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개편 후 결과 분석을 시니어 분석가 분께 부탁드렸습니다. 개편 전부터 개편 취지와 향후 방향에 대해 충분히 여러 번 설명을 드렸다고 생각하고 분석 결과를 부탁드렸죠. 개편을 했는데 이후 결과 분석을 하지 않으면 개편에 대한 피드백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며칠을 고민한 그분의 공유 자료는 방대하고 밋밋했습니다. 다양한 지표 들을 열거해 두고 정작 본인의 어떠한 의견도 들어가 있지 않았죠. 마치 장황한 대시 보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위키 페이지인데 말이죠. 분석 자료에 있는 지표 역시 어떤 흐름보다는 그동안 조직에서 여러 사람이 각각 많이 보아 온 여러 지표 들을 여기 망라해서 분석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니어 분석가 라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직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분석을 위한 쿼리 작성에만 모르는 테이블을 찾아가며 이 정도 시간에 만들었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분은 그동안 비교적 오랜 기간 우리 조직에서 데이터를 다루어 왔고 그만하면 취지도 방향도 알 텐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조금 더 이야기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흐릿하게 말씀을 드린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나누고 그냥 몇 줄의 보고를 위한 숫자가 필요한 수준으로 오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떤 숫자를 왜 그렇게 추출했는지 의도가 없었습니다. 그냥 늘 쓰던 지표 몇 개 놓고 돌리니 결과에 대한 의도도 정확한 분석도 액션 방향도 없었던 것이죠.

 

 

 

 

분석은 무엇일까요? 

 

분석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분석이란 것을 합니다. 분석은 주제가 있고 주제는 몇 가지 세부 주제를 검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세부 주제의 검증 방법이 패턴이 변했는지, 혹은 대조군 대비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는 것이죠. 뭔가 잘라 보았을 때 뚜렷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방향으로 잘라보면서 패턴과 차이로 인사이트를 얻습니다. 물론 두 집단이 전혀 차이가 없고 패턴의 변화가 없다는 것도 중요한 결과지만요.

 

그런데 분석을 수동적으로 하는 분석가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쿼리 머신’이 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스스로를 어느 순간 ‘쿼리 머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표에 값을 채워 주는 것 정도로 결과물에 대해 생각하는, 티켓을 받아 간단한 내용을 출력하는 것이 분석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티켓이 없더라도 분석 요건부터 칼럼의 명칭까지 데이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받아서 그것만 돌리려는 부분은 분석가 자신의 성장을 더디게 만드는 일입니다. 분석을 하는 게 아니라 분석의 한 과정만 하려고 하니까요.

 


 

분석가는 요리사입니다

 

데이터라는 재료들을 뒤에 쌓아두고 필요한 결과라는 요리를 내놓기 위해 레시피부터 재료 다루는 법, 주방 기구 다루는 법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하죠. 하지만 돌리는 것만 하려는 분석가는 조리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고객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없고 고객이 불러주는 대강의 레시피를 듣고 그대로 조리만 하고 싶어 하죠.

 

그러기에 분석가는 뻔한 이야기지만 천성적인 스토리텔러일 수밖에 없습니다. 데이터 프로덕트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면 결국 데이터로 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일이고 데이터를 잘 모르는 청자에게 분석가의 일은 논리 싸움이자 매력적으로 설득하는 신뢰의 과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시니어 분석가에게 바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것이 비극으로 답정너 고객에게 막히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불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스토리텔링 자체를 할 생각을 버리면 스스로 쿼리 머신이 되는 것이죠.

 

대시보드 만드는 게 분석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기능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분석가도 비즈니스 안에 있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이니까요. 비즈니스는 영화 평론처럼 한 가지 분석을 해서 ‘나쁘다’ ‘좋다’의 부연이 아니라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보통 분석가는 바쁩니다

 

항상 분석할 사람은 없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때로는 비즈니스 임팩트와 상관없이 누군가 개인적은 궁금함으로 사방에서 분석 의뢰가 들어오고 데이터는 비정기적으로 위키를 바꾸어 가며 새로운 코드들을 요구합니다. 정합성은 어떤 이슈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맞지 않을 때가 있고 잘 돌던 배치는 어느 날 갑자기 돌지 않아 잘 운영되던 대시보드도 하루아침에 분석가를 괴롭힙니다. 

 

하지만 늘 질문받고 시간에 쫓기는 게 분석가의 삶이라고 해도 스스로를 한정 지으면 그 순간 커리어는 글라이딩을 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힘들고 피곤하면 쉬고 이직하면 되지만 어디서든 일을 늘 그렇게 대한다면 어느 날 정말 그런 일만 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할지도 모릅니다. 새롭지는 않더라도 내부 고객을 위한 고민이 들어간 요리를 하나씩 해 봅시다.

 


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