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기사에 숨겨진 비밀, “출원”이 뭔가요?
모든 글엔 목적이 있다. 글쓴이의 의도가 글에 반영된다. 때로는 글을 쓰는 자체로 목적이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기사 속에서도 의미를 뽑아낼 수 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이 중시되는 세상에서 흩뿌려진 데이터 조각을 모아 하나의 방향을 찾아내는 일과 같다. 데이터 과학자의 역할과 작가의 역할은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점에서 결을 같이 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글의 제목을 선정하는 일, 그리고 내용을 써내려 나가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다른 작가의 의도를 고민해 보게 된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글을 썼을까?”, “글을 쓰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려고 했을까?”라는 등의 질문이다. 클릭을 하고 싶어 지게 만드는 제목이나 독자를 감동시켜 새로운 영감을 주는 글을 만나 유레카의 순간을 외치기 위한 작가들의 습관이다.
업계에 몸담는 시간이 늘수록 새로운 지식이 늘어난다.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특허 업계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가 있다. “출원(出願, apply for)“이라는 단어이다. 업계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영원히 사용하게 되는 말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출원”은 특허를 받기 위한 서류를 제출한다는 것이다. 대학교 입학을 위해 원서를 제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학교가 요구하는 자격요건을 갖추고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원서를 내는 것만으로는 입학 여부가 담보가 되지 않는다. 정원 미달 학과를 전략적으로 공략하는 방법을 제외하고는, 자기소개서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고 마음을 졸이며 대학 입학처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대학 입학서류 제출 = 대학 입학’이라는 방정식을 수정해줘야 한다.
특허도 마찬가지이다. 특허증은 대학 입학이나 회사 취직과 같이 일정한 요건을 만족한 “에이스 기술”에게 부여하는 입학통지서이자 입사통지서와 같다.
특허청이라는 입학처에서, 서류를 받아보고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류를 제출한 것만으로는 그 회사의 기술력을 입증하였다고 볼 수 없다. 합격 통지서는 특허청의 심사 과정을 거치고 최종적으로 “등록”되어야만 받을 수 있다.
“출원”과 “등록”의 단어를 혼동하면서 아쉽게 옥에 티를 만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5화 특허소송 더 재밌게 보는 팁
기업은 자신이 보유한 기술력을 홍보하고 싶어 한다. 현대사회에서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에게 스스로의 기술력을 알려야 한다.
언론매체를 통해 새로 개발한 기술에 대해 “특허 출원”을 하였다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특허를 통해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시도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가 하버드 대학에 입학 서류를 제출한 것으로 합격이 담보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이들 기사에서 “특허”라는 단어보다는 “특허 출원”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편의상 “특허”라고 통칭되는 경우도 있지만, “특허출원”은 전혀 다른 의미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업계 종사자로서, 이러한 기사는 기업이 기술을 홍보하겠다는 의지이자 IR을 위한 노력으로 읽힌다. 기사의 목적도 그러하다고 생각된다.
“특허 출원”을 하고, 특허 등록이라는 허들을 넘지 못하거나, 퀄리티를 포기하는 수많은 현실 타협형 특허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시작과 끝을 동시에 살펴봐야 한다. 적어도, 엔딩이 열린 결말이라는 점은 알고 정보를 취사선택해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해당 기업에 기술력이 실제 있는지는 특허를 살펴봐야 하고, 실제 “특허 등록”까지 이어졌는지를 봐야 한다. 섬세한 투자자나 경쟁사는 실제 이러한 특허가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지(즉, 좋은 특허인지, 시장 독점이 가능한 특허인지)까지 살펴보는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좋은 특허는 i) 시장에서 충분한 자산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특허이고, ii) 경쟁사의 기술 모방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특허이다. 특허문서의 제목과 본문을 정독하고, 숙고해야 파악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물론, 특허출원을 한 사실 자체로도 홍보하는 것은 특허법에서도 권장하는 일이다. 그러나, “출원”과 “등록”이라는 용어를 혼동해서 쓰게 되면 법적인 책임까지 져야 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오용이 반복된다면 민사 책임을 넘어 형사 책임까지 질 수 있는 복잡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특허 출원을 많이 하였다는 것으로 기업의 R&D가 활발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지표가 되고, 정량 지표를 관리한 기업이 지식재산(IP)을 잘 보호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해당 기업의 기술 공백이나 동향을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해당 기업이 실제 기술을 개발하여 보유하고 있는지, 경쟁사의 기술 모방을 저지할 정도로 효과적인 특허를 가지고 있는지는 현재 단계에서는 모른다. “특허 출원”이라는 것은 서류를 제출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다림 끝에 특허 심사를 통과하여 합격증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특허출원”을 한 것은 “가능성의 순간”에 있다는 점에 항상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손인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