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경기를 관람하러 온 사람 중에는 남성이 더 많을까, 여성이 더 많을까?
- 육아휴직을 신청한 사람 중에는 30세 미만이 더 많을까, 40세 이상이 더 많을까?
- 갈치조림·장칼국수·쑥갓 부침개 등 능숙하게 밥을 차려 먹는 콘텐츠를 올리는 인플루언서의 연령대는?
정답 공개.
야구 경기 티켓을 산 사람은 ‘여성’이 더 많고, 5년 전부터 ‘40세 이상’ 육아휴직자 수가 30세 미만을 넘어섰으며, 인스타그램 ‘귤 까먹는 소리’ 계정의 주인은 ‘중학교 2학년’이다. 혹시 정답을 ‘남성’ ‘30세 미만’ ‘중년 이상’으로 예상했다면 오늘 소개할 트렌드 ‘옴니보어’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는 위 사례들과 같이 기존의 전형적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소비 스타일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옴니보어’로 명명했다. 옴니보어(omnivore)란 ‘잡식성’이라는 뜻의 영단어로, ‘여러 분야에 두루 관심을 갖는’이라는 의미로도 확장된다. 사회학에서는 ‘폭넓은 문화적 취향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를 확장해 요즘 소비자들이 겉모습만 봐서는 초식인지 육식인지 알 수 없으며 단정 짓기 어려운 잡식성과 같은 소비 스타일을 지녔다는 비유로 사용했다.
옴니보어형 소비가 나타나는 대표적 영역이 연령에 따른 라이프 스타일이다. 최근 시장에서 가장 주목하는 소비 집단 중 하나는 ‘액티브 시니어’다. 나이는 시니어지만 청년과 다름없는 소비를 보여주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 발표에 따르면 올해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서 옷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20대(59.2%)였으며, 2위는 60대로 53.0%에 달했다.
연령 파괴는 역방향으로도 일어난다. 홀로 떠나는 해외 배낭여행은 주로 어느 연령대에 갈까? 흔히 20~30대 성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최근에는 10대 사이에서 ‘혼행’(혼자 하는 여행) 바람이 불고 있다. 온라인에는 미성년자가 보호자 없이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정리한 게시물과 SNS를 통해 상황별 대처법 등 직접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청소년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성별에 따른 차이도 줄어든다. 흔히 여성의 상징은 치마를, 남성의 상징은 바지를 그려 넣지만, 그런 구분도 낡은 것이 되고 있다. 치마와 꽃무늬 패션을 활용해 주목받는 남성 연예인이 있는가 하면 실제 의류매장도 남성복과 여성복존(zone)을 통합하는 추세다.
식생활에서 성별 차이도 줄었다. 예쁜 디저트를 즐기는 남성만큼이나 프로틴을 섭취하며 근육 만들기에 힘쓰는 여성이 늘어났으며, 지난 10년간 음주율 차이도 줄어들었다. 남성의 음주율은 줄어든 데 비해 여성 음주율은 조금씩 상승했기 때문이다. 최근 조사에서 20대 여성의 음주율은 68.3%, 20대 남성 음주율은 75.7%로 10년 전 약 20% 차이가 났던 수치가 한 자릿수 차이로 좁혀졌다.
소득수준에 따른 소비 차이도 절대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다이소’는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하지만, 생활용품이 필요할 땐 고소득·자산가도 많이 찾는 곳이다. 최근 ‘듀프(dupe) 소비’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짝퉁’이란 말인데, 단순히 고가 브랜드 제품을 구매할 능력이 안 되어 모조품을 사용한다기보다는, 동등한 기능을 하지만 훨씬 가성비 있게 소비할 수 있는 제품을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들은 더 저렴한 듀프를 찾았다며 SNS에 공유함으로써 합리적 소비를 자랑하기도 한다. (물론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다.)
소비자들이 연령·성별·소득수준 등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옴니보어 트렌드는 그것이 한두 명의 특이 사례가 아니라 사회현상으로 관찰될 만큼 일반화되었다는 점, ‘옷을 젊게 입는다’처럼 일부 영역에 그치지 않고 소비 영역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자신과 유사한 인구 집단 속에 살며 사회화됐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접점이 전혀 없던 사람들과 온라인을 통해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 보니 20대 남성 100명을 모아놓고 각자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을 물어본다면 각기 다르겠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취향을 중심으로 사람을 모은다면 20대 남성과 60대 여성이 똑같은 동물 관련 채널을 구독하며 소통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도 다양한 집단이 섞인다. 현재 인류는 역사상 가장 많은 세대가 공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는 ‘다세대 노동력(multi-generational workforce)’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조직 내 세대 차이가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한다면 다양한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일함으로써 다양한 관점을 학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기업에서는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사내 멘토링 및 역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세대 간 교류를 돕고자 한다.
소비자들이 옴니보어가 될수록 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과거에는 마케팅의 가장 첫 번째 단계로 연령·성별·소득수준 등을 기준으로 ‘타깃 집단’을 가려냈으나 이제 그러한 집단 간 차이가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기업들은 흩어져 있는 타깃 ‘개인’들을 발견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가치관·취향·상황 등 겉으로 알기 어려운 특성으로 소비자를 정의해야 한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소비자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추론이다.
옴니보어로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에게도 도전이자 기회다. 예를 들어 ‘몇 살 때쯤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인생의 가이드라인이 없어지는 만큼 나만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겪는다. 동시에 ‘나잇값’이라는 사회적 굴레에서 벗어나 언제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마우로 기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그의 저서 『멀티제너레이션, 대전환의 시작』에서 앞으로 초고령사회에서 ‘퍼레니얼(perennial·다년생 식물)’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기만 꽃다운 시기가 아니라, 인생의 그 어느 때든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 ‘식성’을 가졌는가? 초식 혹은 육식, 자신의 식성을 전형적인 틀에 맞추어 살아왔다면 이제 옴니보어로서 자신만의 식성을 찾아보자.
권정윤 님의 브런치와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