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의 등장과 선점
‘친환경’이라는 단어는 ‘유기농’, ‘천연소재’ 등과 함께 B2C 시장을 지난 십여 년간 기준하는 키워드로 군림하였습니다. 물티슈, 생리대 같이 작은 소비재 상품부터 내구재인 자동차까지 친환경은 그렇지 않은 상품과 분명 차별화되는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물론 친환경만이 소비시장을 가늠하는 키워드는 아니었지만, 형이상학적 이미지의 대부분 – 안전, 상상, 역동적, 승리 등 – 의 단어는 이미 오래전에 등장해 고객의 머리 속에 각인된 브랜드와 그 이미지가 있는 것에 비해 친환경은 비교적 최근에 나온 키워드이기에 그 시장에 대한 각 상품 카테고리별 선점 양상은 치열하였습니다.
친환경이라는 키워드는 각종 분야에서 새로운 포지셔닝을 만들었고 자동차에서는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를 식품에서는 유기농이라는 공고한 카테고리를 낳았습니다.
의류에서도 친환경 브랜드로 뚜렷이 자리 잡은 브랜드가 있습니다. ‘파타고니아(Patagonia)’는 아웃도어 시장에서 차별화된 스토리 메이킹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포지셔닝을 뚜렷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마치 ‘안전’이란 이미지의 자동차로 ‘볼보(Volvo)’를, ‘승리’라는 이미지의 스포츠 브랜드로 ‘나이키(Nike)’를 떠올리듯이 친환경이라는 메시지와 기업 경영 방식에서 사람들은 파타고니아를 떠올립니다. (참고: 파타고니아 제품을 사면 안되는 이유)
파타고니아는 영리한 마케팅과 패피들의 일상 착샷 등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해외에 비해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을 대상으로 아웃도어의 대안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포지션을 잘 잡았기에 국내 후발주자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겁니다.
새로운 키워드에 대응하는 브랜딩
아웃도어 시장은 고가의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단일 품목의 가격이 10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상품이 많은 옷의 첨단 시장입니다. 파타고니아가 친환경으로 국내에서 브랜딩 할 무렵 국내 아웃도어는 ‘디스커버리(Discovery)’처럼 라이프스타일로 다른 포지션을 취함으로써 대응을 보이기도 하고 올림픽과 함께 하는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처럼 1위 마케팅을 하듯 기존에 고객이 브랜드에 대해 느낀 이미지를 수성하는 전략으로 실제 시장 매출액 1위 자리를 되찾는 전략도 보였습니다.
제 책에서도 다룬 바 있는 ‘칸투칸(Kantukan)’은 아웃도어 시장에서 가성비와 정보를 오픈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높은 매출 성장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모두 시장의 빈틈과 기존의 포지션을 강화하면서 양적 확대를 꾀하는 전략으로 포화 상태인 아웃도어 시장에서 생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적인 대응을 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아웃도어 브랜드 기업 운영이나 내부 사정은 이렇게 외형처럼 성공적이거나 행복하지만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외형조차 행복하지 않은 기업도 많습니다.
국내 모 아웃도어 브랜드는 이 ‘친환경’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싶어서 해외 브랜드를 인수까지 했습니다. 기존 영업 파워로 주요 매장을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이 고가의 친환경 브랜드는 국내 론칭 몇 년간 정체된 매출과 연속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기존 아웃도어 브랜드와 다른 디자인과 국내 젊은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친환경인데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요?
전략 기획자나 컨설턴트 중에서 기계적으로 시장을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영진도 마찬가지지만요. 시장을 기계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대로 시장을 나누지 않고 현재 시장의 단면을 어떤 기준대로 잘게 나누어 보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아웃도어 시장을 기계적으로 나눈다면, 아웃도어 콘셉트로 나누거나 – 고기능, 저기능의 기능성 축과 디자인 감성에 따른 두 축으로 나누거나 친환경이라는 필터를 넣어서 그중 몇 개를 돋보이게 만든다거나 – 고객의 연령이나 구매력에 따른 프레임으로 시장을 구분하는 식이죠.
이런 기계적인 구분법은 결국 앞으로 도래할 시장, 현재 경쟁의 강도는 약하지만 성장이 밝은 시장을 찾아 거기 전략적 집중과 선점을 어떻게 할 것이다를 동반하는 기법으로 활용됩니다. 하지만 이런 구분법은 시장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약하다거나 현재 자사에 대한 고객의 인식, 자사의 역량과 무관할 경우 대형 실패를 불러오는 가능성을 가집니다. (참고: 스타벅스는 혼자 놀기 좋아 잘된다)
물론 방금 말한 친환경 브랜드를 컨셉으로 잡은 이 브랜드의 도입이 이런 생각에서만 이루어졌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친환경에 대해 이 기업이 보인 행보를 생각한다면 분명 국내의 ‘파타고니아’가 되고 싶었을 거겠죠.
고객에게 줄 수 있는 실제적인 가치
하지만 서두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형이상학적 이미지를 선점당하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현대 경영학을 열어젖힌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저서 ‘위대한 혁신(Peter F. Drucker on Innovation)’에서 누군가가 선점하고 있는 시장을 가져오기 위해 ‘총력 선점 전략’으로 이미 선점한 경쟁자를 이기는 것은 실패할 위험이 매우 크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경쟁자보다 가격 우위를 확보하거나 경쟁자의 제품이나 프로세스를 구식으로 만들어야 단 한 번의 기회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초반에 자원을 집중해서 ‘창조적 모방’을 더 세분화된 고객을 대상으로 해야 한 번 해 볼 수 있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에서 친환경이라는 이미지를 가져오기 위해 이 브랜드는 선두주자인 파타고니아에 비해 가격이 제품이 더 혁신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해서 고객 인지를 가져보려고 많은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론칭하고 영업력으로 공세를 벌일 뿐이었지 고객 입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이었죠.
피터 드러커의 ‘총력 선점 전략’을 달리 말하면 이미 포지션 선점을 당한 경우에는 고객에게 실리를 줄 무언가가 반드시 독보적으로 필요함을 뜻합니다. ‘토요타(Toyota)’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입니다. 판매 최상위 자동차 모델을 늘 보유하고 있습니다.
토요타의 슬로건은 ‘친환경’입니다. 지구를 살리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먼저 개발하고 양산한 역사가 있는 회사죠. 도요타는 가솔린과 전기 모터를 이용해 하이브리드카의 원조격인 ‘프리우스(Prius)’를 비롯하여 다수의 모델에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리우스를 구매 리스트에 고려하는 고객의 머리 속에는 ‘친환경’이 첫 번째에 있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3,000만 원에서 4,000만 원에 이르는 가격의 자동차를 구매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성능을 중요하게 따집니다. 슬로건은 그냥 회사의 슬로건이죠. 형이상학적 명분 말이죠. 프리우스가 고객을 사로잡는 실제적인 이유는 연비입니다.
디젤 자동차가 1리터에 15~20 킬로 수준의 연비를 보일 때 프리우스는 20 킬로 이상은 물론 운전법에 따라 30킬로를 넘는 탁월한 연비를 보여준다는 데 구매의 방아쇠를 당기게 만듭니다.
승차감이나 안정성, 내구성은 그다음에 따라오는 조건들이죠. 친환경은 고객에게 구매의 타당성이라는 음식 위에 고명과 같은 명분을 더해 줄 뿐입니다.
고객에게 실제적으로 주는 가치가 없다면 ‘친환경’도 허상입니다. 앞서 말한 친환경을 표방하는 아웃도어 브랜드는 산에 나무도 심고 다른 브랜드가 하지 않는 좋은 일을 많이 해서 개인적으로는 부디 잘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실리적인 가치, 소재의 친환경적 탁월함을, 가공 방식의 친환경적 방법에 대해 납득할 수준의 마케팅이나 아니면 그럼에도 가격이 무척 좋다든지 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여전히 사업의 성과는 요원할 것 같습니다.
파타고니아도 친환경이라는 단어만으로 몇 십만 원을 고객 지갑에서 꺼내게 하지는 않습니다. 특유의 디자인과 시그니처 아이템의 소재 사용은 다른 브랜드의 모방 대상이죠. 이미지 선점의 깃발 아래 철저한 실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친환경 마케팅을 준비하는 브랜드가 여전히 많습니다. 하지만 이미지만으로는 새로운 포지션을 차지할 수도 이미 선점한 강자를 끌어내릴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친환경 먹거리 체험을 시켜도 실제적인 준비가 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쌓았던 이미지마저 무너지게 됩니다.
어디 친환경뿐입니까. 캠페인이라고 주장하는 마케팅 전술들을 보면 대체 왜 하는지 모를 ‘유행하는 키워드 잔치’로 전략 없이 자원을 낭비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형이상학적으로 좋은 일, 갖고 싶은 포지션을 모두 가질 수도 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내가 잘하는 게 있죠. 파타고니아가 되고 싶으면 프리우스가 되고 싶으면 제품 자체 서비스 자체에 ‘총력 선점 전략’ 같은 세부적인 준비에 더 공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기회는 초반에 단 번으로 결정 날 수 있으니까요.
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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