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부채(Task Debt 혹은 To-do List Debt)’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몇 달째 해결되지 못한 채 To-do List에 남아있는 업무를 ‘업무 부채’라고 표현한다. 업무 부채는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늘 존재할 수밖에 없고, 적정량의 업무 부채는 업무 생산성에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마치, 진짜 부채처럼!)
만약 당신이 혼자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To-do List 속 업무 부채를 스스로 파악하고, 이따금씩 우선순위가 낮은 업무를 골라, ‘업무 파산(To-do List Bankruptcy)’ 처리를 하면 되지만, 수많은 팀이 함께 일을 도모해야 하는 ‘조직’에서는 업무 부채 해결 또한 효과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IT 회사에서는 업무 부채가 주로 ‘기술 부채(Technical Debt)’로 분류된다. ‘기술 부채’란 구체적으로 ‘개발팀’의 업무 부채를 일컫는데, 당연하게도 기술 부채가 비효율적인 수준까지 쌓이게 되면 조직 전체의 스트레스 지수는 올라갈 수밖에 없으며, 업무 우선순위 결정에 난항을 겪게 된다.
‘개발팀’은 지속적으로
업무 부채에 짓눌리며,
‘타 팀’은 개발팀에 요청한 일이
처리되지않는다고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직 내의 업무/기술 부채가 적정 수준만큼만 유지되도록, 쌓여있는 업무의 우선순위를 다 함께 정하는 방식 중 하나가 바로 ‘마켓 플레이스’ 방식이다. 오늘은 ‘마켓 플레이스’를 여러분께 소개하려고 한다. 아래에 제시할 ‘마켓 플레이스’ 방식을 100% 정확히 따라 한다는 마음보다는, 당사에 맞는 적당한 방식으로 응용해 사용해보도록 하자.
1. 마켓 플레이스란?
‘마켓 플레이스’는 남아있는 업무 부채의 우선순위를 주기적으로(월/분기/반기 등) 결정해 해결하는 워크숍이다. ‘플래닝 포커(Planning Poker)’의 조금 더 심플한 버전이기 때문에, 여러 팀이 진행하기 비교적 수월하다. 마치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고 구매하고 판매하는 상인과 고객처럼, 마켓 플레이스는 ‘업무(Task)’의 중요도와 시급도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흥정하고, 거래한다.
높은 점수에 거래된 업무(Task)는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할 업무로 분류되며,
할당된 점수(=가격)가 낮아 거래되지 않은
업무는 해당 기간의 To-do List에서
배제된 후,아카이빙 되어 다음을 기약한다.
• 마켓 플레이스의 장점
(a) 모든 업무의 우선순위를 ‘점수(가격)’로 표현하며 유관 팀이 모두 모여 결정하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방식으로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b) 마치 시장에 있는 사람들이 보유한 돈의 양이 다르듯, 각 팀 혹은 참여자마다 다른 ‘점수(돈)’를 할당받는다. 예를 들어, 의사 결정에 많은 관여를 해야 하는 ‘대표’의 경우, 애초에 할당받는 점수가 높은 편이며, 인턴은 그에 비해 훨씬 낮은 점수를 할당받는다. 즉, 마켓 플레이스는 공정하고 효율적이면서도, 조직의 수직 구조를 적극 반영한 방식이다.
2. 시작하기 전 준비 사항
• 물건 정리 및 진열하기
[STEP 01] 업무(Task) 정리
: 기존에 ‘업무/기술 부채’로 분류되어 있던 업무들을 정리하여 가시화하는 과정이다.
[CASE 1] 업무 기록이 잘되어 있는 조직이라면
: Jira, Asana 등을 통해 업무를 잘 기록해두는 조직의 경우, 평소 ‘업무/기술 부채’도 정리되어 있을 것이다. 이를 잘 정돈해 리스트업 하고, 추가 내용이나 이미 해결된 내용이 있는지 확인한다.
[CASE 2] 업무 기록이 부족한 조직이라면
: 평소 업무 기록이 잘 되어 있지 않은 조직이라면, 이번 기회에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업무 부채’를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창고에 마구 쌓여있던 물건을 꺼내어 깨끗하게 진열하는 것이다!)
(a) ‘반드시 진행될 업무’를 확인한다. (이 업무는 마켓 플레이스 논의에서 배제된다.)
– (아마도) 전사에서 공통적으로 이번 분기/반기에 이뤄야 할 목표와 할 일들이 이미 도출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업무는 마켓플레이스에서 다시 우선순위를 결정할 ‘업무 부채’가 아닌, 그냥 반드시 진행해야 할 업무이다. 무조건 진행할 마일스톤의 경우, C-레벨 혹은 팀장 등 의사 결정 책임이 높은 사람들이 주도하여 나열한다. 전사 OKR 등을 참고하면 명확할 것이다.
[예] 서비스 통합 시스템 구축운영 효율화를 위해 전체 서비스 프로세스를 시스템화할 예정
– 해당 작업은 마켓 플레이스에서 논의를 배제할 내용을 우선 정리하는 것으로, ‘반드시 진행될 업무’를 우선 나열하여 모든 마켓 플레이스 참여자가 확인하도록 한다.
(b) 팀 별로 5~10개의 업무를 나열한다.
– 마켓플레이스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업무를 팀 별로 5~10개 정도씩 합의하여 나열한다. 일반적인 마켓 플레이스에서 나열할 업무는 실제 진행해야 할 담당 팀이 어떤 팀인지 관계없이 나열하며, 만약 ‘기술 부채’에 한정된 마켓 플레이스를 진행하는 것이라면 개발팀이 진행해줄 업무만 나열하면 된다.
– (a)에 언급한 것처럼 이번 기간 동안 ‘반드시 진행될 업무’는 배제해야 한다.
[업무 나열 시 포함할 내용]: 업무 번호, 업무 내용
– 팀별로 도출한 업무가 모두 나열되면, 마켓플레이스 진행자는 ‘업무의 종류’와 ‘담당팀’을 대략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한다. (물건이 ‘음식’인지, ‘문구류’인지 등을 분류하는 작업이다.)
• 가격 응찰하기
[STEP 02] 팀별 1차 점수 배분
: 나열된 업무의 점수를 처음으로 매겨보는 과정이다.
(a) 진행자가 업무를 모두 정리했다면, 팀 별 총점수를 할당한다.
: 위의 표의 파란색 텍스트처럼, 마켓플레이스 진행자는 팀 별 총점수를 할당한다. 이때, 각 팀에 할당된 총점수는 팀의 ‘규모’나 ‘결정권’에 따라 차이가 난다. 회사 내에서 가장 의사결정권이 센 팀이 점수를 많이 가져가고, 결정권이 적은 팀은 점수를 적게 가져간다.
예를 들어, 경영진은 100점을 가져가는 반면 기획팀은 30점, 세일즈팀은 70점을 가져갈 수 있다.
(b) 각 팀은 주어진 점수 안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업무에 점수를 매긴다.
[!] 각 팀은 모든 구성원들과의 논의를 통해 점수 배분을 확정 짓는다.
[!] 각 팀은 점수를 매기는 동안, 이에 대해 타 팀과 논의하지 않는다.
[!] 마켓플레이스 진행자는 이를 확인하고, 틀림이 없는지 더블 체크한다. 이로써, 마켓플레이스 진행을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3. 마켓 플레이스 참여자
• 참여자
(a) 마켓플레이스 진행자
(b) 각 팀의 의사결정을 대표하는 사람(팀장 등)
: 모든 팀의 모든 구성원이 마켓 플레이스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각 팀을 대표하는 담당자만 마켓 플레이스에 참여한다.
4. 마켓 플레이스 진행 순서
• 응찰 결과 확인하기
[STEP 03] 마켓 플레이스 간략 소개 & 1차 점수 공개
(a) 마켓플레이스 간략 소개 (3분)
– 해당 워크숍의 취지를 소개한다. 마켓플레이스는 회사에 쌓여 있는 업무 부채를 모두 확인하고, 오해 없이 업무 우선순위를 결정하기 위한 워크숍이다.
(b) 1차 점수 공개 (5분)
: 정리된 1차 점수를 공개한다. 어떤 업무는 의외로 높은 점수를 받았을 수도 있고, 우리 팀에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슈가 다른 팀에게 외면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차 점수의 결과에 따라, 우리 팀에서 마켓플레이스에서 취할 전략을 생각해본다. (어떻게 흥정하면 좋을지 등)
• 흥정하기
[STEP 04] 업무별 전체 논의
(a) 발제자 설명 & 전체 논의 (45분~90분)
– 업무를 발제한 팀에서 해당 업무를 간단히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설득의 어투가 나와도 좋다.
– 이슈에 대해서 자유롭게 논의한다. 각 이슈에 대한 논의가 5~10분을 넘기지 않도록 진행자가 적절히 커트한다. 일종의 ‘흥정’의 단계이다. 왜 이 이슈가 중요한지, 다른 이슈와 연관성이 어떻게 있는지 점수를 더 받을 수 있게끔 다른 팀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b) 점수 수정 (10분)
– 논의가 끝났다면 점수를 수정한다. 논의를 거치며 타 팀의 주장에 설득당했다면 열린 마음으로 점수를 수정한다.
– 또한, 중요한 업무의 점수가 너무 낮다면 해당 업무에 내가 가진 점수를 모두 집중해서 줄 수도 있고, 어떤 업무는 이미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면 점수를 조금 덜어내어 다른 업무에 점수를 줄 수도 있다. 단, 이렇게 하다가 다른 팀도 동일하게 생각해서 해당 이슈가 탈락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c) 2차 점수 공개 및 최종 피칭 (10분)
: 정말 중요한 업무가 밀렸다면,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는 이슈에 대해 최종적으로 피칭한다.
(d) 최종 점수 배분 (5분)
: 최종 피칭 후, 이에 따른 점수 배분을 마지막으로 진행한다.
• 거래하기
[STEP 05] 우선순위 최종 결정
(a) 최종 점수 정리 (10분)
– 마켓플레이스 진행자는 최종 점수를 정리하고 이를 참여자에게 공개한다. 진행자가 점수를 정리하는 동안, 참여자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다.
(b) 담당팀 & 오거나이저 결정 (20~30분)
– 최종으로 점수가 가장 높은 업무 순서대로 리스트를 정열 한다.
– 각 이슈별로 담당팀이 명확할 수 있으나, 다시 한번 담당팀을 확인해서 정리해둔다.
– 상위 n개의 업무의 크기에 따라, 업무를 진행할 담당팀은 몇 번까지의 업무를 이번에 처리할 수 있는지 판단한다.
– 해당 업무를 이끌어갈 오거나이저를 1명씩 결정한다. 오거나이저란, 팀장의 의미가 아닌 해당 프로젝트의 회의 시간을 스케쥴링하고, 프로젝트 매니징을 할 사람을 의미한다.
5. 마켓플레이스가 끝나고 할 일
• 물건 사용하기
[STEP 06] 업무 진행하기
(a) 내용 정리 후 전달
: 마켓 플레이스 진행자는 모든 내용을 정리해서, 전사에 공유한다. 전사 공유 방법은 애자일 회고와 마찬가지로 (1) 간단한 불릿 포인트로 메신저에 공유하고 (2) 모든 내용은 사내 드라이브에 아카이빙 해둔다.
(b) 업무 진행
: 각 오거나이저는 킥오프 미팅 주관을 시작으로, 데드라인을 결정하고 모든 업무를 트래킹 하여 업무 완료까지 맺음 짓는다. (오거나이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c) 업무 진행 회고
: 마켓 플레이스로 결정된 업무가 실제로 제대로 진행되었는지, 해당 기간의 마자막에 간단한 확인과 회고의 과정을 거친다.
6. 끝으로
오늘은 업무 부채를 줄이기 위한 워크숍 방식인 ‘마켓 플레이스’ 진행 방식을 소개했다. IT 회사라면, 기술 부채를 줄이기 위해 마켓 플레이스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개발팀 외에도 각 팀의 업무 부채를 전사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우선순위를 결정하는데 마켓 플레이스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본인의 To-do List에 적혀있는 일들을 불안한 감정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객관적 시간으로 보는데 마켓플레이스를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업무 및 기술 부채와 관련한 아티클 몇 가지를 아래에 나열해두겠다.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하시길!
– “What is ‘task debt’ and how is it impacting you?” by Eva Short
– “How declaring a ‘to-do list bankruptcy’ made me more productive” by Becky Kane
– “Technical debt – introduction to the problem” by Piotr Sliwa
최용경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