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이 옆으로 늘면서 유지도 힘들다
신입으로 일을 시작하거나 이직을 하거나 다른 조직으로 전배를 가면 생존 본능과 의욕, 신선한 관점이 결합되어 보통 의욕을 갖게 됩니다. 이전까지 알고 있던 기술과 트렌드로 지금 하는 일을 바꿔보거나 새로운 것을 제안하죠. 초반 얼마 간의 시간 동안 보통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을 다 합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아이러니 한 점은 이런 혁신적인 직원이 하는 일만 하는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것을 보는 것이죠. 여전히 의욕은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결과물 자체는 늘 같은 것을 돌리고 있을 뿐입니다.
늘 사람을 갈아 넣는 회사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위로부터만 일이 내려오는 꽉 막힌 문화, 혁신적인 직원의 커뮤니케이션 기술 부족, 회사의 자금 부족, 동료들의 텃세, 사일로가 심한 환경으로 인한 제안한 업무의 중단 등 사실 이유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나누고자 하는 이유는 이와는 조금 다른 ‘사람을 갈아 넣어 일하는’ 구조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을 갈아 넣어 일한다’는 것은 생소한 단어가 아닙니다. 아무리 기업문화가 우수한 회사라고 해도 어느 시점에서는 기업 문화와 상관없이 사람을 갈아 넣는 프로젝트가 생깁니다. 워라밸이 장점인 회사이지만 회사가 급한 상황에는 갈릴 수도 있는 게 보통의 회사입니다. 하지만 오늘 나누고자 하는 회사는 ‘늘 갈아 넣는 회사’입니다.
늘 직원이 갈리는 회사는 사실 성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회사가 성장해서 일이 많아져서 한 명이 부담해야 할 업무량이 늘어나서 갈릴 수도 있지만, 경험상 회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안 좋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일이 많이 생겨나고 일이 쌓이면서 갈리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일이 늘어나는 것은 조직의 성향이며 특히 조직의 리더의 성향이기도 합니다.
혁신적인 직원 이야기로 잠시 돌아와 보겠습니다. 처음에 이런저런 제안을 하고 그것의 모델을 보여주기 위해 야근도 불사해서 작은 결과물들을 하나씩 구현하고 공유하는 직원은 초반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이 직원이 보기에는 이건 조금만 생각하면 요즘 트렌드로 할 수 있는 것인데 왜 아직 하지 않았는지 의아할 수도 있죠. 하지만 곧 알게 됩니다. 다들 하는 일만 하느라 야근을 하는 이유를 말이죠. 일이 계속 쌓여가는 것입니다.
한 가지 혁신적인 결과물을 만들면 그것은 개발에서 운영으로 바뀝니다. 새로운 것을 하나 만들면 정기적으로 그걸 돌려야 하는 것이죠. 간단한 현황을 보기 위한 대시보드를 만들어서 기존에 설명할 수 없었던 지표들로 현상을 명확히 분석해서 호평을 받습니다. 그러면 그 대시보드를 계속 그 사람이 돌려야 합니다.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를 정비해서 기존보다 효율을 올리는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했습니다. 그 이후에 이걸 계속해야 합니다. 제안한 한 명이 하나를 개발하면 그것은 곧 본인의 운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당연히 일이 늘어나고 그 일이 가치 있는 것이면 같이할 사람을 더 채용하거나 조직을 키워 여러 사람이 나눠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통의 상식은 그렇죠. 하지만 늘 상식대로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1
먼저 이 혁신적인 직원이 한 일이 회사에서 너무 작은 일로 생각할 때입니다. 직원이 있는 조직에서는 이 직원이 하는 일이 기존과 다른 방식의 혁신인데 회사 전체에서는 아무 느낌이 없을 수 있습니다. 기여하는 매출이 작고 비주력 사업일 때 그런 일이 생기죠. 전체의 TO가 막힌 상황에서 이 직원을 위해 채용을 늘리는 일은 드물기에 혁신적인 직원은 만든 일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상당한 리소스가 고정적으로 들어갑니다.
#2
같이 할 역량이 주변에 없다면 혼자 안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AI를 이용해 기존에 하던 일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성과를 냈다면 그걸 같이 나눠하기 위해서는 주변 동료들이 비슷한 역량은 되어야 운영을 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한 명만 이렇게 뽑고 나머지는 채용하지 못했다면 당분간 이 직원은 혼자 만든 일에 치이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할 공간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미 만든 혁신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인프라 투자가 없다면 운영은 버거운 것으로 다가옵니다. 그때 만든 것 보고 한 번 잘 듣고 잘 적용되리라 생각하며 이제 그게 잘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혁신은 계속될 수 없습니다. 자동화시키기 위한 투자, 고도화하기 위한 자금과 시간의 지원이 필요한 데 말이죠. 어느덧 혁신적인 직원의 캘린더는 지금까지 만든 일을 운영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원래 하려고 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다 하지도 못했는데 그런 것을 구현할 시간은 전체 주간 리소스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되면서 지치게 되죠. 이제는 현실에 그냥 맡기며 살까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평가와 보상은 일시적으로 동기부여를 주기도 하지만 에너지가 바닥난다면 그마저도 사라지게 되죠.
다시 리더의 성향으로 돌아옵니다. 일을 벌이는 리더, 호기심이 많아서 질문이 많은 리더, 리소스 관리를 못해서 늘 급하게 뭔가를 달라는 리더는 혁신이 실무에서 왜 사라지는지 알지 못합니다.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회사는 나보다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 관리하는 리더를 이상적으로 생각하지만 나보다 일 잘하는 사람을 뽑긴 했는데 활용할 공간을 주지 않습니다.
리더는 전략적이어야 합니다
전략은 선택과 포기를 의미합니다. 집중을 의미하죠. 혁신적인 일을 하고 있는 직원이 있다면 가장 혁신적인 것을 계속 더 할 수 있도록 덜 혁신적인 것을 누군가가 나눠지도록 자원 배분을 편향적으로 하는 게 리더의 역할입니다. 안 그래도 그런 게 안돼서 힘든데 리더의 고민까지 같이 급하게 내려버리면 혁신은 설 공간이 없습니다.
회사에서 혁신이 사라지고 있다,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변을 보면 너무나 혁신적이고 학습과 성장에 매달린 친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곧 이직한 회사에서 지쳐버립니다. 실적에 쫓길수록 더 살아남기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데 지금 돌리는 일을 더 힘들게 자주 많이 돌리는 것에만 천착해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조직 전체가 번아웃 되어 버립니다.
문제와 해결책 모두 이런 과정 속에 숨어 있습니다. 내가 일하는 조직은 어떤가요? 왜 몇 달 전만 해도 혁신적인 직원이 지금은 과묵해졌는지, 늘 같은 결과물만 돌리고 있게 된 것인지 문제는 우리 주변에서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