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축구를 좋아하고 EPL도 자주 보는 편이다. 축구는 스타트업이랑 비슷한 면이 많아, 두 주제를 엮어서 글을 쓰면 재밌겠다 싶어서 한번 써봤다.


 

1. 수비가 약하면 우승할 수 없다

 

꼭 축구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고, 모든 구기 종목에 통용되는 격언이 하나 있다. 바로 ‘공격을 잘하면 승리를 하지만, 수비를 잘하면 우승한다’는 말이다. 팀이 공격을 아무리 잘해도, 수비를 잘 못한다면 강한 공격력으로 한두 번은 이길 수 있겠지만 토너먼트 혹은 장기 리그 레이스에서 우승할 수 없다.

 

또한 한 경기 내에 집중해서 본다면, 축구에서 수비가 불안정하면, 공격 작업 자체에 차질이 생긴다. 특히 현대 축구의 특성상 공격의 시작점은 골키퍼와 센터백을 비롯한 후방 빌드업이고, 수비의 시작점은 최전방 자원들의 유기적인 전방 압박이다. 후방 빌드업에 차질이 생기면 공격 작업에 차질이 생기고, 전방 압박에 문제가 생기면 수비에 차질이 생긴다.

 

스타트업도 이와 동일하다. 스타트업에게 수비는 기술, 프로덕트이고 공격은 세일즈이다. 세일즈가 강하면 초반에 경쟁사 대비 강력하게 치고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기술 혹은 프로덕트가 불안정하다면, 강력한 세일즈를 오래 끌고 갈 수 없다. 왜냐면 기술, 프로덕트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많고, 당장 프로덕트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한다면 자연히 운영으로 여러 이슈들을 해결해야 한다. 운영으로 여러 이슈들을 해결한다는 것은 그만큼 프로덕트에 집중하고, 더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 시간이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세일즈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프로덕트에서 문제가 생기면, 세일즈 자체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세일즈를 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이 붙는 것은 당연하고, 세일즈를 하는 동안 프로덕트 자체에 이슈가 생긴다면 이후의 세일즈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축구의 기본은 수비, 스타트업의 기본은 프로덕트

 

 

2. 박스투박스 미드필더

 

위에서 스타트업에게 수비는 기술과 프로덕트이고 공격은 세일즈라고 했는데,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간다면 IT 스타트업에서 수비수는 개발자, PM은 미드필더 그중에서도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세일즈, 마케팅은 공격수라고 할 수 있다.

 

박스투박스 미드필더는 우리 팀 박스에서부터 상대 팀 박스까지 움직임을 가져가는 미드필더라는 뜻이다. PM은 축구 경기로 치면 박스투박스 미드필더와 가장 비슷하다. PM은 실제로 코딩은 하지 않더라도 개발적인 이슈를 알고 이에 대처하면서, 때로는 세일즈 작업을 돕기도 한다. 박스투박스 미드필더가 수비 시에는 우리 박스에서 수비수들을 돕고, 공격 시에는 상대 박스에서 공격수들을 돕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스타트업에서의 PM은 세 종류의 PM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기술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기술 이슈를 해결하는 테크니컬 PM. 둘째로는 UX 지식과 디자인 능력을 기반으로 최적의 UX를 만들어내는 UX PM. 마지막으로는 세일즈 기반의 PM. 세일즈 기반의 PM은 프로덕트를 바탕으로 세일즈를 전개해 나갈 수 있고, 반대로 세일즈에 기반해 필요한 프로덕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미드필더도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가 나눠지고, 팀에서 균형을 맞춰서 미드필더를 기용하듯, PM 역시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고 조직에서 균형 있게 다른 능력을 가진 PM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 기반의 TPM PM은 수비를 안정화하고, 공격 작업에 시작점이 되는 홀딩 미드필더로 볼 수 있고, UX 기반의 PM은 기술을 바탕으로 유저 및 세일즈를 위한 최적의 UX를 짠다는 점에 따라서, 수비 진영에서부터 공격 진영까지 공을 운반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볼 수 있다.

 

세일즈 기반의 PM은 세일즈와 비즈니스 전개에 필요한 작업들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공격 진영에서 킬패스를 뿌리거나 때때로 직접 박스 타격을 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볼 수 있다. 바르셀로나의 사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 일명 세 얼간이 조합이 각자의 영역에서 극한의 능력치를 발휘하면서 팀의 성적을 만들어낸 가장 좋은 예시가 아닐까 싶다.

 

 

세얼간이

 

 

3.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하다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가 한 말이다. 원래는 부진을 겪던 S급의 선수가 다시 본래의 기량을 펼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은 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원래 일을 잘하던 구성원이 개인적인 슬럼프든, 무엇이든 순간적으로 맡은 일을 기대하는 만큼 잘 해내지 못할 수 있다. 다만 그 시기가 지나간다면, 원래 일을 잘하던 구성원은 다시 원래의 기량을 회복하고 기대하는 만큼 맡은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다. 탄탄한 기본기 없이는 S급이 될 수 없다. 기본기가 탄탄하다면 순간적으로 부진해도 다시 기본기를 바탕으로 기량을 회복할 수 있다.

 

사실 실력에 초점을 둔 말이지만, 태도에도 적용이 된다. 태도 역시 폼과 클래스가 있다. 평소의 태도가 좋은 구성원이라면 업무적으로 부진하거나 폼이 좋지 않아도, 높은 클래스의 태도를 꾸준히 보여줬기 때문에, 주변에서 다시 폼이 좋아질 때까지 믿고 기다려 줄 수 있다. 반면, 평소 태도가 좋지 않은 구성원이 업무적으로 부진하거나 폼이 좋지 않으면, 주변으로부터 더 많은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태도가 좋지 않은 선수는, 폼이 좋지 않을 때, 팬과 팀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팀을 떠나게 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사실 태도가 좋지 않은 선수는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도 팀과 팬, 언론으로부터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실력은 오래가지 않고, 태도는 오래 지속된다. 따라서 실력의 클래스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도의 클래스를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국나이 40에도 클래스를 보여주는 모드리치

 

 

4.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꼭 축구뿐만이 아니라 팀플레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격언이다. 전 맨유 감독 알렉스 퍼거슨이 한 말로 알려져 있다. 이 말은 스타트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조직보다 위대한 구성원은 없다’.

 

퍼거슨 감독은 아무리 뛰어난 스타플레이어라도 팀 분위기를 해치면 가차 없이 팀을 내보냈다. 언론에 공개적으로 팀원들을 비판한 로이 킨을 내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꼭 로이 킨 뿐 아니라 베컴 등의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내치면서 팀의 기강을 잡았다. 퍼거슨 감독의 성공 요인이 꼭 이것뿐만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팀 분위기 및 조직력을 최우선으로 삼고 팀의 기강과 규율을 확립한 것이 수많은 성과들의 근간이 되었을 것이다.

 

스타트업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인재는 없다. 스타트업에서는 흔히 특정 스킬을 갖고 있는 구성원, 혹은 특정 히스토리에 대해 빠삭히 알고 있는 구성원들이 나가면 회사가 굴러가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회사는 굴러간다. 조직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특히 다양한 스킬과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나 하나 없으면 회사 안 굴러간다는 말을 하는 자기 객관화가 안된 구성원은 조직에 불만을 가지며 팀 분위기를 해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구성원들이 실제로 조직에 불만을 가지면서 조직 분위기를 해친다면, 빠르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조직 분위기와 규율이 무너지고, 당장의 대응을 위해서 조직 문화 혹은 분위기를 희생하는 모양새가 된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고, 조직보다 위대한 구성원은 없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더라도 팀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용납하면 안 된다.

 

 

퍼기의 헤어드라이어

 

 

5. 축구는 감독 놀음

 

축구는 감독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감독의 전술에 따라서 팀의 경기력이나 성적이 크게 차이나는 경우에 주로 인용된다. 똑같은 선수단이라도 감독이 어떤 전술을 들고 오는지에 따라 경기력이 크게 차이가 난다. 선수단은 그대로이고 감독이 바뀌어 새로운 전술을 입히면 팀이 더 좋은 성적을 내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로 감독 하나 바뀌었다고 팀 성적이 급 하락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축구를 감독놀음이라고 한다.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리더가 어떤 비즈니스 전략을 들고 오는지에 따라서 조직의 성과가 좌우된다. 비즈니스에서 좋은 전략은 구성원들이 200% 노력하지 않아도 성과를 내는 전략이라는 말이 있다. 구성원들이 딱 각자의 몫만 해줘도 성과를 내는 전략이 진짜 돈을 벌고 조직을 유지시킬 수 있는 전략이다. 이런 전략에서 구성원들이 200%의 노력을 하고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한다면 더 빠른 성장과 성공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200% 노력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비즈니스 전략이 잘못된 것이다.

 

전술과 상관없이 피치 위에서 뛰는 축구 선수들은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경기의 승패는 선수 개개인의 노력에만 달려 있지 않고, 팀 전체 전술에 달려있다.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전략과 상관없이 성숙한 태도를 지닌 구성원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 하지만 좋은 결과는 구성원 개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먼저 올바른 비즈니스 전략이 선행되어야 한다.

 

반대로 구성원들은 조직이 수행하려는 비즈니스 전략에 맞는 능력과 이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한 노력을 갖춰야 한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펩 과르디올라 맨시티 감독의 전술은 실제로 피치 위해서 수행하기 까다롭다고 유명하다. 개개인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고 다른 팀원들과 유기적인 호흡을 갖춰 전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능력을 가진 선수들도 펩 감독과 처음 만나면 처음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역할보다 더 높은 수준의 역할을 받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구성원 역시 조직에서 요구하는 비즈니스 전략에 맞는 능력을 갖추고, 또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축구에서 감독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 선수는 팀에서 나가게 되거나 벤치로 밀리는 것처럼, 조직 내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팀에서 요구하는 것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구성원은 조직 내에서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조직 차원에서는 아무리 비즈니스 전략이 좋다고 하더라도 구성원들이 구성원들이 전략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하면, 혹은 최선을 다해 전략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 좋은 실행은 좋은 전략만큼이나 중요하다.

 

 

데브라이너에게 지시를 내리는 펩

 

 

원래 축구도 좋아하고 비즈니스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두 개를 엮어서 글을 쓰는 건 좋은 글쓰기 경험인 것 같다. 참고로 ‘축구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ASH 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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