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도파민의 향연은 끝도 없이 잊을만하면 생산되어 알고리즘을 타고 주변을 계속 맴돕니다. SNS와 소셜미디어에서는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을 위해 더 자극적으로 양념한 도파민 넘치는 것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자극적인 악성 댓글이 빠질 수 없습니다.
악플은 여전히 심각하다
악성 댓글은 비평과 다릅니다. 비평은 정보를 제공하는 목적이 크다면, 악성 댓글은 비난과 비방 그리고 공격의 목적으로 감정 표출에 더 치우쳐져 있습니다. 물론 정당한 비평이라 생각하고 악성 댓글을 작성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당해 보이는 악플도, 재미로 쓴 악플도, 이유 없는 악플도, 군중에 숨어 쓴 악플도 당사자에게는 결국 악플입니다.
악성 댓글은 이제 연예인이나 정치인과 같은 유명인의 이슈에만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상에서는 언제든 누구에게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를 비방하거나 모욕하기도 하죠. ‘넌 비난받아 마땅해’, ‘나만 아니면 돼’ 수준으로 도를 넘는 악성 댓글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댓글은 아니지만 앱스토어에는 욕설이 난무하는 악성 리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문화가 발전했다지만, 익명성과 군중에 숨어 악성 댓글은 더욱 활개치고 있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2년의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 범죄는 2만 9천여 건으로 2018년과 비교해 83.7% 증가했다고 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설문조사에서는 ‘특정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유명인의 자살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별 영향 정도 인식’에 대해 ‘뉴스⋅미디어 이용자들의 비방⋅모욕 댓글(악플)’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61.7%로 요인 중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크게+약간)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은 총 93.0%로 나타났습니다.
악성 댓글로 인해 당사자는 심각한 피해와 상처를 입을 수 있으며 문제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댓글을 본 다른 사용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플랫폼 서비스 제공자는 이러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브랜드나 서비스의 이미지 저해를 막기 위해 악성 댓글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만 합니다.
악플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많은 플랫폼에서는 악성 댓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이번에 <컨셉수업> 책에 나온 일부 개념을 활용해 ‘악성 댓글 대응’에 대한 Ideation을 진행해 보았습니다.
책에서는 좋은 컨셉을 만들기 위해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는 ‘자유도’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임팩트’를 고려한 좋은 질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질문 매트릭스를 활용하여 악플을 줄이기 위한 4가지 질문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1) 큰 임팩트 | 낮은 자유도
악성 댓글의 노출을 줄이면?
악성 댓글의 노출을 줄이는 방안으로는 관리자가 일부 댓글을 선별하여 우선 노출하거나 관리자 및 AI 모니터링 또는 사용자의 신고로 악성 댓글을 삭제하거나 숨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검열에 대한 문제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한 기준에 의해 운영되어야만 합니다.
네이버는 뉴스와 카페 서비스에서 AI로 욕설 등을 감지하여 숨기는 클린봇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올 1분기에 신고나 네이버 모니터링 등으로 삭제된 댓글은 전체 댓글 중 월평균 0.1%로, 작년 1분기 (0.2~0.3%) 대비 규정 미준수로 삭제된 댓글이 감소하였습니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를 클린봇을 통한 선제적 차단의 영향으로도 보고 있습니다.
2) 낮은 임팩트 | 낮은 자유도
악성 댓글 작성자를 없애면?
관리자가 작성자를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차단하거나 사용자가 악성 댓글 작성자를 직접 차단하여 해당 사용자를 숨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성자를 차단하여도 다른 아이디로 우회하여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뉴스 대부분이 유통되는 야후 재팬에서는 복수의 ID로 악플을 계속 다는 경우가 많았기에 악플을 반복하는 ID의 이용을 정지시키는 조치가 크게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악플을 없애기 위해 댓글창을 없애는 건 임시방편의 해결책에 불과합니다. 이는 올바른 여론을 조성할 환경 또한 제거하는 것이며, 다른 플랫폼이나 미디어의 댓글창까지 막지 못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3) 낮은 임팩트 | 큰 자유도
댓글 작성에 제한을 둔다면?
욕설이나 비하 용어 등의 사용을 못 하도록 금칙어를 설정하거나 악성 댓글을 작성한 사용자의 이용을 제한할 수 있으며, 댓글 작성 횟수나 시간을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질문 매트릭스 상에는 낮은 임팩트로 분류하였으나 많은 플랫폼에서 댓글 작성에 이러한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포털 뉴스 댓글 공간 정화를 위해 시행 돼 온 대응책들에 대한 사전 인지’에 대해 ‘악플 가능성 높은 단어 금칙어로 지정해 입력 불가 조치’는 62.8%로, 10개의 대응책 중 2순위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반면에 효과 인식에 대해서는 (크게 + 약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응답이 75.0%로, 10개의 대응책 중 9순위에 그쳤습니다.
다음뉴스는 뉴스 송고 시점부터 24시간 동안 의견을 나누고 그 이후에는 작성 및 확인을 할 수 없는 ‘타임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댓글의 시간제한이 낯설 수 있으나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해외 언론사에서는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 중입니다. 다음뉴스에서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는 점은 의미가 크나,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타임톡’ 이용 경험자의 만족도에 대해 ‘만족 못 한다’는 응답이 60.7%로 나타났으며, 아직까지 댓글 품질이 개선되었다는 근거가 명확히 나오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4) 큰 임팩트 | 큰 자유도
댓글 작성에 대한 책임감을 늘린다면?
대다수의 플랫폼에서 댓글은 너무 쉽게 쓰이고 삭제되고 소비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포털 뉴스 댓글 공간 정화에 있어 각 행위주체별 책임 소재 인식’에 대해 이용자에게 책임 소재가 (크게 + 약간) 있다는 응답이 92.3%로, 이는 90.5%인 포털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각 서비스 차원에서 단편적으로 악성 댓글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악플의 근본적 원인인 ‘온라인상 소통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책임감을 늘리기 위해서 법적 처벌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활용하거나 악플의 심각성과 영향에 대해 수시로 인지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댓글을 작성하기 위해 작성자의 이름과 지역을 입력해야 하며, 야후 재팬 뉴스에서는 작성자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해야 합니다. 이처럼 개인정보를 입력하도록 하여 심리적 억제를 가하고 책임감을 가지며 댓글을 작성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또, 네이버 뉴스는 다른 사용자의 댓글 작성 내역 및 이용 제한 여부 등을 볼 수 있도록 하여 투명한 댓글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였습니다. 군중 속에 숨어 있는 누군가가 아닌 개개인의 댓글 이력을 공개하여 한 사람, 한 사람으로의 책임감과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다음은 댓글 작성에 대한 책임감을 늘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아이데이션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책임 및 영향력 인지 체크박스
체크박스를 활용하여 댓글 등록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간단하게 이용할 수 있는 만큼 일정 경험 이후에는 무심하게 넘어갈 수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2) 악플 방지 문구 입력
댓글 입력 또는 등록 전, 랜덤으로 생성되는 악플 방지 문구를 직접 입력하도록 하여 악플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지하고 책임감을 고취하며 악플 등록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합니다.
3) 댓글 에티켓 선언
일종의 캠페인으로 함께 만드는 댓글 문화를 위해 사용자 스스로 댓글 에티켓을 선언할 수 있도록 하며, 에티켓 선언 여부를 배지 등으로 구분하여 댓글 작성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합니다.
4) 댓글 이력으로 악플 위험 수준 분석
사용자가 등록한 댓글 이력을 기반으로 AI가 분석한 나의 악플 수준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여 사용자가 직접 악성 댓글의 수정 및 삭제 등의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유사한 서비스 모델인 야후! 뉴스에서는 부적절한 댓글을 반복해서 입력하는 사용자에게 댓글 작성 시 주의 메시지가 뜨도록 하여 부적절한 댓글을 입력하는 계정이 13.5% 감소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악플, 줄일 수 있을까?
아이데이션을 진행하며 ‘과연 이게 좋은 질문과 좋은 방안이 맞을까? 효과가 있을까? 실제로 실행했을 때 다른 사회적 문제점은 없을까?’ 의문도 들고, ‘너무 이상적으로만 생각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들이 모이다 보면 정말로 도움이 되고 쓸모 있는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2-3년 전 자료도 많이 참고하였는데 그때의 기대와 희망이 무색하게 여전히 악플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하나만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과 미디어가 다양해지는 만큼 각 서비스에 맞춘 악성 댓글 대응책의 마련과 올바른 인터넷 문화 수립을 위한 인식 개선,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해 보입니다.
참고
▶ 악플러들은 ‘나르시시즘, 마키아벨리즘, 사이코패시즘’ 인간 악의 3대장를 모두 가졌다? [타인의심리읽어드립니다 EP.5] | 김경일 교수
▶ [악플러vs연예인 Ep.03] 악플러들이 말하는 악플쓰는 심리? | SBS 스페셜
▶ [거리의 만찬] ‘악플러 그들은 누구인가?’ 악플, 그 잔혹함에 대하여 KBS 191124 방송
eggfly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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