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TV에서 방영하는 슈퍼맨, 배트맨 만화를 보며 자란 제 또래들의 놀이는 단순했습니다. 놀이터의 미끄럼틀 높은 곳에서 슈퍼맨을 외치며 뛰어내렸고, 검은 보자기 망토를 두른 채 친구들을 감싸는 배트맨 흉내를 내기도 했죠. 누군가를 구한다는 매력이 멋있어서 경찰관, 소방관을 꿈꾸기도 했죠.
우리의 유년기가 이처럼 허무맹랑한, 그렇지만 기억 속 깊이 따뜻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낭만이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된 지금의 우리처럼 재거나 주저하는 모습없이 자신의 낭만을 위해 아낌없이 무언가를 쏟았던 경험은 그 시절의 전부가 추억이고 기억하고 싶은 한 페이지로 남습니다.
이런 낭만은 보통은 실현되기 어렵기에 더욱 간절하고 마음이 아리기도 하죠. 점차 크면서 성인이 되고,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체념하고 순응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더욱 아쉽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어릴 적 유행했던 포켓몬 빵이 재출시하자 어른들이 너도나도 지갑을 털어 편의점과 마트를 탈탈 털어버린 건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 아니었을까요?
일상의 무료함에 피로함을 느끼는 평범한 어른이 되어버린 요즘, 재미있는 소식이 떴습니다. 나이키가 드디어 무신사에 입점한다는 소식은 꽤나 흥미로운 주제였는데요. 특히나 브랜딩 관련해서 재미있는 소식들이 뜸하던 차에 무신사 창업자 조만호대표와 나이키라면 풀어야할 썰이 기억나 바로 키보드를 잡았습니다.
다들 기억하실까요? 2000년대 초반 프리챌이라는 커뮤니티가 있었죠. 학교에서 이름 좀 날리는 친구들은 프리챌커뮤니티 하나씩은 만들었고, 그곳에 들어갔냐 아니냐가 또 하나의 학창시절의 수많은 이야기를 품어냈던 잘나감의 척도였죠.
이처럼 1020중심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문화가 싹 틔우기 시작한 시절, 조만호 대표 역시 프리챌에서 스니커즈 마니아들을 위한 소통 커뮤니티를 만들었습니다.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었죠. 이 곳에서 사람들은 최신 패션 트렌드를 서로 공유했고, 커뮤니티 이름처럼 나이키, 아디다스 등 해외 유명 스포츠 브랜드 한정판 운동화들의 사진을 올려놓고 환호하고 열광했습니다. 그 당시 잘나가던 커뮤니티들은 프리챌에서 다들 그렇게 컸으니 그 중 일부에 불과했던 ‘무진장 신발 사진 많은 곳’은 아예 별도 사이트 ‘무신사닷컴’을 만들며 본격적인 무신사의 설립을 알렸죠.
지금에야 성공해서 무신사가 10번째 유니콘이고, 대한민국 대표 패션 커머스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이지만, 프리챌의 유명 커뮤니티에서 독자적인 비즈니스를 위해 웹사이트를 만든 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시도입니다. 무신사를 별도 설립하던 2003년은 지금처럼 투자가 활성화 되었던 시기도 아니었기에 충성도 높았던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트래픽을 별도로 부담한다는 것은 조만호 대표에게도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다가왔던 것이죠.
늘어나는 무신사의 서버비를 감당하기엔 버거웠던 조만호 대표에게 생각난 건 바로 에어 포스 1 미드 ‘인디펜던스 데이’였습니다. 이미 고등학생때부터 나이키 스니커즈 컬렉터로 잘 알려질 만큼 나이키라면 죽고 못사는 학생이었던 조만호 대표에게 인디포스1 역시 애장품 중 하나였죠. 그러나 이제는 그에게도 나이키만큼이나 무신사가 중요해져버린 이상 서버비를 충당하기위해 인디포스1팔아 그 비용을 마련했다고도 합니다.
재밌는 것은 한참이 지나 ‘디젤매니아’라는 네이버 카페에 글이 올라왔는데요. 본인이 직접 무신사 대표를 만난 기억이 있다면서 인디포스1을 거래했던 기억을 공유했습니다.
2004년~2005년 즈음 고등학생이었던 글쓴이가 당시 엄청난 고가였던 인디포스가 매물로 올라와 구매했는데, 당시에 인디포스를 왜 파냐는 글쓴이의 물음에 ‘무신사 사이트 서버 증축 비용이 모자라 보탠다’는 답변을 했던 조만호 대표와의 일화였죠.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조만호 대표에게도 고가였던 ‘인디포스1’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을 지 가늠이 안되긴 하죠. 실제로 이런 글을 올리고 2년뒤 조만호 대표로부터 인디포스1 재발매에 맞춰 재발매판 인디포스1을 선물 받았다고 하니 조만호 대표에게도 당시 기억은 두고두고 기억될 낭만이 아니었을까요?
이처럼 자식같은 인디포스1을 떠나 보내고, 조만호대표는 본격적으로 무신사 브랜드를 일궈냅니다. 신발 외에도 스트릿패션 등을 직접 촬영 편집하면서 무신사 매거진을 시작으로, 스니커즈 편집 숍을 운영하고 싶다던 그의 꿈은 무신사 스토어, 무신사앱, 무신사 매장 등 온오프라인에서 종횡무진하는 커머스브랜드로 확장되었습니다.
스니커즈를 넘어선 종합 패션 커머스가 된 무신사에게, 그리고 조만호 대표에게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을 겁니다. 슈퍼맨을 꿈꾸던 아이가 마블시리즈를 섭렵해도 가슴 한 켠에는 빨간 망토를 매고 휘젓던 골목길이 생각나듯, 무신사에 입점한 수많은 유명 브랜드에도 불구하고, 나이키가 그동안 공식 브랜드로 입점하지 못했던 것은 두고두고 아쉬웠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서 예고한 것처럼, 나이키는 4월 15일부로 무신사에 공식 입점했음을 알렸죠. 거꾸로 말하자면, 무신사가 나이키를 유치해낸 것이죠. 나이키 신발 사진을 무진장 찍어 올리던 고등학생이 키우던 커뮤니티가 어느새 회사가 되었고, 그 회사 자금이 모자라 나이키신발을 팔아 버텨왔던 청년이 어느새 자신의 회사에 나이키를 입점시킨 것입니다.
나이키의 무신사 입점까지 도달했던 이 내용을 드라마로 쓰라고 하면 개연성 떨어지고 유치한 망상이라고 비난 받을 법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더욱 회자될 수 밖에 없는 이유에는 ‘낭만’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현실적인 제약을 먼저 마주하고, 꿈의 날개부터 꺾이며 어른이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는 것이 세상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좌절의 벽 앞에서 울고 타협하면서 또 미래를 그려 나가죠. 그런 의미에서 조만호 대표가 어린 시절부터 보여준 꿈에 대한 집념은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살아갔던 ‘낭만’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신사는 그런 낭만을 실현해내는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글쓰는 워커비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