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지나갈 수 있게 비켜 주세요.
최근 일부 지역에선 길에서 배달 로봇을 마주치는 일이 종종 있다. 커다란 눈을 달고 있는 로봇들은 알아서 사람을 피해 가기도 하고,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길을 막고 있는 때는 “비켜 달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로봇을 보며 ‘기특하다’는 반응이다.
식당에서도 서빙 로봇을 자주 접한다. 서빙을 하는 로봇이지만 팔이 없어 손님이 직접 음식을 내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서빙 로봇이 사람과 마주칠 때 ‘>_<’와 같은 표정을 지으면 웃음을 터트리면서 좋아한다. 특히 어린이 손님에게 인기가 좋다.
기술에서 이처럼 얼굴이 중요해지고 있다. 로봇 등 기술 자체가 얼굴을 갖기도 하고, 기술이 인간의 얼굴과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기술이 인간의 얼굴과 표정을 구현해 내기도 한다. 얼굴과 관련한 기술, 일명 ‘페이스테크(Face Tech)’가 뜨고 있다.
페이스테크가 필요한 상황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 사람과 기술의 접점에서 기술이 어떤 얼굴을 보여 주는지가 중요하다. 요즘 집 안을 돌아다니는 ‘집사 로봇’을 다양한 기업에서 개발 중이다. 예를 들어 LG전자에서 출시한 Q9은 ‘얼굴’에 해당하는 커다란 전면 디스플레이에 43종이 넘는 온갖 표정이 나타난다고 한다. 커다란 눈을 보면 어쩐지 훨씬 더 친근감이 들기 마련이다. 파나소닉에서는 ‘니코보’라는 귀여운 집사 로봇을 내놨다. 다른 로봇들처럼 작은 크기에 집 안을 돌아다니지만, 눈을 깜박이거나 꼬리를 흔드는 등 감정을 표현하는 제스처가 풍부해 마치 반려동물 같은 느낌을 준다.
페이스테크가 필요한 두 번째 상황은 사람과 기술이 상호작용할 때다.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얼굴의 패턴으로 감정을 읽는 안면인식 기술은 매우 유용하다. 인간의 안면근육은 43개로 7000~1만 개의 표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만큼 이를 읽어 내는 건 고도의 기술이지만, 얼굴에서 다양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일본의 정보기술(IT) 회사 NEC는 미묘한 표정 변화도 포착하는 안면인식 기술과 목소리 억양 등 비언어적 요소를 분석함으로써 환자들이 병원에서 진료받는 과정에서 건강 상태와 관련해 이전에 고려하지 못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돕는다.
운전 중에도 안면인식 기술이 활용된다. 최근 자동차 소프트웨어에 도입되는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은 차량 내부에서 운전자의 눈 움직임과 표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졸음운전이나 주의력 저하 등으로 인한 사고를 방지한다. 경고음을 울리거나 차량 제어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페이스테크가 부상하는 곳은 비대면 상황이다. 흔히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상태에서는 비언어적 요소가 제한을 받기 때문에 충분한 교감이 어렵다고 느낀다.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에서 이모티콘을 많이 쓰게 되는 것도 텍스트로만 감정을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어서다. 이 때문에 메타버스에서 실감 나는 상호작용을 돕기 위해 아바타들이 실제 사용자의 표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개발되고 있다. 면접이나 상담 등 정서 교류가 필요한 경우 유용하게 활용된다.
비대면 쇼핑 상황에서도 사용자의 얼굴을 구현하는 기술이 유용하게 사용된다. 특히 뷰티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용 중인데, 예를 들어 로레알의 ‘모디페이스(ModiFace)’는 자신의 얼굴에 메이크업 제품을 가상으로 입혀 보는 서비스다. 스마트폰 카메라만으로도 립스틱이나 아이섀도 등 자신의 얼굴에 테스트해 볼 수 있어 오프라인 쇼핑이 필요했던 제품에 장벽을 낮추고 있다.
기술에서 얼굴의 활용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명백하다. 얼굴이란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이며 직관적인 소통 수단이기 때문이다. 흔히 소비자가 기술을 사용할 때 만나게 되는 접점을 ‘UI(User Interface)’ ‘UX(User experience)’라고 한다.(※UI는 시각적 요소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에 관한 용어이고, UX는 UI를 포함해 궁극적으로 기술을 사용하면서 소비자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나타내는 말이다) UI, UX에 ‘얼굴’을 활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들이 직관적으로 기술을 쓸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페이스테크가 내포한 핵심 가치는 ‘어포던스(affordance)’다.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우리말로 번역하면 ‘행동유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어포던스가 높다’는 말은 어떤 기술이나 물건, 공간이 별도의 지시사항 없이도 ‘아, 이 버튼을 누르면 되겠다’ 혹은 ‘여기로 들어가면 되겠다’ 등 사용자에게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술에서 UI, UX를 직관적으로 설계한다는 것은 어포던스가 높다는 얘기다.
갈수록 기술은 고도화하고 제품은 복잡해진다. 소비자 입장에선 아무리 뛰어난 기능이 탑재돼 있어도 어포던스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 해당 기술을 선택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소비자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신기술·트렌드의 초기 수용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리어답터라면 열심히 공부해 신기술을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써 보려 하겠지만 대다수는 제품을 사용할 때 노력을 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초고령 사회에 돌입했다. 고령층 소비자는 불가피하게 기술 적응력 저하를 겪는다. 다시 말해 기술의 어포던스가 더욱 중요해진다.
기술이 얼굴과 표정을 가져야 한다고 해서 인간과 똑같은 얼굴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술이 인간을 닮아 갈 때 사람들은 초반엔 신기해하면서 호감을 표시하지만 유사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해당 기술의 호감도가 급격히 하락하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겪는다. 중요한 것은 생김새가 아니라 직관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한 지 여부다. 기술이 웃을 때 사용자도 웃을 것이다.
권정윤 님의 브런치와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