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나이키는 자신의 경쟁사로 아디다스가 아닌 ‘닌텐도’를 지목했습니다. 나이키가 게임기라도 만들어 팔려했던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제품이 잘 팔리기 위해서 소비자들의 야외 활동 시간이 증가해야 하는데, 닌텐도의 유행으로 사람들이 집에 묶이자 자신들의 성장세가 발목 잡혔다고 본 것입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시장점유율’이 아닌 ‘시간점유율’이 성장의 중요한 척도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산업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의 시간을 점유하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서비스의 경쟁사가 하나로 좁혀지고 있는데요. 네, 바로 ‘유튜브’가 그 주인공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공공의 적이 되어 가고 있는 유튜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유튜브 vs OTT
OTT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것 같습니다. 미디어 분야에서 수십 년 간 1위 자리를 고수하던 TV를 간신히 넘어섰나 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유튜브라는 녀석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 것인데요. OTT와 유튜브가 구축하고 있는 생태계와 콘텐츠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를 하는 것이 무의미해 보일 수 있지만,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시간점유율’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현재의 트렌드를 고려할 때 굉장히 뼈아픈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유튜브의 이용률은 71%로, 상위 4개 OTT 서비스의 합산 이용률인 57%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OTT 간의 중복 이용이 반영된 수치임에도 그 격차가 상당히 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조사에서는 유튜브가 단순한 이용률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에서도 OTT보다 약 41%가량 앞선다고 발표했는데요. 이렇게 유튜브가 OTT와의 대결에서 가뿐하게 승리를 거둔 상황에서, 다음은 SNS와의 대결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유튜브 vs SNS
초기에 텍스트 중심으로 발전하던 SNS는 이미지 중심의 시대를 거쳐 최근에는 영상이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인스타그램이 ‘릴스’를 중심으로 개편됐고, 틱톡까지 유행을 이끌자 점차 동영상 플랫폼과 SNS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데요. 숏폼 콘텐츠가 SNS 경쟁의 중심이 되고 있는 지금, 역시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유튜브입니다.
오픈서베이 자료에 따르면 인스타그램, 틱톡, 트위터, 페이스북 등 주요 SNS가 포함된 숏폼 콘텐츠 시청 조사에서 유튜브 쇼츠가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1위를 기록한 것도 중요하지만, 22년에 대비하여 가장 높은 성장률인 12.3%를 기록한 점이 주목할 만한데요. 이는 유튜브 쇼츠가 여전히 성장 중이며, 앞으로도 주요 SNS의 시간 점유율을 지속해서 빼앗아 갈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유튜브가 SNS와의 숏폼 대결에서도 가볍게 승리를 챙긴 모습인데요. 다음은 메신저와의 대결을 살펴보겠습니다.
유튜브 vs 메신저
지난 연말, 제 기준에서 꽤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국민 메신저’, ‘국민 앱’이라 불리던 카카오톡의 MAU 순위가 2위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1위의 자리에 오른 것은 역시나 유튜브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유튜브는 OTT, SNS 등의 대체제가 많고, 카카오톡은 별다른 대체제가 없다고 생각해 아무리 유튜브의 성장세가 좋아도 카카오톡을 추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유튜브는 제 판단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습니다.
특히, 지난 몇 개월 간의 상황을 지켜봤을 때 유튜브의 MAU는 상보합세를 보이는 반면, 카카오톡의 경우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상황이 다시 역전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여기에 더해, 와이즈앱·리테일·굿즈 조사에 따르면 메신저라는 플랫폼이 가지는 특성상 실행 횟수에서는 카카오톡이 앞서지만, 체류 시간은 유튜브가 압도적으로 높다고 조사됐는데요. MAU, 시간점유율 측면에서 유튜브가 우위를 가져가며 메신저의 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검색 포털과의 경쟁 상황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유튜브 vs 검색포털
글로벌 검색 엔진 시장에서 구글의 시장 점유율은 90%가 넘습니다. 검색 분야에서는 말 그대로 절대적이며 독보적인 기업이라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구글도 점령하지 못한 세 나라가 있는데, 그중에서 국가적 특성(러시아,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한국은 네이버가 구글과의 경쟁에서 잘 이겨내고 있었는데요. 구글을 밀어내니 이제는 구글의 양아들 격인 유튜브가 검색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픈서베이의 조사에 따르면, 검색 서비스 이용 순위에서 유튜브가 구글을 제치고 2위에 등극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1위인 네이버와의 격차는 단 7.1%로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는 모습인데요. 특히, ‘어떻게 하다’와 같은 ‘How-to’ 콘텐츠 검색에 있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대표적으로 채용플랫폼 캐치가 취준생을 대상으로 취업 정보 검색 시 활용하는 포탈에 대해 조사한 결과 67%의 취준생이 유튜브를 활용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이어서 네이버가 57%로 2위를 차지했는데요. 이외에도 비슷한 결과는 다양한 곳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네이버의 경쟁사는 더 이상 구글이 아니라 유튜브라는 사실은 점차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앞선 대결과 달리 검색 분야에서는 아직 유튜브가 네이버를 완벽히 넘어섰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상 콘텐츠를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검색에 필요한 영상 콘텐츠의 풀(Pool)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 역시 네이버가 언제까지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유튜브가 상대하고 있는 4가지 분야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대결 결과는 3승 1패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중 검색 분야에서의 1패는 마치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스피드 스케이팅 대회에 참여해서 아슬아슬하게 2위를 차지한 격이기에 ‘졌지만 사실상 이긴 결과’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유튜브는 각 산업의 시간점유율을 꾸준히 빼앗으면서 1인당 월평균 사용시간을 40시간이나 적립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생태계에서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흡수하는 유튜브의 성장세는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한국이 유튜브 공화국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 앱들의 분발이 절실해 보입니다.
해당 글은 Tech잇슈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십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