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반도체 산업계에 경종을 울리는 인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인텔 IBM2.0의 아버지 팻 갤싱어의 사임 소식이었습니다. 원조 인텔맨에 엔지니어 출신 기술 통으로 불리는 패트릭 갤싱어의 사임은 반도체 산업계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하여 주제를 잡게 되었습니다. 패트릭 갤싱어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피고 그의 사임이 반도체 산업계에 울리는 경종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팻 갤싱어 CEO가 취임 4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인텔은 현지시간 12월 2일 갤싱어 CEO가 지난 12월 1일부로 사임했다고 발표하며 차기 CEO 선임 전까지 데이비드 진스너 CFO와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 사장이 공동 임시 CEO를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갤싱어 전 CEO는 인텔 복귀 후 ‘반도체 왕국의 재건’을 목표로 파운드리 사업 재 진출과 대규모 투자 계획을 실행하며 파운드리 부문에서 TSMC와 삼성전자를 따라잡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IDM2.0을 부르짖으며 핵심 가치인 코어를 제외한 부수적인 부분들을 외부 파운드리를 사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출 함을 통하여 공정 혁신을 발 빠르게 이행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는 광폭 로비 행보를 통해 미국 정부의 칩스법과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 등을 활용한 정부 보조금 11조 원을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줄어드는 PC 수요와 기술혁신의 지원, 그리고 신규 CPU의 성능 이슈들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사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팻 갤싱어가 IDM 2.0을 발표할 당시의 인텔의 공정 로드맵은 과연 실현이 가능할 것인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이었습니다. 2025년까지 1.8나노에 진출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한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하지만 그 결과는 미진하다 못해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팻 갤싱어는 지난 8월 2분기 컨퍼런스 콜에서 인텔의 위기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파운드리 공정은 드디어 10나노의 벽을 넘어서 약 4개 노드에 달하는 최첨단 노드의 개발과 상용화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10나노 슈퍼핀, 인텔 7, 4, 3 공정이 개발 완료되었음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과연 인텔이 신규 공정에서의 수주에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신규 공정을 개발 완료했다고 하더라도 양산 수율을 잡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팻 갤싱어의 인텔이 기술 개발 속도를 빠르게 가져가면서 TSMC와 삼성과의 기술격차를 좁히고자 하는 노력과 시도는 평가를 받아야겠지만 공정 기술에 너무 급하게 드라이브를 걸다 보니 양산 수율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주 실적도 TSMC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면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니 그간의 투자가 무위로 돌아가면서 손실 폭이 커지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유지수선비, 감가상각, 리인 구축에 들어간 투자금 등이 고스란이 인텔 파운드리의 적자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는 삼성 파운드리의 상황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PC 수요의 감소와 시장 회복속도의 둔화는 PC용 CPU를 주력으로 하는 인텔의 사업 구조에 직격탄으로 돌아왔습니다. 매출 부진이 계속되면서 인텔의 주가는 급락했습니다. PC용 CPU에서의 매출 감소를 상쇄해 주던 서버 데이터센터 용 CPU 사업도 그 점융율을 경쟁자인 AMD에게 지속적으로 내주면서 독점 구도가 깨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장 상황은 인텔의 강력한 구조조정 압력으로 돌아왔습니다. 구조조정과 15,000명 수준의 대규모 정리해고 발표를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영난 속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지원금 규모도 크게 줄어드는 정치적 악재까지 겹쳤습니다. 또한 갤싱어는 또 하나의 굴욕을 대면해야 했는데 이는 인텔의 다우존스 산업지수 종목 탈락이었습니다.
반도체 제국이라 불리웠던 인텔이 위기에 휩싸이자 CEO였던 갤싱어도 위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이는 곧 그의 사임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갤싱어 전CEO의 사임 소식이 전해지면서 뉴욕 증시에서 인텔 주가는 5%이상 상승하고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크르자니크의 암흑에너지로부터 인텔을 구원할 HOPE로 등판했던 갤싱어가 이젠 인텔 몰락의 주범으로 몰리는 아이러니의 연출이 참 슬픈것 같습니다.
불명예 사임을 하게 된 팻 갤싱어! 그는 누구였을까요?
그는 미국의 기술경영자이자 엔지니어로 인텔의 CEO로 재직하다가 사임하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기술적 배경과 리더십으로 IT 업계에서 주목받아 온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18세에 인텔에 엔지니어로 입사하면서 반도체 업계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는 입사 후 기술적 역량을 인정받아 빠르게 승진하였습니다. 그는 특히 일하면서 대학원 학위까지 따내며 결국 최고기술책임자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그는 인텔에서만 30년을 근무한 인텔의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이후 2012년 인텔을 떠나 가상화 소프트웨어 업체인 VMWare 의 CEO의 자리에 올라 VMWare의 연간 매출이 세 배 가량 성장하게 만든 주역입니다. 이 시기 VMWare는 가상화 기술과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급성장을 이루면서 글로벌 IT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요. 갤싱어는 기술중심 경영자로서의 명성을 쌓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기술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경영 능력까지 인정받은 팔방미인형 경영자였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닙니다. 밑바닥에서부터 성장하여 한 기업의 오너 위치까지 올라서 흑수저 신화를 일궈낸 그의 능력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난 2021년 12년 만에 인텔 CEO로 복귀했습니다. 그는 반도체 왕국 재건을 목표로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출하고,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인텔의 혁신을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 주된 내용이 앞서 소개드린 IDM 2.0 플랜이었습니다. 특히 발빠른 공정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통해 삼성전자와 TSMC와의 경쟁에서 다시 우위에 서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가 CEO에 취임한 이후 10나노 슈퍼핀 공정을 통해 생산한 12세대 CPU가 호평을 받으면서 인텔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텔에서는 최초로 빅리틀 구조를 채용하면서 고성능 고전력의 대명사였던 X86 진영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13세대의 경우 전세대의 코어 구성을 그대로 가져가고 캐시 메모리의 용량만 늘려 출시하는 등 개발 능력에 대한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2024년 불거진 13세대와 14 세대 불량 이슈는 인텔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지렛대 역할을 톡톡히 하며 팻 겔싱어의 퇴임을 부추기게 되었습니다.
14세대도 13세대 코어 구성을 그대로 가져가기 때문에 13세대에서 일어났던 오버클럭시 다운 이슈는 계속하여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14세대는 13세대와 성능면에서도 별 차이가 없어 이게 정말 최신 세대 인텔 CPU가 맞느냐는 평가까지 듣는 굴욕을 당하는 등 인텔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오버클럭시 다운되는 불량 이슈들에 대해서 인텔이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산발적으로 동일 이슈가 계속되고, 성능 저하 이슈도 개선되지 않아 정말 개선된 것이 맞느냐는 비아냥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코어 울트라를 통해 그나마 자존심을 회복하는가 싶었던 인텔은 후속으로 내놓은 애로우 레이크에서 또 다시 성능 이슈와 맞닥뜨려야 했는데요. 이는 저전력에 집중하다 보니 성능면에서 경쟁사 AMD와 비교했을 때나 인텔 전 세대 CPU와 비교해도 낮은 성능 수준을 보여주는 처참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인공지능과 GPU 성능, 저전력에 집중했다고 밝혔지만 떨어지는 성능으로 인해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인텔 CPU 유저들의 기대감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팻 갤싱어의 시대를 문닫게 하는 트리거가 되었습니다.
경쟁사 AMD 대비했을 때 신제품에서 항상 우위에 서 있었던 인텔이었지만 이번만큼은 AMD에게 성능 벤치마크에서 밀림을 통해 인텔의 시대가 실질적으로 저물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타사 대비 뒤쳐진 기술력을 만회하고, 다시 옛 영광의 시대를 되찾기 위해 부푼 꿈과 부담감을 안고 인텔로 복귀했던 갤싱어에게 이젠 누가 봐도 뒤떨어진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인텔의 설계능력과 공정능력의 한계는 극복하기엔 너무나 큰 짐이었습니다. 경쟁력을 상실한 거함은 아무리 레전드가 복귀해도 답이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었습니다.
팻 갤싱어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인텔은 다시 임시 경영 체제로 돌입했습니다. 팻 갤싱어의 화려하고, 비장했던 복귀는 처참한 실패의 상흔만을 남긴채 마무리되었습니다. 격차를 줄이기 위한 갤싱어의 과감한 투자와 무모하리만치 빡빡했던 공정 개발 일정들을 그나마 기한 내에 마무리 하기 위해 애썼던 업적은 분명 평가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쓰러지기 시작한 거함에 난 구멍을 메우고, 배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첨단 산업에서 1위 기업이라도 현실 안주, 기술 개발 등한시, 기술 인력 푸대접, 재무성과에 치중한 기업 경영으로 망가져버린, 그래서 속이 곪아버려 뒤쳐지기 시작한 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란 점을 인텔이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1등 기업이지만 속이 썩은 기업이 있죠. 바로 삼성입니다. 삼성도 기술통들이 수장의 자리를 내주고, 재무 통들이 자리를 꿰차고 앉으면서 점차 재무성과에 집착하는 경영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기술 개발을 등한시 했고, 미래 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 보다는 재무 안정성에 치중한 안일한 경영을 했습니다. 기술 진보 보다는 점유율 확보에 목을 매느냐 브랜드 이미지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성능과 혁신보다는 원가 절감에 집착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입니다.
그나마 인텔은 PC용, 서버, 데이터센터용 CPU에서 넘사벽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서버용 CPU의 경우는 90%를 넘는 사실상의 독점 시장을 형성했습니다. 그런 압도적인 반도체 제국도 쇠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의 최강자라고 하지만 압도적인 포지션이 아닙니다. D램은 40% 대, 낸드는 30% 대의 점유율로 1등을 지키고 있습니다. 시장의 압도적 리더가 아니라 점유율을 나눠갖는 경쟁적 리더라는 점이 인텔과 다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경쟁 구도 속에서 1위를 지키기 위해선 부단한 혁신은 필수로 가져가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삼성 반도체에서 어느샌가 세계 최초 타이틀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혁신의 DNA가 망가졌다는 것입니다. 팻 갤싱어의 복귀로도 인텔은 몰락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제 삼성도 전영현 체제로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1년 이내에 눈에 띄는 개선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삼성도 인텔과 같이 몰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합니다. 과연 삼성은 팻 갤싱어의 퇴임이 보여준 기울어진 거함의 저주를 풀어낼 수 있을까요?
강성모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