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홍보 카피를 써준다고?
프로모션 마케터가 하는 여러 일 중에 카피라이팅도 포함된다. 유저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준비한 기획전, 프로모션에 더 많이 유입시키고 구매로 전환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어떤 문구를 써야 더 눈에 띌까? 기억에 남을까? 생각하며 짧은 한두 줄의 문장을 이리저리 다듬어보는 것이다.
올해 초, 인공지능이 대신 카피와 홍보문을 써준다는 <뤼튼 카피라이팅>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이 나왔으니 써봐야지!
업로드 주제를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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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오호? 디테일이나 맥락 파악은 아쉬웠지만 의외로 그럴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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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 생성 시점이 2023년인데, 2019년으로 이벤트 시기를 설정한 게 웃겼지만, 아마도 기존 문구들을 재조직하는 과정에서 2019년이 불러와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한 것은 디테일보다는 카피의 전체적인 구성이었다.
- 첫 문장에 무엇을 하는지 간략하게 적었다. [세일 시작]
- 유저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공략 포인트도 잡았다. [다리 길어 보이는 인생핏 바지 득템]
- 관심을 유입/구매로 전환시키기 위한 프로모션 포인트도 있다. [10% 쿠폰 + 5% 쿠폰 증정까지]
- 홍보 문구에서 가장 중요한 CTA도 놓치지 않았다. [위 링크 클릭하면 바로 이동 가능해요]
- 마지막으로 중요한 일정을 정리했다. [이벤트 기간, 당첨자 발표]
** CTA: Click To Action 홍보문의 마지막에 이벤트 페이지로 유입시키기 위한 클릭 장치
뤼튼 카피라이팅은 인스타그램 피드, 페이스북, 자기소개서, 리포트, 유튜브 숏츠 대본 등 써야 할 글의 속성에 맞게 대략적인 글의 구성과 내용 가이드라인을 잡아준다. 디테일한 정보는 프로모션 상세 내용에 맞게 수정하면 된다.
어디서 본 듯한 비슷비슷한 카피를 쓰는 수준은 된다는 것이다. 난이도를 좀 더 높여보았다. 정보가 부족한 소재의 글도 잘 쓸까? 이번에는 밑미 리추얼 프로그램 홍보 문구를 써봤다.
업로드 주제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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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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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정보가 많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어떤 ‘유형과 구성’의 글을 써야 할지 잘 파악했다. 특히 [리추얼], [밑미]라는 키워드를 조합해서 [내 마음 챙김], [습관 만들기], [데일리미션] 등의 키워드를 생성한 것이 놀라웠다.
그럼, 나는 이 글을 실제로 사용했을까?
예상했겠지만, 답은 “아니요.”
위 두 케이스에서 내가 실제로 쓴 홍보 문구는 아래와 같다.
SS 팬츠 프로모션 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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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잘 썼고 못 썼고의 관점에서 보려는 게 아니다. 내가 카피를 쓰는 방식과 인공지능이 카피를 쓰는 방식의 차이점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내가 카피를 쓰는 방식은 프로모션의 맥락을 먼저 자세하게 파악한 뒤, 가장 강조해야 할 키워드를 선택하고, 이 키워드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문구를 고민한다. 내가 일하는 커머스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은 쇼핑몰과 브랜드 상품이 함께 큐레이션 되는 구조이다. 그래서 [쇼핑몰부터 브랜드까지 다양한 팬츠 상품이 있고, 그중에서 원하는 상품을 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도를 카피에 담아야 한다. 프로모션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준비한 혜택이 중요하므로 80% 특가와 15% 쿠폰도 강조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소재의 맥락과 의도를 기반으로 카피를 생성하지 않는다. 쓰고자 하는 콘텐츠의 유형에 맞게 내가 입력한 키워드를 배치하는 방식이다. “어떤 고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전환이 될지”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으로 프로모션을 홍보할 때는 이런 정보가 들어가야 한다.”를 학습해서 템플릿으로 만든 것이다.
밑미 공부 리추얼 모집 안내
** 실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글 [밑미] 나를 키우는 하루 30분 공부 리추얼 |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 홍보문을 보고 이전에 같이 독서 모임을 했던 M에게 연락이 왔다. M이 참여하는 영어 스터디에서 내가 올린 리추얼 홍보글을 보고 한 멤버가 공부에 대한 태도가 공감되어 공유했다는 것이다. M은 최근에 어떤 목적으로 공부해야 할지, 왜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내가 이야기한 <나답게 공부하는 마음>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아마 인공지능이 써준 템플릿에 맞춰 홍보글을 올렸으면 이렇게 공유되거나 공감한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을 거다. 이 글이 M, 그리고 그의 영어 스터디 멤버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이 글 안에 내가 1년 넘에 공부 리추얼을 이끌며 깊이 고민한 공부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이미 세상에 흔하게 존재하는 정보를 분석하는 일에 탁월하다. 아마 내가 아무리 열심히 조사한다고 해도 그 스킬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깊은 고민과 사유를 담은 글, 산업/비즈니스/회사의 맥락을 반영한 글을 쓰지는 못한다. 이것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글들은 공개된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쓸 수 없는 글에는 필연적으로 시간과 마음이 들어간다. 이제는 <그냥 하던 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깊은 고민을 통해 자신만의 관점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영향력을 갖는 시대다. 송길영 박사가 일찌감치 책 <그냥 하지 말라>에서 던진 화두이기도 하다.
어차피 챗GPT가 알려줄 텐데
공부할 필요가 있어?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것은 더 이상 지식이 아니다. 태도와 생각법이다. 그러나 태도와 생각법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흡수하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자동번역 기술이 고도화되면 번역가가 사라질까?
AI의 스토리텔링 기술이 고도화되면 소설가가 사라질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AI가 잘할 수 있는 것은 거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능력이다. 데이터가 말해주지 않는 것을 만들 수는 없다. 인간은 데이터에 없는 것을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 태도와 생각법이다.
나만의 고유한 태도와 생각법을 갖추려면 결국 ‘공부’해야 한다. 무엇을 공부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공부하느냐이다. 공부해야 할 대상이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다. 최근에는 데이터 처리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취업준비생들이 SQL, Python과 같은 데이터 툴 공부를 열심히 한다.
몇몇 사람들은 그 열심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기계가 코드를 다 짜줄 텐데, 데이터를 다 가공해 줄 텐데 머리 아프게 SQL을 왜 배워? 조금만 기다리면 챗GPT가 다 해줄 것 같은데.” AI 기술에 문외한인 내가 이 질문에 그렇다 아니다를 답할 수는 없다. 그러나 AI가 나 대신 SQL 쿼리를 짜주는 세상이 온다고 해도 SQL 기본 개념 정도는 공부할 것이다.
지난달 SQL 자격증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고, 시험을 봤다. 내가 준비한 SQLD 시험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아닌 입문자를 위한 시험이다. 데이터 베이스가 무엇인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기본문법이 무엇인지 배우고 검증하는 시험이다. 이 시험을 본다고 해서 회사 데이터팀 직원처럼 SQL 구문을 작성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어떻게 요청해야 할지, 그들의 솔루션에 어떤 추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앞으로 해야 하는 공부는 <그 분야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기본 지식과 마인드셋 배우기>가 될 것이다. 새로운 분야의 입문 시험을 자주 보게 될 것이고, 그에 맞춰 새로운 공부도 계속할 것이다. 그때마다 ‘기계가 해줄 텐데’라고 생각하며 공부하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 될까?
일단 다른 팀과 협업을 할 때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하기가 어려워질 거다. 내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하던 10년 전쯤에는 팀 선임과 신입사원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나누어 진행했다. 기획의 큰 틀은 선임이 설계하고 운영에 필요한 단순 반복 업무는 신입사원이 맡았다. 요즘 기업들은 그런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1명이 1개의 프로젝트를 오롯이 혼자 이끌어나간다. 규모가 크다면 기획자 여럿이 협업한다. 그러나 메인과 서브로 업무를 쪼개는 것이 아니라 업무 항목으로 역할을 나눈다.
앞으로는 스스로 여러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을 엑셀처럼 쓰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업무의 일부를 대체하게 될 거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디자인 툴, 데이터 툴, 기획 툴을 능숙하게 다루고 각 분야의 기본 지식과 맥락을 알아야 오롯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다.
나는 디자이너가 아닌 마케터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기획안을 전달해야 한다. 그러려면 웹 디자인 공부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디자인이란 뭘까?, ‘ ‘좋아 보이는 것의 비밀’ 이런 주제의 시각 디자인 입문서 한두 권쯤은 읽어야 한다.
새로운 툴이 계속 생겨날 것이고, 우리는 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이전에 하지 않았던 업무까지 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빠르게 배우고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취향이 아닌 고유한 언어
고유한 취향은 대체될 수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가 ‘고유한 취향’을 갖고 있는 걸까? 커피 시장에서 커지는 디카페인 수요, 와인에서 위스키로 옮겨가는 트렌드를 보면서 취향이야말로 개인적 자본을 넘어선 사회적 자본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좋은 취향의 기준도 변한다.
게다가 <고유한 취향을 이해하고 제안하는 능력>이야말로 AI가 가장 잘하는 분야다. A 브랜드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인을 구매한다면 어떤 브랜드를 선호할까? 데이터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사람보다 AI의 해답이 적중률이 높을 것이다. 취향이 개인이 아닌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데이터는 충분히 많다. 개인이 AI보다 타인의 취향을 잘 이해하고 제안할 수 있을까?
대체될 수 없는 것은 취향이 아니라 ‘매력’이다. 좋아하는 크리에이터가 추천해 준 제품이라면 취향에 살짝 맞지 않아도 사본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취향에 맞기 때문이 아니라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개인의 취향은 경험에서 나온다. 매력은 ‘태도’에서 나온다. 태도는 ‘고유한 언어’로 표현된다. 나는 내 삶의 태도를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고 제안할 수 있는가? 나만의 언어를 갖는 것은 AI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이 이길 수 있는 영역이다.
나만의 언어에는 AI가 모르는 데이터, 나의 고민과 시간의 맥락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나는 내 일을 나만의 언어로 정의할 수 있는가?
나는 내 삶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가?
나는 내 관계를 나만의 언어로 확장할 수 있는가?
단단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