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l me this pen
(나한테 이 펜을 팔아보세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중 한 장면

 

 

영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1990년대에 월스트리트와 투자은행 등에서 대규모 주식 사기를 일으켜 징역을 살았던 조던 벨포트라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예요.

 

조던 벨포트는 범죄자이지만, 무시무시한 세일즈 능력으로도 유명한데요. 그 경험을 녹여 책을 썼고, 그게 영화로도 만들어진 거예요.

 

영화는 징역을 살고 나온 조던 벨포트가 청중을 대상으로 세일즈 강연을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바로 그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 중 한 명에게 이 질문을 합니다. “Sell me this pen”

 

 


 

 

여러분은 이 펜을 어떻게 파실 건가요? 여러 가지 답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나는데 정리가 안 될 수도 있죠. 그럴 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예요.

 

네, 그 아리스토텔레스 맞습니다. 2천 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설득의 기술을 집필한 작가이자 불멸의 철학자. 고대 그리스는 민주주의가 발전했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말솜씨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수사학(Rhetoric)과 같은 말 잘하는 법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졌죠. 그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지금까지도 많이 읽히는 고전으로 남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세 가지로 설득된다.
논리(Logos), 감정(Pathos), 신뢰(Ethos)로.

 

로고스(Logos)는 ‘이성’이나 ‘논리’를 의미해요. 설득할 때 논리적인 근거나 합리적인 논증을 사용하는 것을 말하죠.. 로고스는 사실과 증거, 논리적 추론을 통해 청중의 이성에 호소하여 설득력을 높여요.

 

파토스(Pathos)는 ‘감정’을 의미해요. 감동적인 이야기, 비유, 이미지 등을 사용해 청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을 변화시키는 거예요.

 

에토스(Ethos)는 ‘성품’이나 ‘도덕적 품성’을 의미해요. 발언자가 자신의 지식, 경험, 정직성 등을 통해 청중에게 신뢰감을 주어 설득력을 높이는 거죠.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맞물릴 때,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이해하고, 끌리고, 믿게 되죠. 이 원리는 브랜드의 스토리텔링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논리에만 치중한 구글 플러스

 

 

‘구글 플러스’라는 서비스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아마 많이 없을 것 같아요. 구글 플러스는 2011년, 구글이 페이스북을 잡겠다며 내놓은 SNS 서비스였습니다. 당시 구글은 자신감이 넘쳤어요. 검색, 이메일, 지도, 유튜브까지 전 세계 인터넷을 지배하고 있었으니까요.

 

 

 

 

구글 플러스는 출시 초기 엄청난 기대를 모았습니다. 실제로 90일 만에 4천만 명 가입이라는 폭발적 스타트를 보이기도 했죠. 하지만 결과는 어땠을까요? 2019년에 서비스를 종료했어요.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죠. 구글 플러스는 기능과 논리로 무장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습니다.

 

 

1. 로고스 (논리): 완벽했다

 

구글 플러스가 내세운 논리는 확실했어요.

유튜브·구글 검색·지메일과 자동 연동, ‘서클’ 기능으로 친구·가족·직장 등 관계를 그룹별로 관리 가능, 더 적은 광고, 더 많은 정보 보호 약속. 

 

이 모든 걸 보면, “그래, 논리적으로 페이스북보다 나은 서비스네” 싶은 수준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논리’만으론 SNS가 안 된다는 거예요.

 

 

2. 파토스 (감정): ‘왜 써야 하지?’ 감정을 못 건드렸다

 

SNS는 철저히 감정의 플랫폼입니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과 교류하고 싶어서 SNS를 쓰고, 누군가의 ‘좋아요’ 한 번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구글 플러스는 이런 감정을 자극하지 못했어요. ‘서클’이라는 기능은 관계를 관리하기엔 좋지만, “이걸 왜 해야 하지?”라는 감정적 당위가 없었고, 새롭거나 설레는 경험도 제공하지 못했죠. 친구들도 안 쓰니 결국 “혼자 남겨진 느낌”만 들었죠.

 

사람들은 SNS에서 “여기가 내 공간”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싶은데, 구글 플러스는 철저히 그 감정을 무시한 채 기능적 설계만 앞세운 서비스였어요.

 

 

3. 에토스 (신뢰): 검색은 믿지만, SNS로서의 신뢰는 없었다

 

구글이 검색과 이메일에서는 최고의 신뢰를 받지만, ‘소셜 네트워크’ 영역에서는 전혀 권위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구글이라는 대기업이 나의 사생활까지 들여다보는 건 아닐까?’ 하는 불편한 감정만 키워버렸죠.

 

구글 플러스는 철저히 논리로 설계된 서비스였지만, SNS로서의 감정적 연결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어요. 논리와 감정, 신뢰가 균형을 이루어야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거죠.

 

 


 

 

러너라면 걸리는 가민병

 

 

저는 스마트워치를 꽤 오래 썼어요. 삼성 핸드폰을 쓸 때는 갤럭시 워치를 썼고, 아이폰으로 바꾸고 나서는 애플워치를 썼죠. 그런데 지난달에 가민이라는 스마트워치로 바꿨어요. 애플의 생태계를 벗어나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가민을 사야만 했어요. 아니, 사고 싶었어요.

 

 

 

 

가민(Garmin)

 

가민은 원래 항공과 군사용 GPS 장비를 만들던 회사였어요. 정확도와 기술력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피트니스·스포츠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했죠.

 

처음엔 생소했지만, 지금은 러너·사이클리스트·골퍼·등산가라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가 됐습니다. 특히 러닝 워치 시장에서는 아마추어부터 프로까지 믿고 쓰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어요. 러너라면 한 번쯤은 ‘가민병’에 걸린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요.

 

2024년 기준, 가민은 전 세계 웨어러블 시장 점유율 3위권을 유지하고 있고, 일반 스마트워치와 달리 진성 스포츠 팬덤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가민은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의 균형을 완벽하게 이루고 있어요.

 

 

1. 로고스 (Logos) — “왜 써야 하지?”에 대한 명확한 합리적 이유

 

가민이 시장에서 빠르게 신뢰를 얻은 건 ‘누가 봐도 합리적인 선택지’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기술력과 데이터로 설득했는데요. 군·항공용 GPS에서 출발한 만큼, 위성 정확도와 측정 기술은 타 브랜드 압도해요.

 

거기에 운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심박수, 페이스, VO2 Max, 훈련 부하, 회복 시간 등 전문적인 데이터 제공해요. 애플워치를 비롯해서 다른 스마트워치들과 비교해도 월등하죠. 스포츠별 맞춤형 라인업 (러너용 Forerunner, 아웃도어용 Fenix, 골프용 Approach)을 통해서 전문성을 높이기도 해요.

 

출처: 가민 홈페이지

 

이런 기능적 요소들로 인해서 소비자는 이성적으로 납득하게 돼요. “이걸 차면 내 운동 능력이 데이터로 관리된다.” “그냥 걷고 뛸 때 차는 시계가 아니라, 내 몸을 분석해 주는 장비다.” 같은 식으로요.

 

그 결과, 초보 러너는 ‘제대로운동하고 싶으면 가민부터’라는 말을 듣고 선택하고, 숙련자는 가민 없으면 불안해서 못 뛴다는 수준으로 신뢰하게 됩니다. 데이터로 사람의 머리를 설득해 ‘합리적 선택’이라는 포지션을 확실히 만든 거죠.

 

 

2. 파토스 (Pathos) — ‘나는 도전하는 사람이다’라는 감정

 

가민이 대단한 건, 단순히 기능 좋은 시계를 넘어서 ‘도전과 성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입니다. 가민을 착용하는 사람은 진짜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죠.

 

러너들은 마라톤 대회 첫 완주를 가민과 함께 합니다. 등산가들은 험한 산을 오르며 가민의 고도·날씨 데이터를 확인합니다. 골퍼들은 거리 측정과 코스 공략을 가민으로 합니다. 이 시계를 차는 순간, 나는 그냥 취미로 운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지하게 도전하는 사람이 되는 느낌을 받는 거죠. 또, 내 몸과 기록을 관리하는 순간, 나는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요.

 

결국, 가민은 감정을 건드렸습니다. ‘운동하는 나’라는 정체성, ‘도전하는 나’라는 자부심, ‘기록으로 성장하는 나’라는 만족감을 주면서 말이죠. 그냥 기능 좋은 시계가 아니라, 내 삶의 서사를 함께 써가는 브랜드가 된 거죠.

 

가민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3. 에토스 (Ethos) — 쌓아온 기술력과 전문성이 만든 신뢰

 

가민이 믿음직한 이유는 단순히 광고 때문이 아닙니다. 출신부터 남다른 전문성 덕분이죠.

 

군·항공 GPS에서 출발한 회사인 만큼 데이터의 정확도에 대한 신뢰가 생기죠. 저도 주변 사람들한테 가민을 사라고 영업 아닌 영업을 하는데요. 그때 빠지지 않고 하는 얘기가 GPS 전문 회사라서 정확하다는 거예요. 열이면 열, 그 얘기에 수긍을 하죠.

 

스포츠 시장에서도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는데요. 마라톤, 트라이애슬론, 사이클링 대회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면서 진정성을 보이고 있고, 전문 선수들도 가민을 훈련용 공식 기기로 채택하면서 신뢰성을 높이고 있어요.

 

그 결과 가민은 단순히 “좋은 시계”가 아니라, ‘정확도와 데이터로 무장한, 믿고 맡길 수 있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만듭니다.

 

 


 

 

독보적 팬덤을 가진 스마트워치, 가민이 스포츠·아웃도어 시장에서 독보적 팬덤을 가진 이유, 바로 로고스·파토스·에토스 세 가지가 절묘하게 설계된 브랜드 스토리 덕분이에요.

  • 로고스(논리): 데이터 기반 정확한 기록과 분석, ‘성장’의 근거 제공
  • 파토스(감정): 도전하는 사람,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감정적 몰입
  • 에토스(신뢰): 군·항공 GPS 기술력, 선수들이 선택하는 전문성

 

여러분의 브랜드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나요?

  • 왜 이걸 써야 하지?
  • 왜 마음이 끌리지?
  • 왜 믿어야 하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 있다면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브랜드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느낀표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