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taverse is coming.”
이 말은 세계 최대 그래픽카드(GPU) 생산업체 엔비디아(NVIDIA)의 CEO 젠슨 황(Jensen Huang)이 2020년 10월 GTC 2020 기조연설에서 한 말입니다. 돌이켜볼 때 이 말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음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확산된 상황에서 3차원의 가상공간이라는 막연한 개념으로 존재했던 메타버스는 우리 삶에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코로나19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초월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는 대중에게 매우 생소한 단어로 남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경제가 멈추다시피 되면서 사람들은 무너져버린 소통방식과 업무방식을 극복하고 어떻게든 삶을 지속하고자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전염병으로 인해 생긴 제약을 기술로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을 찾아냅니다. 그것이 바로 소설이나 SF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가상세계인 메타버스(Metaverse)입니다.
메타버스는 초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 우주 등을 의미하는(Universe)를 합성한 신조어입니다. 번역하면 초월세계 내지는 가상세계를 의미합니다.
메타버스라는 말의 유래를 찾아보면, 1922년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 집필한 소설 《스노우 크래쉬(Snow Crash)》에 처음 등장한 개념과 용어입니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닐 스티븐슨은 메타버스의 주된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중 몇 구절을 통해 메타버스의 개념이 무엇인지 감을 잡아보기 바랍니다.
그들은 빌딩들을 짓고, 공원을 만들고, 광고판들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것들도 만들어냈다. 가령 공중에 여기저기 흩어져 떠다니는 조명 쇼, 삼차원 시공간 법칙들이 무시되는 특수지역, 서로를 수색하여 쏘아 죽이는 자유 전투 지구 등.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들은 물리적으로 지어진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더 스트리트 자체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스트리트는 다만 종이에 적힌 컴퓨터 그래픽 규약일 뿐이었다.
1922년에 출간된 《스노우 크래쉬》의 내용을 읽어보니 놀랍게도 현재도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들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의결권을 가진 암호화폐(crypto currency) 커뮤니티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위의 내용에서 보는 바와 같이 메타버스는 눈에 보이는 실물 공간이 아닌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 구축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구성된 SF소설이 기술을 이끌어가고, 기술이 인류의 삶을 이끌어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전율을 느낍니다. 한마디로 메타버스는 인간의 상상력 위에 구축한 세계인 것입니다. 인간은 실제 세계를 넘어 가상의 공간에서도 존재하는 것을 상상했고, 가상의 세계에서도 삶이 지속되기를 꿈꿨습니다.
물리적으로 쌓아올린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실체는 없지만 그 안에서 하나의 사회를 이루며 현실세계와 같은 경제, 사회, 문화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가상의 세계, 그것이 바로 ‘메타버스’입니다. 결국에는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처럼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로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메타버스의 개념은 동양철학에서 훨씬 오래전에 발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봅니다.
메타버스는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과 혼동될 수도 있습니다.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역시 실제 세상에서는 손에 잡히지 않는 가상의 공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메타버스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메타버스의 한 축을 이루는 기술이며 보다 협소한 개념입니다.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외에도 앞으로 메타버스와 혼동할 수 있는 개념들은 더 생겨나거나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를 다른 개념들과 구분 짓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상의 공간에서 실제 생활과 유사한 활동이 일어나고 사회 시스템의 기능이 작동하고 있는가입니다. 즉 직업을 갖거나 금융 거래를 하는 등의 경제활동, 대인관계와 의사소통 등의 사회적 기능, 쇼핑, 예술작품 감상, 스포츠 경기 관람 등의 문화생활 같은 실제적인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경제활동은 메타버스의 최종 단계이자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 세계에서 참여자들은 경제적 이익을 얻는 최종 단계까지 가상세계를 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사회생활을 하거나 주식 혹은 부동산 같은 자산에 몰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경제적 이익 생기지 않는다면 대중은 메타버스에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경제적 인센티브가 제공되지 않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까요? 메타버스 공간 안에서 일자리를 얻고, 게임에 참여하면서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무언가를 획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지게 된다면 참여자들은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메타버스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요? 최초로 메타버스에 대한 체계적인 정의를 내렸다고 평가 받고 있는 미국의 비영리 기술 연구 단체인 미국 미래학 협회(ASF, 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의 정의를 빌리자면, 메타버스란 ‘가상으로 증강된 현실과 실제 현실이 연동되는 가상의 융합’이라고 합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어려운 표현이라 예를 들어 설명해보면, 먼저 ‘가상으로 증강된 현실’이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에 덧붙여서 무언가를 더 보여주는 형태를 의미합니다. 게임 개발사 나이언틱(Niantic)에서 개발한 유명한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를 떠올려봅시다. 우리나라에도 한창 인기를 끌었던 이 증강현실 게임은 실제 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무작위로 튀어나오는 포켓몬 캐릭터를 사냥해 훈련을 시키고, ‘체육관’으로 불리는 장소(실제 지도에 표시되는 특정 장소)로 이동해 타인의 포켓몬과 자신의 포켓몬이 대결을 펼치게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포켓몬들이 많이 출몰하는 소위 핫스팟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사냥했던 경험이 있다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마치 실재하는 것 같은 가상의 물체, 혹은 존재를 현실세계에 추가해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가상으로 증강된 현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실제 현실이 연동되는 가상의 융합’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현실과 가상이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연동되어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점이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과 메타버스를 비교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가상으로 증강된 현실’이 시각 등의 감각적인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실제 현실이 연동되는 가상의 융합’이라는 개념은 사회적인 상호작용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실제 관계적인 측면에 대한 담론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같은 SNS는 사람과 사람을 서로 연결해주는 일을 주된 사업 영역으로 삼고 있습니다. 실제 만나서 상호작용을 하지는 않지만 온라인상의 글이나 사진, 그리고 영상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우리는 상호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야기를 조금 더 발전시켜 나의 아바타와 상대방의 아바타가 가상공간에서 만나 마치 실제 만난 것처럼 연출된 환경에서 상호작용한다면 SNS에서 글과 사진, 동영상의 매체를 통하는 것보다 훨씬 실감 나는 연결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가상과 현실이 혼돈될 정도로 실감나게 표현해주는 기술적 진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겠죠?
현실을 마치 거울처럼 똑같이 옮겨놓은 듯한 세계든, 현실과는 전혀 다른 환상적인 세계든 간에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우리의 오감을 짜릿하게 만족시키는 일들을 추구하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가상의 삶을 통해 현실의 삶을 살찌울 수 있는 경제활동에 대해 많은 시도를 할 것입니다. 현실세계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경제활동을 영위해온 우리들에게 가상세계의 경제활동은 아직 생소합니다. 하지만 메타버스를 통한 경제활동이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강성모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