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에 문제가 생겼다.
물건을 잘 만들어 놓았는데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 여기서 ‘사업’이란 소싱이거나 제조사다…다른 사업이거나. 아무튼 마케팅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자료조사를 시작한다.
그렇게 눈에 들어오는 광고 문구, “사장님들, 힘드시죠? 광고로 백억 매출 달성해 드립니다.” 또 어느 곳에서는 말한다. “백억 매출을 달성하려면 광고만으로는 안됩니다. 브랜딩을 해야 합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이런 광고를 하고 있다. “상품을 판매하는데, 아직도 브랜드 전략 안 세우셨어요?” 혹은,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기본이죠! 무료로 협찬해 드립니다.”
상품은 만들어 놓았는데 팔리지 않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보아도 ‘마케팅’이 필요한 데, 이놈의 마케팅이라는 것이 너무 많아서 ‘어떤 마케팅’을 해야 내 회사가 살아날지 모르겠다. 바로 옆 건물의 라이벌 브랜드는 유통채널 하나 잘 잡아서 광고를 안 하고도 잘 팔린다고 하고, 옆의 옆 건물 라이벌의 라이벌 브랜드는 광고를 하는 족족 대박이 나서 벌써 몰 회원만 천만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 회사는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쏟아부은 만큼 판매량을 올리질 못하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란 말인가?
이 사태를 간단히 비유하자면 이렇다.
당신은 지금 폐렴에 걸렸는데 항문외과에 갔다.
시작은 마케팅의 목표, 즉 지금 현재 회사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는 것에서부터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간다고 해보자. 병원에 가는 행위의 최종 목표는 ‘건강을 되찾는 것’이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도, 종류를 막론하고 마케팅이란 결국 ‘물건을 잘 파는 것(Sales)’에 목표를 둔다. 다시 말하자면, ‘물건을 팔기 위해 하는 행위’는 종류를 막론하고 모두 마케팅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케팅의 종류는 수만 가지인데, 이 중에 나한테 필요한 마케팅이 무엇인지(내 회사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니까 마케팅에 돈을 쏟아붓고도 돈을 벌지 못하는 건 결국 나에게 필요한 마케팅이 무엇인지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폐렴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이걸 해결하기 위해 항문외과만 찾아다니면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해봐야 소용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 (심지어 항문외과 의사도 몸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폐렴을 치료할 수 도(가능성) 있다. 이것마저 잘못된 마케팅을 하고 있는 기업의 상황과 비슷하다.)
기업이 스스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내 상품의 아픈 부분을 찾았으니 이제 병원에 잘 연결해 주는 것만 남았다. 마케팅 요소를 A부터 Z까지 늘어놓고 딱딱 구분해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하면 a라는 문제가 해결되고, 브랜딩을 하면 b라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현실을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사실 마케팅 실패의 대부분은 마케팅 요소를 이렇게 A부터 Z까지 정밀하게 구분하여 어떤 것은 배척하고 어떤 것 만을 취하는 데서 생긴다. 하지만 사실 마케팅을 잘한다는 것은 수많은 기술(도구)을 전략에 접목하여 원하는 결과를 낸다는 뜻이다.
상대의 기지를 점령하면 이기는 게임을 한다 가정해 보자.
A팀은 B팀의 기지 안으로 들어가 깃발을 꽂아야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A팀이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공격을 맡은 A팀은 기업, B팀은 소비자의 대변인이다.
먼저 B팀의 기지에 도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힘에 자신이 있다면 B팀의 정면으로 쳐들어가 순식간에 기지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미끼를 사용하여 시선을 끄는 사이 몰래 접근하여 깃발을 꽂는 방법도 있다.
아예 다른 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B팀이 있는 곳까지 땅굴을 파 도달할 수 도 있는 것이다. 공중에서 들어가는 건 어떨까? B팀의 기지 근처까지 도달할 수 있는 지형지물이 있다면 그것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파이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B팀 중 한 명을 회유할 수 만 있다면 그 어떤 작전보다 평화롭고 빠르게 게임이 마무리될 수 도 있다.
이 수많은 작전 중에 A팀이 합의하여 ‘미끼를 써서 시선을 끌고 뒤 쪽에서 기지를 점령하자’라고 정했다. A팀은 B팀을 제압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지도 않았고, 가진 무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A팀이 스스로를 파악하여 결정한 방향성이며, 승리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의 큰 틀이 된다.
전략의 방향을 정했다면 이제 세부적인 ‘어떻게’가 필요할 것이다. A팀 중 미끼가 될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방식으로 미끼가 될 것인가? 이것들은 모두 전략의 세부사항이다.
그런데 이때, 다른 도구(무기) 등이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빛이 매우 밝은 손전등’으로 시선을 끌 수 있다면 A팀의 미끼는 체력을 아껴 다른 일을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소리 나는 곳에 접근한 B팀의 움직임을 방해할 ‘끈끈이’를 뿌려두면 전력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지로 들어갈 때에는 안에 남아있는 B팀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를 들고 간다면 맨손으로 싸우는 것보다 이길 확률이 더 올라갈 것이다.
마케팅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여기서 언급된 무기들을 마케팅 도구(전술)로 생각하면 광고(광고 전략이 아닌 광고 그 자체), 브랜드(브랜딩 전략이 아닌 브랜드 네임 그 자체) 등이 된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옆 회사 무슨 브랜드는 SNS 광고 마케팅 하나로 백억 냈다는데요? 글쓴이의 말에 따르면 SNS 광고 마케팅은 전략이 아닌 도구(전술) 일뿐인데도요. 그럴 수(도) 있다. 당신의 회사도 특정 도구하나로 백억 매출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케팅은 정해진 비용과 정해진 화력 안에서 움직이는 확률 싸움이다. 앞서 말했듯이, 항문외과 의사도 폐렴을 고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의를 찾아가는 것보다는 확률이 낮을 것이고, 동시에 치료가 되지 않을 가능성, 혹은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옆 회사가 했다는 SNS 광고 마케팅이 전략으로 사용된 것인지, 단순한 도구로 사용된 것인지 당신은 구별할 수 있는가? 생각보다 많은 담당자들이 소비자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가 보는 시선에서는 마케팅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와 접촉하는 첫 번째 라인은 전략이 아닌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B팀의 시선을 빼앗은 “손전등”은 무기이자 도구이지만, “손전등을 빠르게 깜빡여 시선을 빼앗는다”는 것은 전략이다. 그러나 B팀이 후에 이 전략을 다른 팀에게 응용한다고 생각했을 때, “손전등을 빠르게 깜빡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A팀이 왜 손전등을 빠르게 깜빡였고, 그것이 B팀의 시선을 빼앗는데 어떤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손전등을 사용한다”에만 집중하면 어떻게 될까? 글쎄, 누가 봐도 그건 그냥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SNS 광고가 중요한지, 브랜딩이 중요한지 비교하여 고민하는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은 버려라. 마케팅으로 살아남으려면 마케팅 수단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의 전략과 전술 전략과 전술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전략에 따라 도구들을 잘 사용할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한정된 재원 안에서 원하는 결과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내기 위해서는 내 회사의 문제가 무엇인지, 내가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할 전략이 무엇인지, 내가 쓸 수 있는 도구가 무엇인지(그것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 구별하고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에 게임(마켓)을 뒤집을 수 있는 무기가 있다면, 혹은 인해전술(막대한 비용)을 사용해서 밀어붙일 수 있는 자신이 있다면 마케팅 전술과 도구를 구분하지 못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