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디즈니는 실패했다.
디즈니 프린세스 중 성공적인 스토리로 대표되던 인어공주가 다시 한 번 흥행에 실패하면서 디즈니가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7월 11일 마지막 상영관에서 인어공주가 내려가면서 디즈니의 재기는 다시한번 실패했습니다. 최종 관객수는 64만, 월드와이드로는 5.5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6.5억달러에 1억달러가 못미쳤습니다.
사실 디즈니 주식 보유자라면 알다시피 디즈니의 영화실패는 영화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디즈니의 주요사업으로 자리잡은 디즈니플러스에서도 인어공주에 대한 수요 기대가 줄어들었고, 이와같은 IP를 바탕으로 하는 크루즈, 테마파크 사업에도 악순환을 끼치는것이 디즈니 IP사업 플라이휠의 맹점입니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지만, IP사업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테마파크 매출이 견조했기 때문에 디즈니 플러스와 같은 신사업을 도전해볼 수도 있었는데, 캐릭터에 대한 진부함, 매력도 하락이 테마파크로의 유인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늘어나고 있는것이죠.
대체 디즈니는 왜 또 실패했나?
흔히 말하는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도그마에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차별과 편견이 되는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운동인 PC운동은 아주 오래전, 1980년대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PC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해보기로 하고요. 이와 같은 PC운동의 확산은 초기 새로운 시도와 발굴의 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포카혼타스와 뮬란이었죠.
1995년 등장한 포카혼타스는 디즈니 장편애니메이션의 33번째 작품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인 실존 인물 포카혼타스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백인들과 원주민들의 화합을 주제로 이야기를 다뤄 당시 민감한 소재였고, 고증이 부족한 점을 비롯해 실제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불쾌한 반응을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백인 일색의 문화 시대에서 여성 원주민이 주체적으로 주인공이 되는 첫 애니메이션이었던 만큼 디즈니의 저평을 넓힐 기회가 되기도 했죠. 실제로 흥행까지 이어져 디즈니의 다양성에 기여를 하기도 합니다.
1998년은 한발 더 뻗어 뮬란이 등장합니다. 디즈니 역사상 가장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의 서사를 담은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싶은데요. 중국 남북조시대에 흉노족(훈족)으로부터의 침입에 대항하여 여성 주인공 뮬란의 지혜로 전쟁을 승리한다는 이야기로 펼쳐집니다. 전쟁이라는 특수성 안에서도 여성이 물리적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으로 상황을 타개하는 서사를 만든 것으로 훗날 높은 평가를 받고 있죠. 이 역시 높은 흥행을 기록하며, 디즈니의 또 다른 훌륭한 IP자산이 되어줍니다. 당시 중국에서의 흥행은 저조했지만, 유색인종 캐릭터의 성공은 앞으로 또다른 유색인종 캐릭터를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죠.
뿐만아니라, 디즈니 프린세스들이 갖고 있던 스테레오 타입을 포카혼타스와 뮬란이 깨부순것도 한 몫했죠. 더 이상 수동적이고, 백마탄 왕자만을 기다리지 않고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독립된 자아를 갖고 남성과 함께한다는 지점이 매우 건설적 논의를 지향하는 현대사회에서 높게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PC운동이 영향을 끼친 영화는 갈수록 더 많아집니다. 영화들에는 유색인종의 등장 비중이 높아졌고, 단순히 출연하는 것 뿐만아니라 각 지역과 인종들의 서사를 고민하고 들여다보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 특히 디즈니가 칭찬받아 마땅한 부분이었죠.
이와 같은 도전은 2010년대 들어 그 고민과 결과가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2016년 나온 주토피아는 단순 인종이나 성별을 넘어서서 소수자 문제와 더불어 역차별 문제까지 다루기 시작하는데요. 다수의 약자에 속하는 주디와 소수의 강자에 속하는 닉의 버디무비를 통해 다수자의 소수자억압, 강자의 약자 위협, 침해 그리고 이에 대한 편견이 만드는 상호간 차별에 대해서 매우 고차원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로 흥행과 호평까지 모두 다잡은 훌륭한 애니메이션으로 남습니다.
더 나아가 디즈니의 자회사 픽사에서도 역시 2017년 가을, 멕시코의 시골 소년 미겔을 통해 멕시코 지역의 사후 세계관을 깊이 들여다보는 가족영화 코코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느껴졌던 것은 디즈니가 타인종, 소수자, 비문명지역에 대한 편견을 상업화하려는 노력보다 있는 그대로 다양성을 존중해주려 노력했다는 것이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실제 제작진이 멕시코에서 생활을 경험하거나, 스토리텔러에 멕시코인들이 참여하는 등 디즈니의 눈을 통해 보는 다른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 있는 그대로를 디즈니라는 도구로 보여준 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샀고 흥행까지 8억달러를 넘기는 등 호평을 이뤄냈죠.
다시 이전으로 가서 보면, 겨울왕국에서는 디즈니프린세스가 보여줄 수 있는 주체적 능력을 가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스토리부터 음악, 평가, 흥행까지 그 해의 모든 영광을 다 거머쥐었는데요. 안나와 엘사 자매가 보여주는 우정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보여주며 엘사의 얼음마법과 같은 강력한 힘이 아닌, 사랑의 힘을 보여주며 애니메이션의 주제의식을 고취시켜주었습니다.
디즈니 프린세스의 편견을 깨준 겨울왕국이 여성 주제의 가장 정점이었다면, 블랙팬서는 디즈니, 마블이 낳은 유색인종 히어로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인공의 친구, 사이드킥 수준으로 맴돌던 흑인이, 지구상 가장 강력한 나라를 통치하고 그 안에서의 암투를 벌이는 모습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했던 과거를 극복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블랙팬서가 보여준 유색인종 히어로물의 성공은 백인 일색이었던 히어로 영화판에서 새로운 기회를 보여주기도 했죠. 특히 13억달러를 넘기는 대흥행까지 가져오며 우리 사회에서의 편견이 비로소 무너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디즈니는 자신들의 PC운동이 그저 형식을 갖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전의 디즈니작품들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더라도 그 배경을 설명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 유색인종이어야했고, 왜 여성이어야했는지를 풀어가는 데 어려워하지 않았죠.
또한 단순히 여성이나 유색인종을 출연시키는 것으로 PC를 실천했다고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오롯이 그녀, 그들을 위한 서사를 새로 만들 줄 았았고, 그 서사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시도와 실패, 인내는 디즈니가 감당해냈기에 관객들도 응원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디즈니 작품들에서 보이는 PC적 요소들은 결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고, 어쩌면 소수자, 약자들이 귀찮아 적선하듯 던져주는 것처럼 보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만약 할리 베일리를 통해 인어공주를 실사화하고 싶었다면, 있는 그대로 인어공주의 서사를 그대로 가져올 것이 아니라, 당시 횡행하던 흑인 노예선에 잠입해 흑인들을 구출한다거나, 흑인 노예상의 아들과 만나 흑인 학대를 일삼는 노예상과 노예주인들을 골탕먹이며 함께하는, 화합하는 인류의 서사를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찮은 디즈니는 그저 인어공주자리에 흑인 여성, 그것도 원작의 설정조차 무시하는 설정들로 인어공주를 그려냈죠.
이와 같은 시도는 단순 실사화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디즈니의 정점을 만들어주었던 마블스튜디오에서까지 왜 아이언하트의 후계자가 천재 흑인 소녀가 되어야했는지 설명하지 않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그냥 천재라는 공통분모로 다음 히어로 낙점이 되었다는 것외에는 미성년자인 아이언하트가 인간들을 살인하는데 거리낌없는 장면만 보여주고 있죠.
여전히 디즈니는 모두의 꿈이나 낭만일 것이고, 디즈니가 PC를 통해 사업을 하고 싶다면, 그게 아니라 관객을 계몽하고 싶다면, 관객들이 비판하는 지점보다 먼저 앞서 고민하고 이를 예술적으로 만들어가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전 세계 아이들의 모든 꿈을 자처한 디즈니의 역할이며 디즈니가 실패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일 것입니다.
글쓰는 워커비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