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터족 1인가구 불붙다
요즘 온라인에서 ‘프리터족’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보입니다. 프리터족은 자유(Free)와 아르바이터(Arbiter, 독일어로 노동자)를 합친 단어로 특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입니다.
프리터족이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사용되어 한국으로 흘러 들어온 단어입니다. 1987년 일본의 고용 정보 회사인 리크루트가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긴 청년을 주제로 하여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영화 속에 프리터족이 사용된 이후 현재는 신조어로 국내에도 널리 사용이 된 것입니다.
국내에 ‘프리터족’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면서 국내 트렌드 데이터를 제공하는 썸트렌드를 보니, 프리터족이 블로그, 뉴스 등에서의 언급량은 전년동기대비 255%나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프리터족을 검색했더니 연관 검색어로 청년, 아르바이트, 일바리, 직장, 유튜브와 같은 단어들이 보였습니다. 연관어로 뜬 유튜브가 궁금해서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프리터족’을 검색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막 살기로 했더니 행복해졌다”, “평생 알바로만 먹고살 수 있을까?” “프리터족 일본의 기약없는 알바인생”. “36살 내가 프리터족이 된 이유” 등 꽤 많은 유튜브 콘텐츠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미 어느정도 활성화된 단어로 유튜브 채널에 콘텐츠를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거의 없긴 합니다. 오히려 당시 저의 신조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아 학비면제를 받자는 생각을 했고, 오히려 학업에 꽤 매진했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운좋게(인지, 커리어의 구렁텅이의 시작인지) 대학교 4학년 10월에 첫 직장에 취업해 직장 생활을 시작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에 좀더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더 해봤으면 좋았을텐데의 약간의 후회와 그 때 깊게 고민하지 않아 그렇게 오랜 시간을 커리어 방황기를 겪었나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의 청년들도 저의 20대와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나 봅니다. 인크루트에서 815명의 MZ세대를 대상으로 ‘프리터족’에 대해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70.8%가 프리터족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프리터족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의 1위가 본인이 원하는 삶이니까(46.1%)습니다. 그 외에 스트레스가 줄어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취미 등에 시간을 쓸 수 있다.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좀더 파 봤습니다. 최근 ‘프리터족의 특징’이라는 내용들이 MBTI 특징처럼 제법 돌아다녔거든요.
그래서 프리터족의 특징을 살펴보니,
- 특정 직업 명예, 부에 대한 욕심이 없다
- 내가 모은 돈으로 여행을 가는 게 취미다
- 최소한의 비용만 벌고 그 이상 돈을 벌고싶지 않다
- 뚜렷한 미래 계획보다 현재가 중요하다
-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혼자 있는게 낫다
라는 생각을 가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옛날 선비로 따지면 ‘안빈낙도’와 흡사해보이는 특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프리터족이 되는 것에 긍정적이고, 의미를 두는 것에 대해 저는 자발적인 결정에서 일어난 현상인지 그렇지 않은지가 궁금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정규직 중 시간제 근로자수는 작년 8월에 387.3만명이나 되었습니다. 전년 동월비 18.6만명이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제근로자 중 40.2%는 비자발적인 이유로 시간제 일자리를 택했습니다. 당장 수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혹은 원하는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말이죠.
청년 층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시간제 근로자 중 20대는 73.7만명, 30대는 30.2만명으로 한창 뛰어야 할 20-30대의 시간제 근로자수는 100만명이 넘었습니다.
조금 더 살펴볼까요?
국내 파트타임 근로자(주 30시간 미만 근로)수는 2019년에 51.9만명에서 5년만인 2024년에는 62.4만명으로 20.2%나 증가했습니다. 특히 15-29세 사이의 청년 취업자의 25%가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이 중 절반은 학업을 마친 상태로 실제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단기 알바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국에서 시간제 근로자수, 파트타임 근로자수가 증가하고 2030 청년의 수가 증가하는 것은 OECD에서도 꽤 상위권을 차지합니다. 2021년 기준 비자발적 시간근로자 비중이 한국은 43.1%인데 OECD 전체 평균 29.1%보다 1.5배 정도 높고, 30개국 중 7위를 차지합니다.
청년들은 왜 프리터족이 되었을까요?
우리보다 앞섰던 일본
이를 살펴보기 위해 우리보다 앞섰던 일본의 상황을 봐야겠네요.
요즘 시사, 경제 방송을 자주 봅니다.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면서 방송을 켜면 자연스럽게 여러 시사 뉴스를 듣게 되는데요. 최근들어 중국, 일본 뉴스가 꽤 많이 나옵니다. 일본의 경우 잃어버린 30년의 시기 동안 실업문제와 침체된 경제 상황, 고령화, 저출산 등 여러 이슈를 한국보다 먼저 겪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본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고용이 확대되고 있어 청년들의 일자리가 증가하고 있으며 경제에 어느정도 숨이 붙고 있습니다. 고령화에 대한 수많은 연구로 일자리 나눔 정책도 제법 안정적인 모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은 지난 1980년 거품경제를 겪으면서 상당한 취업난을 겪었습니다. 거품이 꺼지는 동시에 실업률이 폭주했고, 자연스럽게 청년 실업이 심화되었습니다.
당시 취업을 미룬 청년들은 편의점을 비롯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통해 경제활동을 영위해 나갔죠. 그리고 이들은 시간이 지나 일자리가 생겼음에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필요한 만큼만 일을 하는게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20대에 프리터족으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했던 구간의 사람들이 중장년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결혼을 하지 않으니 저출산이 심화되었고, 그대로 장년화가 되다보니 경제의 핵심 허리층이라 할 수 있는 이 구간의 빈곤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또한 중장년층의 빈곤은 고령화 사회에 많은 사회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인이 많은 사회에서는 사회 복지 비용이 증가하는데 단기 아르바이트 종사자들에게 거둘 세금의 적고, 이는 국가 재정까지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그리고 일본의 프리터족은 나이가 들면서 고립, 은둔, 고독사 등 사회적 이슈를 낳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젊었을 때 ‘자유’와 ‘빈곤’을 맞바꾸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마케터의 시선
이와 관련하여 마케터의 시각에서 분석해본다면, 프리터족에 대해 마냥 부정적인 잣대만 들이댈 수 없다는 겁니다. 프리터족이라 불안하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고, 이들의 선택은 그들에게 최선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회 활력,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프리터족이 많아지는 건 전반 불안 요소이긴 합니다. 결국은 국가재정, 고령화 시기의 복지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가속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데 기존의 연금 개혁 없이 예전처럼 이전 세대를 지금 세대가 보조해주고, 지금 세대를 다음 세대가 보조하는 상황이라면 현재의 젊은층은 당연히 그 의무를 지고 싶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출산으로 자신을 부양할 이후 세대들이 적기 때문에 내가 낸 것만큼도 못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죠.
더불어 정말 열심히 일해도 한국에서 집 한채 사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청년들은 내가 10년을 갈아넣어 미친듯이 일을 하면 내가 원하는 집을 구할 수 있을까? 혹은 내가 결혼을 해도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고용 불안은 심해지는데 무언가를 쥐고 산다는 것은 과연 평온한 결정일까? 모든 것이 두렵고 모든 것이 가변적인 환경입니다.
또한 양질의 일자리가 적습니다. 팬데믹 이후 고용이 악화되었고, 경기둔화로 신입 공채는 감소했습니다. 그 와중에 청년들의 가치관은 돈을 모아 미래에 어떻게 살겠다는 계획보다 지금의 삶에 충실해야겠다는 변화도 일어났죠.
과거에는 ‘이렇게 살면 저렇게 될거야’라는 믿음이 있고 그러한 트랙을 걸어갔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불명확합니다. 그러다보니 ‘아무것도 쥔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는’ 그런 결정을 하는 건 아닐까요?
저도 사실 40대가 되어서도 불안한 건 매한가지입니다.
제가 걷는 길도 안전한 꽃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항상 고민과 선택의 연속인데 지금의 20대 청년들은 오죽할까요?
그래서 프리터족을 보는 제 마음은 공감이 가면서도 안타깝고, 지금의 선택이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차선책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드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갖게 됩니다.
앞으로 사회는 더 늙고 활력은 없어질 겁니다. 내 마음과 정신이 30대라 해도 60대의 체력은 다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매일의 결정에 최선을 다한다면 하루하루의 결정이 모여 미래를 만드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해당 콘텐츠는 이은영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