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틀을 통해서 그 사람의 세계를 볼 수 있다.
– 페르디낭 드 소쉬르
회사든 사교 모임이든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쨌거나 ‘협업’이라는 행위가 발생한다. 싫든 좋든 공동의 목표가 정해지면 함께 도착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함께 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함께 가는 그 길이 잘 다듬어진 꽃길이 될 것이냐, 거친 가시밭길이 될 것이냐라는거다. 물론, 꽃길이 갑자기 가시밭길이 될 때도, 가시밭길이 꽃길로 변할 때도 있지만.
나는 ‘에고라는 적‘이라는 책을 읽기 전에는 자의식 과잉이 조금 심했었던 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하려 하지 않는 동료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었다. 일을 열심히 한다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것인데, 제 잣대에 맞추어 그 사람이 일을 열심히 하냐, 안 하냐를 감히 판단한 것. (지금은 안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책을 읽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무엇이든 기준이 ‘나’가 되면 남들의 노력은 무시한 채로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려 하는 위험한 색안경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
오늘은 ‘우아한형제들’팀이 쓴 ‘이게 무슨 일이야!‘라는 책을 읽고, 제 경험을 비추어 협업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내용이 조금 길더라도 재밌게 읽어주시길!
동료의 의도를 짐작하지 말자
함부로 상대의 의도를 짐작하며 판단하는 것은 협업을 할 때 더할 나위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낸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변 동료의 업무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을 때, 그 즉시 바로 “너 왜 이렇게 일해?”라고 말한 경험이 있나? 대개 이런 평가는 내 머릿속에서만 활발하게 일어나고, 동료는 영문도 모른 채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일 못하는 동료’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결국 내 주변에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동료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함부로 평가받지 않으려면 나도 동료를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했는지는 그 사람만 아는 건데, 내가 마치 독심술이라도 쓰는 사람처럼 이런 의도로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고 판단해서는 안 되니까! 그래서 커뮤니케이터들은 갈등의 첫 단추를 ‘본심 알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나 ‘호감 가는 말투에는 비밀이 있다’ 같은 인간관계, 처세술을 설명하는 책에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할 시간에 현실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그런 책을 읽지 말라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현실에서 수 십 번을 부딪쳐 보고 노력해봤는데도 전혀 관계에 개선의 여지가 없다’ 싶을 때. 그때 책을 펼쳐보자고. ‘인상이 무섭다, 말 안 통하기로 유명하다’는 동료가 있다면 정말 커뮤니케이션이 불가할 정도로 독불장군인지, 아니면 알고 보니 생각보다 말이 통하고 공감을 잘해주는데 사람이었는데 사전에 우리가 획득한 정보로만 그 사람을 판단해서 그런 사람일 거라고 확정 지은 것 일 수도 있지 않은가?
나의 성공이 아니라 모두의 성공을 만들자
나는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왜 이 일을 하는가‘이다. 모든 일의 출발점은 ‘이 일을 우리가 왜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협업하는 동료가 이 일을 왜 하는지가 다를 수도 있으니까. 나는 이 일이 내 커리어에 엄청 큰 Special thing이 될 거라 생각하는데, 동료는 그냥 가볍게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숙제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시작부터 틀어지게 된다. 서로 일을 대하는 열정의 온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럴 때 가장 좋은 건 우리가 이 일을 왜 하는지 상기시키며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단순한 일도, 하기 싫은 일도 이 일이 내 포트폴리오에 쓰일 특별한 무기가 된다고 생각하면 최선을 다해서 하지 않는가? 그게 아니더라도, 나중에 승진 평가에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해보자. 그럼 단순한 일도 진심으로 하게 된다.
물론 모든 일들이 의미 있는 일은 아닐거다. 매일 해야 하는 뻔한 업무도 있을 거고, 매번 반복되는 단순한 업무도 있다. 중요한 건 유독 동료 한 명한테만 단순하고 반복되는 업무가 몰려있는 것은 아닌지 동료들이 하는 일을 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감시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한 사람이 짊어진 짐을 나눠가져야 그 동료도 결국 내 편이 돼서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마냥 헌신을 강요하며 이타적으로 행동하라는 게 아니라, 동료에게 우리가 같이 성공하려고 한다는 진심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보이자는거다.
나는 일을 할 때 동료들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중간에 많이 격려하면서, 이 일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계속 리마인드 해준다. 그럼 우리가 이 일을 단순하게 ‘일’, ‘귀찮은 과제’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성과’, ‘개개인의 성공’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여러분도 이제 한숨 푹푹 쉬며 찡그린 얼굴로 회의실에 들어서며 ‘또 귀찮은 일이 들어왔네요’라고 말하지 말고, 대신 ‘우리들의 커리어 패스에 중요한 과제가 들어왔네요!”라고 방긋 웃으며 얘기해보자. (이를 심리학 법칙에서 ‘리프레이밍(reframing) 기법’이라고 한다.) 너무 감상에 젖은 것 아니냐고? 말뿐이라도 우리의 행동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어려운(싫은) 사람이 있다면 더 철저히 준비하자
내 사례를 들어보자. 최근 A 개발팀의 팀장님과 회의를 해야 했다. 주변에서 정말 황소고집에 ‘그건 개발이 어려워요’, ‘안 돼요’라며 늘 안된다는 말만 입에 달고 사시는 분이니 각오 단단히 하고 만나야 할 거라는 조언을 들었다. 딱 듣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만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귓속에서는 “안돼, 돌아가“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사전 리서치를 하고 만났다. 우리가 지금 어떤 문제에 직면했는지, 이게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안 된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지 등을 꼼꼼히 리서치를 했다. 평소에 늘 이런 식으로 준비하고 만나면 회의 자체가 항상 피곤하겠지만,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그 사람의 회의나 업무 스타일을 내가 모르니까 꼼꼼하게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 마치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전부 준비해봤어”라는 짤처럼.
회의 초반에는 “그건 어렵겠는데요”라는 말을 몇 번 듣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고 준비해온 지식을 총동원해서 설명했다. 결국 회의라는 건 양자 간의 합의점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안된다는 말을 들어도 곧바로 꼬리를 내리면 안 된다. 대안이 없다면 나가지 않겠다는 필사의 각오가 필요하다.
생각보다 회의 결과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쉽게 정리됐다. 우리 회사의 모든 개발팀에게 간단한 확인 요청과 한 두 줄 정도의 코드 수정만 하면 끝나는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그렇다면 이 회의는 성공적인 걸까? 나는 성공적인 거라고 본다. (1) 적어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2) 어려운 사람이라고 소문난 상사에게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원이라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다음 회의 때는 서로 더 경계를 풀고 협조적으로 회의에 참석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회사의 모든 개발팀에게 해당 이슈에 대한 확인 요청과 코드 수정 요청은 내가 회의 내용을 정리해서 각각 메일로 보내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단순한 숙제니까.
어려운, 혹은 싫은 사람과 협업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평소에 준비하는 사전 회의 자료에 2배 이상의 고생은 필요하다. 어쩔 수 없다. 만약 상대가 “그건 이래서 안 돼요~”라는 말을 한다면, ‘날 무시하는 건가? 날 싫어하나?’라고 생각하지 말고, “제가 너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고 판단했나 봐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였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하는 게 최선의 방법일까요?”라며 상대방이 협조적으로 대안책을 제시할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 상대방이 우리보다 전문가니까 대안책을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개발팀과 회의할 때에는 내 머릿속 상식으로 직접 ‘쉽다, 어렵다’는 판단을 하면 안 된다. “미리 찾아보니, 이런 이런 방법이 있던데, 개발자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하며 자문을 구한 뒤, 공기(작업시간)를 파악하는 건 그 뒤에 해야 한다.
채드윅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