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녁에 도산대로를 걷는데 호텔들이 보였어요. 그중에서도 포포인츠가 눈에 띄었는데요. 큼지막한 ‘FOUR POINTS’라는 글 밑에 작은 글씨로 쓰인 ‘BY SHERATON’이라는 글자 때문이었어요.
FOUR POINTS면 FOUR POINTS 지, ‘BY SHERATON’은 왜 붙인 걸까요? 어떤 의도로 소심한 글씨를 남겨 놓은 걸까요?
은근하게 믿음을 주는, 약보증
보증: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하여 책임지고 틀림이 없음을 증명함
포포인츠라는 이름 뒤에 ‘바이 쉐라톤’을 붙인 것은 일종의 보증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포포인츠는 쉐라톤과 마찬가지로 메리어트 인터내셔널(Marriott International) 계열의 호텔 브랜드 중 하나예요. 하지만 포포인츠 브랜드 자체는 인지도가 높지 않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포포인츠가 전혀 새로운 브랜드로 인식될 것이고,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브랜드의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비용을 써야 하는 상황이에요.
반면 쉐라톤은 글로벌 호텔 체인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소비자들의 인지도와 신뢰도도 높죠. 포포인츠라는 이름 뒤에 ‘바이 쉐라톤’을 붙인 것은 쉐라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인지도와 신뢰도를 빌려오기 위함이에요. 일종의 보증인 것이죠.
포포인츠는 새로운 브랜드이지만, 쉐라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통해 만들어졌고, 쉐라톤의 이름으로 그 품질을 보증한다.
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만약 쉐라톤의 명성을 가져다 쓸 거면 굳이 포포인츠라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쉐라톤 호텔을 더 만들면 될 텐데 말이죠.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이 포포인츠라는 브랜드를 구태여 따로 만든 것은 쉐라톤과 지향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이에요.
쉐라톤이라는 브랜드는 고급 풀서비스 호텔을 지향하고 있죠. 소비자가 기대하는 서비스의 품질도 높고 그만큼 가격도 비싸고요. 하지만 호텔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높은 품질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죠. 대표적으로 출장을 온 고객들이 그럴 거예요. 쉐라톤에 묵기에는 비용도 부담이고, 고급 레스토랑을 이용할 의향도 별로 없죠. 이런 비즈니스 목적의 투숙객을 위한 브랜드가 필요했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가성비를 추구하는 포포인츠라는 브랜드예요.
여기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럼 쉐라톤을 더 강조해서 ‘쉐라톤 비즈니스 호텔’ 같은 이름으로 만들 수는 없나?”
이런 전략을 ‘강보증’이라고 해요.
전면에 나서는 강보증
만약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이 아닌 ‘쉐라톤 비즈니스’라는 이름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쉐라톤의 신뢰는 고스란히 가져올 수 있었겠지만, 아마 소비자들은 이 호텔을 여전히 비싼 호텔로 생각했을 거예요. 새로운 타깃층에게 어필해야 하는데, 심리적 장벽이 생겨버리는 것이죠.
더 나아가서 쉐라톤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어요. 쉐라톤 하면 떠오르는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는데, 쉐라톤이 비즈니스호텔을 같이 한다는 인식은 이런 럭셔리 이미지를 해칠 수 있어요. 모브랜드의 신뢰성을 전이하려다 되레 모브랜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강보증 전략은 신중하게 써야 해요.
물론 이런 강보증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신뢰성이 중요한 전자제품이나 의약품 산업이 대표적이에요.
LG전자는 제품군별로 전문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에어컨(LG WHISEN), 세탁기(LG TROMM), 주방 가전(LG DIOS) 등이죠. 이런 하위 브랜드를 운영할 때 단독으로 쓰지 않고 LG를 전면에 내세우며 신뢰도를 높이고 있어요.
예를 들어 LG 휘센은 LG의 기술력과 품질 보증을 그대로 이어받으며, 소비자들은 ‘LG’라는 이름만 보고도 기본적인 품질과 신뢰성을 보장받는다고 느껴요. LG 휘센이 새로운 공기 청정 기능을 추가하거나 혁신적인 냉방 기술을 선보일 때, 소비자들은 “LG가 만들었으니 믿을 만하다”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죠.
보증을 거부하고 홀로 서는 무보증
최소한의 신뢰를 전이시키는 약보증, 모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강보증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브랜드를 통해 보증을 하고 있죠. 이와 반대로 이런 보증을 거부하는 홀로서기 브랜드들도 있습니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예로 들 수 있어요.
픽사는 디즈니가 인수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이지만, 여전히 독립적인 브랜드로 운영되고 있어요. ‘디즈니 픽사’라고 하지 않고, ‘픽사(Pixar)’ 단독으로 브랜드를 강조하는 이유는 픽사가 가진 독창성과 크리에이티브 한 이미지 때문이에요.
픽사는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인사이드 아웃 같은 혁신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했어요. 만약 픽사가 ‘디즈니 픽사’라는 강보증 전략을 사용했다면, 소비자들은 픽사의 개성을 가족 중심적인 디즈니의 하위 브랜드처럼 인식했을 가능성이 커요.
디즈니는 픽사의 혁신적인 스토리텔링과 차별화된 애니메이션 기법을 보장하는 대신, 픽사가 독립적으로 창의적인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무보증 전략을 선택한 것이죠.
이처럼 픽사는 독립적인 브랜드 가치를 키우면서도, 디즈니라는 모회사와 협력하는 방식을 통해 고유한 브랜드를 유지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어요.

브랜드는 소비자의 인식 속에 형성된 무형의 자산이죠. 그런 점에서 브랜드도 보증을 서고, 보증을 받을 수 있어요. 그 강도와 형태는 모브랜드와 서브 브랜드 각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심사숙고해서 정해야 win-win 하는 보증 전략이 될 수 있어요.
느낀표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