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지도사 최재현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
회사생활이나 창업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나 모두가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 많은 창업가를 보면 처음부터 창업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회사 생활을 하다가 창업하게 된 사례가 가장 흔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기회를 포착하여 창업을 하게 된 사례도 더러 있었다.
어떤 이유로 창업을 결심하게 되더라도 무난한 콘셉트를 갖고 시작한 창업가들이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은 정말 흔하게 보아왔다. 이미 포화되어 있는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기업과 부딪히는 일이기 때문에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쫓아가는 형국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당연함 속에서도 스타트업이 살아남는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꽤 많은 팁 중의 하나가 바로 제품이나 서비스만의 독특한 ‘콘셉트’를 잡으라는 조언이다. 포화된 시장에서 일부의 시장점유(Share)를 가져오기보다는 차라리 틈새시장(Niche Market)을 노리라는 뜻이다.
이전과 달리 소비자들이 개인화/다양화되고 있기 때문에 분명 독특한 콘셉트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시장에 있을 것이라는 짐작에서다. 시기에 따라 적용되고 되지 않는 답변이라고 생각하는데 최근의 흐름을 보면 시장이 더욱 개인화/다양화되고 있어서 스타트업이 이런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시기도 중요하겠지만 콘셉트 메이킹을 잘 해야 한다는 조언을 더욱 하고 싶다.
이전 직장생활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나는 그저 무난하고 평범한 부류의 사람이었다. 선택할 수 있는 진로 상에서 갈 수 있는 회사를 골랐고 입사 이후에도 그저 무난하고 평범한 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성실하고 정직하게만 일하면 나의 열심을 윗 분들이 알아주겠거니 생각했지만 처음 한 두 달을 제외하면 나의 직장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우선 나는 콘셉트이란 것이 없었다. 나의 생김새, 나의 말투, 독특한 습관이나 취미, 그런 것이 전혀 없는 그저 매우 평범한(Super Normal) 사람 중에 하나였다. 일도 무난하게 잘 수행했다. 매우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못하는 축에 끼지도 않았다. 약간 적도 무풍지대에 있는 것처럼 중간 계층에 묵묵히 자리 잡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평범함이 진급 시즌이 되어서 조금씩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진급 대상자에 이름이 오르고 내리게 되자 주변의 동기들, 진급 대상자들을 보게 되었다. 한 친구는 정치를 참 잘했다. 윗 분들이 좋아하는 취미와 동일한 취미를 갖고 있었고 자기가 별로 흥미가 없더라도 기꺼이 상사가 좋아하는 취미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친구였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자기 자신을 캐릭터화했다. 체구가 작고 목소리가 가늘다 보니 스스로 그런 단점을 역이용해서 팀 내에 마스코트와 같은 역할을 자처했다. 두 친구 모두 업무능력이 좋았고, 나 또한 그런 친구들 틈에서 진급 대상자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결과는 뻔했다. 진급 대상자 중에서 나만 누락이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친구들의 행동이 정치였다 거나 단점을 장점화한 것이라고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그 친구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회사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진급이 한 번 누락되고 두 번 누락되고 마지막 세 번째까지 누락이 되자 나는 나의 ‘평범함’이 어떤 체계나 조직 안에서는 ‘매력 없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내 정치를 잘한 것도 아니었다. 상사와 취미가 같지도 않았고, 마스코트라고 하기에도 외적인 특별함도 없었다. 조금 더 야근하고 조금 더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옵션이지 그것이 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과가 특출났다면 모를까 그 당시에 관리자급도 아닌 내가 성과적으로도 무엇인가를 보여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뒤늦게 그런 액션을 취하긴 했지만 쉽게 비교를 당하기만 했다. 네가 하고 있는 것,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 그대로 따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긍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따라 한다는 말이 기분 나빴지만 따라 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도 진급을 했어야만 했다. 진급 세 번 누락은 회사에서 사실상 1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었고, 내가 거기에 당첨이 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진급 누락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자꾸 좋지 않은 곳으로만 발령을 받았으니까. 나는 따라 하기라도 해서 진급을 해야만 했다.
사직서를 내는 마지막 순간에도 진급 누락이라는 프레임이 나를 괴롭혔는데, 나는 결국 이직한 후에야 진급을 할 수 있었고 그즈음에서야 ‘콘셉트’이란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평범한 것도 콘셉트이겠지만 평범하기보다는 나만의 ‘무언가’는 있어야 하겠구나 하는 것 말이다.
2년 전에 만난 한 창업가는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 제품을 도소매로 판매하고 싶다고 했었다. 시장에는 이미 북유럽 스타일의 제품이 상당히 많았는데 나는 창업가가 생각하는 ‘평범한 콘셉트’를 계속 밀어붙인다면 머지않아 꽤나 곤욕을 치를 것이라고 조언했다. 기존에 쇼핑몰에 업로드한 제품들을 보면 지극히 평범한 부류의 제품들이었기 때문에 가격에서 큰 경쟁우위가 없어 조만간 곡소리가 나오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만난 창업가는 나름 매출 성장을 이뤄내고 있었다. 전문가님의 조언과 다르게 제품이 그래도 꽤 나가고 있다면서 조금 더 비슷한 부류의 제품으로 넓혀가겠다는 자신의 계획도 말했다. 하지만 경쟁사 대비해서 높은 제품 단가나 월평균 판매 수량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 내가 볼 때는 사실 조금 불안한 면이 많았다. 온라인의 특성상 소비자는 가격에 민감한데 조금이라도 유사 제품이 저렴하게 나온다면 즉시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1년이 지나서 다시 만난 창업가는 그제야 곡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매출이 반 토막이 났다, 구매율이 급속히 떨어졌다, 경쟁사에서 비슷한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내놓았다 등등. 이미 자신이 사입한 물건을 떨이판매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마진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손해를 떠안게 된 것이었다. 그제야 창업가는 첫 미팅에서 나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유럽 여행을 하면서 얻었던 감성, 그 감성이 담긴 특별한 제품을 소싱하겠다는 생각을 잠시 놓친 것 같다고 말이다. 창업가는 두 개의 쇼핑몰을 나누어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하나는 기존과 같이 무난한 제품들을 포진시키고 나머지 하나는 조금 더 특별한 제품들을 엄선해서 업로드하기로 했다.
나는 첫 미팅에서 분명히 창업가가 제품을 보는 안목이 있다고 보았다. 다른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 제품을 판매하는 분들보다 제품을 보는 안목이 넓고 매력적이었다. 비싼 값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실내를 북유럽 스타일로 꾸며낼 수 있는 인테리어적인 감각도 있었다. 그런 독특함을 버리고 그저 무난한 스타일의 제품만을 엄선해서 올린 것에는 ‘생계’라는 이유가 한몫을 하긴 했지만 평범한 콘셉트는 역시나 ‘매력 없음’으로 시장에서 판별이 되고 말았다.
나만의 콘셉트, 독특한 콘셉트이란 무엇일까. 조금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면 독특한 것일까 아니면 전혀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독특한 것일까.
직장 생활에서의 정치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없던 일을 새로 만드는 행동은 아니다. 요즘 시대에 사내 정치는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정치라는 단어를 제외하고서 생각해보아도 상사와 동료와 부하 직원과 긍정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을 우리는 보통 정치라고 받아들인다.
굳이 상호 간에 ‘잘’ 지내기 위해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다거나 그런 것이 없어도 누군가에게 각인이 되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 자체가 독특한 매력이 있다거나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매우 까칠한 츤데레 직원일 수도 있고 매우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직원이 그럴 수도 있다. 모두가 자신만의 콘셉트를 고의적으로 만들어서 직장생활을 한다기보다 ‘그 자체의 사람이 콘셉트’가 된다거나 아니면 ‘관계를 잘 이어나가기 위한 행동이나 습관’이 그 사람의 콘셉트를 만들어 간다라고 볼 수 있다.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아야 한다. 고의적으로 어떤 콘셉트를 만든 후에 그 콘셉트를 대외적으로 표방하고 소비자에게 납득시키는 것도 적절한 방법일 수 있지만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기존과 다른 콘셉트를 갖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또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그것을 이용하는 소비자에게 상호 관계에서 기존에 없던 독특한 행동양식을 부여할 때 독특한 콘셉트가 생길 수 있다.
최근에 긍정적인 반응을 받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살펴보면 기존에 없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서 독특한 콘셉트를 만든다기보다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에 독특한, 특별한, 차별점을 부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프라인으로 이루어지던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통합해서 서비스를 하는 것이나 (HELPME, 테이스티 샵 etc) 기존 제품들이 갖고 있지 않는 장점들을 제품에 반영한다던가(공백, 전틀피버 톤업 에센스 etc.) 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여 상호 관계에서 즐거움을 주는 방식(스노우, 콰이 etc.)을 서비스에 넣는 것도 매우 각광을 받고 있다. 스노우 어플을 사용해서 연인이나 친구 사이에 재밌는 동영상을 만들고 이를 공유하는 것을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연예인들이 콰이 어플을 사용하여 더빙하는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단순히 기능적 차별성을 부여한다기보다 우리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기존과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에 독특함을 부여를 하는 것이다.
“
우리 제품을 사용하면 달라집니다가 아니라
이런 거 보셨어요? , 이거 기존에 있는 거랑 다른 겁니다.
“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상호 관계에서도 ‘저 좀 특이하죠?’ ‘저 좀 특이한 부분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많아지듯이 기업에서도 ‘이런 거 보셨어요?’ ‘우리 제품 신박합니다. 독특해요’라고 말하는 비중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이런 콘셉트의 중요성이 조금씩 사람에서 기업으로 전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에서 콘셉트는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마케팅은 소비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학문으로 통상 분류되곤 한다.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것이 마케터들의 주된 업무라면 당연히 그런 업무의 연장선에서 기업은 소비자의 심리적인 측면을 제품이나 서비스에 반영해야 한다.
소비자의 삶은 일상생활, 회사 생활에서 독특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평범함을 벗어나 독특함을 표방하는 삶으로 점점 바뀌고 있다. 따라서 기업은 제품이나 서비스에서도 독특함을 추구하는 것이 소비자를 보다 면밀하게 이해하는데 좋은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