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올해 CES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뉴스거리로 가득하다. 매일 쏟아지는 소식들을 접하다 보니, 무리를 해서라도 현장에 가볼 걸 하는 아쉬움이 절로 든다. 내년에는 어떻게든 직접 발걸음을 해볼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수많은 화제 중 단연 백미는 인공지능 하드웨어 시장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선보인 기조연설이었다. 한국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은 역시나 차세대 GPU인 5000번대 제품군의 공개였다. 놀라운 성능과 4000번대 제품 대비 합리적인 가격(국내 가격은 안 합리적)에 네티즌들은 어떤 GPU를 구매할지 고민에 빠졌다. 중고나라에서는 4000번대 제품 시세가 하루 만에 100만 원이나 폭락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젠슨 황이 공개한 새로운 GPU (출처: 연합뉴스)
젠슨 황이 공개한 새로운 GPU (출처: 연합뉴스)

 

 

국내 언론은 젠슨 황이 엔비디아 신제품의 인공지능 메모리(HBM)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아닌 미국의 마이크론을 선택했다는 점을 앞다퉈 보도했다. 키노트 직후 진행된 국내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그는 “삼성전자는 HBM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라고 언급했고, 이 발언은 순식간에 뉴스 속보로까지 이어졌다.

 

 

어제(1/8)를 뜨겁게 달군 뉴스 속보
어제(1/8)를 뜨겁게 달군 뉴스 속보

 

 

젠슨 황의 발언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디자인부터 모든 것을 다시 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보인다. 하지만 발언 전문을 살펴보면 다각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그는 삼성과 하이닉스를 매우 훌륭한 메모리 기업이라고 치켜세웠으며, 엔비디아가 처음 HBM을 도입할 당시 삼성이 최초 공급사였다는 점도 특별히 언급했다. 때문에 그의 발언을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결국 해낼 것”이라는 뉘앙스로 해석하는 기자들도 적지 않다. 하나의 발언을 놓고도 해석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는 법. 진정한 속내는 결국 젠슨 황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위 두 가지 이슈에 가려졌지만, 젠슨 황이 이번 키노트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는 따로 있다. 바로 ‘AI의 물리적 확장’이다.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텍스트, 이미지, 영상을 다루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 엔비디아는 실제 세계를 디지털로 옮겨와 학습시키는 ‘Physical AI’ 시대의 막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인공지능에서 가장 핵심은 학습이다. 젠슨 황이 예로 든 자율주행 분야만 봐도 그렇다. 많은 기업들이 자율주행을 위한 학습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현실’에서 자율주행 데이터를 구해야 하는데, 스타트업들에겐 이것이 넘기 힘든 산이다. 웨이모나 테슬라가 자율주행을 선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자율주행차를 운행하며, 수십억 마일에 달하는 실제 주행 데이터를 학습해 성능을 개선해 나간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장벽이다. 어찌 따라잡을 수 있을까?

 

젠슨 황은 이 게임의 룰을 완전히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제시한 코스모스(Cosmos)는 현실 세계를 가상으로 재현해 무한대의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한다. 단순한 가상세계가 아닌, 물리적 법칙까지 반영된 ‘세계 기반 모델(World Foundation Model)’이 탄생할 전망이다. 이렇게 현실 세계가 가상으로 옮겨지고, 가상세계에서의 데이터가 다시 현실에 적용되는 세상. 이것이야말로 엔비디아가 그리는 미래다. 인공지능의 전선을 디지털 공간에서 물리적 세계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젠슨 황이 이번에 공개한 새로운 스케일링 법칙
젠슨 황이 이번에 공개한 새로운 스케일링 법칙

 

 

엔비디아가 그린 청사진은 분명하다. 젠슨 황은 새로운 스케일링 법칙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인공지능의 연산량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자사 GPU의 기하급수적인 판매량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어떤 형태의 인공지능이 등장하든 하드웨어는 필수적이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엔비디아의 GPU가 있다. 시장도 이에 공감했다. 젠슨 황의 키노트 직후 엔비디아의 주가는 또다시 올랐다. 왜 추가 매수를 안 했을까? ㅠㅠ

 

 


 

 

여기까지 읽은 분(과연 몇이나 있겠냐만)들은 의문이 들 것이다. 제목에 ‘교육’이 들어가는데, 아직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말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젠슨 황의 기자 간담회 후반부에는 교육에 관한 의미 있는 질문이 있었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학생들이 학교에서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학교는 어떤 종류의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젠슨 황은 이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먼저 꺼냈다. 그는 과학 분야 연구를 위해 컴퓨터 사용법을 배워야만 했던 첫 세대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 세대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업무를 수행하는 방법을 배우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중요한 발언.

 

“AI가 새로운 컴퓨터이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필수적으로 배워야 했다. 이처럼 앞으로의 학생들은 인공지능과 협업하여 어떻게 더 창의적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데이터를 분석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현세대가 컴퓨터를 필수적으로 배우듯, 미래의 모든 학생은 인공지능 활용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 젠슨 황의 메시지다. 그는 특히 기자나 작가를 예로 들며, 인공지능이 생성한 텍스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직감’과 ‘비판적 시각’을 더해 한층 풍부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새로운 세대와 교육 기관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인공지능을 몰라도 직업이 굴러가던 시대는 확실히 저물어가고 있다. 이제 학교에서는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자연스레 논의되어야 한다. 이번 CES를 통해 확인했듯이 인공지능이라는 플랫폼은 또 다른 혁신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 중심에서 능동적으로 기술을 다룰 줄 아는 인재가 절실하다.

 

미래의 문을 여는 주체는 다름 아닌 사람이며, 특히 새로운 세대다. 인공지능은 ‘도구’일 뿐, 인간의 의지와 배움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 도구를 가장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쪽이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젠슨 황이 강조했듯이, 우리는 인간만이 가진 직감과 비판적 시각을 갖춘 채로 인공지능이란 도구를 어떻게 배우고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속한 대학을 비롯한 많은 교육 기관의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과거의 교육 방식에 안주한다면 다음 세대의 길을 우리가 막아설 수도 있다.

 


슈퍼피포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