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대표님들은 똑똑합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하죠. 그런데 때로는 이 논리적인 생각이 애써 만난 고객을 떠나보내기도 합니다. 기업을 위해 내린 합리적 결정이 고객에게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저는 업무 특성상 소프트웨어 툴을 다수 사용합니다. 그중에는 스타트업의 서비스들도 다수 있습니다. 고객 입장에서 ‘나는 어떤 서비스를 기꺼이 결제하고, 계속해서 쓰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첫 번째 기준은 당연히 기능 그 자체입니다. 쓰려는 목적에 맞는 기능을 매끄럽게 제공하면 일단 호감이 갑니다. 그다음 중요한 기준은 뭘까요? 디자인? 가격? 제 개인적로는 ‘소통’입니다. 기업이 만들어둔 소통 창구에서 사람이 빠르게 등장할수록 그 서비스에 대한 호감이 커졌습니다. 사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중요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그리 반갑지 않은 의견이죠.

 

 


 

 

자동화는 마법의 단어가 아닙니다

 

언제부턴가 ‘자동화’라는 단어가 막연한 환상을 심어주는 단어가 된 듯합니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환상이요. 최근 이 단어를 ‘수익’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런 이미지가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확실히 ‘부’와 관련된 단어들의 힘은 무섭습니다.)

 

자동화는 노력을 줄여주는 수단이 아닙니다. 노력으로 구현되는 ‘결과’에 더 가깝습니다. 자동화는 패턴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패턴은 어떤 일을 여러 번 반복해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여러 번 반복하려면 다수의 고객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다수의 고객을 상대하면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이 정도는 알아서 처리되도록 만들어도 고객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겠다’는 판단이 섰을 때 도입하는 것이 바로 자동화입니다. 

 

종종 자동화를 성급하게 도입하려는 분들을 만납니다. ‘생산성 증대’라는 명목으로요. 물론 일정 부분 이해는 됩니다. 인력과 자원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나름의 논리적인 생각을 거쳐 결정을 내리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고객과 접해있는 업무의 자동화는 가장 나중으로 미뤄야 합니다. 마케팅과 CS가 대표적이죠.

 

특히 제품에 대한 고객의 불만이 표출되는 접점, 고객의 전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접점에서는 더더욱 사람이 나서야 합니다. 결제 전에 궁금한 게 생겼는데 자동 응답 챗봇을 열어야 하고, 원하는 답을 얻으려고 5번 이상을 클릭했는데도 답을 얻지 못한다면 그 고객은 과연 결제를 할까요? 사용 중에 생긴 불편을 처리하려면 하루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업무 툴을 어떤 고객이 계속 사용할까요?

 

 

덩치가 큰 조직들에게도 자동화는 어려운 일입니다. (출처 : 비즈조선(좌), 쿠키뉴스(우) 기사 캡처)

 

 

경쟁사의 자동화는 기회가 됩니다

 

규모가 있는 경쟁사들의 마케팅, CS 자동화는 작은 기업에게는 기회입니다. 고객을 모셔올 수 있는 기회요. 기업이 효율을 추구하면 섬세함은 자연스럽게 떨어집니다. (적어도 지금 기술 수준에서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틈을 제대로 공략한다면 고객의 ‘경쟁사와 헤어질 결심’을 부추길 수 있죠. 

 

미국의 한 이메일 서비스는 경쟁사의 제품에서 자사의 제품으로 넘어오려는 고객에게 ‘1:1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지원팀 인력이 직접 나서서 고객의 ‘이주’를 돕습니다. 

 

 

컨버트킷의 컨시어지 서비스 (출처 : ConvertKit공식 웹사이트)

 

 

이메일 툴에 높은 금액을 지불하는 고객들은 사용하는 서비스를 쉽게 바꾸지 못합니다. 기존 서비스에 쌓인 ‘데이터 자산’ 때문이죠. 컨버트킷은 이 사실을 알고 경쟁사 서비스에 불만이 있는 고객이 기술팀 직원과 상담할 수 있는 창구를 열었습니다. 기술팀 직원은 다른 서비스에 저장된 고객의 구독자 목록, 이메일 목록, 템플릿, 세팅해 둔 마케팅 요소들이 얼마나 되는지 들어보고 이를 컨버트킷에서도 정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서비스 변경을 고민하고 있는 고객이 가진 가장 큰 두려움(기존에 세팅해 둔 것들 언제 다 옮기지…?)을 먼저 나서서 없애 가치가 큰 고객을 확보하려는 시도입니다. 

 

규모가 큰 기업들의 사례에서도 배울 것은 있습니다. 똑같이 따라 하는 건 불가능해도 그 핵심만 파악해 우리에게 맞게 변형할 수 있죠. 애플 스토어는 사람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에서 직원들의 유쾌하면서도 전문적인 응대로 고객의 구매 과정을 돕습니다. 작은 스타트업도 쾌적한 웹사이트에서 직원들이 직접 등장하는 영상으로 고객의 구매 과정을 도와보면 어떨까요? 뻔한 랜딩페이지에서 벗어나 직원이 직접 등장해 이 제품을 사용하는 자신만의 팁, 이 제품으로 효과를 봤던 본인의 경험담, 자신의 추천 코드로 구매할 때의 혜택 등을 안내해 주는 거죠.  

 

CS에서 차별화를 만들고 싶다면 감동을 주는 CS로 유명한 자포스(Zappos)를 공부해 봅니다. 작은 스타트업이 별도의 CS팀을 두기는 어렵습니다. 모두가 CS를 할 수 있어야 하죠. 검색을 조금만 해보면 고객들을 열성팬으로 만든 자포스 직원들의 실제 응대 사례들을 다수 찾을 수 있습니다. 하루 10분씩이라도 이런 사례들을 구성원들과 공유해 보세요.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문의나 불만 사항이 접수됐을 때 이걸 어떻게 우리만의 인간적인 방식으로 풀어낼지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효율성보다 임팩트

 

스타트업의 제품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고객을 얻는 과정이 더 어렵습니다. 결제가 일어난 후에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피드백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고객은 금방 떠나갑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객이 늘어나기 전까지는 고객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사람(팀 내 구성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내부에서 처리하는 업무 영역에서는 효율성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에서는 임팩트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편하려고 하는 대부분의 일은 높은 확률로 고객에게 불편을 줍니다. 불편을 주지 않더라도 임팩트를 만들어내기는 어렵습니다. 

 

고객 접점에서는 일의 효율성보다 임팩트를 추구하세요. 사람은 누구나 인상적인 경험을 주변에 퍼트리고 싶어 합니다. 진정으로 모든 직원이 임팩트를 추구하면 적어도 마케팅 효율은 선물처럼 따라올지도 모릅니다. 

 


박상훈 (플랜브로)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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