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적인 온/오프라인 학습 경험을 선사하는 차세대 교육 방법론
모든 사람은 천재다. 그러나 ‘얼마나 나무 타기를 잘하는지’를 기준으로 물고기의 역량을 평가한다면, 그 물고기는 평생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모습’을 상상해봅시다. 어떤 광경이 펼쳐지나요?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 모습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한 공간에서, 한 명의 선생님이, 하나의 주제를 ‘수많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장면을 떠올릴 것입니다. 모든 학생이 교실에 모여 동일한 교육을 받습니다. 이해가 미진한 부분은 복습이나 숙제를 하여 보강합니다. 따로 시간을 내어 예습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그다음 날 ‘처음 맞이하는 새로운 지식’을 ‘정해진 수업 시간 안에’ 습득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현장이 익숙한 이유는, 우리가 이와 같은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교실 중심의 근대 공교육은 분명히 인류 사회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열어 젖힌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근대 사회는 경제적 혁명을 맞이했습니다. 이에 따라 사회는 수많은 사람을 성숙한 사회 구성원이자 평균적·안정적인 노동력으로 길러낼 필요가 있었지요.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낸 것이 바로 공교육 시스템과 근대 학교였고, 덕분에 인류는 급격한 성장과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통적인 교육 방식은 ‘학생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학습을 제공할 수 없다’는 한계점을 지닙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한 명의 교수자가, 동일한 학습 내용을, 수많은 학습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교육 방식은 한 개인의 특성을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동일한 방식과 동일한 기준으로 평균에서 벗어나는 학습자들을 재단하는 부작용을 낳지요. 그보다 더 큰 아쉬움은 몇 세기가 지나는 동안 수많은 전문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전통적인 교육 방식을 ‘거꾸로 뒤집는’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이 대두했습니다. 아직은 낯설고 어색한 방법론이지만 교육과 학습 분야의 진화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원동력으로 주목받고 있지요. 이에 본고는 플립러닝이 도대체 무엇인지, 플립러닝과 블렌디드 러닝과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플립러닝의 시장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이것이 학습자, 교수자, 조직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평균의 종말과 ‘개인 맞춤형 교육’에 대한 갈망
‘평균적 인간’이라는 개념은 근대 통계학을 확립한 벨기에의 통계학자, 아돌프 케틀레(Adolphe Quetelet)에 의해 구체화되었습니다. 그는 키, 체중, 가슴 둘레 등 신체적 특징은 물론, 결혼 연령, 사망 연령, 연간 출산 건수 등 사회적 수치까지 닥치는 대로 평균을 낸 끝에 ‘평균적 인간’의 상(狀)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는 평균적인 인간이야말로 완벽하며, 평균을 벗어나는 인간은 열등한 존재라고 바라보았습니다. ‘평균주의’의 시작이었지요.
효율성의 신봉자, 프레드릭 테일러(Frederick Taylor)는 평균주의에 기초해 ‘과학적 관리법’을 제창했습니다. 그는 ‘과거에는 인간이 최우선이었다면 미래에는 시스템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고, 이러한 믿음에 따라 시스템에 맞춰 개인은 평균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표준화’라는 개념이 탄생했습니다.
교육 심리학자였던 에드워드 손다이크(Edward Thorndike)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교육 시스템의 표준화를 이끌었습니다. ‘학점’이 탄생했고, 획일화된 교육 과정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표준화된 시험이 마련되었으며, 동일한 잣대로 학생들을 평가한 뒤 등급을 매겼습니다. 대부분의 교육은 학교에서, 교실에서, 한 명의 교수자와 다수의 학습자에게 일괄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개개인의 가치와 개성을 중요시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평균주의는 산업화 시대에나 유효했던 담론으로 취급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교육 방식은 여전히 강력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지요. ‘평균적인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교실’이라는 공간에 학습자들을 모아 놓고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교육 방식은 필연적으로 ‘표준화’에 매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명의 교수자가 학생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개인 맞춤형 학습(Personalized Learning)’이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지식 수준이나 학습 역량은 물론 학습자 개인의 특성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1:1 학습이야말로 궁극의 학습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교육 방법론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개인 맞춤형 학습은 인적·시간적 자원의 제약으로 인해 실현 불가능한 이상(理想)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힘을 빌어 교육의 난제를 해결하고 있는 에듀테크(Edutech)는 이 이상을 현실로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끌고 있는 교육 방법론 중 하나가 바로 ‘플립러닝’입니다.
플립러닝이란 무엇인가?
플립러닝은 전통적인 교육 방식을 ‘뒤집은(Flipped)’ 교육 방법론입니다. 사이먼 베이츠(Simon Bates) 교수와 로스 갤러웨이(Ross Galloway) 박사의 정의를 빌리자면, 플립러닝은 ‘교실 수업 전에는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강의 영상을 온라인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교실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푸는 일이나 좀 더 심화한 학습활동을 동료 학습자들과의 토론이나 조교 및 교수자의 도움을 통하여 수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교육과 플립러닝의 차이는 단순히 교육의 흐름을 뒤바꾸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교육의 경우 학습자는 ‘교실’에서 처음으로 지식을 접하고, 수업 이후에 복습이나 과제를 통해 심층 학습을 도모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학습에 대한 의지가 매우 높고 부지런히 심층 학습을 수행한 학습자에게만 의미가 있지요. 학습 의지가 부족한 학습자들은 수업에 흥미를 잃거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당연히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학습 활동과 방과 후 심층 학습의 연결고리는 단절됩니다.
하지만 이론적인 내용을 배우는 것은 ‘반드시 함께 모여 행해야 하는 학습 활동’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공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지요. 플립러닝은 이러한 이유로 학습자가 온라인 학습 콘텐츠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게끔 유도합니다. 그 후 교실에서는 ‘강의’ 대신 실습이나 집단 토의 등 교수자와 학습자, 또는 학습자와 학습자 간 상호작용을 통해 심층학습이 이루어지도록 만듭니다.
이에 따라 학습 목표와 학습 방법, 그리고 교수자와 학습자의 역할도 달라집니다. 교수자는 학습자들의 온라인 학습 자료를 생산하고, 오프라인 학습에서는 학습자들의 상호작용과 학습 활동을 촉진하는 Facilitator의 역할을 맡습니다. 학습자는 온라인 사전 학습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며, 오프라인 학습에서는 적극적인 참여자이자 지식 생산자로서 배운 내용을 체화하거나 적용점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교수자 중심의 교육이 학습자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이 개인 맞춤형 학습에 기여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온라인 사전 학습 시 학습자의 수준과 학습 패턴에 맞춰 가장 최적화된 학습 방법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습자가 해당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 학습자 스스로 충분히 이해될 때까지 반복 학습을 하거나 온라인 학습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커리큘럼을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교실에서 진행되는 수업의 진도를 놓치면 뒤처질 수밖에 없는 전통적인 교육과는 달리, 플립러닝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학습자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학습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습자는 온라인 학습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궁금증이나 아이디어들을 오프라인 학습 현장에서 해소하거나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플립러닝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오프라인 학습은 주로 교수자 또는 다른 학습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진행됩니다. 이때 학습자는 충분한 사전 지식을 습득한 이들과 상호작용하며 개인의 학습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플립러닝이 기업교육 분야에 선사하는 가치
플립러닝이 점차 성인교육 분야로 확대되면서, 기업교육에 이 새로운 교육 방법론을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조직과 조직 구성원 모두에게 나름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플립러닝을 통해 양자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이하와 같습니다.
‘최적의 학습’을 제공하는 차세대 교육 방법론
모든 교실, 모든 교사, 그리고 학생 개개인에게 적용되는 ‘단 하나의 전략’은 없다. 그러나 플립러닝은 당신의 스타일, 당신의 학습 방법, 당신이 처한 학습 환경을 담아낼 수 있다.
– Jon Bergmann
가급적 많은 이들에게 양질의 지식을 전달하고자 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오늘날은 개인의 경험과 지식을 고려한 맞춤형 학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수자가 아닌, 배우는 이가 주도적으로 학습을 이끌어가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 패러다임’이 힘을 얻고 있지요. 플립러닝은 최고(最高)가 아닌, 최적(最適)의 교육과 학습을 위한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이와 같은 변화와 같은 궤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등장했던 수많은 교육 방법론처럼, 플립러닝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에듀테크의 힘을 빌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학습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습자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울 리 없습니다. 충분한 기술 접근성과 인프라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생각보다 까다롭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립 러닝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는 손이 닿지 않았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방법론을 효자손으로 깎아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겠지요. 그 과정은 지난하겠지만, ‘가능성’은 언제나 변화를 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플립러닝은 기대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휴넷의 월간 에듀테크 리포트,〈EDUTECH Monthly〉2018년 9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Reference]
– 간진숙, 「플립 러닝 수업 설계」
– 방진하 & 이지현, 「플립드 러닝(Flipped Learning)의 교육적 의미와 수업 설계에서의 시사점 탐색」
– 이상준, 《밀레니얼은 어떻게 배우고 일하며 성장하는가》, 다른상상, 2020.
– 이종연, 박상훈, 강혜진, 박성열, 「Flipped learning의 의의 및 교육환경에 관한 탐색적 연구」
–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21세기북스, 2018.
– Simon Bates & Ross Galloway, 「The inverted classroom in a large enrolment introductory physics course: a case study」
이상준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