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지도사 최재현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

 

기업이라는 곳에 발을 딛게 되면 누구나 첫 관문인 출근과 신입으로써의 회사생활에 대한 로망이나 환상을 갖게 된다. 드라마에서 보던 판타지 같은 상사가 기다리고 있을지, 꽃미남 선배가 앉아 있을지 꽃미녀 동료가 있을지 아니면 슬픈 예감이 혹시나 역시나 들어맞는 ‘악마 상사’가 버티고 있을지 누구나 그 설렘 속에서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첫 날을 맞이하게 된다.

입사 확정이 떨어지고 신입사원 OT를 마무리하던 그 날, 부푼 가슴을 앉고 얼마나 기쁨에 환희를 가졌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내가 원하는 곳에 배치가 될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나도 이제는 안정적으로 성장가도를 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사팀의 전화를 받고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배치가 되어서는 황당함이 생기기도 전에 첫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전혀 모르는 선배와 전혀 모르는 분들 앞에서 물에 빠진 생쥐처럼 나는 당황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는 미생과 같은 드라마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저 주변의 조언을 얻어가며 회사 생활을 시작할 뿐이었는데 내가 들었던 주변의 이야기와 실제 현장은 너무나 다른 공기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약간 따뜻하고 정겨운 이불 냄새를 상상했건만 실제 현장은 텁텁한 향기가 가득한 땀의 현장이었다.

서류가 날아온다고? 사실 그런 것은 너무 판타지고 실제로 서류가 날아오진 않았다. 스테이플러 찍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한다고? 다행히 그런 것은 없었다. 하지만 몇 가지 드라마에서만 보던 것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그것은 바로 후임 가슴에 화살을 꽂고 간다는 사수에 대한 것이었다. 인수인계 대충 하고 떠나는 그 모습. 마치 비수를 꽂고 가는 듯한 그의 모습에서 네 놈이 사수인 건 사수자리처럼 화살 쏘라고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

윗 분들은 별 말이 없었다. 사수에게 신입 교육 잘 시키라며 전권을 사수에게 이양한 듯했다. 보통의 회사들이 다 그렇듯이 몇몇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교육은 사수가 나에게 진행하는 것이 내가 이 회사에 대해서, 이 업무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매너가 있었나? 두꺼운 인수인계서는 작성해두었다. 20장 정도.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인수인계서가 저리 두꺼운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막상 내가 그 자리에서 작성해보니 커버 1장, 자기소개 1장, 회사에 대한 소개로 3장을 채운 것을 제외하면 15장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수인계서였다.

그 인수인계서를 신줏단지 모시듯 귀하게 여기고 가슴에 품고 다녔으니 나도 어지간히 초보티를 내는 신입이었다. 그런 내게 사수는 애써 좋은 말을 해주려고 노력을 하기는 했다. 업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야 한 가득이었겠지만 사수는 나의 능력이나 역량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어느 때에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묵묵히 알려줄 뿐이었다.

아주 가끔, 직무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하긴 했는데 한 번에 정답을 맞히지 못하더라도 정답을 말하면 시큰둥하게 반응을 해주곤 했다.

그래 나도 신입 때 그 정도는 알았어

사수에 대한 동경심이나 존경심 때문에 나는 일말의 거리낌 없이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수가 역량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다. 물론 그 사수도 결국 그 자리에서 쫓겨난 것임을 뒤늦게 알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시큰둥한 반응도 내게는 무척 큰 것으로 다가왔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상사들의 커피 취향도 알게 되고, 부장님은 녹차 티백을 더블로 드시는 것도 알게 될 즈음에 사수와 인수인계할 날이 일주일 남짓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스퍼트를 올린답시고 그때부터 사수는 하나둘 본색을 드러내며 내 가슴에 화살을 하나둘 꽃아 가기 시작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했을 때 우리 팀에 있던 신입들이 사수가 없어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회사의 재정 상황 때문에 경력직 입사를 시킬 수 없어 신입을 채용한 것이었는데 그 신입들은 사수 없이 혼자 일해야 하는 점이 늘 어렵다고 말했다.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메신저 상에 존재하는 사수를 만들어주긴 했지만 바로 옆에서 얼굴을 보며 일을 도와주고 조언해주는, 끌어주는 사수가 없다는 사실은 신입들에게 큰 방어막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작은 실수가 생기면 그 화살이 그대로 신입들에게 날아들어왔다. 이제 겨우 한두 달 일한 친군데 관리자급이 얻어맞는 펀치를 여러 군데 맞기도 했다.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신입들은 그런 펀치를 맞고 알게 모르게 마음 한편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가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업무의 어려움, 회사에 대한 원망, 처우가 좋지 않음에 대한 눈빛 호소, 차가운 말투 정도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긴 하지만 그 마저도 시퍼렇게 멍든 마음을 대변해주지는 못했다.

그런 신입들이 결과적으로 사수가 되는 순간이 오는데, 바로 자신의 바로 뒷 후임을 받을 때 그 잠깐의 인수인계 시간이 사수가 되는 시간이다. 처음에 신입이 후임도 시퍼렇게 멍들어 보라고 달랑 메모지에 인수인계서를 작성해서 오길래 나는 지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다 디테일하고 자세하게 적어올 것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다이어리에 몇 장 정도로 다시 정리해온 신입에게 나는 ‘인수인계서’에 대한 인식을 다시 심어주어야 되겠다 생각했다.

‘김사원, 인수인계서란 인계하는 사람만 사인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인수하는 사람도 사인해야 정상적으로 업무가 이양됨을 말해주는 서류야. 그렇기 때문에 인계자의 관점에서 작성되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인수자의 관점에서 업무를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작성되어야 하지.

2가지 큰 전제를 이야기하고 신입에게 정성을 기울여 다시 작성해오라고 말했다. 지시나 명령이라기보다 사실 사수가 된 사람으로서 욕을 먹지 않기 위한 방편 임도 함께 말해주었다. 인수자가 별 탈 없이 잘 일하게 하는 것이 인계자로써의 책임이면서 본인이 욕을 먹지 않기 위한 방어수단이 된다고 말이다.

일주일의 시간을 남겨두고 내 사수는 설렁설렁 가르쳐 주던 업무를 급하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 때는 이렇게 저 때는 저렇게 해야 한다고 앞뒤가 없이 일을 가르치고 말이 빨라지고 서류를 못 찾고, 헤매기도 했다. 서류를 몇 가지 챙겨 이야기를 하다가도 막상 그 서류가 적절하게 작성된 문서가 아닌 경우도 많이 보았고 상사가 지시하는 내용도 정확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도 더러 보게 되었다.

본인이 관리하던 문서는 잘 정리되었다고 말했지만 정작 상황을 피하기 위한 용도로 작성된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되기도 했다. 업무 인수인계에 하나씩 구멍이 나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즈음에 별안간 부담감과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자신이 없다라기 보다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고민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인수인계의 허점은 더욱 많이 보였고, 마지막 날 사수는 묘한 미소와 함께 내게 폭탄을 넘겨주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그리고 모든 눈빛이 나를 쳐다볼 때 나는 마음속 폭탄 심지에 불이 붙었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와… 이거 폭탄 빨리 터지겠다’

상사가 명확하게 지시한 내용이더라도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상사는 사수가 인수인계를 분명히 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인수인계서에 그런 내용은 없었다. 분명 사수가 일을 했는데 내가 찾아볼 때 그 문서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비품은 찾아도 없었고, 서류는 어디 있으며 그 파일은 도대체 숨기 전용으로 만든 것인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일을 넘겨받은 지 3일 만에 폭탄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서류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TV나 영화에서만 봤는데 그게 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아야 할 거 아니야!’

인수인계에 대한 잘못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 되었다. 내가 제대로 인수하지 못하고 그냥 사인해버린 것이 결과적으로 모든 업무에 있어서 사수의 실수가 아닌 내 실수로 인정되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어느덧 내가 사수의 자리로 가게 될 타이밍이 왔을 때 나는 내 사수가 한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수인계서를 잘 작성해야 나와 같은 사람, 나와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을 테니까. 후임은 내가 보여준 모습 그대로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나를 향한 동경심과 존경심의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후임에게 나는 두터운 인수인계서를 주며 착실한 인수인계 계획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인수자 싸인 란에 절대 사인하지 말고, 확신이 들었을 때 사인을 하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아무리 인계를 잘 해도 인수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인계가 안된 것이니까. 최대한 네가 인수를 잘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엉망진창으로 널브러져 있던 문서를 정리했다. 찾아보기 쉽도록 정리하고 모든 문서의 위치를 작성해두었다. 기간별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서 그때마다 내가 일했던 동선을 그려가며 인수인계서에 표시해두었다. 비품 목록을 넘기고 각 상사마다 자주 찾는 비품까지 메모해두었다. (오우 센스쟁이)

일간 업무, 주간 업무, 월간 업무, 분기 업무, 반기 업무, 연간 업무를 구분해서 큰 표로 정리해서 인수인계서 마지막에 첨부를 해두기도 했다. 나는 후임이 크게 감격할 줄 알았는데 막상 그 후임은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르니 별로 감흥을 보이진 않았다. 언젠가 네가 그 자리에 서게 될 때 감흥을 받겠거니 생각하고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내 사수가 보여준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진 않았다.

후임과 교대 후에 꽤 오랜 시간 동안 후배를 만나진 못했다. 엇갈리게 되고 내가 이직하게 되면서 후임과는 연락이 끊어지게 되었는데 우연찮게 그 후배가 내 연락처를 알게 되어서는 몇 년 만에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선배님. 선배님 덕분에 이번에 진급하게 됐습니다.’

‘음 무슨 소리야?’

‘그때 인수인계 잘해주셔서 실수 없이 일 마무리 잘하게 되었고요 그 덕분에 일머리 좋다고 부장님 눈에 들어서 쭉쭉 진급했습니다.’

‘이야 축하한다. 인수 잘 받은 네 역량이지 내가 잘한 게 뭐 있겠어’

‘친절하게 잘 알려주신 덕분에 저도 제 후임들에게 선배님처럼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다시 뵙게 되면 식사 대접하고 싶습니다.’

사수가 사수자리의 사수라서 후임 가슴에 화살 꽂아대고 폭탄 돌리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내가 막상 그 자리가 되니 사수는 업무를 바로 윗자리에서 잘 알려주는 사람을 말해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후임들이 그 자리에서 상사의 업무지시와 명령에도 마음 다치지 말고 그 자리 잘 간수하라고 사수시키게 만드는 의미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큰 기업을 제외하면 작은 기업에서 인수인계를 하는 경우는 사실 극히 드물다. 사수가 후임에게 일을 가르쳐 주긴 하지만 자신의 노하우라고 생각하여 대충 알려주는 것이 대부분이고 혹 문서로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겨우 몇 장 적어주는 것이 전부다. 진행되는 업무, 진행해야 할 업무 정도?

하지만 인수인계를 정확하게 수행하고 나면 사수와 후임이 모두 빛을 보는 효과가 생긴다. 사수의 명확한 직무 인식과 업무처리를 볼 수 있게 되고 후임이 정확하게 인수하고 업무처리를 하게 되면 후임도 일머리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기업에서도 업무가 단절되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인력 교체에 따른 손실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혹 내가 지금 사수자리에 있다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화살을 꽂는 사수인지 아니면 후임이 그 자리를 잘 사수할 수 있게 돕는 사수인지 말이다. 그리고 기업에서는 한번 더 인수인계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업무가 잘 이양되고 있는지 손실은 없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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