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콜럼버스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지난 5월, 20대 남성이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볼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밀린 알바비를 요구하자 최저시급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 100원짜리 동전 4,000여 개가 담긴 자루를 받았다. (참고 기사: “밀린 알바비 달라”하자 사장님이 준건 100짜리 4,000여 개 )
이 뉴스가 보도되자 볼링장 사장은 갑질 논란으로 비난 여론이 뜨거웠다.
그러나 동전도 엄연한 법정화폐이므로 알바비 금액만 정확하다면 동전으로 지불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닐 텐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동전으로 지급하는 것을 갑질로 인식하고 왜 거부감을 느끼는 것 일까?
그 이유는 일단 무겁고 추가로 액수를 확인하는 노동력이 필요해서 일 테다. 그러나 사실 자신의 불만을 동전 지급으로 표시하는 건 새삼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위 뉴스를 가져온 건 위 갑질에 대해 같이 성토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위 뉴스를 공유하는가?
혹시 ‘세뇨리지 효과’라고 들어보았는가?
이는 화폐 주조로 얻는 이익을 말하는데, 찍어낸 통화의 액면가에서 통화주조 원가를 뺀 만큼의 차익을 통화발행 주체가 얻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국가가 동전을 발행하면 세뇨리지 효과 유지를 위해 액면가 보다 생산 단가가 더 저렴해야 하는데, 요즘은 동전의 원료가 되는 원자재 가격의 급등락으로 인해 오히려 종종 역세뇨리지 효과가 발생한다.
즉, 생산비용이 액면가보다 비싸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여러분이 정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역세뇨리지 효과가 심화되고, 지속되면 똑똑한 개인들은 동전을 돈으로 사용하는게 아니라 그냥 간단히 녹여버린다.
예전 구리 가격이 폭등했을 당시, 옛날 10원짜리에 함유된 구리 순도가 높아서 액면가보다 녹였을 때 가치가 월등히 높아지자 10원 동전 5천만 개를 녹여 5억을 12억으로 뻥튀기는 연금술사도 존재했다. (참고 기사: 10원 동전 5천만 개 녹여, 구리로?… 원가가 얼마길래)
당시 문제를 인식한 정부가 부랴부랴 신형 10원짜리를 도입한 뒤부터는 더이상 10원 동전을 녹이는 이가 없어졌지만 위 사례가 보여주는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
현재 100원 동전의 재료 단가는 액면가의 약 60% 수준이지만 구리 75%, 니켈 25%로 구성이 되었다. 그리고 전기차 수요의 급증으로 인해 최근 니켈의 가격이 폭등하며 구리 가격의 변동성도 상당히 높은 만큼 100원 동전 재료 단가가 액면가보다 높아질 경우 또 한번 100원 동전을 녹여서 동괴와 니켈괴를 만드는 새로운 연금술사가 미래에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다.
*니켈괴: 니켈을 용강을 주형에 부어 식혀 만든 괴
그렇다 보니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아예 동전 없는 사회를 추진하고 있다. (참고 기사: [지급결제]한은, ‘동전없는 사회’ 2단계로…모바일 카드 계좌적립)
물론 그 명분으로는 카드 이용의 급증으로 인해 동전 사용률이 감소한 것을 꼽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에 의한 통화가치 하락과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멜팅 포인트가 또다시 넘어설까 노심초사하는 정부의 깊은 속뜻이 담긴 것이다.
그런데 역사를 거슬러 과거를 보면 동전에 대한 통화발행 권력의 고민은 현 정부만 가진 문제는 아니다. 금, 은, 동화를 사용했던 로마 시절에는 백성들이 금의 테두리를 사포로 갈아 금가루를 모아서 금화의 금을 빼돌렸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고대의 금은화 테두리에도 현재의 동전 테두리처럼 오돌토돌한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요즘 시대 정부가 막대한 국채 발행과 돈의 인쇄로 인위적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켜 통화가치 하락을 이끌듯이, 고대의 왕국들 역시 금은화에 구리를 섞는 방법으로 금과 은화의 순도를 점차 낮춰 금은화 발행량을 늘리는 양적 완화를 단행했다.
2008년 이래로 지속된 양적 완화 덕택에 모든 물가는 살인적으로 치솟았고 특히 부동산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듯, 고대 로마시대에도 금과 은화 순도를 낮추는 방식의 양적완화가 이어지자 물가가 급등해 경제가 마비되며, 시장에서 순도가 낮은 돈을 피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불과 100여 년 전 한반도에서도 *’당백전’으로 대표되는 조선방식의 양적완화로 인해 당시 물가가 폭등했음은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당백전: 866년(고종 3) 11월에 주조되어 6개월여 동안 유통되었던 화폐
통화 권력이 의도적으로 돈의 양을 늘리는 양적 완화를 단행하면 시장에서는 *그레셤의 법칙이 발생하는데, 시장 참여자들은 생각보다 똑똑해서 순도 낮은 금화와 순도 높은 금화가 있으면 순도 낮은 금화를 우선 사용하고 순도 높은 금화는 사용하지 않고 숨겨두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그레셤의 법칙: 악화(Bad Money)가 양화(Good Money)를 구축한다는 것을 뜻
실제로 통화가치 하락 속도가 엄청난 아르헨티나의 경우 부동산을 매매 할 때 조차 자국의 화폐인 페소화 보다 달러화 거래가 대부분이라고 하니 지금도 그레셤의 법칙은 세계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굳건한 원화의 가치 덕분에 아르헨티나, 브라질, 터키 등 제 3세계 국가들이 현재 겪고 있는 신흥국 통화위기가 마치 남 일인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다.
그런데 천만에!
어제 골드만삭스가 발표한 우리나라를 비롯해 브라질, 칠레, 중국, 체코, 헝가리, 인도,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멕시코, 폴란드, 러시아, 필리핀, 태국, 터키 등 17개 신흥 국가를 대상으로 한 최근 *보고서에서 (참고 기사: 골드만삭스 “미 금리 인상 충격, 한국이 가장 커” (종합))
지난 2007년 이후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에 신흥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상당폭 감소하는 경향이 드러났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가 1%포인트 인상되면, 이른바 ‘신흥국 금융상황지수'(FCI)는 0.7%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얘기다.
이 FCI가 1%포인트 상승하는 상황에서는 우리나라의 GDP가 향후 2년간 최대 0.6% 가까이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17개국 가운데 가장 큰 하락 폭이다. 그래서 미국發 금리 인상의 충격은 결코 남들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들의 미래 라는 이야기다.
2008년 이후 이어진 양적완화 기조 속에 무려 10년 간 위험자산 불패 신화가 생겨났다. 역사상 최고의 레버리지를 활용한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에서 엄청난 버블이 생겨났고, 중앙은행들의 무제한 국채 매입으로 인해 채권 시장의 기형적 버블도 지속 되었다.
모두가 저금리와 급등하는 자산의 버블에 취해 긴축에 대한 경계가 무너진 지금 날카로운 금리 인상의 칼날이 우리를 향해 닥쳐오고 있다.
즉, 안전자산 시대의 귀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