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전문 리서치 스타트업 ‘피넥터’ 팀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지난 3년간 암호화폐 (Cryptocurrency) 시장에서 다양한 신규 프로젝트들이 ICO (Initial Coin Offerings)란 개념으로 외부 투자를 받아오고 있다.
ICO는 기업의 상장을 의미하는 기업공개 (IPO, Initial Public Offering)와 유사한데, 기업의 지분대신 프로젝트의 암호화폐를 대중에게 선판매한다.
ICO를 하는 프로젝트는 실질적인 서비스나 기술을 내놓기 전에 약속한 프로젝트의 개발을 목적으로 자금을 유치한다.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기업공개보다는 크라우드펀딩에 더 가깝다. ICO는 ‘토큰 판매’라고 불리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프로젝트의 개발을 위한 자금 유치 또는 개발자의 인센티브를 위해 개발자는 세 가지 방식을 택할 수 있다.
1. 선판매
토큰이 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매자에게 선판매(pre-sale, ICO)
2. 선채굴
프로토콜을 공개하기 전 선채굴(pre-mined)을 하여 네트워크 공개 이후 거래소 상장 시에 판매
3.선분배
애초에 정해진 할량당을 발행하여 개발자 또는 프로젝트 멤버에게 선분배(pre-allocation)
# 사례
비트코인은 선판매, 선채굴, 선분배 모두 이루어지지 않은 공개된 채굴환경에서 시작한 암호화폐다. 이더리움은 선판매를 통해 개발 자금을 유치하고 선분배를 통해 파운데이션 멤버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이후 많은 암호화폐들이 탄생하면서 다양한 또는 종합적인 방식으로 ICO를 진행하고 있으며, 때로는 대중이 구매할 수 있는 선판매(pre-sale) 이전에 선별된 소수의 개인 또는 기관에게 먼저 판매하는 방식(pre-pre-sale)을 택하기도 한다.
영리 기업인 Dynamic Ledger Solution에서 2014년에 개발을 시작한 스마트 계약 플랫폼 테조스(Tezos)의 경우, 토큰의 ICO 이전 기업의 운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블록체인 전문 벤처캐피털에 미래 발행될 토큰의 일정량을 미리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선선판매(pre-pre-sale)의 경우 자금의 유치 목적도 있지만 전략적 목적으로 암호화폐 거래소에 자금을 유입하여 주주로서 토큰 상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벤처캐피털 회사에게 독점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영리 기업인 Zcash Electric Coin Company에서 개발한 블록체인 트랜잭션에 기밀성을 보장하는 영지식 증명(zk-SNARKs) 기반의 암호화폐 Zcash는 개발 자금 유치를 위해 기존과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ICO 또는 선채굴/선분배 대신 블록 리워드의 80%만 채굴자에게 돌아가고, 20%는 Zcash 팀 (개발자, 운영진, 사외이사, 투자사)에게 분배되는 구조이다. 투자자는 Pantera Capital, Fenbushi Capital 같은 블록체인 전문 펀드를 포함하며 Roger Ver, Naval Ravikan 등의 개인투자자도 있다. 이 외에도 Cosmos, Factum, Qtum 등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선판매를 통해 자금을 유치했다.
# 법률
암호화폐 자체가 가상의 범국가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며, 제도적 방어없이 익명의 개인들로 구성된 시장의 평가로 가치가 매겨지기 때문에 규제의 대상인 기관투자사보다는 개인투자자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보수적인 집단보다 투기성이 짙은 개인이 주를 이루다 보니 암호화폐 시장의 변동성은 일반적인 투자자산보다 높을 수밖에 없으며, 가격을 뒷받침할 만한 내제 가치의 평가 역시 매우 주관적이고 실질적인 서비스 없이도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차익을 위한 투자가 유일한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암호화폐 시장은 증권과 같은 기존 시장 대비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데, 때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 거래소에서 시장의 리딩을 주도하기도 한다. 이는 법 제도 부재의 결과다.
신기술이 대부분 그렇듯, 화폐, 지급수단, 자산 등의 성격을 모두 지닌 암호화폐는 기존의 법률 기준으로 제도화하기는 쉽지 않다. 아직 많은 국가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세금법이나 자본시장법 해석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암호화폐 시장은 현재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고, 법률에 부재로 인해 시장은 과열되고 있다. 자본시장법뿐만 아니라 거래 중개자에 대한 자격기준이 없다 보니 내부거래나 보안사고 등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약 3조 원에 가까운 금액이 거래소 해킹을 통해 탈취되었다. Mt.Gox, Bitfinex와 같은 해외거래소는 물론이고, 빗썸, 야피존과 같은 국내 거래소도 보안 문제로 인해 상당한 자금이 해킹당했지만 이렇다 할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다.
KYC(사용자 인증/확인)과 AML(자금세탁 방지)의 기준 역시 현재 모호한 상태다. 암호화폐에 대한 KYC/AML 기준을 지정한 국가들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국가에서 거래자 신분을 거래소가 자의적으로 인증하게 하고, 자금세탁 방지 역시 어렵다. 먼저 거래소 사용자에 대한 인증이 은행 수준의 CDD (Customer Due Diligence) / EDD (Enhanced Due Diligence) 수준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암호화폐의 특성상 네트워크 상의 거래는 익명성을 지니기 때문에 Deep learning 기반의 트랙킹 서비스 업체들을 이용해야 일정 부분 방지할 수 있다.
다시 ICO로 돌아와서 ICO 또는 토큰 판매는 ‘코인’과 ‘토큰’, 즉 가치를 지니는 재화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지급수단 또는 자산으로 인정될 경우 여러 법률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에 따라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은 자본시장법의 회색지대에 들어가기 위해 ‘Gas'(이더리움), ‘License'(팩텀) 등의 모호한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ICO 또는 토큰 판매를 진행할 때 프로젝트 관리자가 구매가 일어나는 IP주소를 막아, 미국 뉴욕주와 같은 자본시장법에 의해 ICO 참여가 불법인 지역의 법망을 피하기도 한다.
ICO가 특정 국가에 종속될 필요가 없다 보니 ICO를 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 운영진들은 암호화폐로 회계처리가 가능한 스위스에 비영리 재단을 만들어 진행한다. ICO를 통해 유치된 비트코인/이더는 재단의 자의로 청산이 가능하고 ‘투자’가 아닌 ‘기부’ (contribution/donation)의 표현을 써서 추후 법적 분쟁을 회피한다. 즉 토큰 판매에 참여해 수익창출을 기대하는 투자자는 표면적으로 기술의 발전을 위한 기부자가 되는 것이다.
# 절차
ICO를 진행하는 프로젝트 운영자들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통해 ICO를 진행한다.
1. 소수의 인원 (개발자, 기획자, 암호학자 등)이 모여 기술적 기능이나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아이디어는 탈중앙화가 주된 목적으로 탄생되며 탈중앙화 클라우드, 예측시장, 투표, 복권 등의 애플리케이션부터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하는 플랫폼 (Ethereum, Qtum, Cosmos, EOS) 등이 있다.
2. 프로젝트의 구상이 끝나면, 운영진은 비트코인톡, 트위터, 레딧, 슬랙 등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프로젝트에 대해 홍보하고 잠재적 사용자와 투자자를 모집한다.
3. 프로젝트의 운영진은 영리 기업과 비영리 재단을 설립한다. 영리 기업은 주로 비영리재단과 서비스 계약을 맺고 운영하여 수익화를 한다. 표면적으로는 두 개의 다른 집단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동일한 인원이 영리 기업과 비영리재단을 운영한다.
4. 비영리재단은 실제로 ICO를 론칭하고 관리하는 집단으로서 개발자 지갑의 개인키를 보관하고 제네시스 블록을 생성하는 주체다. 탈중앙화 이념이 중요한 암호화폐에 영리적인 주체가 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비영리재단이 필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러한 재단은 동일한 주체인 영리 기업의 법률적 보호를 위해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5. 운영진은 ICO를 할 암호화폐의 기술적, 경제적 구조를 설명하는 비기술/기술 백서를 배포하고, 아이디어를 검증받는다. 복잡한 알고리즘과 새로운 인센티브 구조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글부터 추상적이고 비즈니스적 접근의 글까지 다양한 수준의 백서가 있다.
6. 때로 유명인사를 사외이사 또는 투자자로 초빙하여 프로젝트의 신뢰성을 높이고,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에 인터뷰를 통해 기술적 장점을 알리는 등 성공적인 ICO를 위해 많은 홍보 활동을 한다. 주로 사외 이사들은 블록체인 업계에서 유명한 개발자들이며, 다양한 프로젝트에 서로 엮여있다.
7. 해당 프로젝트의 ICO 전용 웹사이트에서 암호화폐를 통해 ICO를 한다.
# 조건
가끔 모르는 번호로 ICO를 하려고 하니 도움을 줄 수 있냐는 전화가 온다.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는 중견기업부터, 협회/조합과 같은 집단에서도 관심을 가진다.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벤처캐피털이나 펀드와 같은 기관투자보다 신속하고 수십 배는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할 수 있고 법적 책임도 지지 않으니 ICO 만큼 매력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블록체인과 관련 없는 전통적 기업, 집단들이 ICO를 순전히 자금 유치의 수단으로만 보고 있다.
ICO를 통해 유입된 자본은 궁극적으로 암호화폐로 발행되어 분배되어야 한다. 이 암호화폐는 단순히 거래소에서 거래되기 위해, 또는 프로젝트의 지분 등으로 사용되기 위해 생성된 것이 아니다. 발행된 암호화폐는 그 프로젝트의 화폐로서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한 연료로 사용되어야 한다. 즉 기술의 구성요소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회사의 지분을 토큰 형태로 발행하여 판매하겠다는 기업들의 요청도 있지만, 정부와 준정부기관의 법적 인정이 필요한 기업 지분과 기업이 임의로 발행한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간 연계관계를 ‘법적’으로 보장할 방법이 없다. 마케팅일 뿐이다.
ICO는 투자의 위험성과 암호화폐 기술의 잠재적 가능성을 모두 지닌다. 법 제도의 부재도 있지만, 제도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막기 어렵다는 사실이 당분간 ICO 및 암호화폐 시장의 방향을 이끌 것이다. 투자자의 보호와 통화의 무분별한 유출을 막아야 하는 정부와 감독기관 입장에선 불편한 기술일 수밖에 없다. 암호화폐를 기술적 혁신으로 볼 것인지, 위험한 투기자산으로 볼 것인지 대중과 언론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암호학과 경제학의 유기적인 조합으로 탄생되는 암호화폐는 학문적으로 매력적인 분야다. 익명의 개인 간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비트코인부터, 분산된 컴퓨팅 파워를 모아 프로그래밍 플랫폼을 만든 이더리움, 그 외 다양한 기술적 발견과 발전을 단순히 거래되는 재화로만 한정할 순 없다. 지금까지 개인이 자본을 가지고 접근하여 수익화를 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다. 가치의 기술인 만큼 암호화폐는 당연히 투자/투기로 인한 파생효과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급전을 위해 혁신을 표방한 프로젝트들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이는 암호화폐 시장이든 증권시장이든 마찬가지다. 정보의 비대칭, 내부거래와 같은 불법 행위는 어디든 존재한다.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암호화폐 역시 존재한다. 꾸준히 혁신을 이루어 가치를 생산해내는 기업들이 있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ICO를 한 프로젝트 운영진이 실제 서비스와 기술을 론칭해야 할 시기가 온다. 그때쯤이면 환상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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