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터모멘트 크레이티브 랩 박창선 CEO가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번 더 소개합니다.

들어가며

사실, 이 글은 두 번째 쓰는 겁니다. 원래 제안서에 대해서 뭔가 구구절절 썼다가 지워버렸죠. 쓰다보니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들이나 맞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소리들을 하고 있더라구요. 물론 FM대로 기획부터 시작해서 챡챡 프로세스대로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그 중 30%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마련이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만드는 사람은 만드는 사람대로 빡치고, 대표님은 대표님대로 답답하고, 디자이너도 디자이너대로 고구마인 상황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뻔한 소리는 과감히 지우고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안서가 뭐시냐!!”라는 것은 각종 책과 브런치나 네이버에 널려 있으므로 여기선 그냥 심플하게 잡고 가겠습니다. 흔히들 제안서와 소개서를 많이 헷갈리더라구요. 이걸 정리해볼께요.

  • 소개서 : 그냥 소개하는 겁니다. 아무나 보라고. 우리 이렇게 좋은 거 하고있당!
  • 제안서 : 목적성이 뚜렷합니다. 보는 사람이 딱 정해져있습니다. “우린 그것을 할 수 있다. 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냥 이게 다입니다. 흔히 제안서의 ‘목적성’이란 건 이런 종류의 것들입니다.

1. 돈을 달라!!
2. 내가 그거 할래!
3. 우리에게 맡겨줘!
4. 협업을 하자!

제안서를 고객대상으로 쓰는 것은 아니므로, 대부분은 입찰이나 공모, 프로젝트 제안, 프로그램 제안, 투자제안 등 뭔가 일을 하고 싶거나 돈을 받고 싶어서 쓰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남의 지갑에서 돈끄집어내는 일이 어디 쉽겠습니까. 그걸 설득하고 어필하는 일은 매우 고난이도의 작업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우리를 괴롭히는 요소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3가지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은 것들입니다.

1. 계속 말이 바뀌어
2.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겠어
3. 아무도 안 도와줌

안그래도 어려운 일인데 내부에서의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일단 위의 내용들을 좀 알아보면…

 

1. 계속 말이 바뀌어

제안서 만들고 있으면 뭔가 이렇게 하자!! 해놓고 계속 말이 바뀌면서 처음에 뭘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흔히 뭔가가 끊임없이 추가되는 경우인데, 가만 보면 진짜 필요한 것들이 추가된다기 보단 부연설명이나 장점을 나열하는 것들이 주를 이룹니다. 우리 사업 좋은 것은 알겠는 데, 지금은 자기자랑시간이 아니니까, 춤추면서 노래하고 피아노까지 치면서 그림도 그리는 것은 피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일기-자까님 짤 좀 쓰겠습니다.

 

2.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겠어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안가르쳐줌. 무슨 강의를 듣긴 듣는 데, 강의 듣는다고 그게 될 거였으면 지금 이렇게 강의가 넘쳐나지도 않았죠.

몰라..그런 거 들어본 적 없어..

3. 아무도 안 도와줌

게다가 뭔 자료를 요청하면 3~4일 걸려서 전달해주곤 합니다. 그리고 기껏 전달받은 파일도 열어보면 뭔 말인지도 모를 내용이 가득합니다. 제안서를 쓰려면 재무나 사업모델 등 사업전반에 걸친 요소를 정리해야 하므로 이 팀, 저 팀, 또는 다양한 담당자들에게 관련자료를 요청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작성자는 보통 사원이나 대리급이 보통이죠. 이 정도 직급과 연차의 사람이 각 팀에게 ‘주세요!’ 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을까요?…그건 현실적으로 좀 노답입니다.

저기..자료 좀…..

이런 내부적인 문제에 덧붙여서 흔히 제안서 템플릿이라고 하는 것이 나돌아다니는데 , 이것의 문제도 조금 있습니다.

느아아아아..현란하다 현란해!!

우리는 그 제안서라는 것에 대해 명확하게 잘 알지 못합니다. 아니, 사실 알고는 있지만 보여주기식의 컨텐츠를 잔뜩 집어넣어야 하므로 짜여진 틀과 정해진 템플릿을 깨지 못하죠. 우리가 쓰는 제안서는 제안서라기 보단 사실 ‘소개서+제안내용+관련자료‘가 합쳐진 상태입니다.

근데 뭐가 문제가 되느냐를 보면, 사실 세 가지 요소 모두 문제입니다. 이것의 문제를 한 번 짚어보고 어떤 구성으로 쓰는 것이 좋을 지 쓰윽 알아보도록 하십시다.

소개서의 문제 : 제안내용과 상관없이 우리 회사가 짱이라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이건 그냥 소개서에 들어갈 내용인 듯 합니다. 제안서에 소개파트에선 ‘역량과 액션’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 아닐까요.

1. 우린 이런 일을 하는 회산데
2. 이 정도 구조를 지니고 있고
3. 이 정도 역량이 있어
4. 예전, 지금까지 이런 일을 해왔어
5. 너희와 함께 이런 일을 해보고싶어

정도로 구성하는 것이 좋고, 이건 1페이지씩만 부여해도 충분합니다. 장그래가 그랬듯 뭔가 판을 흔들어 놓을 생각이 아니라면, 스피치 순서대로 가주는 것이 일반적이죠.

내가 짱인지 아닌지는 그들이 판단할 몫인듯 합니다.

제안내용의 문제 : 흔히 쓰는 경우를 보면 제안내용이 너무 추상적입니다. 게다가 미래 지향적인 느낌이 강하죠. 이렇게 하면 우리가 이런 수익을 낼거야!! 투자를 해주면 막 이렇게 해서 3년 지나면 대박칠거야!! BEP는 껌이야!! 넌 이제 자본주의의 신이 될거라고! 이 프로그램은 미쳤어!! 뭐 이런식인데…사실 이런 식의 제안서나 기획안은 꽝입니다. 정확히는 ‘제안내용’이란 것은 곧 ‘운영안’과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어떻게 운영해보겠다….하는 액션플랜을 의미하죠.

1. 이 프로그램의 컨셉은 이렇게 잡아봤다.
2. 컨셉에 따른 핵심 비쥬얼은 이렇게 구성했다.
3. 시행일시는 이렇다.
4. 모집계획이나 준비계획은 이렇다.
5. 홍보나 협력업체 선정은 이렇게
6. (현장일 경우) 개요도나 설계면, 3D아이소 등으로. 이런 곳에서 할거다.
7. 프로그램 내용(시간순서별)은 이렇다.
8. 예비컨텐츠(혹시 7번이 빵꾸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이렇게)
9. 현장관리는 이렇게 할거다.(입장, 동선, 무대, 음향, 조명, 하드웨어 등)
10. 현장관리2 ( 티켓팅, 각종 규정, 보험, CS, 컨트롤타워, 후원정책, 부스운영)
11. 현장관리3 ( 좌석, 배치, 퇴장, 기념품, 평가방식, 물품반납, 현장정리방식)
12. 안전관리 ( 소방/의료설비, 대피대책, 소방규정확인 등)
13. 촬영 및 컨텐츠화는 이렇게 시킬거다.(업체정보, 촬영스펙, 시나리오)
14. 사후관리는 이렇게 할거다.(도록제작 및 SNS컨텐츠화 계획, 참여자대상 2차액션)

뭐 예를 들면 이런 내용들이 챡챡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각각의 내용들은 1페이지 정도로 정리해도 충분하고 레퍼런스가 될 만한 사진이나 Mock-Up 이미지 파일이 있다면 더욱 좋겠죠.

뭔가 디테일하고 촤륵촤륵 움직일 것 같아!!!

관련 자료의 문제 : 관련 자료들은 쓸데없는 내용이 너무 많다고 보여집니다. 그래프나 표가 주를 이루는데, 괜히 필요없는 연도나 분기자료 등은 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진행할 프로젝트 얘기하고 있는데 왜 자꾸 먼 나라얘기가 나오는 걸까요. 관련자료들은 흔히 어펜딕스나 ‘사업운영관리’ 파트로 빼서 뒷단에 추가해주는 데 이런 내용들이 들어갑니다.

1. D-n 플랜을 짜줍니다.
2. 업무보고는 어떻게 할 건지(양식, 기한, 방식 등)
3. 인력운용계획(몇 명을 뽑아서 어떻게 무슨 일로 운영할 건지)
4. 조직도(우린 이렇게 일을 하고 있다.)
5. 사업실적내용(우리 이런거 많이 해봤음)
6. 예산안(끝판왕)

이 정도가 될겁니다. 물론 제안서 성격에 따라 들어가고 빠지는 내용들은 있겠지만 일반적으론 이런 느낌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페이지로 따져볼까요.

표지 : 1페이지
소개파트 : 5페이지
제안내용 : 14페이지
관련자료 : 6페이지
각 간지 : 3페이지

이정도면 30장 내외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여기에 이미지 자료나 레퍼런스, 행사자료 사진 등이 들어가주면 약 40장까지 나올 수 있겠죠.

디자인은 어떻게 할까. 제안서의 디자인에서 가장 핵심은 ‘1~마지막 페이지까지 똑같은 템플릿을 유지해라!!’라는 겁니다. 물론 겁나 이쁘게 만들거면 셀레브처럼 매거진 형식으로 만들던가, 아니면 영상으로 제출해버리던가 뭐 특이하고 파격적인 방법을 쓸 수도 있겠지만…현실적인 수준에서 얘기해보자면 그냥 다 똑같은 페이지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항상 보면 뭔가 과해서 문제가 되는데, 하지 말아야 될 것들을 좀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파란 것 그만 쓰세요

원래 파란색이 신뢰를 의미한다 어쩐다 해서 비지니스 제안서나 소개서는 죄다 파랑파랑한데…뭔가 요즘엔 너무 널려있어서 그런 지 더 촌스러워 보입니다.

 

2. 이상한 이미지 넣지 마세요

‘이해합니다’와 손에 잡힌 연필이 뭔 상관일까요… 그냥 없으면 휑하니까 집어넣는 사진은 이제 그만해도 될 듯합니다. 이런 거 보면 그냥 제안서 대행업체에서 빈공간 놔두면 뭐하니까 있어보이라고 집어넣는 건데, ‘굳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3. 어설프게 흉내내지 마세요

이쁘다고 생각해서 핀터레스트나 이런 포폴 사이트의 이쁜 제안서를 대강 베끼는 식의 제안서도 종종 보이는데….가만 보면 정렬이고 자간이고, 선도 하나도 안 맞고 색도, 행간도, 배치도 이상합니다… 따라하려면 정말 똑같이 베껴버리던가 아니라면 그냥 심플하게 글자만으로 가줍시다.

4. 물결 좀 넣지마.

그놈의 물결

5. 무지개떡 만들지 마세요.

색은 하나만, 폰트도 하나만. 행간 자간은 똑같이. 왜, 파워포인트에서 블록지정한 다음에 컨트롤+쉬프트+C 하면 서식복사되는거 아시죠? 그냥 똑같이 서식복사해서 모든 본문은 같은 행/자간을 유지해주세요.

6. 대각선 레이아웃은 어렵습니다.

뭔 말잉믜?…

왠만하면 한 슬라이드에 박스는 3개까지만 써주시고, 박스와 원형을 같이 쓰지 마세요. 게다가 위의 그림처럼 V자 모양의 대각선 구도는 정말 어지러워보이기 십상이예요.

7. 배경에다가 뭐 깔지 마세요.

느아앗

배경에 저렇게 사진+회색+희끄무레한 사진을 까는 경우가 많은데, 딱히 의미도 없고 오히려 어지럽기만 합니다. 게다가 타이틀에도 그림, 배경에도 그림, 본문에도 그림…. 이건 그냥 안구공격을 위해 탄생한 신무기일 뿐.

8. 그림자! 희끄무레! 테두리흐리기! 반사! No!

이미지에 3D에 테두리 흐리기, 그림자, 반사까지 종합 효과세트를 주는 경우가 참 많은데, 볼 때마다 왜 그러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나중에 애길 들어보니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더군요. 이미지 해상도가 안좋아서 흐리게 했다든지, 누끼가 잘 안따져서 테두리를 흐리게 했다느니, 그냥 허전해서 반사를 넣었다느니… 개인취향이라던지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그냥 그 이유가 뭐든간에 하지 마세요.(단호)

9. 따봉 좀 쓰지마요.

따봉 왜 자꾸 쓰는거야…어쩌라고;;

10. 뜬금포 템플릿 쓰지 마세요.

이뻐 보이죠? 하지만

이뻐 보이죠? 하지만, 이 페이지만 이쁘면 뭐해요. 전체적으로 결이 맞아야지;;;….자꾸 어디서 그래프나 인포그래픽 템플릿 가져다가 가져다 붙이는 제안서가 많은데 그러지 마세요. 갑자기 시각적으로 확 튀기도 하고 뭔가 둥 떠보이는 데다가 성의도 없어 보인달까요…

제안서에 정답이란게 있을까요? 위에서 말씀드렸듯 어차피 누군가에게 목적성을 가지고 가는 자료이니, 그 목적만 달성하면 됩니다. 하지만 나쁜 제안서는 있어요. 나쁜 제안서란 건 만든 사람은 똥줄타게 고생하는데, 결과도 안나오는 제안서랄까요. 게다가 디자인적으론 이유도 설명할 수 없는 효과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데다가 우리 색깔도 뭘 하려는지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냥 딱 ‘보여주기’를 위한 제안서는 피하도록 해요 🙂

이번 시간엔 피해야 할 여러가지 요소들을 좀 알아봤는데, 다음번엔 어떤 느낌이 좋은 제안서인지 좋은 레퍼런스를 들고 찾아올께요 🙂

 

[눈으로 보이는 생각 : Branding] 시리즈

(6) 마케터를 위한 알쏭달쏭 클라이언트들의 용어정리
(5) 회사소개서를 만들어보자! (빡셈주의)
(4) 로고를 만들어보자(어려운 그것…)
(3) 왜 브랜딩이 안되냐고? (팩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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