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달라”

 
 

나는 게임 기획자가 아니다. 그런데 취미 생활로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3명이 전부인 우리 팀에서 나는 게임 기획을 맡고있다. 시스템 기획, 콘텐츠 기획 다 하고 있다. UI도 직접 만든다. 일러스트도 그리고, 3D 모델링과 애니메이션도 직접 만든다. 게임 업계에서 직접 일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기획자로서 “런칭”을 위한 업무 분장, 파이프 라인 구축 등을 해야 했기에 안 그래도 바쁜데 꾸역꾸역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개발중인 게임의 이미지
 
 

게임 기획자는 크게 시스템 기획자콘텐츠 기획자로 분류된다. 그리고 경제 밸런스 기획자, 비즈니스 모델 기획자 등등 열 손가락으로도 채 세기 어려울만큼 세밀하게 분화된다. 서비스 기획자의 시선에서는 이 부분이 굉장히 색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경험해보면 수긍이 된다.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고 집중해야 하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UX설계는 물론 UI 그리는 방법 자체도 너무 다르다. 기획자나 디자이너가 개입해야 하는 영역도 다르고, 다양하다. 하여튼간에 다 다르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다른지 하나하나 설명해보고자 한다.

서비스 기획자라면 흥미있을 만한 내용이다. 반대로 게임 기획자라면 나의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거나, 틀렸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어떤 의견도 환영입니다.

 

 


 

 

1. “편함”을 팝니다.

 

광고를 주요 사업모델로 삼지 않는 서비스는 모든 단계에서 유저가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기획된다. 쉽게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을 수 있어야 하고, 쉽게 아티클을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댓글도 쉽게 달고, 좋아요도 쉽게 해야 한다. 하지만 게임은 “편함”으로 상품을 만든다. 재화나 결제에 의해 “자동사냥”, “2배속 사냥” 등의 기능이 해금되고, “전투 건너뛰기 보상”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꽤 멋있게 “편함”이라는 상품을 판다고 했지만 이는 주목을 끌기 위해서 지은 이름이고, 엄밀히 말하면 그건 아니다. 게임도 서비스 못지 않게 유저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기획해야 한다. UX적인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게임이 의도적으로 판매하는 “편함”이라는 상품은 말 그대로 구매를 하면, 마땅한 대가를 얻는 상품이다.

유저는 이 상품을 구매해서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거나, 남들보다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다. 게임의 고객여정은 1m 단위로 늘어선 손 쉬운 성취와 1km에 한 번 나타나는 영웅적 성취로 이루어져 있다. 이 상품은 작은 단위의 성취를 더 쉽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갓 만들어진 게임에 유저가 들어온다.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한다. 아이템 수집을 위해 특정 스테이지를 반복하는 유저가 많이 나타난다. 그러면 비즈니스 모델 기획자는 빠르게 이를 반복할 수 있는 아이템이나, 반복 횟수를 늘려주는 기능을 만들어서 판매할 것이다.

“편함”을 파는 게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는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상품들은 사실 온라인 게임이 나타난 직후 부터 줄곧 함께한 “오토 사냥” 이라고 불리는 메크로 따위의 불법 프로그램들로 부터 기인한 것이다. 모바일 게임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수집, 방치형 게임이 등장한 이 후 게임사들은 과거 불법으로 불리우던 “오토 사냥”을 직접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요소를 경멸하는 유저들도 많다. 그래서 무턱대고 “편함”을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 면밀하게 분석하여 합리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주제는 나중에 따로 다뤄보면 좋을 것 같다. 

 

 

 

 

2. “상품”도 기획합니다.

 

서비스 기획자는 최종 목표인 매출향상을 위해 세분화된 KPI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모니터링을 하고 기능을 기획하게 된다. 서비스 기획의 영역만으로 매출에 영향을 주는 것이 딱 여기까지다. 하지만, 게임 기획자는 “비즈니스 모델” 설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상품을 만들 수 있다.

앞서 말한 “편함”과 같은 기능을 기획하여 상품으로 만들뿐만 아니라, 아이템, 재화, 배틀패스 혹은 이들을 모두 모은 패키지를 기획하고 상품화 한다. 물론 모든 게임 기획자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콘텐츠 기획자 중에서도 경제 기획자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 기획자들이 주로 이런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이들은 사업 기획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매출에 기여한다. 게임을 위한 “자원”의 흐름을 기획하고 그 원리를 따르는 “상품”을 기획하는 것이다.

이 기획은 굉장히 정교하다. 플레이어의 성장이 더뎌지는 시점을 기획해야 하고, 이를 해소할 만한 상품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노출해야 한다. 그래서 게임은 끊임 없이 불합리한 상황을 만들고, 유저로 하여금 결핍을 느끼게 한다. 잘 만들어진 상품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적당히 결핍을 해소하고, 적당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서비스 기획으로 치면 기획자가 쇼핑몰도 만들고, 상품도 만들고, CRM도 하고 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게임업계의 기획자 채용공고는 머릿말에서처럼 다른 IT업계에 비해 다양하고, 디테일하고, 수도 많다.

 

 

3. 게임은 “완성품” 이다.

 

IT 서비스는 도화지다. 콘텐츠가 채워져야하고, 상품이 진열되어야 하며, 피드가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업데이트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공급과 수요를 잘 맞춘다면 서비스는 단순한 도화지가 아니라 놀만한 운동장으로 변모한다.

그런데 게임은 도화지가 아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그림이다. 플레이어 캐릭터가 없고, 스테이지, 몬스터, 성장요소 등이 없는 RPG게임은 존재 하지 않는다. 스테이지도 기획자가 만들어야 하고, 몬스터, 성장요소 등등 모든 것들을 기획해두어야 한다.

물론 운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유저간의 상호작용, 지속적인 업데이트 등은 동일하거나 비슷한 부분은 많지만, 게임 기획은 첫 시작단계부터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매우 많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4. UI 작업 프로세스

 

UI 자체는 기획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완성품 개발을 위한 파이프라인 구축은 기획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UI 디자인을 내가 직접 하다보니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획자가 설계를 지원하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된다.

IT 서비스를 기획할 땐 그래픽 에셋은 대부분 svg 등의 백터 아이콘을 준비한다. 혹시 모를 색상 변형, 반응형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심지어 svg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면 애니메이션이 제작이나, 스크립트와의 자연스러운 연동 등도 용이하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 와 같은 도형들 또한 굳이 이미지로 만들지 않는다. 코드로 직접 관리하는 게 편리할 뿐더러, 용량이나 최적화 측면에서도 안정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은 비트맵 이미지가 UI의 주재료가 된다. 아래의 이미지를 보면 이해가 될 만도하다. 백터 이미지는 단순한 형태를 만드는 데 적합한 제작방식이다. 게임은 그림에 가까운 복잡하고 유려한 UI를 사용하기 때문에 비트맵 사용은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버튼도 마찬가지로 초창기 안드로이드 개발에 사용되던 나인패치와 유사한 방법으로 구성한다.

 

 

디아블로2 리저렉션의 GUI

 

그러다보니 아무리 많아도 그래픽 에셋 50개를 넘기기 어려운 IT 서비스와 달리 게임의 UI용 그래픽 에셋은 100개는 깔고 들어가야 한다. 

 

 

5. Animated Interaction UI

 

IT서비스의 UI에서 동적요소가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대충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Lottie와 같은 Json 기반의 애니메이션 이미지 생성 도구나, WebGL의 진입장벽을 확 낮춰준 Three.js이 등장하고, 토스나 Zenly 같은 몇몇 회사들이 과감한 UI 상호작용을 시도하기 전까지 IT 서비스에서의 상호작용은 기껏해야 캐로셀이나 마우스 호버 등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게임의 UI 인터렉션은 화려하다. 말그대로 애니메이션이다. 게임의 팝업은 그냥 등장하는 법이 없다. 반드시 뿅, 쒸잉 하고 등장한다. 이를 업계 전문용어로는 tweenscale이라고 한다. 온갖 요란한 이펙트와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이를 업계 전문용어로는 Particle이라고 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잘 나가는 모바일 게임의 뽑기 GUI를 보면 이게 연출인지 그냥 애니메이션인지 헷갈릴 정도다. (개발상으로는 실제로도 연출이 맞다.)

앞서 말했듯 IT서비스에서 동적요소가 활용되지 않은 이유를 “굳이 필요 없기 때문”으로 퉁쳤는데 사실 이는 가독성과도 연관이 매우 크다. 애니메이션이 들어간 순간부터 서비스의 UI는 콘텐츠와 힘싸움을 해야 한다. 유저에게 주목받아야 하는 것은 콘텐츠나 상품인데, 집중을 헤치지 않을만큼 균형감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게임의 UI는 애니메이션이 과해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게임은 유저의 자발적인 몰입을 바탕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애니메이션은 유저의 몰입을 방해할 수 없다. 일본의 빠칭코처럼 화려한 애니메이션이나 연출이 유저에게 짜릿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게임 UI를 만드는 일은 IT서비스의 UI 제작에 비해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물론 내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다른 차이점들이 또 있지만 아직은 여기까지만 생각이 정리되었다. 게임은 실험적인 도전이 참 많은 분야다. 장르도 매우 다양하다. 비즈니스 모델도 다양하고… 그래서 내가 위에 언급한 내용들은 사실 모바일 게임시장의 99%를 차지하는 사행성 게임에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용어 정리>

  • 시스템 기획 : 게임의 룰을 기획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가위는 보를 이기고 보는 주먹을 이기고…)
  • 콘텐츠 기획 : 시스템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생각하면 편하다. (컴퓨터가 가위를 낼 확률은 21%)
  • 경제 기획 : 경험치, 골드 등의 재화를 적절하게 분배해 유저에게 결핍과 만족을 주는 것
  • 비즈니스 모델 기획 : 작게는 결제할 상품을, 넓게는 게임을 활용한 모든 수익요소를 기획하는 것
 
 

beyes 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