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세일즈연구소 유장준 대표의 칼럼을 모비인사이드에서 소개합니다.

“그대의 용기(areten)는 나도 잘 알고 있소. 그것은 새삼스레 말할 필요도 없소. 가령 지금 함선들 옆에서 우리 중에 가장 용감한 자들(aristoi)이 모두 복병으로 뽑혔다고 한다면 – 그럴 때 전사들의 용기(arete)가 가장 잘 구별되지요.” (일리아스 13, 275-8, 천병희 옮김 / 비극적 영웅이 추구한 아레테의 두 양상에 대한 비교 연구 : ‘아이아스’와 ‘헤라클레스’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김기영, 인간 환경 미래 제7호, 2011.10, 인제대학교 인간환경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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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테(Arete)’란 한국어로는 ‘덕(德)’, 영어로는 ‘virtue’로 번역한다. 아레테는 덕, 힘, 용기, 경의 등을 나타내는 탁월한 자질을 말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아레테를 가진 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왜냐하면 덕을 가진 자는 누구보다 철저하게 자기성찰을 함으로써 타인에게 모범이 되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서 ‘내가 바라는 나라는 강력한 나라도 부자 나라도 아닌 문화적으로 풍요한 나라를 원한다’라고 했다. 백범이 위대한 이유는 해방 직후 남북으로 분열되어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본인에게 가해진 핍박을 이겨내고 우리 민족의 용기와 비전을 제시하여 정체성을 확고히 해 주었기 때문이다. 민족의 부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학교를 세우고 지식인들을 육성하였다. 훗날 교육을 받은 후손들이 우리나라를 부흥시킨 것이다. 나라와 민족으로 보면 모범적인 지도자였지만, 만일 나라를 기업으로 치환시킨다면 그는 최고의 경영자가 아닐 수 없다. 그가 경영하는 회사가 있다면 정말 다니고 싶은 회사 아니겠는가? 성장이라는 폭주 기관차가 멈춘 이 시대에 업(業)이 무엇인지, 덕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만하다.

고대나 중세에는 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전장에 나갔다. 필자는 어렸을 때 책을 읽을 때마다 이 부분이 참 궁금했었다. 위엄하고 신성한 왕이 왜 굳이 위험한 전장에 나갔을까? 전장도 위험하지만 왕궁을 비운 사이에 혹시나 정적들의 쿠데타는 걱정하지 않았을까? 과연 나였더라도 군사를 이끌고 목숨을 담보하려 했을까?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다. 그런데 멋진 상상을 한번 해 보자. 당시 왕들은 아레테(Arete)의 덕목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왕이 직접 전장에 나가 칼을 들고 싸울 때 비로소 그의 부하들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뛰어든 게 아니었겠나? 비겁하게 뒤에서 지시만 하는 리더가 아니라 이신작칙(以身作則)의 정신으로 앞장서는 왕이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게 바로 왕의 아레테였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앞에서도 기업가정신을 다소 엄숙하게 취급했지만, 스타트업이야 말로 이러한 진지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스타트업의 아레테는 무엇일까? 분명한 건 비즈니스 세계는 책상머리에서 마우스로 병사를 움직이는 온라인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본부에서 거시적 전략을 짜고 지시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누군가는 실제로 밖으로 나가 칼과 방패를 들고 흙탕물에서 뒹굴 장수도 필요하단 뜻이다. 그리고 그것을 책임지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경영자이자 창업자이며 동시에 영업 담당자이다. 근본적으로 경영자와 영업은 아레테의 궤를 같이 한다.

우리를 한 번 돌아보자. 고객의 불만을 소중하게 여기고 개선하는지, 이메일로 온 고객 문의에 대해 빠뜨리지 않고 신속하게 답변을 하는지, 기존 고객 명단을 별도로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는지, 고객이 요청한 개발 이슈에 대해 수용하여 적용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시장 조사를 하고 있는지, 반품 및 환불 정책에 대한 고객의 불만을 수용하고 있는지, 고객의 현금 회전율에 대한 고충을 헤아려 보았는지, 본인의 KPI(Key Performance Indicator)가 아닌 업무에 대해 토론하고 함께 고민하는지, 혹시 사무실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에 행동요령 수칙은 있는지, 서비스 중인 서버가 다운되어 고객사가 피해를 입었을 때 적극 보상을 해 주는지, 가끔씩 고객을 사내 미팅에 초대해 의견을 청취하는지, 부가세 신고가 끝난 세금계산서에 대해 마이너스 계산서를 끊고 재발행까지 해 주려고 시도해 봤는지, 설날이나 추석 연휴 때 서비스 장애로 긴급 호출 때 군말 없이 출동을 하는지… 이런 일들은 별로 멋진 일들이 아니다. 궂은 일이다. 디테일에 강하고 애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영업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은 곧 경영자의 책임과 동일하다.

이 칼럼을 읽는 사람들은 다른 건 몰라도 ‘소는 내가 키운다’라는 책임감만큼은 가졌으면 한다. 그것은 스타트업의 정신이며 아레테의 정신이다. 마케팅과 다르게 영업은 대학에서도, MBA에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배울 게 없어서가 아니라, 배우기가 고통스럽고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굳이 누가 궂은 일을 재미없게 배우려 하겠는가? 영업을 설명하기 위해 아레테라는 근엄한 개념까지 동원했으니 말 다했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재미가 없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 왜냐하면 아레테의 철학을 종교처럼 믿기만 하면 생각보다 술술 풀리기 때문이다. 마케팅과 영업은 똑같이 무언가를 파는 것이지만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마케팅은 창조한 것을 파는 일인 반면 영업은 내가 확신하는 것을 파는 일이다. 둘 다 기업 측면에서 소중한 역량이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 건 없다. 그러나 딱 하나 중요한 것은, 영업 담당자라면 절대로 아레테의 철학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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