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생태계’ ‘수소 생태계’ ‘스타트업 생태계’ ‘로컬 생태계’….
최근 경제 기사를 읽다 보면 ‘생태계’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어떤 산업의 생태계를 조성 또는 육성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사용된다. 생태계(ecosystem)는 본래 자연에서 생물과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균형을 이루는 시스템을 지칭한다. 현대 경제를 생태계에 비유하게 된 것은 그만큼 개별 기업 성장이 단순히 기업 내부적 이슈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이해관계자와 경영 환경 등 외부와의 상호작용에 달렸기 때문이다.

생태계 경제가 되면서 기업 생존전략도 변화하고 있다. 자사 자원과 역량에 관해서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면으로 여러 주체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해 나가는 일명, ‘공진화(co-evolution) 전략’이 필요해졌다. 공진화는 자연 생태계에서 빌려온 용어다. 기린이 높은 곳의 풀을 먹기 위해 목이 긴 형태로 진화한 것과 같이 진화는 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비즈니스의 공진화 전략에는 어떠한 방법들이 있을까?
첫째로 둘 이상의 플레이어가 손을 잡는 ‘파트너십 전략’이 있다.
기업이 각자 보유한 자산이나 역량을 결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꾀하는 것이다. 최근 업종을 넘나드는 파트너십 사례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가전회사 삼성전자와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가 파트너십을 맺고, 집과 자동차를 연결하는 카투홈(Car-to-Home)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영역을 뛰어넘는 파트너십을 통해 기업은 소비자의 매끄러운 경험을 증진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 사업 영역에서 생태계를 확장할 수 있다.
둘째 전략은 공동창조(co-creation)다.
기존 사업을 확장하는 앞의 전략과 달리 신사업, 신기술에 도전하기 위해 외부와 협력을 촉진하는 것이다. 독일 제약사 머크는 머크이노베이션센터를 설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이오 분야는 기술 개발 및 정보 유출에 매우 민감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으나, 외부 인력도 자유롭게 협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공진화 전략의 세 번째 유형은 경쟁기업 간 협력을 도모하는 ‘코피티션(Coopetition)’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국내 가전시장에서 경쟁 관계다. 하지만 연결성이 핵심인 스마트홈 시대를 맞이해 손을 잡기로 했다. 양사 모두 집 안의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스마트홈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으나 각 플랫폼에서 타사 제품도 제어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전 세계 15개 가전제품 기업이 참여하는 스마트홈 플랫폼 협의체 ‘HCA’에서 진행하는 표준화 작업의 일환으로 소개됐다. 스마트홈 경험이 한층 편리해지는 것은 생태계 전체가 함께 진보를 이루는, 말 그대로 공진화 전략일 것이다.
마지막은 참여자에 경계를 두지 않는 완전한 개방, ‘오픈 플랫폼’ 전략이다.
누구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 가는 것이다. IT업계에서는 오픈 플랫폼을 만들어 지난 수십 년간 급속도로 진보했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폰 앱 시장이다. 안드로이드 OS는 누구나 앱을 만들어 거래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개방하는 전략을 취했으며, 이로 인해 불과 십수 년 사이 모바일 생태계는 인류 생활을 바꾸어 놓았다.
이는 향후 물리적 인공지능(AI) 개발에도 기대되는 전략이다. 물리적 AI는 로봇이나 자율주행차같이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AI 시스템을 말한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지난 1월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CES)에서 물리적 AI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 세트와 시뮬레이션을 활용할 수 있는 개발 플랫폼 ‘코스모스(Cosmos)’를 발표했다. 개방적 생태계를 마련해 효율적이며,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도모하려 한다.

앞으로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공진화 전략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첫 번째는 IT 기술 발전에 힘입어 거의 모든 산업에서 ‘연결’이 심화하며 생태계적 성격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관리를 할 때도 운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 디바이스로 신체 상태를 측정하고, 휴대전화로 기록을 관리한다. 최근 개발된 스마트 운동기기들은 건강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상태에 맞게 운동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이런 건강 정보를 활용해 의료기관과 연계하는 서비스까지 나아갈 것이다.
두 번째로는 시장경쟁이 글로벌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시장이 개방된 지 오래됐다고는 하나 정보 흐름이 빨라지면서 현재 글로벌 시장은 거의 실시간으로 영향을 받는다. 특히 넷플릭스, 챗GPT 등 IT에 기반한 상품·서비스는 국경에 전혀 제한받지 않는다. 국가 경제가 얼마나 대외 시장에 개방돼 있는지를 나타내는 무역 개방성 지수는 1990년대 후반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급격히 상승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개별 기업 힘만으로는 어려운 만큼 ‘뭉쳐야 산다’는 말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또 하나 공진화 전략이 강조되는 이유는 ‘빅블러(Big Blur)’ 시대이기 때문이다. 산업 간 경계가 흐려지고, 전에 없던 상품·서비스가 쏟아진다. 전통적인 강자 기업도 기존 시장에 머물러 있기 어려워졌다. 일본의 문구 기업 ‘펜텔(Pentel)’은 잉크를 제조하던 기술을 발전시켜 3D 프린터용 재료를 개발하고 있다. 문구사업으로 유명한 기업 ‘바른손’은 영화 제작 및 게임 사업에 진출했다. ‘문구’라는 유사한 업종의 기업도 변화 방향은 무궁무진하다.
공진화는 대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종로의 광장시장은 120년 역사의 생태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로 했다. 스타벅스를 랜드마크로 유치하고 ‘덕질 발효 창고’, 장난감 박물관, 팝업 스토어 등 기존에 전통시장에서 떠올리기 어려웠던 공간들을 생태계 구성원으로 편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각자도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면, 주변을 돌아볼 시간이다.
권정윤 님의 브런치와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