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후테크 스타트업, 어디로 가고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다시 탈퇴하면서 국제 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글로벌 벤처캐피털(VC)과 각국 정부는 탄소중립과 지속 가능한 산업을 위해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기후테크 스타트업 생태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나타납니다.

 

 

기후 테크의 5가지 분야_출처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국내 기후테크 스타트업 현황-분야별 현황 분석을 중심으로' 보고서 중
기후 테크의 5가지 분야_출처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국내 기후테크 스타트업 현황-분야별 현황 분석을 중심으로’ 보고서 중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표한 2025년 2월 기준 기후테크 스타트업 맵에 따르면, 국내 기후테크 스타트업 272개 중 절반 이상(53.3%)이 에코테크(25.7%)와 푸드테크(27.6%) 분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반면, 글로벌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은 클린테크(태양광·풍력·에너지 저장)와 카본테크(탄소 포집·친환경 모빌리티) 분야에서 압도적인 투자를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글로벌 기후테크 Top 100 스타트업 중 68%가 클린테크(33개)와 카본테크(35개) 분야에 속해 있으며, 이들 기업은 거대한 투자금과 함께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는 에코테크와 푸드테크가 기후테크 스타트업의 중심이 되고 있는 걸까요?

 

 


 

 

왜 한국에서는 ‘푸드·에코테크’가 대세인가?

 

1) 클린테크·카본테크는 스타트업이 뛰어들기 어려운 시장

 

 

트래쉬버스터스 X 영화관 CGV 협업 프로젝트_출처 newslock.co.kr
트래쉬버스터스 X 영화관 CGV 협업 프로젝트_출처 newslock.co.kr

 

 

모든 기후테크가 같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클린테크와 카본테크 분야는 초기 인프라 구축 비용이 크고, 기술 개발과 시장 확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태양광·풍력 발전소 건설이나 탄소 포집·저장 기술 개발은 정부 정책과 보조금 의존도가 높으며, 스타트업이 단독으로 성장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건설 기업인 DL이엔씨(DL E&C)의 자회사인 저탄소 솔루션 기업 ‘카본코(CARBONCO)’는 사업 자체가 정부 보조금과 탄소배출권 거래제도(ETS)에 크게 좌우됩니다. 반면, 전국 단위의 다회용기 렌탈 서비스를 운영하는 에코테크 스타트업 ‘트래쉬버스터즈’는 CGV 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려는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클린테크보다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고 빠르게 시장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에코테크·푸드테크에 창업과 투자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2) 한국 소비자는 ‘실질적인 친환경’에 반응한다

 

 

 아모레퍼시픽에서 운영했던 리필스테이션 모습
아모레퍼시픽에서 운영했던 리필스테이션 모습

 

 

소비자가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단순히 “환경을 위해”라는 이유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불편하거나 가격이 부담되는 제품을 단순히 ‘친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편리함, 가격 경쟁력, 그리고 실질적인 혜택이 수반될 때 비로소 친환경 제품을 선택합니다.

 

트래쉬버스터즈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불편함 없이 습관을 바꾸지 않고도 친환경 소비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사례로, 리필 스테이션(다회용기에 대용량 리필형 제품을 소분하여 담아 가는 공간) 역시 법과 제도의 문제, 매장 부족으로 인해 이용률이 떨어지는 모양새이지만, 친환경이라는 명목 외에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구매하고 다시 채울 수 있는 점이 초기 성공 요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친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과 실용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선택’이 한국 소비자들의 친환경 소비 기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3) 대체육은 외면받고, 저당 아이스크림은 품절? 푸드테크 시장의 반전

기후테크의 또 다른 영역인 푸드테크 시장에서도 같은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체육(Plant-based Meat) 시장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반면, 저당(제로 슈거) 제품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당 아이스크림 라라스윗
저당 아이스크림 라라스윗

 

 

한국의 제로 슈거 열풍에 힘입은 푸드테크 스타트업 ‘라라스윗(LalalSweet)’은 아이스크림 시장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이제 ‘저당 아이스크림’ 하면 라라스윗이 떠오를 정도로, 브랜드가 저당 아이스크림 시장을 선점했습니다. 특히, 편의점과 대형 마트 등 유통 채널에서 기존 아이스크림 강자들을 제치고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국내 푸드테크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대체육 시장은 대기업이나 스타트업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대체육 시장은 2025년까지 약 14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한국에서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미지근합니다. 국내 비건 인구는 5% 수준으로 제한적이며, 대체육 특유의 향과 식감과 여전히 높은 가격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신세계푸드의 대체육 브랜드 '베러미트(Bettermeat)'_출처 news.mt.co.kr
신세계푸드의 대체육 브랜드 ‘베러미트(Bettermeat)’_출처 news.mt.co.kr

 

익숙한 제품에 친환경 요소를 추가한 풀무원 '지구식단' 제품
익숙한 제품에 친환경 요소를 추가한 풀무원 ‘지구식단’ 제품

 

 

실제로 대기업인 동원F&B는 2019년부터 독점 수입해온 미국 ‘비욘드미트(Beyond Meat)’ 판매를 6년 만에 중단했습니다. 또한 신세계푸드가 2021년 론칭한 대체육 브랜드 ‘베러미트(Better Meat)’ 역시 시장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지 못했으며, 미국 시장 진출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풀무원(Pulmuwon)의 ‘지구식단’과 CJ제일제당의 ‘비비고(Bibigo)’처럼 기존 식품에 식물성 원료를 적용한 브랜드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비자들이 완전한 대체육보다는 익숙한 제품에 친환경 요소를 추가한 방식을 더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대체육은 아직 한국 시장에서 자리 잡기 어려운 상황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스타트업들의 도전은 더욱 험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후테크, 이제는 ‘진짜 혁신’이 필요하다

 

 

출처_GS Caltex Media Hub
출처_GS Caltex Media Hub

 

 

한국의 기후테크 스타트업은 소비자 중심의 친환경 혁신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해왔습니다. 푸드테크와 에코테크를 중심으로 소비자들이 불편함 없이 친환경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기후테크 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려면 한 단계 더 진화해야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클린테크·카본테크 분야 스타트업 숫자가 적을 뿐 투자 금액은 전체 기후테크 투자 금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창업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이유는 단순히 초기 투자 비용 때문만이 아닙니다. 클린테크, 카본테크 기업들의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탄소 포집·활용(CCU), 에너지 저장, AI 기반 기후 데이터 분석 등 새로운 기후테크 솔루션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 산업과의 연결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은 해외에 비해 더욱 발전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한국의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방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 정부 보조금이나 규제 의존에서 벗어나, 기후테크 기업들이 직접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IT 기술을 활용한 기후 데이터 분석, AI 기반 에너지 최적화 솔루션이 각광받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친환경 제품 개발을 넘어 산업 전체를 혁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둘째, 한국 스타트업들은 해외 시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합니다.유럽연합(EU)의 ‘탄소 국경세(CBAM)’나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처럼 글로벌 규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탄소 감축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해외 진출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현지 규제와 시장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합니다.

 

셋째,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은 디지털 기술과의 결합을 고민해야 합니다. 기후 데이터 분석, AI 기반 탄소 배출 최적화, 블록체인 기반 탄소 크레딧 거래 등 IT와 접목된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후테크 기업들도 단순한 친환경 제품 개발을 넘어서, 산업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기술 혁신을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결국, 한국의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은 이제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친환경 기술’에서 ‘산업을 변화시키는 친환경 기술’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푸드·에코테크 중심으로 성장해왔다면,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 개발과 글로벌 시장 진출이 필수적입니다. 

 

앞으로 10년, 한국의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이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업이 등장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Bennett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