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신작 추천에 낯익은 스포츠 스타의 얼굴이 등장했다. ‘마이클 조던’
추천 썸네일 속 흠뻑 땀에 젖은 마이클 조던의 모습은 아마도 시카고 불스 막바지 시절의 것으로 보였다. 1997년 혹은 1998년… 이쯤 되면, 도리 없이 영상을 플레이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 동안 늦은 밤마다 칼스버그 캔을 홀짝거리면서 마이클 조던의 ‘더 라스트 댄스’를 정주행했다.
추천 썸네일 속, 땀에 젖은 마이클 조던의 날렵한 모습을 상상했던 내게, 2020년 현재 마이클 조던의 모습은 좀 낯선 감이 있었다. 날렵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일 만큼 불어난 몸에, 붉게 충혈된 듯 피로해 보이는 눈동자, 전성기 시절 생기와 탄성으로 가득했던 검은 피부를 연상케 할 만한 단서가 지금의 모습에는 별로 남아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가끔씩 호쾌한 웃음이 터져 나올 때 보이는 표정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더 라스트 댄스’는 농구선수로서의 마이클 조던 일대기를 다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조던의 NBA 커리어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그 전개의 양상이 사뭇 흥미로운 데가 있었다. 뭐랄까, 시간의 흐름을 직선의 관점이 아닌, 회귀와 반복이 지속되는 곡선의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냥 쉽게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인다’ 정도. 처음에는, 1997년의 마이클 조던을 잠시 다루다가 1992년의 마이클 조던을 다루고, 그러다가 또 잠시 후 1997년으로 넘어오는 형태의 전개가 낯설었지만, 결국엔 그런 방식의 전개에 몰입이 됐다. 시간이란 흐르는 것보다 쌓이는 쪽에 가까울 때, 다시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법이니까.
마이클 조던 보다는 에어 조던
내게 조던은 마이클 조던 보다 에어 조던이 좀 더 낯익다. 그건 다시 말해 나이키 빠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나는 나이키 빠는 아니었다. 나이키를 신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조던 시리즈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일단 농구화를 별로 탐탁해 하지 않으셨던 것 같았다. 왜 요즘 애들은 강아지 혓바닥같이 생긴 신발을 여름에도 신는 거냐는 명언을 남기셨지만, 결국 농구화를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물론 엄마가 사 온 농구화 혓바닥에는 JORDAN이 아닌 엉성한 서체의 EWING이 적혀 있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그 유잉 농구화는 짭이었다. 그렇다 엄마는 농구화를 싫어했던 게 아니다. 다만 형편이 그러했던 것 뿐.
그러거나 말거나, 에어 조던 시리즈는 새로운 아이폰 시리즈처럼 해를 거듭할수록 참신한 자태를 뽐내며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물론, 친구들 중에도 에어조던을 신고 다니는 녀석들이 꽤 있었다. 그 친구들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기억에 남는 건, 얼굴 생김새는 영락없는 EWING인데, 항상 신발은 에어조던 최신 제품을 신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친구는 늘 한 학년 위 선배들과 어울려, 농구장의 메인 코트 자리에서 3:3 길거리 농구를 했다. 그때 나는 그런 특권이, 그 친구가 신은 에어조던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 시절의 마이클 조던은 아시아 변방의 조그만 나라에도 에어조던의 신화를 써나갔다. 지금 애플과 아이폰의 신화가 있다면, 그때는 마이클 조던과 나이키의 신화가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마이클 조던은 너무나 확연히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그는 지난 시간을 흘러간 관점에서 이야기 하기보다는 축적과 가능성의 관점에서 이야기해 나갔다. 그런 점에서 2020년에 등장한 마이클 조던의 모습은 여전히 인상 깊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다만 쌓여갈 뿐.
손녀의 선물로 나이키 운동화를 사 오는 엄마를 볼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시간은 흐르는 쪽보다 쌓이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신발장을 열어보면 딸들의 운동화는 모두 나이키다. 정작 내가 뉴발란스를 살 때도, 딸들의 신발은 뉴발란스 매장 건너편의 나이키 매장으로 이동해서 산다. 어쩌면 딸들의 시간도 흐르지 않고 쌓이고 있을지 모를 일인데, 이제부터라도 좀 더 다양한 브랜드의 운동화를 만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그래도 삼선의 아디다스 저지만은 피해주면 좋겠다는 다소 시덥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더 라스트 댄스’는 1998년의 마이클 조던 다음에 1999년의 마이클 조던을 보여주지 않는다. 1998년의 마이클 조던 다음에 1992년 혹은 1993년의 마이클 조던을 보여준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쌓인다는 걸 그런 식으로 보여준다. 말하자면, 2020년의 당신은 2013년, 아니 어쩌면 당신도 모를 당신의 어느 시간에서 비롯됐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비약일까? 어쨌든, 그 시절 혓바닥을 날름 거리며 공중을 휘젓던 에어 조던의 시간들… 그렇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들이 흘러, 아니 쌓여 2020년이 됐다. 그렇다면, 2020년 지금의 시간들은 또 어디로 쌓여갈까?
Min님의 브런치 글을 모비인사이드가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