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직원 입장에서 본 OKR
여러 전문가들이 고민 없는 OKR 도입을 경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OKR이라는 독이 든 성배를 마시게 되는 걸까. 이에 대한 전문가나 스타트업 CEO들의 생각은 자주 들어봤다. 그런데 직원 입장의 글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그래서 OKR에 대한 내 솔직한 느낌을 풀어본다.
유행 타는 OKR
나는 스타트업 CEO가 아니라 직원이었다.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OKR이 싫었다. 경영자 입장이라면 달랐겠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또 귀찮은 일이 늘어날 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행하는 경영 기법들이 실험적으로 업무 사이로 치고 들어오는 건 단순히 스트레스 차원을 넘어서 일에 방해가 된다. 내 일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적응의 기간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단지 최신 기법이라는 이유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 조직 안에서 필요에 의해 시도되는 실험이 아니라, 문제의식 없이 솔루션에 조직을 맞추는 형태의 실험은 실패할 확률이 크다. 무엇보다 조직 문화의 영역은 더더욱 그렇다.
OKR이 딱 그래 보였다. 스타트업 씬에서 OKR이 유행하기 시작한 건 2019년 중순 즈음부터였다. 우후죽순으로 발 빠른 기업들이 적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점을 찾아본다면 국내에 OKR 기법이 소개되기 시작한 2018년 말부터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OKR 자체는 1970년대에 등장했다느니, 구글이나 실리콘밸리 유명 기업들에서 오래전부터 OKR을 해왔다느니 이야기하지만, 본격적으로 한국에 넘어온 건 사실상 아래의 책이 출간되고 나서부터다. 아무리 봐도 유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구글이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 OKR』, 2018년 11월, 크리스티나 워드케 지음, 한국경제신문
내가 OKR을 처음 접한 건 크리스티나 워드케가 쓴 위 책이 아닌, 존 도어가 쓴 책 ‘OKR’을 읽으면서다. 그리고 솔직한 감상으로 책이 아니라 종교 서적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OKR을 칭찬하거나 장점을 강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찬양’하는 표현들 일색이었다. 모든 챕터마다 OKR을 찬양하는 표현들이 들어가 있음을 느끼면서 이 책은 완전히 상업적인 용도로 출판된 책이라고 생각했다. “구글의 성공 비결은 모두 이 OKR 때문이다!”, “OKR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 책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불안 불안했다. 그리고 역시나 2019년 중순 이후로 만났던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OKR을 도입하고 있었다. 혹은 도입했던 적이 있었다. 그 말은 OKR이 제대로 된 솔루션이 아니라 ‘유행’으로서 다뤄진다는 뜻이었다. 유행처럼 도입해보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문제를 정말 해결해 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이후로 만나는 스타트업마다 OKR을 쓰는지 물어본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직장인 친구한테 “유튜브나 할까봐”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할 말 없을 때 물꼬를 트기에 딱 제격인 것이다.
MBO, KPI, OKR… 다음은 뭘까?
비슷한 유행이 더 있다. Aglie, Silo, Scrum, DevOps, Notion, Confluence 등등…
다음엔 뭐가 될지 궁금해진다.
OKR의 목표는 두 가지다.
1) 조직 구성원들의 도전적인 목표 설정
2) 전사적 Align
OKR이 이전의 경영 기법과 다른 점은 위 두 가지다. OKR이 단순히 목표 설정하는 프레임이라기엔 이전부터 기업 경영진들은 목표를 설정해왔고, 심지어 그 목표들은 이미 도전적이었다. 또한 목표 달성률과 성과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기법들도 기존에 많이 있다. 굳이 OKR이라는 형태로 경영 기법이 발전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저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 조직 구성원의 도전적인 목표 설정과 전사적 Align ] 이게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표가 왜 생겨났을까? 왜 이전과 다른 방식이 시도되었을까?
그 이유를 안다면 OKR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솔루션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굳이 우리 회사 상황에 맞지도 않는 OKR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에 위 문제 상황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우리 솔루션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다.
OKR은 권한 위임 때문에 생겨난 경영 기법&조직 문화라고 생각한다.
OKR은 조직 구성원들의 도전적인 목표 설정을 위해서 그들이 OKR 목표를 달성했는지 심사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그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지도 않고 페널티를 주지도 않는다. 만약 OKR이 평가/보상과 연관될 경우 아무도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구글이나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굳이 조직 구성원 개개인, 각각의 팀이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길 바랐을까? 당연히 그들이 이전보다 더 많은 권한과 책임, 주도성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왜 권한을 위임하는가? 시장과 기술이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Agile이라는 조직 구조가 유행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배경을 두고 있다. 시장은 갈수록 빠르게 변한다. 기술 변화도 세상 어느 때보다 빠르고 사회 구조도 변하고 소비 패턴도 변하고 모든 게 변한다. 하물며 그로스 해킹이니, 머신 러닝이나 없던 직업도 생기고 있던 직업도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모든 게 빠르게 변화는 시장 상황 속에서 조직이 중앙 직권적으로 정보들을 끌어모아 분석하고, 다시 실무진에게 전파하는 형태의 조직 구조가 오히려 비효율적이 되었다. 이제는 실무자가 알아서 필요한 IT 기술과 트렌드를 학습하고 프로젝트의 의사결정을 내리고 주도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너무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권한 위임은 특히나 IT기업에선 필수다.
그래서 Agile 조직은 권한 위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무진이 곧바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시장에 무언가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역량을 한 팀에 몰아넣는다. 기획자나 개발자, 디자이너들이 한 팀에 모여서 시장에 맞게 프로젝트를 리딩하고 빠른 시간 내에 시장에서 테스트한다. 모두 시장 변화에 발맞춰서 권한 위임하고, 기민하게 대처하려는 목적이다.
다시 말하면, OKR은 권한 위임이 필요하지 않거나 불가능한 경우에는 효용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 굳이 OKR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구성원들이 도전적인 목표 설정을 하지 못하게 압박받는 구조에서도 쓸모가 없어진다. 예를 들어 사내 정치가 있어서 성과가 아니라 줄타기에 의해 승진이 결정되는 문화가 팽배하다면 OKR을 도입한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다. 누가 목표를 높게 잡겠는가! 어차피 정치 싸움인데. OKR이라는 수단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의 도전적인 목표 설정’을 이루기 위한 다른 솔루션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OKR을 들여올 게 아니라 보상 체계를 바꾸든, 직급 체계를 재편성하든 권한을 제대로 위임하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지, OKR 목표나 설정하라고 시킨다고 해서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
OKR을 도입하기 전에
PSF(Problem-Solution Fit)를 먼저 맞춰야 한다.
1) 권한 위임이 제대로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2) 구성원들이 왜 목소리를 내지 않고 도전적인 목표를 꺼려하는지.
3) 왜 회사의 목표와 다르게 구성원 각자가, 각 팀이 서로 동상이몽하고 있는지.
우리 조직의 문제도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해결도 못하면서 OKR이라는 솔루션을 도입하고 시도해본다는 건 마치 실패하는 창업가와 같다. 고객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좋다는 머신러닝 기술을 가져다가 ‘이렇게 좋은 서비스가 있다’면서 런칭하는 격이다. 고객의 Problem과 Solution의 Fit이 맞을 리가 없다. 조직 문화나 경영 기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러니까 OKR을 도입한다고 공지하면 조직 구성원들의 말이 없어지고, 회의 끝나고 뒤돌면서 옆 사람이랑 같이 한숨 쉬는 것이다. 그들이 아마도 수차례 이야기했을 문제도 해결해 주지 않으면서 새로운 경영 기법을 가져와서 이것저것 실험해본다 라고 느끼리라. 예를 들어 마이크로 매니징과 OKR은 양립하기 어렵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뭐 할 때마다 감시자가 자기 업무를 컨트롤하려 하니 ‘도전적인 목표’ 설정이라든지 주도적인 업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무진을 못 믿으니 자꾸만 의사결정을 자신이 되가져오는 것이다. 권한 위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환경에서 OKR은 이름만 OKR이지 그냥 회사의 마일 스톤이든 KPI든 뭐로 부르던 상관없는 흔한 목표가 되어버린다. 만약 권한을 많이 위임하는 것보다 고관여로 매니징 하는 게 우리 사업 모델과 조직에 적합하다면 OKR을 도입할 게 아니라 그 방식을 고도화시키면 되리라.
OKR을 도입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들은 부수적인 문제다. Key Result를 무슨 지표로 설정해야 할지 정하기가 어렵다든지, 경영지원 파트는 정량적 지표를 찾기 어렵다든지 하는 문제들은 실행 단계에서의 문제들이다. 위에서처럼 권한 위임과 Align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조건 속에서는 OKR을 예리하게 잘 세워봤자 이름만 OKR이고 해 오던 대로 똑같을 것이다. 단지 회사의 목표를 2~3가지 정도로 좁히는 것 정도의 의미는 있겠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건 유행을 타기 때문이다. 시행착오의 비용을 겪더라도 유행하는 최신 경영 기법이나 트렌드를 도입하는 게 대체로 더 큰 이득을 준다고 판단해서 그렇다. 사회 변화에 발 빠르게 반응하고 성과를 내는 트렌드를 캐치해서, 만약 적용에 성공한다면 시행착오의 비용보다 더 큰 성장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특히나 경영이나 조직 문화의 영역이 그렇다. 왜냐하면 시장과 다르게 내부의 반응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특히나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경영진은 매니저들의 속내를 알기 어렵듯이), 그 리스크가 한참 뒤에나 드러나기 때문에 마치 큰 손실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조직에 감행한 변화와 혁신은 단번에 눈에 보인다.(팀을 갈아엎고 최신 유행하는 조직 구조로 개편하면 당장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는가. 엄청난 변화와 혁신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조직은 거대한 실험장이 된다. 환경 문제와 유사하다. 기술 발전은 눈앞에 인류의 혁신과 영광을 가져다주지만 그렇게 쌓이고 쌓인 환경 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누구나 그 자리에 가면 그렇게 된다. CEO라는 자리가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그래서 HR(요즘엔 People팀, People&Culture팀 등으로 불린다)담당자가 CEO의 확성기가 아니라 능숙한 Coach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경영진 스스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조언하며 촉진하는, 때로는 누구보다 그들과 맞서는. (모두가 기업가를 옹호하면 환경은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모두가 그 피해를 입는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만난 모든 CEO들은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시장에서 살아남아 기업체를 꾸려나가는 것 자체가 남들과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남들은 하루를 살 때, 하루를 일주일처럼 지내온 경험치들이 쌓여 있다. 특히나 후발주자임에도 혁신적인 솔루션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스타트업에서는 ‘실력’이 부족한 CEO를 본 적이 없다. 때문에 OKR이나 경영 기법들이 유행하는 것에도 내가 감히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들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CEO라는 자리가 사람을 한없이 고독하게 만들고, 성과에 매달리게 만든다는 것 또한 안다. 직원을 고용하고 매달 인건비를 지급한다는 행위에 어떠한 무게가 실려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해본다. 때문에 CEO는 환경 문제보다 기술 발전과 성과를 더 먼저 쳐다보게 되는 자리일 수밖에 없다. 조직 문화도 경영의 차원에서, 의도를 가득 담고 반강제 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모두가 Yes맨이 되면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 조직은 어느 순간 썩어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게 피플팀이든 컬처팀이든, 그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이 마냥 OKR 도입을 반대하는 글로 읽히진 않았으면 좋겠다.
직원의 입장에서 OKR이라는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내가 만난 수많은 동료들이 OKR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풀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주관적인 판단에서 OKR이 왜 그들에게 불만거리가 되어버리는지, 왜 조직에서 쉽게 적용이 안 되는지를 함께 얘기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분명히 회사 차원에서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며, OKR 도입 또한 이유가 있는 선택이었을 거라는 점을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는 말로 마무리하고 싶다.
그래도 나는 OKR이 싫다 (소곤소곤)
유디V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