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단점 중 하나인 할루시네이션. 없는 사실을 마치 환각을 본 것처럼 지어내는 인공지능의 거짓말 증상인데요. 대표적인 할루시네이션 사례 중 하나는 인공지능이 “5.11이 5.9보다 크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 대화화면 캡처
실제 대화화면 캡처

 

 

이런 모습을 보면 황당합니다. 게다가 뉴스에는 “세종대왕이 맥북프로를 던졌다”라는 할루시네이션 사례도 보도되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인공지능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믿을 수 없어서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가끔 엉뚱한 답을 내놓는다는 이유만으로 완전히 배척해 버린다면,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스스로 차단하는 셈이 됩니다. 인공지능 시대, 우리의 목표는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2,400년 전 그리스의 한 현인이 했던 걱정을 한번 들어볼까요?

 

문자의 발명은 사용하는 자의 영혼 속에 망각을 가져다줄 것이오. 그들은 기억을 훈련시키는 것을 소홀히 할 것이기 때문이오

 

이것은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글과 문자를 경계했을까요? 사실 이 이야기는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드로스(Phaedrus)>에 자세히 나옵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이집트 신화 속 테우트와 타무스 왕의 대화를 예로 들어 문자가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지적합니다. 신화에 따르면, ‘문자’를 발명한 테우트 신은 타무스 왕에게 문자가 사람들의 지혜를 발전시키고 기억을 보조할 것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하지만 타무스 왕은 위에 인용한 말을 하며 경고하죠.

 

즉, 문자라는 기술이 생기면 사람들은 스스로 깊이 생각하기보다 외부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기억력도 약해질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소크라테스 입장에서 보면, 글을 읽는 것은 마치 겉으로만 아는 척하는 가짜 지혜를 양산할 수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문자가 사람들의 사고력을 완전히 없애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지식이 널리 퍼지면서 인류 문명은 크게 발전했죠. 소크라테스가 던진 비판적 시선은, 글을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라, 글을 사용하되, 그 속에 담긴 함정을 잊지 말라는 경고였는지도 모릅니다. 인공지능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잘못 사용하면 지식을 얕게 만들 수 있지만, 제대로 활용한다면 우리의 사고와 기억을 한층 더 확장해 줄 수도 있습니다.

 

 


 

 

15세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구텐베르크가 활판 인쇄술을 발명했을 때인데요. 수도원에서 수십 명의 수사들이 종일 앉아서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손으로 베껴 쓰던 책을, 갑자기 기계가 쏙쏙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기계로 만든 책의 가치를 의심했고, 책에서 영혼이 사라졌다며 반발했죠.

 

하지만 인쇄술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귀족과 성직자들만 보던 책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고, 지식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런 변화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혁신의 물결로 이어졌죠. 물론 손으로 쓴 책만을 고집하며 전통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큰 흐름은 이미 인쇄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현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코닥(Kodak)이라는 회사를 알고 있나요? 요즘 학생들에게는 옷에 붙어있는 로고 정도로만 기억되는 이 회사가 사실은 엄청난 규모의 카메라 회사였습니다. 필름 카메라 하면 단연 코닥이었던 시절이 있었죠. 더 놀라운 사실은 바로 이 코닥이 디지털카메라를 세상 처음으로 발명했다는 점입니다.

 

1975년, 코닥의 엔지니어였던 스티브 새슨(Steve Sasson)이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만들어냈는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코닥은 이 혁신적인 발명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회사 경영진들은 디지털카메라가 널리 퍼지면 기존 필름 판매가 줄어들까 봐 걱정했고, 결국 이 놀라운 기술의 상용화를 미루고 미뤘죠. 그사이 다른 회사들이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선점했고, 한때 세계 최고였던 코닥은 결국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반면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기업들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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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대명사 코닥, 이제는 의류 브랜드로 더 많이 알려진…

 

 

사실 이런 모습은 인간의 본성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인류는 오랜 역사 동안 변화를 두려워하고 새로운 것을 거부하려는 경향을 보여왔습니다. 산업혁명 시기에는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을 두려워한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는 일까지 있었죠.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라고 불린 이 저항 운동은 결국 시대의 흐름을 막지 못했고, 오히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사례가 말해주는 공통점은 최신 기술을 배척하기보다,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인공지능이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척해버리는 순간, 우리는 미래의 중요한 도구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 됩니다. 인공지능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지하고, 오류를 발견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더 좋은 정보를 이끌어 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인공지능이 놓친 부분을 채우거나, 인공지능의 오류를 분석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앞서 본 5.11과 5.9 비교 사례를 다시 한번 살펴볼까요? 두 수의 비교에서 인공지능이 실수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실수는 오히려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에게 5.9가 사실은 5.90이니 90과 11을 비교해 보면 어떨지 이끌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렇게 했는데도 인공지능이 또 틀린 답을 내놓는다면, 인공지능에게 코딩을 통해 두 수를 비교해 보라고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요즘은 추론에 특화된 인공지능도 많이 나왔기에, 수학적인 문제는 이런 특화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도 좋죠. 이처럼 인공지능의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문자가 오히려 인간의 사고력을 확장시켰던 것처럼 말입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결국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은 인류의 오랜 습관이었지만, 그때마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지혜롭게 활용한 이들이 시대를 이끌어왔다는 점입니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능력을 보완하고 확장해 주는 든든한 동반자입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AI 리터러시, 인공지능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인공지능의 한계를 알고, 그것을 보완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 마음가짐이자, 미래 사회에서 요구되는 진짜 ‘AI 리터러시’ 입니다.

 

 


4월에 출간 예정인 청소년용 AI 리터러시 책, <한 발짝 더, AI 세상으로> 책에 나올 내용 중 일부입니다. 책에는 좀 더 깔끔하게 요약 정리된 내용이 들어갑니다. 날 것의 글을 브런치에 공유드리니, 곧 나올 책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최재운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