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이 70여 일 남았다. 필자를 포함한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는 소비 등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변화를 아우르는 10대 트렌드 키워드를 발표했다.
2025년을 준비하는 10대 키워드의 표제어는 푸른 뱀의 해를 맞이해 ‘스네이크 센스(SNAKE SENSE)’로 정했다. 뱀은 손도 발도 없지만 몸으로 땅의 미세한 진동을 느끼고 혀로 공기의 온도와 냄새를 지각하는 만큼 굉장히 예민한 감각을 지녔다고 한다. 지지부진한 경제 상황이 예상되는 2025년을 헤쳐 나가기 위해 뱀의 감각으로 트렌드를 예리하게 알아채고 기회를 낚아채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10가지 키워드를 간략히 살펴보자.
1. 옴니보어 :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요즘 사람들
첫 번째 키워드는 ‘옴니보어(Savoring a Bit of Everything: Omnivores)’다. 옴니보어는 사전적으로 ‘잡식성(雜食性)’이라는 의미지만, 형용사형이 되면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도 있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빌려 문화적 취향이 매우 폭넓은 사람을 옴니보어라고 부른다.
2025년 트렌드에서 ‘옴니보어’는 라이프스타일 전체로 확대된다. 나이와 성별, 소득, 인종 등 오랫동안 사람들을 구분 짓던 특성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소비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이들이다. 소비의 전형성이 무너지며 집단의 차이는 줄고, 개인의 차이는 중요해지는 것이다.
2. 아보하 : ‘아주 보통의 하루’
두 번째 키워드는 ‘#아보하(Nothing Out of the Ordinary: Very Ordinary Day)’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말인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여 ‘소확행’이라고 부르던 것에 빗대 작명했다.
대단한 사회적 성공이 아니더라도 작아도 나만의 행복을 찾던 사람들이 이제는 특별히 좋은 일, 행복한 일이 없어도 된다고 말한다. 오늘 하루를 별 탈 없이 안온하게 지낸 것만으로 만족하며 평범한 일상에 집중하는 것이다. ‘아보하’ 키워드는 대한민국의 행복담론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시작이다.
3. 토핑경제 : 지갑을 열게 하는 건 도우가 아니라 토핑
세 번째 키워드 ‘토핑경제(All About the Toppings)’는 지나치기 쉽지만, 시장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변화에 주목한다. 마라탕, 요아정(요거트 아이스크림의 정석) 등 요즘 시장에서 잘되는 상품의 공통점은 뭘까? 휴대전화, 가방, 운동화에 텀블러까지 소비자들이 무엇이든 꾸미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본품보다 추가하거나 부가적으로 더해지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피자에 비유하면 도우보다 토핑이 중요하다. 구매 그 자체보다 구매 후 직접 나만의 것을 완성해 가는 재미를 찾는 소비자의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
4. 페이스테크 : 얼굴을 가진 기술
네 번째 키워드는 향후 기술 분야에서 주목할 키워드, ‘페이스테크(Keeping It Human: Face Tech)’다. 말 그대로 얼굴을 가진 기술이다.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신제품(신기술)이 갖춰야 할 덕목은 뭘까? 고도의 성능이나 전례 없는 혁신? 소비자에게는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만나면 얼굴부터 보듯이 기술을 빠르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얼굴을 갖는 것, 어려운 말로 표현하자면 ‘어포던스(affordance)’를 갖추는 것이다. 어포던스란 행동유도성이라 번역되는데, 어떤 제품이나 환경이 사용자로 하여금 별도의 지시가 없더라도 행동이나 상호작용을 유도하도록 설계된 것을 말한다. 기술은 언제나 사용자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기억하는 기업과 제품이 살아남을 것이다.
5. 무해력 : 풍진 세상에서 사랑받는 비결
다섯 번째 키워드는 이름부터 마음이 편안해지는 ‘무해력(Embracing Harmlessness)’이다. 최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작고 귀엽고 서툴고 순수한 것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미니어처, 귀여운 캐릭터, 동물 같은 것들이다. 이들은 모두 해롭지 않아 우리에게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나를 위협하는 것이 가득한 험한 세상에서 무해한 존재는 그 자체로 힘을 갖는다. 단지 디자인적 요소가 아니라, 브랜드, 정치, 사회, 문화 등 온갖 영역으로 ‘무해함’이라는 키워드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6. 그라데이션 K : ‘K’의 재정의
여섯 번째 키워드는 ‘그라데이션 K(Shifting Gradation of Korean Culture)’다. K팝, K푸드를 넘어 영역을 불문하고 K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K(한국적인 것)란 무엇인가?
국내 외국인 인구 비중이 5%에 육박하면서 ‘단일민족’이라 외쳤던 대한민국은 이제 다문화국가로 불리게 되었다. 사람, 문화, 시장에서 세계화와 로컬화가 뒤섞이면서 지금 K는 ‘0 아니면 1’이 아니라 그사이에 펼쳐진 ‘그라데이션’으로 바라봐야 한다. 특히, K에 대해 외국으로 뻗어가는 것만 생각했다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다채로운 색깔로 물들어 가고 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7. 물성매력 : 오감으로 체험
일곱 번째는 ‘물성매력(Experiencing the Physical: the Appeal of Materiality)’이라는 키워드다. 무엇이든 디지털화하고 인공지능(AI) 로봇이 일상화한다고 해도 사람은 여전히 물질의 세계를 살아간다. 오감으로 보고 만지고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소비자들은 콘텐츠와 브랜드, 조직문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체화된 물성으로 경험하고자 하며, 그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8. 기후감수성 : 기후 위기에 능동 대응
여덟 번째 키워드는 ‘기후감수성(Need for Climate Sensitivity)’이다. 지구인이라면 누구라도 현시점에 가장 필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까지 기후위기가 언젠가 다가올 수도 있는 먼 미래의 일로 여겨졌다면,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기후재난은 당장 우리의 문제가 됐다. 기후 문제가 일상과 시장, 나아가 공공 영역에서도 주목해야 할 주제가 되면서 이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기후감수성’이 모두의 필수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9. 공진화 전략 : 경계 넘어선 연계
아홉 번째 ‘공진화 전략(Strategy of Coevolution)’은 자연 생태계의 ‘공진화(共進化)’ 개념을 현대 비즈니스에 적용한 것이다. 자연 생태계에서 모든 개체는 나 홀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한다. 상호연결성이 높아진 오늘날 경제에서 같은 업종은 물론, 산업의 경계를 넘어 긴밀한 연계가 중요해졌다. 단순한 협력을 넘어 그 이상으로 공동의 성장을 도모할 때 비즈니스 생태계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10. 원포인트업 : 성장을 위한 작은 시작
마지막 키워드는 ‘원포인트업(Everyone Has Their Own Strengths: One-Point-Up)’이다. 현대인의 자기계발은 더 이상 원대하지 않다. 나를 개조해 이상향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에서 출발해 실현 가능한 목표만큼만 꾸준히 실천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커리어 계발은 물론, 운동·뷰티 등 자기관리의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다.
2025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도 ‘원포인트업’이다. 큰 변화도 작은 시작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오늘, 나만의 원포인트를 시작하라.
권정윤 님의 브런치와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