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PG를 추억하는가? 응답하라 1990
RPG가 아니고 SRPG? 아직 20초반인 게임 유저들에게 SRPG 장르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디아블로, 발더스게이트 등 게임이 등장하기 전까지 RPG 장르 전체를 대변하던 것이 SRPG 게임이다.
SRPG란?
보통 RPG 게임은 크게 세가지로 분류되는데, 액션 롤플레잉(ARPG, 대표작: 디아블로), 전략 롤플레잉(SRPG, 대표작: 파랜드택틱스), 전통 롤플레잉(RPG, 대표작: 드래곤퀘스트)로 나눌 수 있다.
‘Simulation Role Playing Game’의 약자다. 전략 롤플레잉 게임을 뜻하는 용어로 여기서 ‘Simulation’은 본래 의미의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전략 시뮬레이션을 의미하는데, 이는 SRPG라는 말이 나올 당시 시뮬레이션 하면 곧 전략 시뮬레이션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체스판과 같은 필드에서 턴제로 진행되는 방식의 게임들을 총칭한다. (참고 자료: 나무 위키)
바야흐로 1990년대, 스크래치라도 생길까 애지중지하며 게임 CD를 소장하던 이 시기에 SPRG 장르는 태평성대였다. 창세기전, 파랜드택틱스, 용의기사, 용기전승, 메타녀,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 등 다양한 시리즈들이 출시됐고, 다채로운 일러스트와 풍성한 스토리로 많은 유저들을 몰입시켰다. 필자 또한 어린시절 이 게임들의 엔딩을 보기 위해 밤을 지세웠다.
SRPG 장르의 최대 장점은 방대한 스토리라인과 이를 구성하는 수 많은 캐릭터들이다. 넓은 세계관 안에서 하나의 큰 줄기의 스토리를 따라가기도 하고, 각 캐릭터별로도 탄탄한 스토리를 제공한다. 게임에 따라 일정부분 스토리 라인이 바뀔 수도 있고, 이를 통해 동료가 되는 캐릭터들에 변수가 생기기도 한다.
캐릭터들과 함께 SRPG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바로 전략이다. 각 캐릭터의 개성과 특성을 살리는 전략으로 게임을 공략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아군이 일제히 행동을 끝마친 후에 적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는 턴제 게임의 특성상 적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는 전략을 세우는 두뇌싸움은 전투 승리 시 상당한 성취감을 제공한다.
모바일 SRPG의 등장
일본의 경우 여전히 파이어 엠블럼, 마계전기 디스가이아, 슈퍼판타지워 등이 신작 시리즈를 출시하며 콘솔 분야에서 SRPG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한국은 사실상 한동안 SRPG의 명맥이 끊겨있었다. 국내 대부분의 게임 개발사가 빠른 속도의 게임진행, 간편한 조작 등을 요구하는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쉽사리 SRPG 장르에 쉽사리 도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하나의 장르가 잊혀지는가 싶었다.
그러던 2015년.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진 모바일 SRPG 게임들이 있다. 과거의 향수를 추억하는 많은 유저들은 가슴설레이며 이들을 맞이했고, 이와 더불어 스토리 없이 노가다만을 요구하는 RPG 게임들(최근 모바일 RPG 게임들을 보면 Playing만 있고 정작 몰입해야될 중요한 Role은 생략되어 있다.)에 지친 유저들에게 새로운 트랜드가 될것으로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이로부터 출시한지 6개월 남짓된 지금, 이 게임들은 어떤 상황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슈퍼판타지워
2015년 모바일 게임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였던 슈퍼판타지워는 장르의 희귀성 외에도 넥슨이 개발과 퍼블리싱을 맡아 출시전부터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PC/온라인 게임시장의 터줏대감이었던 넥슨은 모바일 게임시장에서 한동안 큰 힘을 발휘하지 못 했다. 그러던 중 넥슨은 2015년 본격적인 모바일 게임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도미네이션즈, 히트, 청룡팔부 등과 함게 슈퍼판타지워를 대대적으로 출시했다. 이 중에서도 특수한 장르성을 가진 슈퍼판타지워는 자연스럽게 유저들에게 주목 받았다.
- 개발사 : 넥슨GT
- 퍼블리셔 : 넥슨
- 출시일 : 2015년 11월 5일
뚜껑을 열어본 슈퍼판타지워는 유저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SRPG 특유의 묘미인 캐릭터별 서브 스토리도 제공하고, 동료가 합류할때마다 상대 동료들과의 단편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정통 SRPG의 턴제 전투 방식은 예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가장 논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과금 구조는 장비(아이템)만을 뽑기로 판매하겠다고 넥슨이 선언하면서 유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잠시 뒤에 언급될 노블레스 콜라보 이벤트와 함께 넥슨은 유저들과의 약속을 저버렸다.
유저들의 호평과 함께 순조롭게 순항 중이던 슈퍼판타지워는 약 5개월이 지난 지금 위기에 봉착해있다. 전세계 콘텐츠 소비속도 1위로 알려진 한국 유저들에게 슈퍼판타지워의 초기 콘텐츠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스토리모드는 과금유저가 아니더라도 사실상 한달 안밖으로 클리어가 가능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가 미흡했고 4월 말에서야 스토리모드의 추가분이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심지어 이전까지 공개된 스토리모드의 스테이지들을 모두 공략해도 전체 스토리모드가 아직 공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엔딩을 볼 수가 없다.
최근에는 네이버웹툰의 노블레스와 콜라보를 진행하며 상당한 이슈를 불러 일으켰다. 웹툰 팬들과 기존 유저들 입장에선 노블레스 캐릭터들이 신규 캐릭터로 슈퍼판타지워에 등장하는 것이 매우 반가운 소식이였다. 그러나 이 캐릭터들 중 하나를 무려 100,000원 패키지 상품으로 판매하면서 넥슨 스스로가 게임 출시 때 선언했던 약속을 져버리며 수 많은 유저들의 원성을 사는 계기가 됐다.
호평과 비평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애증’의 슈퍼판타지워다. 긍정적인 부분으로 최근 유저들의 강력한 항의에 의해 운영팀이 사과 글 게재 후 유저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직 첫단추를 꿴 정도지만, 최신 업데이트를 통해 유저들의 요구사항들도 상당 부분 반영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볼만 하겠다. 향후 새로운 콜라보를 준비한다면 부족한 컨텐츠의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개선점들이 차차 해결된다면 SRPG라는 희귀한 장르에서 한 동안은 당당히 자리를 꿰찰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 프론티어 사가
전설로 기억될 또 하나의 SRPG라는 슬로건으로 야심차게 출시하였으나, 다른 의미의 전설로 남게된 비운의 게임이다. 중국 대형 게임사 추콩의 국내 현지 법인인 구름컴퍼니에서 서비스했다. 잘 살린 SRPG의 향수, 나쁘지 않았던 게임성, 다양한 캐릭터들, 즐기기 충분한 턴제 전투 시스템 등 전반적으로 합격점을 받고 시작하여 상대적으로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상당수의 유저들을 확보했다. 하지만 운영적인 문제로 빛을 보지 못 했다.
- 개발사 : 구름컴퍼니
- 퍼블리셔 : 구름컴퍼니
- 출시일 : 2015년 10월 19일
슈퍼판타지워와 비슷한 시기에 런칭한 만큼 지속적인 업데이트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버그의 향연으로 원성을 샀고, 극악의 캐릭터 뽑기 확률은 많은 유저들을 좌절시켰다. 일본에서 먼저 공개된 이후 국내 출시되었으나, 장기간 콘텐츠의 업데이트가 없어 사골국(?)의 오명을 쓰며 유저들이 떠나갔다. 운영이 어려워진 프론티어사가는 결국 4월 말 서비스 종료를 선언하고 말았다.
완전히 낙제점을 주지 않았는데, 아쉬운 결말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게임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유명 SRPG 게임 ‘마계전기 디스가이아’와 콜라보 이벤트 이후 한달 뒤에 서비스가 종료되어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몇몇 유저들은 서비스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한탕(?)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SRPG라는 장르의 희소성안에서 슈퍼판타지워와 양대산맥을 형성할 잠재력이 있었던만큼 아쉬움이 큰 게임이었다.
3. 퍼스트 택틱스
퍼스트 택틱스는 RPG 게임을 즐겨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전 SRPG의 추억을 가장 충실히 구현하여 매니아들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얻은 게임이다. 1인 개발자에 의해 제작된 게임으로, 6개월이라는 개발기간을 걸쳐 출시됐다.
- 개발사 : Five Finger
- 퍼블리셔 : Five Finger
- 출시일 : 2015년 8월 1일
퍼스트 택틱스는 천원대의 저렴한 가격과 탄탄한 스토리 그리고 다소 투박하지만 SRPG 장르에 충실한 게임 그래픽과 시스템을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1인 개발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꾸준한 업데이트를 제공하며 유저들과의 엄청난 소통을 자랑한다. 또한 과금을 하지 않아도 게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밸런스를 조절한 개발자의 지나치게 양심적인 배려도 돋보인다. 이러한 요소가 유저들에게 퍼스트 택틱스를 알리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개발자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대형 개발사의 핵과금러 한명의 소비 금액에도 못 미치는 현실은 상당히 아쉽기도하다.
아쉬운 부분으로는 인디 게임 특유의 개발적 한계로 인한 캐릭터 액션감의 부재다. 전투 시 어느정도의 임팩트는 있으나, 실제 캐릭터의 전투 모습은 분명히 게임의 몰입도를 방해하는 요소다. 하지만 SRPG의 특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며, 다른 장점들이 이러한 단점을 충분히 매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퍼스트 택틱스의 개발자는 앞으로 더욱 발전하여 후속작들도 출시하고 싶다는 욕심을 밝혔는데, 국내 게임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게임들이 더욱 빛을 보기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바이다.
SRPG 게임의 향후 미래는 밝다?
총평하자면, 분명 다른 장르들에 비해 이제 막 모바일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한 SRPG 장르는 아직 완전한 합격점을 주기엔 아쉬운 부분이 남아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현재 시장에 출시된 SRPG 게임들을 통해 이 장르를 즐기는 유저층의 잠재성은 분명히 증명되었다는 점이다. 모바일 환경에 보다 적응하고 기존의 게임들에 지친 유저들에게 보다 독창적인 매력을 제공한다면, SRPG 장르는 다소 뻔해진 국내 모바일 게임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한 것일까. 넥슨은 이미 2016년에 들어 미소녀X메카닉(마치 치맥과 같은 조합이 아닌가!) 컨셉의 SRPG 차기작을 출시 준비 중에 있으며, 앞으로도 SRPG 장르를 꾸준히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현재 국내 게임 시장의 키워드를 ‘캐릭터 육성’, ‘무한 경쟁’, ‘확률 뽑기’라고 한다면 SRPG는 이와 정반대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이미 경쟁 사회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게임까지 또 하나의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게임시장 트랜드의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고 보다 성숙해져가고 있는 만큼, 유저들에게 진정한 쉼터가 되어 줄 본연에 충실한 게임들이 더 많이 출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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