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크런치(Tech Crunch)’가 10월 27일 저녁 청담동에 위치한 ‘클럽 Answer’에서 밋업(meet up)+피치 오프(pitch-off) 행사를 열었습니다. 1년 6개월 만에 서울을 다시 찾은 테크크런치 행사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7시로 예정된 스타트업 피칭에 앞서 ‘Globalization’, ‘Include Diversity’를 주제로 패널 토크를 진행했습니다. 500 Startups의 한국지사장 ‘팀 채(Tim Chae)’와 ‘망고 플레이트 오준환(Joon oh)’ 대표는 스타트업계의 글로벌 진출 이슈에 대해 진솔한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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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망고플레이트의 경우 국제화가 반드시 물리적 이동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한국 내에서도 국제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자사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겨냥해 영문 페이지를 출시한 점을 예시로 들었는데요. 실제로 과거 싸이월드 등 일부 내수용 서비스가 실패를 맛봤음을 알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 스타트업들은 이보다 영리합니다. 이제는 출시 전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는 것은 물론, 외국인들이 어떤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상품화하는데에도 능숙해졌습니다.

한편, 국제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에 대해 두 사람은 한국 정부의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이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국인의 소극적 성향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특히 팀 채 지사장은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기피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를 지적하며, 외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떨쳐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 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장에 적극적으로 발을 담가야만 성공적으로 외국에 진출할 수 있다는 발언을 마지막으로 토크는 마무리됐습니다.

이어서 Fiscal Note의 ‘레베카 강(Rebekah Kang)’과 Finda의 ‘이혜민(Hyemin Lee)’ 대표가 무대에 올라 여성으로서 스타트업계에서 일하며 겪는 고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두 사람 모두 타인의 시선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는데요. 다행히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지는 않았으나, ‘이 나이에는 취직을 해야지/연애를 해야지/결혼을 해야지’라는 등의 우려 섞인 코멘트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아직도 가부장적 분위기가 남아있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실제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하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레베카는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 주위의 걱정과 반대에 부딪히는 건 남자들도 마찬가지지만, 결국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스타트업을 하는 것’이라며, ‘여자들도 마찬가지’라고 답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조금은 원론적인 결론으로 귀결된 점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습니다.

약 10분간의 휴식시간 후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피칭의 막이 올랐습니다. 진행 방식은 각 스타트업의 발표자가 1분 동안 피칭을 한 후 4명의 심사위원과 약 3분간 질의 응답을 주고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첫 주자는 스마트 줄자 베이글을 서비스하는 ‘베이글 랩스‘였습니다. 약간 긴장한 모습의 발표자가 랩을 하듯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냈는데도 60초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습니다. 사회자가 시간 종료를 알리자 객석 곳곳에서는 안타까움과 놀라움이 섞인 한숨이 터져나왔습니다.

두 번째 팀은 헤어스타일을 소개하고 헤어샵을 예약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컷앤컬‘이었습니다. 무대에 오른 발표자는 여자들이 아침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머리 모양을 할지 고민한다며, 수수한 후드의 지퍼를 내려 화려한 금색 탑을 보여주고, 하나로 묶은 머리를 푸는 등의 퍼포먼스로 객석의 이목을 끌었는데요. 서비스의 차별화 전략을 설명하면서 카카오 헤어샵은 이베이에, 자신들의 서비스는 아마존에 비유했지만, 큰 공감을 이끌어내진 못한 것 같습니다.

손금을 사진으로 찍어보내면 이를 풀이해주는 어플인 ‘Daebaki’는 비교적 참신하면서도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서비스하기에는 약간 아이러니한 소재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실제 이 어플로 펀딩을 받는다고 나왔느냐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비즈니스 미팅 스케줄링을 도와주는 ‘코노랩스‘는 아직 유료 고객은 많지 않으나 대내외적 어려움을 노력과 열정으로 극복하겠다는 발표자의 의지가 돋보였습니다.

어머니가 손수 만들었다는 커다란 인형탈을 들고 나온 ‘링고랜드‘의 발표자는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 성공하면 전세계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발언으로 큰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다만 영어회화 어플이 이미 너무 많은 점과 고객의 니즈에 적합한 타겟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는 지적에는 효과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거북목 교정을 도와주는 웨어러블 기기 ‘알렉스’를 제작하는 ‘나무‘의 발표자는 제품을 들고 나와 심사위원들이 착용해보기도 했습니다. 해당 제품을 목 뒤에 착용한 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세를 분석하고 잘못된 자세를 취했을 경우 진동으로 알림이 오게 하는 시스템인데요. 피칭을 들으며 구매 욕구가 샘솟았으나, 소매 가격이 미화로 99달러, 한화 9만 8천원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진정됐습니다.

기업 측이 공개한 직무 소개를 분석해 지원자가 더 나은 이력서를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레지’는 한국의 대학생 및 취업 준비생들을 고객으로 삼고 싶다고 밝혔는데요. 이에 대해 아직 서비스가 영어로만 제공되는 점, 머신 러닝 기반 AI로 키워드를 분석하기에는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 등이 지적됐습니다.

소상공업자 및 프리랜서를 고객과 연결해주는 서비스 ‘숨고‘는 미술, 음악, 외국어 등의 분야에서 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를 높은 매칭율로 연결해주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가장 인기가 좋은 ‘고수’는 의외로 스킨스쿠버 강사와 가야금 강사라고 하는데요. 비슷한 서비스들이 시장에 이미 많이 나와있는 상황에서 어떤 차별화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을 보유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 피칭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스타트업은 바로 킥스타터에서 천 9백만 달러를 모금하며 화제를 모았던 ‘정글‘이었습니다. 선그라스 모양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착용하면 이어폰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죠. 내구성, 가격, 마진율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마지막에 한 심사위원이 킥스타터에서 모금한 금액의 경우 한국 정부에서 몇 프로의 세금을 떼 가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발표자는 잘 모르겠다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그 문제에 대해서는 연말에 걱정하겠다며 받아 넘겨 객석이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결국 피치 오프 1등의 영예는 정글에게 돌아가며 행사가 마무리 됐습니다.

스타트업 시장도 포화 상태에 이른 요즘, 틈새의 틈새까지 파고드는 서비스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희망과 당찬 포부 가득한 스타트업 피칭을 보면서도 5년 후 과연 이들 중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뜨거운 현장의 열기 속에서 오히려 차갑고 냉정한 스타트업계의 일면을 확인하고 온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