤다. 사용자들이 남기는 app store 댓글과 해먹 남녀 내의 스토리 내용에서도 고객의 정성적인 만족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결국 고객을 만족시키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2.0 개편 기획의 방향도 우리의 고객을 어떻게 나누고, 고객이 어떤 문제를 겪고, 어떤 해결 방안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고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차근차근 찾아갈 수 있었다. 메인 고객을 자취생과 워킹맘으로 세그먼트를 정의하고, 그들이 자주 가는 커뮤니티의 내용을 살피거나 세그먼트에 해당하는 주변 지인들을 인터뷰해나갔다. 그렇게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 종류, 추천 방식, 추가적인 사용자 경험들의 실마리를 찾았다.
제품을 기획하는 사람으로서충분히 고객들을 만나고 고객들의 문제에 공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Product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경영진이나 너무나 큰 시장에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산으로 가는 제품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제품을 기획하는 사람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객을 만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이 자체가 너무나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마무리하며
시장과 고객은 끊임없이 변하고, 이에 따라 내가 새로 배워야 할 지식과 기술은 끊임없이 생길지 모른다. 다만 이런 변화하는 환경에서 창업자, Product manager, 마케터, 개발자들이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갖춰야 하는 고유한 역량(performance)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다시 한번 그런 역량이 잘 갖춰져 있는지 돌아보며, 2021년에는 고객이 환호하는 제품을 만들어가길 기대해본다.
장한솔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