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 러닝 그리고 이색 대회
작년부터 꾸준히 TV나 유튜브 등에서 연예인, 인플루언서의 러닝 관련 콘텐츠가 쏟아지다 보니 요즘엔 온 채널에 ‘러닝’ 관련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실제 마라톤 대회와 같이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에서부터 기록, 순위에 상관없이 뛰는 것 자체를 즐기는 일상 속의 러너들도 많아졌죠. 요즘에는 이러한 재미로 러닝을 즐기는 사람들을 펀 러닝(Fun running) 족이라는 이름을 붙이더라고요.
이렇게 러닝 관련된 키워드가 부상하면서 최근에는 일반적인 러닝 관련 대회에서부터 펀 러닝족들의 참여까지 독려하는 이색 러닝 이벤트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는 국내에서 펼쳐지는 기업들의 다양한 이색 러닝 이벤트들을 알아보고, 이러한 스포츠 활동이 주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우선 기업들이 진행하는 이색 러닝 대회를 알아볼까요?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이색 러닝 행사로 디즈니코리아가 지난 10월 9일에 진행한 ‘2024 마블런 서울’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 행사는 5km,10km 구간을 달리는 이벤트인데 남녀노소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참여 제한을 풀었고요, 베놈 리더스 그룹과 페이스메이커를 함께 운영한 것도 신선했습니다. 베놈 리더스 그룹은 10월에 극장한 디즈니의 영화 ‘베놈 라스트댄스’ 테마에 맞추어서 10km 선두에서 출발하는 그룹들을 의미하고요.
페이스메이커는 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기록을 경신하고 완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5분 단위로 페이스 메이커가 투입되는 방식으로 운영이 되었죠. 그리고 디즈니 답게 행사 현장에는 대형 마블 캐릭터 피규어에서부터 레이스 종료 후 러닝 기록을 인증하는 마블 레코드 월, 각종 굿즈 판매 장소가 구비되었고요. 모든 참여자들은 마블 러닝 티셔츠, 양말, 선스틱 등을 받았습니다.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의 경우에도 전국 러너를 위해 ‘2024 당근 레이스’를 개최했죠. 이 대회는 일반적인 대회와 비슷하게 단거리부터 일반적인 거리까지 총 4개 구간인 2km, 5km, 7km, 10km로 나누어 구간별 레이스가 진행되었고요. 특이하게 반려견과 함께 거리에 상관없이 뛸 수 있게 하는 ‘멍멍런’ 이벤트도 진행했습니다.
배달의 민족의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2024 장보기 오픈런’ 이라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요. 이 행사는 달리기와 장보기를 결합한 형태의 러닝 행사였습니다. 참가자들이 러닝 코스 내에 다양한 제품이 진열된 팝업 공간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원하는 물건을 담은 뒤 5km 완주를 하게 되면, 장바구니 제품을 모두 갖게 되는 행사입니다. 팝업 공간 내에 준비된 제품은 음식, 생활용품, 음료를 비롯한 20여 개 브랜드의 6만여 개 상품이 진열돼 있었습니다.
이 행사는 출발지의 득템 존에서부터 중간에 뛰다가 장바구니를 도중에 내려놓을 수 있는 무소유 카트존, 타투 스티커 포토부스 체험관 등을 마련해서 대회를 일반인들이 즐길 수 있게 진행되었죠. 그 외에 이색 러닝 대회로 지난 2013년부터 진행되었던 좀비런 행사도 있습니다. 2022년에는 좀비런 서울이라 하여 코엑스 스타필드 내에서 곳곳에 숨어있는 좀비들을 피해 코스를 따라 완주를 하는 대회가 펼쳐지기도 했었는데요. 이 코스를 좀비에게 잡히지 않고 완주하게 되면 생존자들의 애프터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이색 행사였습니다.
지역, 기관이 주최하는 다양한 러닝 대회
기업이 진행한 행사 외에도 지역이나 기관에서 진행하는 러닝 대회도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강릉시와 강릉관광재단에서는 ‘2024 강릉경포 아리바우길 트레일 러닝’ 행사를 펼쳤는데요. 이 길은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지역으로 정선, 평창, 강릉의 자연 경관을 즐기면서 러닝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되었죠.
특히 아리바우길 9코스, 경포해변, 경포호 산책길, 경포 생태저류지 등을 거치는 10km 코스가 경관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올해엔 기존의 아침에 진행했던 러닝 대회와 달리 저녁노을을 즐기면서 러닝을 즐길 수 있도록 오후 5시에 행사가 진행되었다고 하네요.
충북 지역은 보은군, 괴산군에서 각각 다양한 러닝 대회가 있었는데요. 일단 충북 보은군의 경우 ‘2024 말티재 힐링 알몸 마라톤 대회’가 펼쳐졌습니다. 이 행사는 매년 진행이 된다고 하는데요. 500여 명의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해발 430m 말티재의 꼬부랑길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코스로 이루어져 있고 5km, 10km의 2개 코스를 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회에서 ‘알몸’이라 하는 이유가 대회 규정상 남자의 경우 상의를 탈의해야 하고 여자는 반팔 티셔츠나 탱크톱을 입어야 대회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충북 괴산군에서는 ‘고추’로 유명한 지역이라 그런지 ‘컬러런’이 대회가 있었는데요. 옥수수 분말로 온몸에 색을 입히고 달리는 행사였는데 ‘빨간 맛 컬러런’ 이라는 대회로 행사가 펼쳐졌습니다. 이 행사는 ‘2024 괴산 빨간 맛 페스티벌’ 일정 내에 들어있는 에피소드 행사인데요. 맵 부심 푸드파이터 대회, 빨간 맛 치어리더 대회 등 ‘매운맛’과 연결되어 여러 행사가 세트로 진행이 되었네요.
그 외 서울 금천구에는 참가비 1만 원만 내면 5km 10km 코스를 달리고 기념품으로 수육, 막걸리를 즐길 수 있는 러닝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코스를 완주하지 못해도 수육 등 각종 먹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제법 인기가 많은 행사라고 합니다. 울산 동구에서는 ‘사운드 워킹’이라고 해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관광지를 탐방하는 행사가 진행되었고, 전남 완도에서는 슬로걷기 축제라고 해서 슬로길 코스를 걷고 스탬프를 찍는 행사가 펼쳐졌죠.
홍콩의 이색 러닝 대회도 홍보 마케팅 활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지 국내에 기사도 제법 나왔는데요. 홍콩 관광청에서 가을-겨울에 홍콩 아웃도어 이벤트로 트레일 러닝대회를 열었습니다. 홍콩의 최대 섬인 란티우섬에서 개최되는 이 행사는 험준한 지형,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4개의 난이도 코스와 더불어 120km 울트라 챌린지 마라톤 코스까지 준비돼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도심 내에서 러닝을 즐길 수 있도록 ‘2024 홍콩 스트리타톤’ 이라는 행사가 12월 8일에 개최되는데요. 홍콩과 구룡을 가로지르는 하프 마라톤으로 도심 속 러닝 이벤트라 뛰는 도중에 홍콩의 전통 별미인 푼초이를 먹을 수도 있다고 하네요.
좌우간, 이렇게 기업별, 지역, 국가별 다양한 이색 러닝 대회를 펼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러닝’이라는 키워드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러닝 키워드로 인해 패션 스포츠 업계도 함께 매출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죠.
패션업계와 러닝 제품 판매 특수
무신사에서는 올 상반기 러닝화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53%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지그재그에서는 러닝 관련 제품의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1,000% 가까운 성장이 일어났다고 했죠. 특히 러닝, 무릎 보호대, 스포츠 선글라스와 같은 검색량이 꽤 증가하면서 관련 거래액 증가로 연결되었다고 하고요.
프로스펙스는 여의나루역에 위치한 러너스테이션에서 하이퍼 러시 체험존 운영에서부터 러닝 클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러닝족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 운영과 10월 춘천 마라톤 대회에도 공식 후원사로 뛰어들었죠.
뉴발란스는 지난 9월 여의도 공원 10km를 뛰는 러닝 행사인 ‘2024 런 유어 웨이’ 라는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10km 러닝 외에 2km 미니 레이스, 우먼스 프로그램, 러닝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일반적인 러너들 외에도 펀 러닝족들을 위한 참여 유도도 이끌어냈습니다.
신세계 백화점에서는 러닝화를 포함해 스포츠 슈즈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5% 이상 증가했고요. 하남 스타필드의 스포츠 매장을 ‘러닝족 맞춤 진열’로 변경을 했다고 합니다. 나이키의 경우에도 ‘나이키 라이즈 ‘매장을 리오픈 하면서 러닝, 트레이닝 관련 상품 진열을 늘리고 여성 러너 증가 흐름에 맞춰 전체 상품의 57%를 우먼스 품목으로 구성해 진열하는 전략을 짰습니다.
마케터의 시선
이와 관련하여 마케터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트렌드의 수명’에 대한 화두를 꺼낼 수 있겠습니다. 러닝이라는 키워드가 뜨자, 러닝 관련된 패션, 산업이 함께 뜨고, 수많은 기업, 기관, 단체들이 러닝 관련 이벤트, 행사를 펼치면서 부스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국 갤럽이 1년 동안 조깅, 달리기를 경험한 비율을 조사한 데이터를 발표했는데요. 2021년에는 23%, 2022년 27%, 2023년 32%로 꾸준히 증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요.
인크루트에서는 1002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운동하십니까’ 관련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가장 인기 있는 운동 장르는 헬스(30.9%), 걷기(21.6%)였고 3위가 러닝(12%)이 차지했습니다. 이하 등수에는 필라테스, 요가, 홈트레이닝, 수영 등이 있었고요. 이처럼 ‘러닝’ 키워드로 인해 해당 의류인 러닝 용품, 러닝화 등을 활용한 패션 트렌드인 ‘러닝 코어’와 ‘오런완’이라는 키워드가 함께 부상했죠.
러닝코어란 운동을 하면서도 스타일을 잃지 않는 패션트렌드를 의미하고 일종의 발레코어와 같이 정말 트렌디한 단어 결합이라 볼 수 있죠. 오런완은 ‘오늘 러닝 완료’ 라는 단어인데요. 최근 러닝이 인기를 끌면서 오운완(오늘운동완료) 대신 오런완을 쓰는게 인기라고 하네요.
그러나 러닝이 인기를 끌다 보니 여러 잡음도 있고, 러닝에 계급화라는 단어도 생겼습니다.
러닝이 인기를 끌면서 러닝 크루들이 함께 모여 달리기를 하다 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시민들의 불편함이 지속적으로 지자체에 민원 제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 서초구의 반포 종합운동장 인근에서는 5인 이상 단체 달리기를 제한하는 이용 규칙을 만들어 10월 1일부터 시행했고요, 트랙 내의 인원 간 거리를 2m 이상씩 유지하고 5인 이하 그룹에게만 예외적으로 허용한다고 했습니다. 서울 송파 석촌호수에도 3명 이상 달리기를 제한한다는 현수막이 설치되었죠.
좋은 마음으로 모였던 사람들이 함께 달리는 것도 좋지만, 같은 공간을 쓰는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라 여겨지는 순간 모두가 행복을 경험하기 어렵겠죠. 그러나 이를 두고 5인 이하, 3인이하 라고 달리기를 제한하는 것을 규칙으로 박아놓은 지자체의 결정들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분분합니다. 이렇게 러닝 관련하여 최근에는 인기를 끌다 보니 거기에 비례하는 여러 분쟁, 논란도 많은 것 같네요.
아울러 러닝화 계급이라도 온라인 커뮤니티에 등장했는데요. 어느 인플루언서가 여러 정보를 종합해서 러닝화를 ‘월드 클래스’ ‘국가대표’ ‘지역대표’ ‘동네대표’ ‘마실용’ ‘입문용’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물론 근거는 세계 6대 마라톤 주자들이 착용한 러닝화의 주요 통계, 마라톤 대회 입상 주자들이 착용한 러닝화 통계 등을 통해 인기 있는 러닝화를 계급으로 나누었다는 건데요.
이를테면 월드 클래스에 해당하는 러닝화는 아디아스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에보1, 나이키 알파플라이3, 나이키 베이퍼플라이3과 같은 제품이 속해있고, 국가대표 러닝화는 아디다스 아이제로 프로3, 아식스 메타 스피드 스카이 파리, 써코니 엔돌핀 프로4 등이 속해 있다는 겁니다.
운동화를 계급으로 나누고, 러닝을 하는 데 있어서도 인스타그램에 인증샷 문화가 계속되니 요즘에는 추리닝 입고 러닝 하는데 왠지 위축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만큼 장비빨에 대한 소비 심리가 충만한 상태의 반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우려는, 앞서 언급한 ‘트렌드의 수명’입니다. 한국에서는 지난 5년간 스포츠 키워드가 정말 1년에 바뀌고 있습니다. 코로나 기간부터 등산, 골프, 테니스, 클라이밍이 엄청나게 각광받았다가 일순간 위축이 되었고요, 그 반짝 인기를 누렸던 기간이 대략 1년 정도였습니다.
골프장을 운영하는 어느 대표가 유튜브에 나와 했던 이야기를 들어보니, 코로나 기간 중에 전국 골프장 방문객은 연간 (중복 포함) 5천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직전에는 4천만 명 정도가 방문을 했고요. 그러나 MZ 세대 사이에서 골프 키워드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최근에는 연간 골프장 방문객이 4700만 명으로 줄었고, 기존 수준이었던 4천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합니다.
다른 스포츠들도 유사할 것이라 봅니다. 등산도 핫 키워드여서 관련 용품 매출도 치솟았다가 현재는 평균으로 회귀했고요. 테니스, 클라이밍도 그러하죠. 그러다 보니 마케팅 전략을 짜고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매출 피크를 찍는 시기에 생산 라인을 늘렸다가 갑자기 시장이 위축될 경우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아야 하고요. 트렌드를 조금 늦게 캐치해서 마케팅 전략을 짤 경우 ‘한물 간 아이템’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트렌드 키워드가 빨리 바뀌고 소비자의 소비 패턴이 정형화되지 않은 리퀴드 소비 시기에는 전략을 짜고 수행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장이 점점 대형화, 대량생산에서 개인화, 맞춤화 소량생산으로 주목을 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원가 절감을 하면서 트렌드라는 시류에 편승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해당 콘텐츠는 이은영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