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40분. 두 통의 메일 알림이 울렸다. 회사 데이터 분석가 B였다. 그는 주말에도, 새벽에도 메일을 보낸다. 밤낮없이 엄청난 양의 일을 해내는 그를 보면서 궁금해졌다.
B는 일을 잘 하는 걸까? 똑똑하고, 일처리도 깔끔하고, 커뮤니케이션도 원만한 그는 분명 일을 잘 한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일 하는 게 일 잘 하는 게 맞을까? 곧 소진되지 않을까 위태로워 보이는 그를 보며 일 잘한다는 것을 뭘까 궁금해졌다.
정의 1. 주어진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능력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시간, 돈, 노력을 지나치게 많이 투자했다면 일을 잘한다고 할 수 있을까? 효율적이라는 건 투입한 자원 대비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효율적이어야 시스템화할 수 있고, 규모를 키울 수 있고, 지속 가능하다.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압도적인 사례로 <코딩하는 공익> 반병현씨가 떠올랐다. 병현씨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할 당시 상사에게 6개월 걸릴 문서 작업을 지시 받았다. 이 과제를 코딩으로 단 하루 안에 끝내버려서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병현씨를 보면 1번 정의가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주어진 문제‘라는 게 진짜 문제가 맞긴 할까? 이 의문에서 두 번째 정의를 생각해봤다.
정의 2. 문제의 진짜 의미를 찾는 능력
회사에서 늘 마음속으로 삼키는 말이 있다. “이걸 지금 우리가 왜… 해야 해?”
일단 하라고 하니까 하긴 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냥” 해버리면 아무리 효율적으로 해결한다고 해도 그게 일 잘하는 게 맞을까? 의심이 든다.
주어진 문제 자체를 다르게 보는 것, 일을 시킨 사람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게 일을 진짜 잘 하는 거 아닐까?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특별한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의 목소리를 곧이곧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숨은 욕구를 해석하는 능력.
그렇다면, 나에게 일을 시키는 상사와 고객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가진 숨은 욕구가 뭘까?
그냥 이거 아닐까? 즐겁게 살고 싶다!
정의 3. 일을 즐기는 마음
이 세상을 재미로 가득하게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게 일 잘하는 거 아닐까?
일을 즐기는 것과 일을 잘하는 것은 다르다. 일을 잘하지만 일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차이를 자주 느낀다.
생각이 이쯤 이르니 궁금해졌다. 나는 일을 재밌게 하고 있나?
테트리스처럼 쌓인 일을 완료한 후의 후련함 말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일하는 그 과정까지도 재미있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봐야겠다.
흠… 아니… 아닌데? 그렇다면, 나는 일을 잘 하는 게 맞을까?
일을 재미로 만들지 못하는 한 절대 일을 잘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2022년의 새로운 목표가 추가되었다..
일을 잘하기 위해 일에서 재미를 찾을 것!
정의 4. 일의 끝점을 그리는 능력
정의 3번까지 쓴 것은 6개월 전의 일이다. 6개월 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이직을 했다. 새로운 콘텐츠 계약도 했고, 글 써서 한 달에 평균 100만원의 추가 소득을 얻게 되었다. 나, 이제 정말로 일 잘하는 거 아니야? 이 모든 것을 해내면서도 즐기고 있잖아! 이런 우쭐함이 들 무렵, 다시 마음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 있었다.
바로 생각구독 4월호 글과 아래의 영상이었다.
영상 요약
Q. 일 잘 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요?
A. 내가 하는 일의 종착점이 어디인지 알고 하는 것.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일은 진짜 쓸모없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이렇게 될 거야” 라는 걸 예측하고 그 일을 해야, 나중에 퍼즐도 맞춰지고 협업도 가능한 것. 그냥 무턱대고 하면 꼬일 수 있다.
Q. 일 잘하는 사람은 진정성이 있다는데, 진정성이 도대체 뭐예요?
A. 상대의 입장이 되는 것. 식당을 운영한다면, 저 손님은 어떻게 느낄까? 라는 고민을 진심을 담아 하는 것.
Q. 진심은 대체 뭐예요?
A.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해? 단계 까지 가보는 것. 고객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면 그 미션에 집착해서 평균 수준의 임계치를 넘어서는 노력을 하는 것. 그래야 사람들은 ‘아 저 사람 찐이구나. 진심이구나. 진정성 있구나.’ 하고 안다.
생각구독 4월에서 영감 받은 질문
“지금 하고 있는 일 언제까지 할 거야?”
“그 일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그 일을 다 하면 어떤 목표를 이루게 돼?”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지 않았던 거다. 생각 정리를 할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생각 정리는 방 정리와도 비슷하다. 생각을 일단 모두 끄집어내 나열한 뒤에 태그를 붙여서 분류한다. 그리고 분류된 그룹의 목적과 방향성을 정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 모두 나열하기
- 회사 일
- 뉴스레터
- 책 출간
- 브런치, 북저널리즘 글쓰기
- [회사다니며 내 콘텐츠 만드는 법] 클래스 제작
- 밑미 공부 리추얼
분류하기
- 일에 대한 태도와 나만의 관점 기르기: 회사 일, 뉴스레터 공동 제작
- 내 생각을 콘텐츠로 만들기: 책 출간, 뉴스레터, 브런치/북저널리즘 글쓰기, 클래스 제작
- 회사 밖에서 경제적 소득 만들기: 책 출간, 북저널리즘 글쓰기, 밑미 리추얼 운영, 클래스 제작
-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발견하고 공부하기: 밑미 공부 리추얼, 뉴스레터
태그를 정리해보면?
#관점 #태도 #콘텐츠 #독립워커 #커뮤니티 #공부
태그를 중심으로 일의 끝점 설정하기
- 회사 일: 일에 대한 나만의 관점, 태도, 가치를 세운다. 이를 콘텐츠로 만들어 개인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돕는다. 10년 후, 독립 워커가 된다.
- 브런치/북저널리즘/클래스/뉴스레터 콘텐츠 만들기: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
- 밑미 리추얼: “개인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의 연습을 할 수 있다. 매달 새로운 메이트를 만난다.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메이트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한다.
정리 후 이런 게 눈에 보였다
- 내가 하는 일이 각각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 내가 왜 이 일들을 지속해야 하는지?
- 어떤 일을 그만 둬도 괜찮은지?
내가 하는 일은 한 가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일에 대한 나만의 관점, 태도, 가치를 만들고 이를 콘텐츠로 만들어 개인이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돕는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그만두고 어떤 일을 지속해야 할지 실험해봐야 한다. 이 목표를 위한 여정에서 꼭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도전의 성패는 시간과 체력, 마음을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당장 그만둘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힘을 조절할 수는 있다. 각각의 일에 전부 120%를 쏟아붓지 말고 하나의 일에 한 가지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서 그것을 달성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끝점을 위해 일과 생각 정리하기
- 회사 일: 끝점을 향한 핵심 활동. 사이드 프로젝트에 쏟아붓던 에너지를 일에 집중한다.
- 뉴스레터: 정기적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연습. 글의 방향성과 퀄리티, 운영 고민에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 브런치, 북저널리즘 글쓰기: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 새로운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다. 나에게 글쓰기는 오랜 시간 체화된 도구이다. 목적이 아닌 도구로 잘 활용하면 된다.
- 밑미 리추얼: 메이트 내면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공감하는 연습. 커뮤니티 운영 시스템 구축이라는 목표를 내려놓는다. 기존에 만들던 안내 공지 템플릿, 아카이빙 노션 페이지 구축을 멈췄다.
끝점은 계속 바뀐다. 끝점으로 가기 위한 길도 계속 바뀐다. 2달 전, 1주 전에 쓴 끝점은 위에 기재한 지금의 끝점과 다르다.
2달 전 끝점
- 회사 → 일상을 유지할 만큼 ‘실제 수익’을 내고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기
- 브런치 → 매년 내 이름으로 책 내기
- 뉴스레터 → 단단 세계관을 하나로 통합해서 아카이빙하기
- 인스타그램 → 순간의 영감을 공유 & 가치관을 지지하는 사람 모으기 = 홍보의 수단 →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 블로그 공부 일기 → 매일의 배움을 기록 → 매일의 사소한 발전 의식하기
- 밑미 리추얼 → 커뮤니터로서 독립하기
내 생각을 기록하고 꾸준히 쌓아서 세상에 알리고 나의 가치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아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
1주 전 끝점
- 회사 → 내 일의 무대. 일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찾는다.
- 밑미 리추얼 → 매일 공부하고 기록한다. 콘텐츠 소비와 생산을 동시에 하는 습관 만들기.
- 뉴스레터 → 같이 만드는 결과물은 100%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음
- 브런치/북저널리즘/클래스 제작 → 생각을 글로 만드는 연습
- 인스타그램/블로그 글쓰기 → 매일의 생각을 정리하는 연습
과정을 즐기고 누리는 삶을 산다.
비슷한 것 같지만 끝점을 모아 하나로 만든 문장을 보면 변화를 알 수 있다.
2달 전
내 생각을 기록하고 꾸준히 쌓아서 세상에 알리고 나의 가치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아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
1주 전
과정을 즐기고 누리는 삶을 산다.
지금
일에 대한 나만의 관점, 태도, 가치를 만들고 이를 콘텐츠로 만들어 개인이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돕는다.
앞으로도 끝점은 계속 바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끝점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게 아니다. 바뀌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계속해서 그리고 고치며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계절에 한 번씩 내 끝점을 돌아보는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단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