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N개의 성공요인이 필요하지만 프로젝트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는 1개의 실패 요인이면 충분하다. 바꾸어 말하면 프로젝트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는 N명의 이해관계자가 필요하지만 프로젝트가 잘 못되게 하기 위해서는 1명의 이해관계자면 충분하다. 예를 들어 이해관계자 1명이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이벤트에 대비하기 위한 복잡한 요구사항을 제안하면 프로젝트 팀을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고객 측 경영층이 정답이 없는 화면디자인에 대해 이것도 싫고,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프로젝트를 지연시킬 수도 있다. 상품개발 프로젝트에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는 낮지만 구현하기는 매우 복잡한 기능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해관계자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프로젝트를 곤경에 빠뜨리는 이해관계자를 ‘부정적인 이해관계자’라고 정의하자. 프로젝트가 잘 진행될 때에는 부정적인 이해관계자가 프로젝트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논란이 될 사안이 없거나 있다 해도 영향력이 작아 부정적인 이해관계자들의 뜻대로 해도 프로젝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슈가 많은 프로젝트에서 부정적인 이해관계자의 영향력은 커지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이하의 내용은 SI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를 가정한 것이다. 조직 내부에서 수행하는 프로젝트(예;상품개발 프로젝트)는 프로젝트와 상관없이 평소에 업무를 하면서 좋거나 나쁜 개인 간의 인간관계 또는 부서 간의 역학관계가 이미 굳어졌다. 따라서 특정 프로젝트를 통해 굳어진 부정적인 상호 간의 관계를 바꾸기 매우 힘들다.
부정적인 이해관계자는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부정적인 이해관계자를 최소화하는 방안은 다음과 같다.
1. 이해관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이슈가 없을 때 발품을 팔아야 한다.
이해관계자들을 자주 만난다고 그 사람이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지만, 부정적인 이해관계자가 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특히 서로에게 조심하고 프로젝트 이슈가 없는 프로젝트 초기에 발품을 파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젝트 관리자는 중요한 이해관계자 명단을 정리하고 매주 또는 격주로 해당 이해관계자와 만나서 개인적인 이야기 또는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사항을 파악한다. 그러한 미팅을 프로젝트 종료까지 지속할 필요는 없다. 프로젝트 상황에 따라 1~2개월이면 충분하다. 프로젝트 초기 프로젝트 관리자의 발품은 프로젝트 성공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2.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한다.
프로젝트 관리자는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기 위해 이해관계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에게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기 힘들다. 상대방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충분히 설명한 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3. 중요한 보고 전에 이해관계자와 의논한다.
중립적인 이해관계자가 부정적인 이해관계자로 변하기 쉬운 순간이 회의나 보고 자리이다. 특정 이해관계자의 의견에 프로젝트 관리자가 논리적으로 반대하면 그 이해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안을 당했다고 생각하여 더 강한 반대논리를 주장하기 쉽다. 프로젝트 관리자도 여기서 물러서면 프로젝트가 매우 힘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논쟁을 계속한다. 프로젝트 관리자가 이해관계자를 이길 수 없다. 이해관계자를 이기는 경우는 그 이해관계자의 상사의 지원을 이끌어 내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 방법을 사용해도 그 이해관계자의 마음은 이미 돌아섰다. 다른 자리에서 다른 현안으로 프로젝트 관리자와 부딪힐 가능성은 매우 높다. 공식적으로 제기된 많은 현안들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뿐이다. 다른 이슈가 생기면 언제든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부정적인 이해관계자가 없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건 꿈같은 이야기다. 부정적인 이해관계자를 피할 수 없다면 부정적인 이해관계자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 부정적인 이해관계자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다르다고 생각하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친구가 자주 했던 말이 있다. “난 나를 싫어하는 ‘놈’에게는 ‘놈’의 대접을 하고 나를 좋아하는 ‘분’에게는 ‘분’의 대접을 한다”. 눈에는 눈을 이야기하는 함무라비 법전 같은 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나를 좋아하는 분에게 놈의 대접을 하기 힘들고 나를 싫어하는 놈에게 분의 대접을 하기 힘들다. 이해관계자에게 놈의 대접을 의도적으로 하는 프로젝트 관리자는 없다. 그러나 인격적으로 모독한다고 해서 놈의 대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에서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 말 한다고 내가 상대방에게 놈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방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를 틀렸다고 말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왜냐하면 프로젝트는 수학이나 자연법칙처럼 옳고 그름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포함한 모두가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은 존중할 수 있지만, 틀린 생각은 존중하기 힘들다. 아무리 매너 좋게 말해도 머릿속의 생각이 은연중에 나타난다. 슬기로운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다르다고 생각하고 존중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2. 이해관계자의 당혹스러운 요청에 바로 대응하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이해관계자가 곤혹스러운 요청을 하는 순간이 있다. 반박할 논리는 부족한데 프로젝트 일정이나 예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고객의 요청이 그 예다. 이때 프로젝트 관리자가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고객을 대하면 그 말을 꺼낸 고객은 더 강한 논리로 무장하게 된다.
캐바캐 일수 있지만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예 검토해 보겠습니다”라고 넘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그 이해관계자에게 다른 급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특히 문서나 메일이 아닌 회의석상에서 구두로 논의된 사항은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기 쉽다. 물론 이해관계자가 프로젝트 관리자의 침묵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음 회의에 임하는 경우도 있다.
3. 감정적으로 어긋난 이해관계자를 논리로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최악은 감정적으로 어긋난 이해관계자를 논리적으로 제압하거나 설득하려고 하는 것이다. 감정이 상한 대부분의 이해관계자에게 논리적인 설득은 효과가 없다. 외형적으로 상대방이 할 말이 없는 주장을 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수긍한 것은 아니다. 그럴수록 “그래, 두고 보자”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감정적으로 어긋난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는 가능하면 그 상태 그대로 얼려 두는 것이 좋다.
다시 이야기한다. 이해관계자를 이길 수 있는 프로젝트 관리자는 없다.
김병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