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스타에디터 규리네님의 블로그에 게재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나는 분명 재미있게 게임하고 있는데, 옆의 다른 사람은 날 보며 묻는다.
“도대체 그게 뭐가 재밌어?”
나는 대답하곤 한다. “재밌는데? 이게 왜 재미없어?”
같은 것을 두고도 나는 재밌데 어떤 사람은 재미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차이는 왜 발생하며, 게임의 재미는 어디서 오는 걸까?
질문에 대답하는 것에 앞서 우리는 ‘재미’에 대해 먼저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것에서 ‘재미’를 느낄까?
1. 새로운 것, 변화
기본적으로 인간은 지루한 것을 싫어한다. 인간 자체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에 반응하고 대처하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존재다. 그런 인간에게서 모든 외부 정보를 없앤다면, 예를들어 시각ㆍ청각ㆍ촉각 기타 모든 감각이 그 어떤 것에도 반응할 일이 없어지게 될 경우, 인간은 금새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를 감각박탈(sensory deprivation)이라고 하는데 우주비행사, 레이더 감시원, 혹은 지반붕괴로 갱 내에 갇힌 광부등, 장시간에 걸쳐 극도로 단조로운 감각체험을 하게되는 이들에게서 이러한 증상이 나타난다. 즉, 인간에게는 언제나 감각적 자극과 변화를 구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는 것이다.
재미의 본질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변화를 바라는 욕구로부터 온다. 새로운 것, 변화. 이것이 재미의 본질 중 하나다. 학교 집, 직장 집, 기상-일-잠. 매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여행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것은 새로운 것을 접하고 변화를 겪는 것에 있다. 기타 다른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도 이러한 단조로운 일상에서 탈피하는 재미에 있다. 이렇게 얻은 재미는 삶에 활력소가 되어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여가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정신활동 또한 신체활동 못지 않게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기에 가만히 앉아서 영화를 보는 것 조차도 마음에 여유가 있지 않은 이상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캐주얼 게임, 클리커 게임들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데에 있다. 게임 방식이 간단해 쉽게 배울 수 있을 뿐더러 정신적 에너지를 크게 소모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헌데 새로운 것, 변화로 인한 재미를 이야기할 때에 우리는 쾌락적응(hedonic adaptation)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때문에 아무리 재미있는 것이라도 내성이 생겨 흥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마치 여행을 가도 매번 같은 곳으로만 가면 재미없듯이.
그래서 모든 게임 속에는 조금씩 변화의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일정 경험치를 얻으면 캐릭터의 외형이 변화되고, 새로운 사냥터를 가고, 지금까진 단순히 터치만 했다면 이번에는 드래그라는 요소를 집어넣는 등, 변화의 요소들은 질리게 하는 걸 방지하고 게임에 빠져들게끔 하는 요인이 된다.
2. 스릴
재미의 본질의 하나인 새로운 것(변화)에서 파생되는게 바로 스릴이다. 공포게임이나 대전게임 같은 게임의 재미가 바로 이 스릴에 있다. 유독 위험하고 거친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자극추구성향자(sensation seeking, 감각추구성향)들이 그러한데, 이들은 다양하고 신기하면서도 복잡한 감각과 경험을 추구하며, 이런 경험을 얻기 위해 신체적ㆍ사회적ㆍ법적ㆍ재정적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경향이 있다.
자극추구성향을 가진 사람은 위험을 과소평가하여 위험성이 높은 각종 모험에 쉽게 도전한다. 이처럼 강렬한 자극과 경험을 선호하면서도 싫증은 쉽게 내는 편이다. 그러나 자극추구성향을 가졌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다. 자극추구성향을 가진 사람은 소방관, 경찰관, 탐험가, 뇌외과의사, 격투가, 폭탄해체전문가 등 남들은 쉽게 못하는, 위험이 따르는 직업 및 작업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높은 감각 추구 현상은 외향성과 충동성, 반사회성과도 관련이 높다. 말했다시피 자극을 위해서라면 사회적ㆍ법적 위험 등을 기꺼이 감수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극추구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포게임이나 대전게임 같은 게임들은 억압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3. 성취감
그러나 재미의 본질은 새로운 것, 변화, 스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전과제 해결에서 얻는 성취감이 게임의 동기이자 재미도 된다.
어떠한 것에 도전하고 해결할 때 얻는 성취감은 자기효능감의 밑바탕이 된다.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은 삶의 여러 부분에 영향을 준다. 자기효능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어 무엇을 해도 목표를 낮게 잡고, 어떠한 일을 견디는 정도와 노력 지속여부도 낮다.
이러한 자기효능감은 통제감에도 영향을 준다. 자기효능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있고, 자신의 행동이 삶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기 효능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자신의 통제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통제감 여부에 따라 스트레스 수준도 달라지고, 통제감 상실은 분노조절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나위 없다. 때문에 자기효능감을 안겨주는 성취감은 게임하는 재미 중 그 의의가 크다.
4. 자발성
재미는 자발성에서도 온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할 때 재미를 느낀다. 아무리 재미있는 것이라도 억지로 하게 되면 흥미를 잃게 된다. 공부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공부안하니?!” 잔소리 들으면 하기 싫어지는 것처럼, 혹은 씻으라고 잔소리 들으면 더 씻기 싫어지는 것처럼, 같은 행위라도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 타인에 의해 결정되면, 해당 행위에의 의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만약 지금 즐기고 있는 게임을 학교에서 의무 교육화해 매일 꼭 게임을 하도록 하고 그 결과물을 가져오도록 한다면 어떨까? 혹은 어떤 불량아에게 강제로 게임 속 캐릭터를 매일 플레이하도록 시킨다면 그 게임이 지금처럼 재미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많은 교육용 게임들이 재미가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발성에 있다. 교육용 게임의 목적이 무언가를 배우는 데에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라는 것 자체가 자발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게임하는 재미가 없어지고 교육이란 목적도 달성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인간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에는 흥미를 잃게 된다. 따라서 만약 교육용 게임으로서 성공을 거두고 싶다면 교육이란 목적은 주목적이 아닌 부수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배우면 좋지만 딱히 안배워도 상관없는’ 행위의 선택권이 열려있을 때 비로소 게임은 재미있어진다.
5. 사회적 교류
우리는 또한 타인과 경쟁할 때에 재미를 느낀다. 경쟁에서 이겨 남보다 돋보이고 싶고, 위에 있고 싶어하며, 이럴 때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경쟁은 인간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본적인 심리 요소이다.
그러나 단순히 남들보다 우위에 있고 싶다는 이유만이 재미의 본질은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신체적 능력이 타 동물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른 이들과 교류하고 집단생활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그렇기에 타인과의 공감, 공유, 친밀감, 애정을 형성하면 심리적 안정감을 갖는다. 이처럼 인간에겐 항상 다른 이와 교류하려는 심리가 내포되어 있어, 같은 것이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에 더욱 재미를 느낀다.
6. 몰입감
실제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실재감, 생생함, 역동성은 재미를 더하는데, 같은 유머라도 몸짓을 써가며 목소리로 흉내도 낼 때에 더 즐거운 것은 이 몰입감 때문이다.
몰입감에서 오는 재미는 우리 머리 속에 있는 거울뉴런과 관련이 있다. 무언가를 보거나 듣기만 해도 마치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곳이다. 이 거울뉴런 덕분에 간접학습이 가능한데, 이는 고등 생물에게만 있는 기능으로 인간이 인간만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질 수 있는 건 바로 이 거울뉴런 덕분이다.
어쨌거나 이러한 거울뉴런 덕분에 우리는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마치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과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몰입감이 뛰어날 수록 재미있는 것은 내가 직접 겪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게임은 다른 매체에 비해 대상에 대한 몰입감이 뛰어나다는 큰 장점이 있다.
7. 대리만족
살면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하며 살 수 없다. 게임은 그런 우리에게 탈출구가 되어주는 존재다. 현실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루고 연기하며, 게임 속에서 만큼은 타인에게 존중받는 내가 되기도 한다.
이 같은 대리만족을 정확히는 대상행동(substitute behavior)이라고 한다. 한 목표가 저지됐을 때, 이에 대신하는 다른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처음에 가졌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게임에서는 이룰 수 없는, 이루지 못한 꿈과 억압된 욕망을 분출할 수 있기에 재미를 느낀다.
8. 창작
아울러 재미는 창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케아 효과(IKEA effect)라고 있다. 완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조립형 제품을 구매해 직접 조립함으로써 더 높은 만족감을 얻게 되는 효과를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공들여 이룬 것에 높은 애착을 가진다. 손수 완성한 가구가 완제품보다 더 많은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이케아 효과는 노력 정당화 효과(Effort Justification Effect)에서 온다. 자신이 큰 고생을 했거나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은 일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심리적 현상인데, 어떠한 집단에 들어갈 때 치루는 어려운 신고식들은(동아리 입학, 해병대등) 노력정당화 효과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어떤 고생을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완제품보다는 어떠한 것을 직접 만들 때에 오는 재미는 레고 같은 블럭 장난감의 재미, 게임에서는 마인크래프트, RPG만들기 같은 게임의 재미를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이렇게 보자면 재미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만랩을 찍는 것에 게임의 재미가 오는 게 아니라, 도달하는데 겪는 수 많은 일들과 노력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마치 정상에 깃발을 꽂는 것보다 그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 흘린 땀, 오르면서 보게 되는 풍경, 사람과의 만남ㆍ헤어짐 등이 등산가들이 말하는 등산의 재미인 것처럼 말이다. 성숙한 사람들은 결과가 아닌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며, 과정을 즐기는 것이 진정으로 재미있는 것임을 아는 사람들이다.
여기까지 게임의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재미의 본질을 찾아가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러한 재미의 모든 것은 결국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낄 때 오는 것 아닐까? 변화, 성취감, 심지어 좌절과 회의감 조차도, 나의 존재를 증명하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재미를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시 삶이 단조롭고 재미없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면, 그렇다고 다른 여가생활을 즐기기엔 너무 지쳐 즐길 힘도 없고 시간도 마땅치 않다면 게임 속 세상에 한 발 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게임은 더이상 무의미한 소모전이 아니다.
게임은 지친 삶에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활력소이며, 언제 어디서든 타인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놀이문화이다. 요즘 세상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있듯 게임도 다양한 색이 있어 취향따라 고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혹 서로 간에 대화단절이 걱정이라면 반대로 공통의 관심사라는 장점이 될 수 있으니, 함께 게임 속 세상에 발을 딛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