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혁신상 무용론
올해 1월 진행했던 CES 2025에서 한국 기업들은 총 129개사가 혁신상을 수상하며, 참가 기업 수 기준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수상 실적에도 불구하고, 실제 투자 유치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표한 ‘CES 2024 혁신상 그 이후’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해 CES 혁신상을 수상한 116개의 기업들 중 지난 1년간 해외 투자유치에 성공한 기업은 ‘고레로보틱스’, 단 1개 기업에 불과했습니다. 국내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으로 넓혀봐도 20개 기업에 불과합니다. 전체 기업의 약 18%에 불과하며 기술적 우수성이 반드시 시장 성공이나 투자 유치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다보니 최근 몇 년 새 ‘CES 혁신상 무용론’에 대한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왜 매년 CES 혁신상을 받는 기업의 수는 늘어나는데, 무용론에 대한 이야기는 해가 갈수록 더 커지는 걸까요.
혁신성과 시장성의 괴리
CES 혁신상은 기술적 우수성과 창의성을 인정받아 얻는 명예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성공으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많은 스타트업이 기술 개발에 몰두하는 나머지, 실제 고객의 니즈와 구매력을 반영하지 못한 제품을 선보이게 됩니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은 ‘뛰어난 기술’이 아니라 ‘시장에서 통하는 솔루션’을 요구하게 됩니다.
CES 혁신상을 받은 많은 스타트업 중 약 70%가량이 아직 시리즈 A 미만의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은, 그들의 기술력은 인정받으면서도 시장에서는 아직 성과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초기 단계에서는 기술 개발과 제품 고도화에 집중하느라, 고객과의 직접적인 피드백이나 시장 검증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CES에 참가하는 기업들의 경우 기술력을 세일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질적인 매출이나 고객 풀을 확보하기 보다는 투자 유치에 집중하다보니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장의 요구를 철저히 분석하고 단순한 수상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과 시장 사이의 간극을 메꾸는 전략적 전환이 필수적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정부 및 공공기관 주도의 지원 구조
정부와 지자체는 스타트업의 성공을 위해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수상 실적을 늘려 정부와 지자체의 치적 쌓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논란도 있습니다. 특히 정부 지원의 경우, 숫자상의 성과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실제 투자 유치나 시장 진입과 연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수상 자체가 단순한 마케팅 도구로 전락할 위험도 있음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올해 CES의 한국관의 경우, 한국관 부스 내 부스는 시·도 광역단체를 넘어 구 단위의 기초단체까지 난립했습니다. 부스를 차린 목적이 지역을 홍보하기 위해서인지 관내 기업을 후원하기 위해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고 하는 후기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한국의 스타트업을 홍보하는 게 본래 목적이라면 지역 중심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나 헬스케어 같이 섹터 중심의 스타트업 부스로 개편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정부의 지원 정책이 스타트업의 개별 역량과 시장 검증 과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는 결국 후속 성장에 필요한 기업들의 맞춤형 지원으로 연결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타트업들이 혁신상 수상 이후 실제 제품이나 기술에 대한 사업 가속화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합니다.
중장기적으로는 단순히 수상과 투자 금액에 지원을 집중하기 보다는 실제 성과를 낸 기업들을 중심으로 지원 체계를 재정비해야 합니다. 이는 스타트업이 단기간의 성과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후속 지원 및 네트워킹 부족
수상의 영광은 일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이후 체계적인 후속 지원과 네트워킹이 부족하면 스타트업은 단기간의 주목에 머물게 됩니다. 하지만 현재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들은, 이른 바 ‘CES 혁신상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그 이후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혁신상을 받으면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미국 등과 달리 한국은 아직 장기적인 투자 유치나 해외 진출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정부와 지자체의 치적 쌓기 논란)가 있습니다. 후속 지원이 부재하면, 스타트업은 투자자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지 못합니다.
글로벌 네트워킹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국내에서 주목받은 스타트업이라 하더라도 해외 투자자들과의 긴밀한 소통이 없다면, 기술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지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스타트업은 자체 네트워킹 이벤트나 글로벌 데모데이를 통해 투자자와의 소통 채널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후속 지원과 네트워킹은 단순한 자랑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투자 시장 환경
글로벌 투자 시장은 최근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 등 외부 요인의 영향으로 매우 보수적인 분위기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심리는 더욱 신중해지며, 기술 혁신만으로는 투자자의 확신을 얻기 어려워졌습니다. 여러 보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보수적인 투자 환경은 기술력이 뛰어나더라도 시장에서의 성과와 재무 안정성을 입증하지 못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 VC 또한 금융사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보수적인 투자 기조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해 초기 기업들의 투자 유치 규모는 최근 10년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혁신상을 받은 기업들이 대부분 초기 스타트업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투자받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보수적인 투자 시장에서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타트업이 기술 개발과 동시에 구체적인 시장 전략과 재무 모델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래도 혁신상은 필요하다

CES 혁신상 수상은 스타트업의 기술력과 창의성을 인정받는 중요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곧바로 투자 유치나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기술과 시장 사이의 괴리, 정부 지원 구조의 한계, 초기 단계의 미성숙, 후속 지원과 네트워킹 부족, 그리고 보수적인 투자 시장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현실입니다.
미디어에서 혁신상 무용론이 계속 언급되고 있는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상을 수상하는 것은 기업 성장에 있어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라고 판단됩니다. 기술력과 시장에 대한 검증이 아직 충분히 되지 않은 초기 스타트업들은 투자 유치에 있어 ‘CES 혁신상’ 이라는 명함이 주는 무게감은 분명히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가장 부족한 글로벌 무대 경험을 CES에서 채울 수 있다는 점도 혁신상에 집중하는 한국 스타트업 정책이 단점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CES 주관사 전미소비자기술협회(CTA)는 혁신상 수상작을 따로 모아 전시하고, 웹사이트와 잡지에 수상기업과 제품을 수시로 소개하곤 합니다. 큰 시장이 밖에 있는 지리적 특성 상, 홍보 수단이 절실한 스타트업들에게 이만한 마케팅 기회는 드문 기회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사에서 본 한 스타트업 대표의 한마디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CES 혁신상이 스펙 쌓기라구요? 그 스펙이 거래처를 트는데 도움이 되는데, 어떤 스타트업이 마다하겠습니까?”
Bennett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